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가이드가 에스퍼에게 힘을 넘겨줄 때의 효율 등을 복합적으로 수치화한 걸 매칭률이라고 해요.”
영원의 내적 절규와는 무관하게 투머치토커의 수업은 계속되었다.
“매칭률이라는 용어 자체는 그래도 익숙하죠?”
“네.”
“보통 50%를 넘으면 에스퍼와 가이드가 서로 정신이 고양되는 기분, 보다 자극적으로 말하자면 쾌감을 느껴요. 에스퍼 쪽이 훨씬 예민하게 감각하는 편이죠.”
윤 교수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뿔테안경 안의 눈을 찡긋거렸다.
“에스퍼들은 70%에 인접하면……. 오메, 이거 진짜 좋은 건데 뭐라고 말할 수는 없고, 이거 성인물은 아니니까 검열 걸리면 안 되고, 후후. 뭐 그런 고양감을 느낀대요.”
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가이드들은 75%는 넘어야 그런 느낌에 휩싸인다고 하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던 정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50% 이하의 매칭률이 나오기 시작하면, 서로 심각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수치화했을 때에는 쾌감보다 훨씬 강하게.”
처음 인터넷을 통해 위와 같은 정보를 알게 되었을 때, 영원은 그제야 점점 퍼즐이 맞추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김여현이 국민 영웅 대접을 받으면서도, 모두가 그를 가이딩하기를 거부했던 이유.
또, 결국에는 그가 명동 한복판에서 그릇이 완전히 비워져 폭주하게 된 이유.
수면 아래 가려져 있던 빙산의 본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매칭률이 35% 미만인 경우에는 법에 따라 가이딩을 금지하고 있어요. 사실상 고문과도 같은 고통이 전해지니까요. 에스퍼에게는 특히.”
“…….”
“그리고 역으로, 매칭률이 너무 좋으면 중독과 의존의 우려가 있어서, 70% 이상의 매칭률이 나오는 조합은 센터에서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높을수록 마냥 좋은 건 아니네요.”
“네. 그런데 걱정할 건 없어요.”
“왜죠?”
윤희유 교수는 잔잔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그런 경우는 극히 희소하니까요. 75% 이상의 매칭률이 나오는 파트너가 단 한 명도 없는 경우가 98%예요.”
“…….”
“80% 이상은, 여태껏 보고된 케이스가 전 지구를 통틀어도 도합 35건. 90% 이상은 0건. 다만 10% 이하가 여러 명 뜬 에스퍼는 있죠.”
김여현. 저 에스퍼가 누구인지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90%에 가까이 가면, 신을 영접하는 수준의 평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해보기는 하는데, 그냥 그뿐이에요.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겠죠.”
완벽한 안정, 극락에 뿌리내린 궁극의 평온. 성적 쾌감과는 다른 차원의 것.
“아무튼, 80%가 넘는 매칭률을 가진 케이스만 해도 손에 꼽아요. 특히 S급의 경우 단 한 케이스밖에 없죠. 아주 불행한 끝을 맞이해버린.”
“…….”
“그 이름도 유명한, 지옥의 여름.”
아직도 유럽이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건이었다.
“물론 크게 걱정할 건 없는 게, 절대다수는 45%에서 55% 구간 내에 매칭률이 싹 몰려 있어요. 엄청나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도. 다만 S급이나 비선별의 경우…….”
윤 교수는 눈앞의 비선별 가이드를 유심히 보았다.
“예외적인 아웃라이어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요. 절대다수와 매칭률이 어마어마하게 높거나, 반대로 어마어마하게 낮거나, 등등.”
영원은 교수가 확인해준 정보들을 곱씹었다. 하지만 그녀가 여태껏 설명해준 내용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다 알 수 있던 것이라 아주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 검색만으로는 답을 알 수 없던 고급정보를 묻기 위해 먼저 운을 떼었다.
“그런데 교수님, ‘역가이딩’이란 건 뭔가요?”
“역가이딩은…….”
윤 교수가 잠시 뜸을 들였다.
“보통 가이딩은 가이드의 의지대로 하는 거긴 한데…… 에스퍼 쪽의 능력이 막강한 경우, 힘을 뽑아내는 컨트롤을 에스퍼 쪽에서 해야만 할 수도 있어요. 그걸 ‘역가이딩’이라고 해요.”
“…….”
“생각해보세요. 내 정신이 멀쩡히 깨어 있는데 몸이 그 의지에 반해서 움직이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세면대 앞에서 세수를 하거나,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는 일상적인 행위가 내 의지에 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
“역가이딩은 에스퍼의 컨트롤이 미숙하면 가이드를 죽일 수도 있어요. 힘을 다 소진했을 때 죽는 건 에스퍼나 가이드나 마찬가지거든요. 가이드는 자연적으로 그릇이 채워지는 속도가 에스퍼에 비해 어마무시하고, 마지막에 그릇이 다 비워졌다는 이유로 폭주하지만 않을 뿐.”
“…….”
“매칭률이 35% 미만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가이딩 역시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요. 그래서 법이 정한 몇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서는 역가이딩을 하면 형사처벌을 받죠. 범죄니까.”
그리고 퍼즐 조각이 다 맞추어졌다.
왜, S급 에스퍼인 김여현이 가이드들에게 거부당하는지. 화상으로 망가진 외양은 주요한 이유가 아닌 듯했다.
김여현은, 국가의 허락하에 ‘금지되어야 마땅한’ 역가이딩을 했다.
“…….”
영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역가이딩 역시…… 매칭률이 낮으면, 에스퍼 쪽에서도 고통을 느끼겠죠?”
“과거 논문에 따르면, 매칭률이 낮으면 낮을수록…… 일반적인 가이딩보다 에스퍼가 느끼는 고통이 더 극심하다고 해요. 매우, 아주.”
“…….”
“누구도 실상을 진지하게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고통이라, 깊게 연구된 바는 없지만.”
“…….”
“그러니까 역설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은 들죠. 매칭률이 낮은 경우, 역가이딩으로 정말 죽을듯한 고통을 느끼는 건, 그 행위로 비난받는 에스퍼 쪽일 테니까.”
잠시 정적이 왔다가,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
김여현.
열 살 무렵, 혹은 그 이전에 각성.
세계수피셜로, S급 에스퍼 선별 당시 필드 대한민국 내 잠재력 1위.
국내 S급 랭킹 3위, 세계 랭킹 9위.
그러나 잠재력이 만개하는 순간 그 순위에만 머무를 이유가 없어질 밸런스 파괴자.
‘환상계’ 혹은 ‘물리계’로 구분되는 에스퍼 중 훨씬 희귀하고 강력하다는 물리계.
하지만.
구국의 영웅이라고 해도, 그를 전담해야 하는 가이드에게는 악마.
영원은 눈을 감고 김여현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했다.
갑갑했다.
“확실하게 하자.”
영원은 응답 없는 무엇에게 말했다.
이런 혼잣말은, 과거의 심영원이 보이지 않는 무엇과 소통하던 기억이 남긴 버릇이었다.
“이 동네 문제는 내가 알 바 아냐.”
김여현의 불행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비선별 가이드를 굴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센터에서 나가려면 김여현이 필요했다.
‘과거의 상황이 자꾸 기억나.’
벌레가 팔을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은 기분. 그처럼, 형체를 짚어낼 수 없는 것이 아주 불쾌하고 거슬렸다.
“니들 사명에 동참할 생각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는 걸 인정했다.
영원은 잠들기 전, 블라인드를 걷은 창가에 오래 서 있었다. 별관 건물이 아주 잘 보이는 위치였다.
그 상태로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한 목덜미를 더듬어봤다. 센터에 도착한 이틀째에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낸 터라, 더 휑하게 느껴졌다.
“……고통은 같이 견뎌줄게.”
매칭률이 얼마가 나오든, 김여현의 고통을 나누어 견디는 것쯤이야 우습다.
“그건 그냥, 200평에서 무전취식하는 게 안 내켜서야. 다른 대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빙산 같은 회색 건물이 유달리 검어 보였다.
내일, 바로 내일 김여현이 저 건너편의 건물로 올 것이다.
***
대망의 복귀일.
영원은 세심하게 짠 계획표를 점검하고 기숙사를 나섰다.
첫 일정은 오전 7시 15분경 요련과의 미팅. 평소라면 침대를 벗어나지도 못했을 시각이나, 반드시 펜트하우스에서 꿀을 빨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영원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영원! 여기!”
별관 쪽문 앞에서 요련이 한 팔을 붕붕 흔들었다. 영원은 요련을 따라 손을 슥슥 흔들어준 뒤 미적미적 다가갔다. 요련이 더 환히 웃었다.
“진짜, 우리 부장님이 요 며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외부인 별관 출입을 허락해 준 거야. 매칭 랩 연구원들 출근 전까지, 9시 전엔 끝내야 해.”
“응…….”
“아, 영원아. 여기, 여기 카페인.”
“고맙…….”
“나야말로 고맙지!”
팡팡. 요련은 영원의 두꺼운 패딩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면서 영원에게 커피까지 건네주었다.
새벽부터 본부 밖에 나가 사온 게 분명한 핸드드립. 영원은 다소 오묘한 마음으로 따뜻한 커피를 두 모금 넘겼다.
‘아무래도……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요련은 센터를 관리하는 에이아이에게 동행 1인의 보안승인까지 함께 요청했다.
영원은 그 뒤를 졸졸 따라 별관 안으로 들어갔다.
첫날 이후로, 기숙사 같은 층에 사는 영원과 요련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 걸 안 뒤로는 말까지 자연스레 놓게 됐다.
저녁도 이틀에 한 번꼴로 같이 먹었는데, 며칠 전엔 2차로 맥주까지 땄다. 그때 요련은 취기에, 자신이 홀로 매칭률 검사기기를 개발 중이라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처음엔 당연히 비선별 가이드로서 기기 테스트에 참여해달란 요구를 거절할 생각이었지.’
그런데, 그 테스트용 기기를 보관 중인 매칭 랩이 위치한 곳이 별관일 거란 추측이 퍼뜩 머리를 때렸다.
별관.
본부에서도 가장 보안이 삼엄한 지하 93층짜리 건물.
무엇보다, 김여현 에스퍼의 근무 장소.
그래서 은근슬쩍 떠봤다. 김여현 에스퍼와 직접 별관에서 마주칠 때가 있냐고.
“저어기.”
지하 4층에 도착해, 요련은 유리벽 너머를 가리켰다.
“저기?”
“응. 저기가 내가 말한 김여현 에스퍼님 지정 주차구역이야. 저 블록 16대 주차구역 전부 다.”
“아, 그렇다고 했지.”
영원은 흑심을 숨기며 위치를 뇌에 새겼다.
“사무실은 지하 60층쯤인가? 거기 있으니까 근무 중에 마주칠 일은 거의 없는데, 아주 가아아아아아끔 자차 타고 오시면 타시는 거나 내리시는 거 보게 될 때가 있지.”
영원은 길게 늘어진 ‘가아아아아아끔’에 집중하지는 않기로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요련이 취한 채로 이건 비밀 정보라며 알려준 사실이 더 있기 때문이었다.
‘김여현 에스퍼는 복귀 첫날 반드시 그 주차장에 차를 댈 것’이라고.
그 말을 끝으로 요련은 알코올에 못 이겨 고꾸라졌다.
삐빅. 삑.
파박.
매칭 랩이 환해졌다.
요련은 영원을 문가에 잠시 세워두고는 연구실을 빠르게 오가며 기기를 세팅했다.
영원은 국가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에 너무나 열성적인 요련을 보며 다소 반성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언니 정말…… 비선별 연구에 진심이네…….’
‘뭐지? 저 떡진 머리와 반짝이는 눈의 멋짐은?’
‘세상엔 역시 저렇게 성실한 사람이 필요해.’
‘하지만 나는 아님.’
‘나는 싫음.’
‘거절해.’
영원은 카페인으로도 털어내지 못한 졸음을 힘겹게 물리치는 것만도 벅찼다.
“영원아, 거기 앉아.”
털썩.
“팔 넣어.”
“여기?”
“응응.”
영원은 커다란 기기에 달린, 의미를 알 수 없는 계기판들을 눈으로 훑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며칠 걸릴 거야.”
지잉. 삐. 삐.
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위잉.
혈압을 재듯 팔을 꽉 조였던 기기가 점점 느슨해졌다.
“말했듯이, 일단 완성품은 아니고, 아직 테스트 중이라, 내가 데이터를 넣어 둔 10명 에스퍼랑만 매칭률이 계산되어서 나올 거야.”
매칭률을 대조할 에스퍼가 10명밖에 들어 있지 않다고 하니, 마음이 더 놓였다.
10명이면, 그 데이터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긴 힘들겠지.
이후에도 8시 30분이 될 때까지 이런저런 검사가 이어졌다. 정규 출근시간이 다가올수록 영원은 약간씩 조급해졌다.
“그럼, 이걸로 된 거지?”
“응! 근데 난 이 프로그램 함수 정리 좀 해야 해서…….”
“배웅할 필요 없어.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영원은 너그럽게 배웅을 거절하는 척했다.
“내가 엘베 타고 갈게. 여기 지하 4층이니까 몇 층만 올라가면 되는 데, 뭐.”
영원은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언젠가는 지상 1층에 가겠지. 타이밍이 다소 늦어질 뿐.
타박. 타박.
마침내 영원은 홀로 넓디넓은 지하 4층 주차장으로 갔다.
사전약속 없이도 VVIP와 만나는 여러 방법이 있다.
영원은 그중에서도 가장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클래식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무작정 기다리기.
전문 용어로는, 뻗치기.
보통은 단순한 게 정답인 법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드릉. 덜컹. 위잉.
오래 기다리지 않아, 지하 4층 주차장으로 차가 진입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웅.
김여현이 운전대를 잡은, 어마어마하게 비싼 차가 내는 엔진소리가 점점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