여현은 별관에 진입하면서부터 이질적인 존재를 인지했다.
완전히 낯설었다. 그 누군가를 둘러싼 모든 게.
어째서 그런 느낌에 사로잡힌 것인지 고민하다 보니 이미 지하 4층이었다.
한계까지 방전되었다가 앉아서 숨 쉴 수 있을 만큼만 겨우 회복된 몸으로는 단순한 생각을 이어가는 것도 힘들었다.
정말로 지친 상태다. 그러니까 저게 누구든 더 고민하지 말자. 그저 스쳐 지나치는 게 정답이다. 에이아이가 별관 출입을 허가했으면, 적어도 보안을 위협하지는 않을 테니까. 여현은 느릿느릿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그 누군가의 회갈색 머리칼이 시야에 담긴 순간, 직전의 결심을 잊고 생각을 더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바로 알아보았다.
옷에 박힌 로고를 보기 전에.
감각기관으로 인지한 정보를 분석하는 구체적인 사고와 판단이 이루어지기 전에, 몸이 앞서 알아챘다.
그녀가 가이드라는 걸.
삑. 삑. 철컥.
그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안전벨트를 풀기까지, 더 많은 것을 보게 됐다.
센터 로고가 팔에 박힌 진남색 오버사이즈 숏 패딩. 마찬가지로 센터에서 지급했음이 분명한 검은 트레이닝 상하의. 목선이 드러나는 가벼운 숏컷.
묘하게 서늘한 인상.
도시적이지만, 날이 서 있지는 않은 분위기.
그녀를 구성하는 색채는 희미했다. 자세히 보면 마냥 밝은 색들은 아닌데, 첫인상은 그랬다.
압도적으로 공간을 점령하는 선명한 존재감과는 정반대로.
소름이 척추를 꾹꾹 짚으며 느리고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려갔다.
희고 앳된 얼굴이 그를 향했다.
눈동자의 색감조차도 연했다. 보석 같은 동그란 홍채는 머리칼보다 회색조가 강했다.
유리창 너머의 가이드.
투명한 벽 너머의 그녀가 입술을 열어, 그를 불렀다. 작게라도, 음파의 진동이 닿았다.
김여현 에스퍼.
그녀가 부른 것은 그의 이름이었다.
낯선 목소리.
제 기억 속 어디에도 없는 음성.
속이 울렁였다.
그래서 차에서 내린 여현은 돌아보지 않았다.
다른 우연을 이 삶에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앞으로 반드시 감당해야 한다고 예고된 것들만도 벅찼다.
“김여현 에스퍼님!”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이 따라붙었다.
실제보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색감과 달리, 그녀의 선명한 존재감과 닮은 목소리.
다소 낮고, 그럼에도 청아한 그 음색이 점점 더 가까이 왔다.
***
극악의 매칭률에 한하여, 김여현보다 더한 전설은 없다.
매칭률 10%대 이하인 가이드가 국내에만 7명이고, 20%대는 국내로 범위를 한정하더라도 쉬이 셀 수가 없다. A급만 해도 20%대 매칭률이 20명대.
‘저 S급 꼬마, 1년 내에 폭주한 뒤 사망할 겁니다.’
연구원들은 확신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저 S급 꼬마가 폭주를 시작했을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저 꼬마를 가두어 둘 벙커를 하루빨리 깊은 지하에 시공하는 것뿐입니다.’
‘환상계도 아닌 물리계잖아요. 대량살상무기 그 자체예요.’
그래서 정부는 곧장 강원도 끝자락에 땅굴을 파서 미친 듯이 콘크리트를 부어댔다. 아홉 살 소년 김여현의 힘을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곳에 매장하기 위해.
핵폐기물을 매립할 때보다도 더 신중하고 꼼꼼하게.
국익을 위한 기밀이라는 이름하에 소년 김여현에 대한 정보와 강원도에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의 실체는 꽁꽁 감추어졌다.
1년은 무슨……. 폭주까지 한 달, 심지어는 일주일을 점치는 전문가도 태반이었다.
그러나 김여현은 살아남았다.
괴물 같은 자체회복력과, 신이 그를 택하였다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재능 덕에.
자체회복력. 그것은 에스퍼가 가이딩 없이 자체적으로 힘의 그릇을 채워내는 속도.
김여현은 극악의 매칭률을 지닌 대신 전례 없는 자체회복력의 소유자였다.
정규분포 그래프에 둘을 올리면 똑같이 극단에 이를 만큼.
쉽게 말해 24시간 내내 B급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래 봐야…… 월등히 거대한 그릇을 고려하면, 엄청난 크기의 댐으로 좁은 시냇물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정도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그런 김여현에게 가이드의 존재란 늘 희망고문과도 같았다.
영원히 만져지지 않을 신기루.
끝까지 고통만을 주고받을 끔찍한 안내자.
***
“에스퍼님!”
영원의 부름에도 여현은 그저 멀어져갔다.
“잠시…… 잠깐만요!”
지하 4층 주차장은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결국 영원은 여현을 붙잡기 위해 뜀박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 다리가 왜 저렇게 길어.’
‘지정주차구역 저기라며! 왜 다른 데에 주차하는 건데!’
동시에 필사적으로 전력질주를 하면서 영원은 깨달았다.
“……현 에스퍼님!”
집주인느님은 의도적으로 이쪽의 부름을 꼭꼭 씹어 잡수시는 중이라는 걸.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계획 수정, 슬프지만 계획 수정.’
에이아이가 영원의 보안수칙 위반을 인식하고도 곧장 보안벽을 작동시키지는 않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현…… 흐. 김여현 에스퍼님!”
숨이 점점 차올랐다.
타닥.
에이아이가 허가해주지 않는 한 절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콘크리트 벽.
그 앞까지 가서야 영원은 겨우 여현을 막아설 수 있었다.
“하아. 하.”
탁.
정확하게는 막아섰다기보다, 벽에 달린 육중한 철문과 여현 사이를 겨우 파고들었다.
“……ㅍ님!”
“…….”
탕.
영원은 여현이 열려고 했던 철문을 도로 닫으며 그에 기댔다.
“제가, 허억. 흐아.”
“…….”
“흐으. 하.”
“…….”
숨이 차서 망가진 얼굴로 처음 마주하는 건 서로 민망할 것 같아서, 영원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골랐다.
바람에 날려 헝클어진 머리의 정수리와 뒤통수만 그의 눈에 보이게끔.
하아, 하아.
영원의 눈에 보이는 건 긴 다리뿐이었다. 너무 길어서 방금까지 자신을 꽤나 괴롭게 했던.
그리고 영원은 퍼뜩 놀랐다. 생각보다, 그와 자신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숨을 고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이제, 이제 좀 나아진 듯.’
영원은 얼굴에 몰렸던 열이 사그라졌다는 걸 손등으로 확인한 뒤에 입술을 뗐다.
“예고 없이 죄송합니다만…….”
여현의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들었다.
“김여현 에스퍼님.”
복면에 가려지지 않은 한쪽 눈이 영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높은 곳에서. 상당히 가까이서.
영원은 눈을 두 번 깜빡인 뒤 확 시선을 내렸다.
그는 한파가 몰아치는 와중에도, 바깥 공기를 맞을 걸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듯한 가벼운 차림이었다.
검은 슬랙스. 같은 색의 히든버튼 셔츠. 짙은 남색의 카디건. 검은 마스크.
채도 짙은 모든 것들 중 가장 검은 것은 그의 눈동자였다.
“…….”
“…….”
조용한 정적이 내렸다.
그는 사진보다 다소 마른 듯했다.
삐빅.
영원의 뒤통수 뒤, 철문에 달린 에이아이 센서가 작동했다.
여현이 말없이 손짓으로 무언가를 조작했다. 단정한 예쁜 손이 잠시 허공을 부유했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러면서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영원은 그제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느린 행동, 위로 올라갔다 내려간 팔과 손의 궤적, 영원을 바라보며 미세하게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지는 각도.
그 모든 게…… 심각하게 나른했다.
‘피곤해 보여.’
아주 지쳐 있다. 그 사실은 조금도 감추어지지 못했다.
영원은 정지한 채로 그의 시선을 받아냈다.
한쪽뿐인 눈이 느린 속도로 영원을 훑었다.
시선을 견뎌내는 영원의 등허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뭐야…….’
긴장했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게도.
이십 초반의 남자가 낼 분위기가 아니다.
‘뭐지, 아슬아슬해…….’
심히 퇴폐적이다.
키와 골격의 장점을 살려 모델이 되었으면, 헤로인 시크의 퇴폐미로 런웨이를 압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가 목소리를 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네.”
단 한 음절을.
“저는, 그…… 심영원이라고 합니다.”
준비한 말들이 있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대한민국에서 열여섯 번째로 각성한…… 비선별 가이드예요.”
그의 흥미를 끌 수 있기를 바라며 준비한 말이었다. 여러 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문장을 다듬었다.
“전담 가이드가 필요하시죠.”
긴 서론은 필요 없을 터였다. 서로 원하는 게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러니 본론을 간단히 요약해 말하기만 하면 되는 걸 텐데 입 안이 바짝바짝 탔다.
“아마 제가 도움을 드릴 수…….”
팡. 찰칵.
‘어?’
찰칵. 팡. 찰칵.
멀리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그걸 인지한 것은 영원 혼자만이 아니었다.
여현이 말했다.
“가이드님.”
“…….”
“장황하게 말고, 용건이 있으면 한 문장으로 요약하세요.”
갑작스레 여현의 요청을 받은 영원이 할 수 있던 유일한 생각은…….
‘……목소리 미쳤다.’
‘……진짜로 미쳤다.’
물구나무서서 백스텝하면서 들어도 고막 스트라이크존에 광속으로 꽂히는 강속구였다.
찰칵. 찰칵.
그때 사람들이 뛰어왔다. 별관 특별출입 프레스증으로 보이는 것이 대롱대롱 움직이는 걸 보면 기자들이 분명했다.
“실례합니다.”
“……네?”
여현이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영원은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그의 손길에 이끌려갔다.
‘어…….’
패딩에 싸인 영원의 팔이 거대한 손에 잡혔고, 그에 따라 영원의 등이 철문에서 떨어졌다.
“김여현 에스퍼님! 인터뷰! 잠시만요!”
철문이 열렸다.
쾅.
철문이 닫혔다.
영원은 그 외부에 남겨졌다.
‘뭐…….’
영원은 기자들보다도 더 멍한 표정이 됐다.
당혹스러웠다.
“무슨 사이시죠?”
“이 마크, 혹시 센터 소속 가이드이신가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가이드님, 김여현 에스퍼님과는 어떤 사이이신 겁니까?”
“무슨 대화 중이셨나요?”
영원은 멍한 기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으로 굉장히 당혹스러워져 버렸다.
그래서 기자들에겐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그쯤 되니 기자들도 그녀에게서 알아낼 것이 없음을 깨달았는지, 뒤에 붙어 따라오는 듯하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영원을 놓아주었다.
영원은 천천히 걸어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뒤돌았다. 오너가 더 이상 탑승해 있지 않은 검은 차가 멀리 보였다.
무채색임에도 화려하고, 구조가 무척 견고해 보이는 것이 그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영원은 무언가에 홀린 상태로 별관을 벗어났다.
찬 공기를 맞으며 본부 중앙의 공원을 마주했다. 공중을 부유하는 산이 그 뒤로 보였다.
초현실과 비현실로 그려진 환상적인 풍경. 그에 비해서도 더 현실과 동떨어져 있던 것만 같던, 김여현.
한참을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 행동, 눈높이 차이 같은 것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잔상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설명을 덧붙일 게 없는 목소리, 느리게 움직이던 몸, 온도가 낮아도 너무 낮던 시선.
또한, 만나기 전부터 알고 있던, 이성과 감성을 함께 뒤엉키게 할 정도로 사연이 많은 서사.
김여현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심영원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위험하다.
‘……위험해.’
내게, 위험하다.
영원에게 김여현의 첫인상은 그렇게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