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4화 (4/142)

소금기 밴 찬바람이 피부를 쓸고 가는 바닷가.

삐뽀삐뽀-

끼이익-

사이렌 소리가 점점 커지는 와중, 검은 바이크 한 대가 위험천만한 드리프트를 하며 자갈밭에 진입했다.

끼이이익-

퍽.

콰직. 쾅!

범죄자들의 세단이 약 100m 상공으로 들렸다가 추락하며 폭발했다.

콰광!

조각난 차량의 잔해는 다시 공중 부양하여 폭죽 터지듯 부서졌다.

그 차량에 탑승해 있던 B급 에스퍼는 결계를 친 뒤 비명을 질렀다.

“씨ㅂ…… 이창결이잖아!”

“피해!”

콰과광.

즉시, 공무원 하나 대 범죄자 다섯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납치 피해자 하나를 관중으로 둔 채로.

A급 에스퍼 하나 vs. B급 에스퍼 셋과 B급 가이드 둘.

언뜻 보기에는 삼십 중반의 공무원 한 명 쪽이 불리할 것도 같지만, 그는 헬멧을 쓰고 등장해도 모두가 정체를 알아보는 A급 네임드였다.

이창결, 타이틀 ‘윤리의 집행자’.

대한민국 A급 에스퍼 랭킹 7위. S급 에스퍼 8인을 포함해 대한민국 에스퍼 전체를 통튼다면 랭킹 15위.

“이…… 진짜 이창결…….”

영원에게 등을 보인 에스퍼의 어깨가 바들거렸다.

‘이창결? 왠지 어디선가…… 아!’

영원도 아는 이름이었다. 고인물 챗방의 진정한 고인물. 그는 익명의 채팅 참여자들에게 ‘일산으로 가달라’고 부탁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헬멧을 벗고 반쯤 백발인 머리를 정돈하자, B급 각성자 다섯은 그들이 선 땅이 지옥이 되었음을 알고 절망했다.

‘X됐다…….’

‘X됐어…….’

이창결이 굳은 표정으로 다섯에게 다가갔다.

저벅. 저벅.

퇴로는 없었다.

“우리 위법하신 국민님들께서.”

퍽.

“이 중요한 때에.”

뚜둑.

“읍!”

“비선별자 매매를 시도하신다는 게 말이 되나요.”

영원은 공무원이 헬멧을 벗은 뒤 정확히 5초가 지났을 때부터,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유능한 A급 물리계 에이스, 에스퍼 이창결을.”

퍼벅.

“이렇게 고생시키셔서.”

손끝 하나 닿지 않은 채로도 이창결은 범죄자들을 바닥에 처박았고,

“아직 마흔도 안 됐는데.”

“흐흡!”

두둑.

오로지 눈길만으로 그들의 관절을 꺾어 다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머리카락 절반이 새치가 됐습니다.”

콰광!

멀리 있던 1톤 컨테이너 세 대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우아악!”

한 남자는 떨어지지도 않은 쇳덩어리들을 보며 거품을 물었다.

“제가 화가 나겠습니까, 안 나겠습니까.”

보통 이런 상황을 업계 전문용어로 ‘순살’이라고 부른다. 응용 예로는 ‘순살했다’, ‘순살 당했다’, ‘순살 중이다’ 등이 쓰인다.

쾅!

이창결은 분풀이하듯 컨테이너를 박살 냈다.

현재 상황에 대하여는 ‘인신매매범 및 얼평러들이 과속 돌진해온 공무원 한 분께 순살 당하는 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적절할 것이다.

“이 시점에 저를.”

“흡! 아욱!”

“이딴 곳에 불러내셨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반성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챙그랑.

‘저 컨테이너 박스…… 철제잖아……. 저런 소리를 내면서 깨질 수 있는 종류의 구조물이었나……? 실화?’

공무원, 이창결을 붙잡기 위해 뛰어드는 남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볼썽사나운 꼴로 패대기쳐졌고, 이창결은 그 중심에서 고고하게 날 선 발언을 뱉어댔다.

“지금 일산에서, 제 조카, 그리고 동료들의 목숨이 간당간당하는데. 어?”

모든 반항의 시도는 연이어 실패했다.

퍼벅.

“우윽!”

퍼버버벅.

“흐악!”

“제가 봤을 땐, 여기 국민님들은 보다 상당한 반성이 필요하세요.”

“아악!”

영원은 트렁크에 살짝 걸터앉아 두 손으로 포대를 꼭 여미며 생각했다.

‘공무원님 보직이 혹시…… 교육부 소속이신가요?’

안타까움도 잠시. 범죄자들의 죄질과 저급한 언행을 곰곰이 돌이켜보며, 영원은 오직 팝콘을 튀길 수 없는 상황인 것만을 탄식하기로 했다.

“아악!”

“목소리 낮추세요. 부디 품행과 언행을 단정히. 그런데 국민님들께서 혹시, 총기소지……?”

퍼퍽.

갑자기 다섯 사람이 품에서 총을 꺼내들면서 반격에 성공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빈틈은 이창결이 일부러 내준 듯했다.

“악!”

쿵.

‘오…… 나이스.’

함정에 걸려든 범죄자 에스퍼 셋이 그대로 푹 파인 구덩이 위로 고꾸라졌다.

푹. 털썩.

당하는 쪽이야 매우 괴로울 테지만, 먼치킨물이 인기를 끄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이창결은 총 다섯 자루를 손 위에 쌓은 뒤 저글링 하듯이 돌리다가 콰지직, 한 번에 일그러트렸다. 쇠로 만든 공 모양으로.

“애들 장난감으로, 뭔 아양을 떨어보실 계획이셨어요.”

영원은 내 편이 처음부터 유리했고, 싸우는 내내 유리하고, 끝에 가서도 이길 게 확실하지만 이상하게 긴장되고 재밌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서 펼쳐지는 단편 액션극에 몰입했다.

이때까지 참을 인 자를 속으로 그리며 고구마를 꼭꼭 씹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위법하신 국민님들.”

“흐으흐으으…….”

철컹. 철컹.

“현 시각으로 귀하들을 각성자특별법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합니다.”

이창결은 전투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널브러진 남자 다섯에게 차례차례 수갑을 꼼꼼히 채워주었다.

“귀하들께는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으으…….”

“스스로의 행위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체포적부심을 법원에 청구할 권리도 있습니다.”

“흐으으…….”

“묵비권을 행사하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세요. 귀하들의 증언은 귀하들께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잊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그는 미란다원칙도 상세히 알려주었다.

삐뽀삐뽀-

“부장님! 벌써…….”

그렇게, 마지막 백업차량이 도착하기도 전에 국제 인신매매단의 검거는 일단 종료되었다.

‘정말 순식간이었어…….’

영원은 초현실적인 장면을 영상으로 되감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A급, A급이라고……. 저 위에 S급이 또 있다는 거지…….’

영원은 장면과 장면을 하나하나 나누어 돌이켰다.

작용에 따른 반작용은 있어 보였으나, 손도 대지 않고서 물질들을 움직이고, 통제했다.

일반적인 물리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완전히 생소한 것은 아니나, 낯설었다.

영원은 표정을 굳힌 채로, 에스퍼와 가이드에 대하여 막연히 가지고 있던 개념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예상보다 더한 무엇이다. 조금도 얕잡아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아.”

영원은 감탄사를 뱉으며 놀라서 한 걸음 물러났다.

툭.

그러나 트렁크 뒤로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가이드님.”

“…….”

어느새 이창결이 성큼 다가와 앞에 서 있었다.

“센터 긴급출동 제2부 부장, 에스퍼 이창결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의 인상은 생각보다 선하고 평범했다.

아니, 방금 목격한 장면과는 어울리지 않아도 고인물 챗방에 끊임없이 참여하는 오지랖을 생각하면, 그 이미지에 꽤 부합하는 외양인 듯도 했다.

“반갑습니다.”

“…….”

“무사히 만나길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열여섯 번째 비선별 가이드님.”

“……네.”

열여섯 번째 비선별 가이드.

그것은 영원이 이 순간 자신에 대하여 처음 알게 된 정보였다.

“성함은, 심영원 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제가 지금은 급한 일이 있어 역삼 본부까지 모셔다드릴 수 없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창결이 손짓을 하자 그가 타고 왔던 바이크가 붕 떠서 앞으로 왔다. 손을 뻗자 헬멧이 손바닥 위에 놓였다.

영원은 그 과정을 유심히 보다 뒤늦게 답을 했다.

“아…… 저는, 괜찮…….”

“그럼, 앞으로도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부디.”

이창결이 헬멧을 들지 않은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영원은 포대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그에 응했다.

손이 꽉 잡혔다.

금방 힘이 풀렸다.

악수는 급작스러웠고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나, 불쾌하거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가 보겠습니다.”

철컥. 이창결은 헬멧을 착용했다.

“조심히…… 가세요.”

“네. 또 뵙겠습니다.”

꾸벅. 마주 본 둘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이창결은 긴 다리를 움직여 다시 바이크에 올랐다. 그리고는 미친 듯한 속도로 인천 부두를 벗어났다.

‘눈이 누구랑 닮았는데…… 대체 누구지?’

영원은 기억을 헤집어 의문을 해소하려 했으나, 원하던 답을 찾지 못했다.

‘중요한 사람이었으면, 언젠가 기억나겠지.’

영원은 포대를 어깨에서 치워내고는, 땅에서 부서진 자동차의 잔해를 집어 들었다.

슥.

그리고는 조각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차량이 연이어 도착한 뒤부터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타박. 타박.

두 사람은 꽤 오래도록 모를 테지만, 이후 센터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때로 길이 손꼽힐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비선별과, 비선별의 정점에 선 비선별의 첫 만남으로.

***

“비선별 가이드 심영원 님, 본명이시죠?”

“네. 맞아요.”

“가이드 매매 제보자인 것도 맞으신가요?”

“네…….”

“많이 놀라셨죠?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산 게이트 문제 때문에……. 트렁크 안에서 많이 무서우셨을 것 같아요.”

영원은 스스로를 C급 가이드라 소개한 긴급출동 제2부 소속 고요련으로부터 담요를 제공받고, 취조 아닌 취조에 응해야 했다.

“……네.”

“그리고 지금 저희 부장님께서 일산 게이트 문제로 좀 흥분하셔서, 못 볼 꼴을 좀 보셨겠네요. 하하핫.”

“네에…….”

요련은 미안함을 담은 표정으로 따뜻한 차를 건넸다.

“아시겠지만 S급 조카분…… 음, 조카 사랑이 극심하신데…… 음.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정말 잠시만요, 저쪽에서 호출이 와서 빨리 다녀올게요.”

“천천히 오셔도 돼요.”

영원은 연약한 B급 가이드인 척, 담요를 어깨에 더 꼼꼼히 두른 뒤, 따뜻한 찻잔을 양손으로 꼭 부여잡았다.

그 상태로 다시 이창결이 사용하던 힘의 속성에 대해 고민했다.

영원이 오래 알던 것과 다른 종류의 이능異能이었다.

특별히 그 힘이 그가 속한 세계를 왜곡시키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주문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그 힘을 사용할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대가가 없어 보였다.

호록.

에스퍼와 가이드의 그릇에 담겨 있다는 ‘힘’에 흥미가 생겼다.

더불어 귀찮은 상황에 대한 경계심이 더 빠른 속도로 급격하게 부풀어 올랐다.

‘일단은…… 가만히 있는다. 무조건 조용히 있는다.’

영원은 세뇌하듯 주문을 되뇌었다.

‘우선 펜트하우스에 들어간다. 다음 문제는 그 뒤에 생각하자.’

먼치킨뿐만 아니라 흑막과 힘숨찐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클리셰인 데에도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삐뽀삐뽀-

삐뽀삐뽀-

아직 처리할 일이나 잔여 일당 검거가 남았는지, 사이렌은 계속 멈추지 않았다.

영원은 잠시 기다리라는 요청에 순응했다. 그저 따뜻한 찻잔을 든 채로 검은 자동차에 기대어 먼 서쪽만을 보았다.

A급이 저 정도로 화려하면, S급의 수준은 어떨까. 심지어 이창결은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락.

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고 갔다. 조금은 익숙해진 것도 같은 긴 머리칼이 사르륵 휘날렸다.

해가 저문 하늘, 별들 아래 잔잔한 것은 바다였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얼마 만의 바다더라.

영원은 검은 풍경을 보며 따뜻한 차를 다시 천천히 넘겼다. 한 모금, 또다시 한 모금, 느리게, 느리게.

울렁이는 흑색 바다. 깊이가 투시되지 않는 액체 더미는 항상 그랬듯 취향이 아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