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게이트의 확장, 균열 및 등급 격상’은 항상 대량의 인명피해를 낳았다.
영원은 본부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그 심각성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 후에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집주인느님이 휘말려 있는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美 등 6國… 전세기로 자국민 전격 철수]
[속보: 청와대, 국빈 방한 일괄취소]
[속보: 중국, 각성자특별軍 국경 인근 전진배치]
뉴스뿐 아니라, 본부 내 각성자들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느꼈다.
“아니 이 새X들이 조약을 맺어놓고 왜 하나같이 말을 X나게 바꿔대고 지X이야!”
“이 XX들, 발 빼려고 밑밥 까는 거 봐라. 이건 진짜 존X 아니잖아!”
쾅, 쾅!
“김여현 살아 나오면 무조건 전담 붙여! 역가이딩이든 뭐든 다 하게 해!”
“아무리 아파봤자 죽는 것보다야 나을 거 아냐!”
“그냥 뒤로 빼는 가이드 새끼들 쥐어패서라도 김여현 프론트 옆에서 뛰게 하라고!”
‘김여현이 살아 나오면’이라는 어구 뒤에 붙는 이야기는, 결국 ‘김여현이 제발 살아 나오길’ 염원하는 소원을 가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살아 돌아올 걸 알아.’
그 중심에서 영원은 의심치 않았다.
‘잘못될 리가 없어.’
그래도 점차 불안해지기는 했다.
초기에는 B급 게이트로 예측되었던 일산 게이트는, 오픈 6시간 후엔 A급, 12시간 후엔 AA급으로 위험 등급이 격상했다.
2등급 격상은 유럽에 ‘지옥의 여름’을 불러왔던 베네치아 게이트 이후 최초였다.
김여현 에스퍼가 게이트 내로 진입한 지 24시간이 경과했을 때부터, 전 세계 언론은 악몽의 재림을 말했다.
게이트의 균열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일산 게이트는 과거 베네치아 게이트가 그랬듯, 위아래로 중국과 러시아, 일본마저 혼돈의 전장으로 변모시킬 거라고.
그리고…… 김여현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조금만 기다리면, 세계수가 그의 죽음으로 인한 랭킹 변동을 알릴 거라고.
그러나 그들의 예측은 틀렸다.
완전히.
김여현은 살아 돌아왔다. 구국의 영웅이 되어서.
디링. 도로롱.
[세계 에스퍼 S급 10위권 랭킹이 변동합니다]
[에스퍼 김여현, 타이틀 ‘영원의 헌신자’]
[세계 에스퍼 랭킹 S급 9위/94인 ▲2]
그들이 맞힌 건 세계 에스퍼 S급 랭킹이 변동되리라는 것뿐이었다.
[AA급 게이트 종결… 인명피해 “0명”]
[A급 게이트 최초! 노로스 퍼펙트 클리어!!!]
[미합중국 대통령, “한국 보고 배워야”]
[일본 총리, “김여현엔 일본 피가 섞여” …센터, “가짜뉴스”]
[중국, “김여현의 뿌리는 대륙에!!!!” …센터, “부디 정신 차리시길”]
영원 역시도 일산 게이트가 붕괴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바로 TV 앞으로 달려갔다.
게이트가 서서히 지워졌다.
장관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장관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기숙사의 TV로, 몇 번이고 같은 장면을 돌려보았다.
쿠구궁.
쿵.
스륵.
반쯤은 위대한 자연경관. 반쯤은 환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기묘한 반물질 구조.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 같기도, 산맥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했다. 몇 번을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뒤에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려고 센터에서 지급한 스마트폰을 켰다. 모든 게시판이 다 난리였다.
‘캬,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더요!’
에스퍼와 관련된 사이트뿐 아니라, 선비들만 조용히 광합성 중이라는 조용조용 식물갤까지도.
[봤냐? 여기가 바로 여현갓 보유국이다아아아아!!!!!]
[물리계 에스퍼 부동의 원탑~!!!!!!!!!!!!!!!]
[두유노우 킴여현? 노 전담 가이드 벗 월클 탑텐!!!]
[할말잃음 김여현 새삼 밸붕 오졌다ㅋㅋㅋㅋㅋㅋ미쳣ㅋㅋㅋㅋㅋㅋ도랏ㅋㅋㅋㅋㅋ]
[인명피해 0 실화????????????????]
[여현 충성충성^^777]
[갓 여 현, 짝! 킹 여 현, 짝! 여 현 좌, 짝!]
[여현갓 얼굴 박아서 10만 원권 새로 파야 할 듯]
[전담 가이드 없어서 사실상 오른팔 묶고 싸우는 거랑 똑같은 거 아닌가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실상 세계 1위 보유국입니다ㅎㅎㅎ]
[세계수야 갓여현 능력치 보정 좀 해라ㅡ_ㅡ^^]
[K-국의 K는 코리아가 아니라 킴에서 왔다는 게 사실인가요?????ㅇㅁㅇ?????]
[여-멘bb 본좌님 나를 다 털어 가져요ㅜㅜㅜㅜ믿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멘 8ㅅ8]
[여퀴갤에서 털러 온 사이비 광신도들 g롤g롤 로늘 하루 참아준댜 맘ㅇ껏 g롤들해라]
그러나 전 세계의 모든 언론이 그의 속눈썹 하나, 기침 소리 하나까지 특집으로 보도할 준비를 마친 것과는 별개로, 김여현은 일산 킨텍스 기자회견장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자택 근처에서 도촬 사진 한 장 찍혀주지도 않았다.
[[단독] 김여현 에스퍼, 다음 주부터 센터 본부 복귀 가능성]
게이트 붕괴 후 나흘 뒤, 그의 업무복귀 시기를 점치는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점점 더 구체화됐다.
[속보: 센터曰 “김여현(ES3), 내주 화요일 본부 별관 업무 복귀할 것”]
속보가 팝업으로 뜰 때 영원은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본부 내 공원을 걷고 있었다. 빠른 걸음이 우뚝 멎었다.
영원은 몸을 느리게 돌려, 본관 동쪽의 별관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식 기관명은 각성자 관리·연구·보호 및 신고 센터. 약칭 ‘각성자 신고센터’ 혹은 ‘센터’. 그 기관이 뿌리내린 역삼 본부의 별관.
견고하게 지어진 지상 6층, 지하 93층의 거대한 회색 건물.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다는 점이, 어쩐지 그와 닮은 것도 같았다.
***
영원은 센터 보안 인공지능(이름: 재미없게도 애칭은 ‘에이아이’)의 검색시험을 통과해 교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똑똑.
“교수님. 저 왔습니다.”
“오, 영원! 들어와요, 들어와요.”
복슬복슬한 적갈색 머리에 두꺼운 뿔테안경을 쓴 윤희유 교수가 교수실에서 영원을 맞이했다.
그녀는 첫날 이후로 영원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특징은, 엄청난 투머치토커라는 것.
“거기 앉아요, 앉아요. 아, 학회 때문에 논문 너무 많이 프린트해놔서 정신이 없네, 정신이.”
“여기 앉을까요?”
“네, 네. 거기. 아, 오늘은 매칭률에 대해서 좀 볼 거예요.”
푹. 영원이 빈 소파 자리에 앉았다.
“조교한테 들으니까 이번엔 진짜 일주일 안에 부산에서 기기가 온대요. 요양병원에서 받은 B급이랑 달라질 수도 있어서 나는 두근두근한데. 어때요?”
“어음……. 그냥 똑같이 B급 아닐까요?”
“에이. 달라질 수도 있지. 우리 센터는 그런 싸제 검사는 안 믿어.”
영원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칭률 나오면, 그거 따라서 여러 에스퍼를 만나보게 될 수도 있어요. 두근두근 미팅이지.”
“아, 네에…….”
“매칭률에 관해서, 특별히 교양 정도로 아는 것도 없나요? 다른 거랑 마찬가지로?”
“네. 편하게 두 살짜리 꼬꼬마라 생각하고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영원은 자신이 완전한 무지렁이임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살짝 웃었다.
“아이고, 진짜 못살아. 내가 괜히 나쁜 생각 하게 한 거 아냐? 옛날얘기 듣기만 하면 짠해. 캡슐 커피 하나 내려줄까요?”
“아니에요. 커피는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좀만 기다려요. 산미 좋은 거 새로 왔어.”
겉으로 보기에 영원은 센터 생활에 꽤 빨리 적응했다.
센터에서 영원을 세심하게 케어해준 것이 한몫했다.
의식주 제공은 기본이었고, 영원이 머물렀던 보육원과 시설 관계자들을 고발한 뒤 결과도 알려주었다.
그 고발 덕에 일산 게이트 종결 후 사흘도 지나지 않아 보육원과 시설 주요 관계자들이 깡그리 탈탈 털리기 시작했다. 형사사건 입건은 물론, 세무조사결정까지 싹 다.
2000년대 이래로 청와대 다음의 최강 파워 국가기관이 된 이곳, 센터.
영원은 팔이 안으로 굽는 에스퍼들이 가이드를 괴롭힌 인간들을 어떻게 전방위로 ‘조져주는’지 보며, 다시 한번 먼치킨물이 인기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남들에겐 까칠하고 내게만 다정한 남주(주: 센터의 의인화)가 어째서 유구한 전통의 클리셰인지도 역시.
요양병원에서 영원의 보호자인 척 굴었던 실장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지만, 센터의 관계자들은 그리 오래 걸릴 일은 아니라고 했다.
일산 게이트의 여파로 처리할 일이 많아 잠시 늦어지고 있는 것뿐이라고.
아무튼, 영원은 적법한 원칙과 절차에 따라 적당한 집과 일거리도 받았다.
집은, 센터 별관뷰 9.5평 투룸 기숙사.
직업은, 센터 소속 가이드 예비후보 교육생.
딸깍.
“여기 커피.”
“감사합니다.”
“자, 그럼 계속 진도 나가볼까요.”
물론, 욕심 많은 영원은 그에 만족하지 못했다.
‘200평 집……. 부디 200평 복층 펜트하우스를 주세요…….’
내적 절규는 시일이 지날수록 더 처절해졌다.
‘제발 제게 공부할 거리와 일거리를 주지 마세요…….’
‘제 적성에 맞는 유일 직업은 백수뿐이란 말입니다……!’
그리하여 철없는 만 22세 심영원의 현재 상태:
희망하는 집은, 한강뷰 200평 펜트하우스.
희망하는 직업은, 타인의 블랙카드를 긁는 것이 주업무인 백수.
그래서 영원은 누구보다 간절히 김여현 에스퍼의 출근을 학수고대 중이었다.
‘어서, 빨랑빨랑 텨오세요.’
쉬지 않고, 끊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