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예상대로 인신매매범들에게 납치됐다.
덜컹. 덜컹.
영원은 포대에 싸인 채로 자동차 트렁크에 실렸다.
트렁크에 짐짝처럼 실리는 거야 예상했던 일이라 괜찮았다. 숨겨둔 눈썹 칼로 양손과 팔을 자유롭게 만들어 갑갑함을 덜었다.
그런데 몸 곳곳이 트렁크의 천장과 바닥에 연이어 부딪쳐 발생하는 고통을 즐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덜컹. 덜컹.
‘더 빨리 출동해주시면 안 되나요…… 철밥통님들아…….’
며칠 전 각성자 신고센터에 가이드 인신매매를 신고했을 때, 통화 상대방은 센터 소속 에스퍼들이 인천 부두에서 가이드를 넘기는 현장을 검거할 것이라 했다.
계획한 범죄를 저지른 다음에 현장에서 검거해야 엄하게 벌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만 버티라고.
그래서 에스퍼들이 적절한 시간에 출동하리란 걸 의심하진 않았다. 동향 체크를 위해서인지, 사복 경찰처럼 보이는 이들이 건물로 들어오는 걸 창문을 통해 보기도 했었고.
그런데 괜히 몇 시간 전 간병인의 어깨 너머로 본 뉴스 속보들이 마음에 걸렸다.
드드드드.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그동안 그런 적이 없었는데, 간병인의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탁자 모서리에서 바닥으로 추락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괜히 스마트폰을 주워주는 척하면서 팝업을 살폈다.
[긴급재난: [센터] 일산 게이트 확대. 경기북부 출입 자제 바랍니다.]
익숙한 이름이 섞인 기사 속보가 연달아 쏟아졌다.
[속보: 일산 게이트 들어간 김여현(ES3) 연락 이틀째 두절… 센터 수뇌부 묵묵부답]
[속보: 일산 게이트 균열 확대, 센터 경기북부 출입통제]
[속보: 센터 “일반인 인명피해 없다”]
[속보: 본부, 김여현 에스퍼 게이트內 폭주설… 가짜뉴스 엄중 대응할 것]
정신이 멀쩡한 사람처럼 굴어도 되는 상황이었다면, 영원은 망설임 없이 이게 뭐냐고 물었을 터였다.
지금 밖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고. 그리고 게이트 내 폭주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퍼진 루머냐고.
그러나 아쉽게도 영원은 그걸 물어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을 지으며 간병인에게 기기를 넘겨주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뭐지……. 진짜 뭐지?’
간병인은 심각한 얼굴로 폰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리고는 중학생 딸과 남편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안위를 확인했다.
통화 내용을 엿들어 보니 게이트 주변부는 다 통제되어 일반인들이 균열에 휘말리지는 않았으며, 김여현 에스퍼 및 랭커들만이 게이트에 진입한 상황인 듯했다.
등급 격상이니 뭐니, 이해할 수 없는 얘기가 한참 계속됐다.
드드드드. 띠링. 띠링.
재난문자와 속보는 계속 이어졌다.
아직 누가 죽지는 않았더라도, 이쪽 대한민국에서 지금 전 국민이 주목하고 있는 재난상황이 발생한 것만은 확실했다.
‘나도 좀 걱정해야 하나?’
영원이 알기로, 김여현의 폭주는 일산이 아니라 명동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이번 게이트에서는 결국 김여현 에스퍼가 살아 돌아올 것이다.
‘일반인이 안 휘말렸다니까 결국 어떻게 정리는 되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장 김여현 에스퍼의 안전과 이 세계의 안전, 그리고 납치가 예정되어 있는 자신의 안전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을 깜깜한 트렁크 안에 있으니 부정적인 생각이 점점 증폭되는 기분이었다.
덜컹. 덜컹.
일산 게이트 때문에 에스퍼들이 제때에 인천에 출동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고.
혹시 어떤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하이 랭커 고인물 챗방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괜찮은 정보를 건지지 못했다.
오히려 무언가 실책을 한 듯한 기분만 들었다.
[익명2가 대화에 참여합니다/ 참여자 총 4명]
[이창결(EA7): 익명1님 및 2님, 모두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채팅을 하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시다면 부디 일산 출동 부탁드립니다.]
[이창결(EA7): 상황이 매우 안 좋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놀라서 고인물 챗방에서 나와 버렸다. 중요 사건이 터졌을 때는 챗방에 참여하고 있는 랭커들의 수가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앞으로 유의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설마…… 내 인신매매 신고가 나비효과를 일으킨 건 아니겠지.’
나비효과를 일으킬 만한 큰 사고라고 볼 수는 없지 않나. 일산에 간 적은커녕 각성자요양병원 밖으로 산책 한 번 나간 적도 없었다.
덜컹. 덜컹.
‘아니겠지, 아닐 거야.’
영원은 심신의 안정을 찾고자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정보를 확인했다.
[SSS급 가이드]
고고히 빛나는 SSS급 먼치킨 패치.
현판 소설을 처음 접한다고 하더라도 저 등급이 독보적이란 걸 파악 못 할 독자는 없다. 잘은 몰라도 작품 속 세계에 밸런스 붕괴를 일으킬 사기 등급이 아닐까 짐작하겠지.
영원 역시도 저 SSS급이 담보하는 힘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으나, 무엇이 되었든 사기 수준이리란 것만은 확신했다.
한마디로 쉽게 저물 생명을 얻지는 않았을 터였다. 비록 지금은 컴컴한 트렁크 안에 갇혀 있더라도.
‘유일무이 SSS급이라니까 30분 뒤에 갑자기 픽 사망하는 엔딩이 오지는 않겠지…….’
‘중국으로 밀항하는 밀항선에 내내 갇혀 있다가 대륙에서 최후를 맞는 끔살 엑스트라는 아닐 거야…….’
게다가 믿을 구석이 저 SSS급 하나뿐인 것만도 아니었다.
잊은 척 애쓰는 과거가 남기고 간 것들 역시, 여전히 몸속에 있었다.
영원은 불안을 떨쳐내며 몸에 힘을 풀었다. 뻣뻣하게 굳어 있을수록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허리에 가해지는 고통이 커졌다.
‘잠이나 자자…….’
인천 부두까지는 아직 거리가 꽤 남아 있었다.
***
그리고 진짜 숙면을 취했다.
‘나 진짜 굉장한 멘탈러…….’
영원은 날갯죽지와 허리에 뻐근함을 느끼면서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 상황에서 꿀잠이라니 미친 거 아니냐…….’
저벅. 저벅.
엔진소리가 계속 나는 와중에, 자갈이 구두에 밟히는 소리가 섞였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영원은 포대 속에 적당히 들어가, 노끈을 손목에 느슨하게 꼬았다.
“수면제 먹인 거지? 각성자용으로.”
조금 쉰 듯한 낯선 남자의 목소리. 40대 혹은 50대 흡연자가 아닐까.
“네. 저번에 실장님이 약 투여하고 재웠는데 30분 만에 일어나 활보했다고 해서 정량보다 좀 더 넣었어요. 귀신 본 줄 알았다고 하셔서요.”
역시 낯선 목소리. 보다 젊은 남자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실장님’은 병원에서 영원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남자인 듯했고.
“그럼 앞으로 24시간은 더 자겠네.”
영원은 꿀잠의 원인을 수면제 탓으로 돌리려 했으나, 24시간이라는 말을 듣고 그 판단을 철회했다. 수면제가 먹힌 게 아니라 그냥 잠이 와서 잔 거였다.
저들이 말하는 ‘각성자용 의약품’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병원에서도 수차례 확인했다. SSS급 몸에 약이 잘 안 받는다는 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녀석들은 언제 오는 거야?”
“생각보다 길이 안 막혀서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했어요.”
“일산이 난리고 공항에 비행기 안 띄운다니까 다들 안 나와서 그런가.”
“아마도요?”
거래 상대방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센터에서도 현장을 덮치지 않고 대기 중인 모양이었다. 영원은 노끈을 더 느슨하게 만들면서 위를 보고 누웠다.
“뉴스 보니까 김여현은 아직도 센터랑 연락 안 되나 봐?”
“네에. 진짜 어떻게 되려나요.”
“잠재력은 사실상 세계 랭킹 1위인 에스퍼가 각성한 지 벌써 10년도 넘었는데, 그 에스퍼 백업해줄 매칭률 높은 가이드가 없어서 좀만 큰 게이트 열릴 때마다 전 국민 벌벌 떠는 것도 참…….”
김여현 에스퍼.
집주인 예비후보의 이름이 등장하자 영원의 귀가 쫑긋 섰다.
“김여현은 S급, A급 전체 통틀어서 매칭률 40% 나오는 가이드가 없다면서요?”
“처음엔 본부랑 센터에서 쉬쉬했는데 이제 퍼질 대로 다 퍼졌지. 불쌍한 새끼.”
“그래서 3개월에 3억씩, 1년에 12억씩 가이드들한테 퍼준다는 것도 진짠가요?”
영원은 엔진 소리와 섞여 들리는 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 위해 집중했다.
“어. 게다가 그거 세후야, 세후. 딱 3개월 치로 3억. 김여현이 센터에 지급하는 수수료랑 세금 다 제외한 금액. 의식주 비용처리, 룸서비스 등등 기타 편의 이용료에 블랙카드 제공해서 그걸로 긁는 금액까지도 싹 제외하고.”
“오…….”
영원의 머릿속에서 집주인 예비후보가 확정적 집주인느님으로 격상했다.
“아무튼 김여현도 불쌍하지. 열 살도 전에 각성해서 모든 능력치가 쩌는데 매칭률 나오는 가이드가 비선별 중에서도 없으니 재미는 조금도 못 보잖아. 허구한 날 본부랑 센터에 끌려 다니고, 죽어라 뺑이치고.”
“근데 매칭률 40%도 안 나오는데 끌려가는 가이드들도 진짜 불쌍해요. 저는 돈 아무리 퍼줘도 절대 안 가요.”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있는 영원의 생각은 달랐다.
‘진짜…… 개꿀 아님?’
영원은 진심으로 일산에서 고생하고 있을 김여현 에스퍼의 무사 귀가를 기원했다.
반드시 그 200평 한강뷰 펜트하우스에 들어가고야 말겠다는 결심도 더더욱 깊어졌다.
트렁크 밖의 남자들은 영원이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을 거라고는 짐작도 못 한 채로 수다를 이어갔다.
“근데 비선별은 그냥 평범하게 생겼나요? 저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평범……은 아니던데. 비주얼이.”
“오, 궁금한데요.”
“궁금하면 보든가.”
달칵.
‘어…… 어?’
영원이 눈을 크게 떴다.
촤락.
포대가 걷혔다.
“…….”
“…….”
서로 할 말을 잃었다.
“…….”
“너…….”
아무래도 망했다.
“너…… 뭐야. 썅. 요양병원에서 약값으로 돈 처드시더니 물 탄 걸 꽂았나?”
남자가 영원의 머리채를 잡으려 했다.
영원은 어쩌다가, 민첩하게 그 손을 피해버렸다.
휙.
남자의 손이 허공만 스치고 갔다.
“…….”
동시에 여러 생각이 영원의 머리를 스치고 갔다.
준비해두었던 수많은 백업 플랜을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재생해봤다. 어떤 것이라도 선택할 수 있지만, 무엇도 끝이 깔끔할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센터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
기묘한 대치가 유지되었다.
“그게…….”
영원이 입을 먼저 뗐다.
“B급 비선별 가이드 30억…… 주고 인신매매하러 오신다는 분들 말이죠…….”
“…….”
“지금 어디쯤 오고 계실까요?”
가장 궁금한 것을 묻기 위해서.
“…….”
“……하.”
나이 많은 남자 쪽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는 이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원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고는, 비선별 B급 가이드의 정신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뭐야. 이 백치는.”
젊은 남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긴장이 풀렸다는 듯이 웃었다. 그들은 영원이 내뱉은 말을 듣고는, 그냥 백치라고 전해 들은 매매 대상이 백치다운 말을 뱉었다고만 생각하는 듯했다.
“근데, 진짜 인형같이 생기긴 했네요. 하얘서.”
남자들은 갑자기 어깨에서 힘을 빼고는 영원의 외모를 나노 단위로 품평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 상황에서 면전에 대고 얼평이라니.
‘지금…… 사이다 샤워 시전하려는 거 꾹꾹 눌러 참고 있는 엑스트라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아주실래요?’
영원은 며칠 전 맛있게 먹었던 고구마 맛탕을 떠올리려 애썼다.
“피부는 왜 또 이렇게 투명해.”
나이 많은 남자는 영원의 볼을 만지려는 것처럼 손을 뻗기까지 했다.
영원은 정말로 숨겨둔 힘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난 기분이 되었다.
드릉.
그때 멀리서 검은 차량이 다가왔다.
“어, 오네.”
영원은 부디 저들이 센터에서 오는 이들이기를 바랐으나, 나타난 건 영원의 편이 아닌 남자의 편이었다. 30억을 치르고 B급 비선별 가이드를 구매하려는 매수자 세 명.
***
털썩.
영원은 포대와 함께 자갈 바닥으로 패대기쳐졌다.
‘정말이지, 이런 걸 당할 계획은 아니었는데…….’
고구마야 그냥 캑캑대며 먹으면 되지만, 물리적으로 충격을 당하는 건 또 다른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인생…….’
영원은 남자의 뒤로 펼쳐진 검은 밤풍경을 보았다.
‘……철밥통님들, 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이게 영화도 아니고, 굳이 공무원들이 위급함의 위급함의 위급함의 극단까지 이르러서 등장할 필요는 없지 않나.
영원은 속으로 참을 인 자를 그리던 것을 멈추고, 주변 풍경을 유심히 살폈다.
조금씩, 평범한 감각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감각을 확장해갔다. 몇 년 전부터 사용을 지독히 꺼려왔던 레이더였다.
‘갑자기 감각 레이더를 쓰게 되다니.’
그런데 이상하게 걸리는 사람의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누구도 잠복한 상태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지 않는 것만 같다.
‘내가 디테일까지 자세하게 알려줬는데, 거짓 신고라고 판단했나?’
‘아니면 정말 일산 쪽 사건 때문에 인력이 부족한 걸지도.’
여객선이 출발한다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진짜 이럴 계획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거짓말같이 딱 그 순간에, 저 멀리서.
삐뽀삐뽀-
요란한 사이렌을 단 정의구현자들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