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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90화 (90/91)

〈 90화 〉 IF:뱀은, 둥지에서 겨울잠에 든다.

* * *

IF: 만약, 그때 미영이가 하린을 따라갔다면?

“허으…으허..! 후우…!”

“..읏….!..흐읏…!”

추잡하고, 역겨운.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아….으음…!”

“읏….”

탐욕과 추잡함이 가득 들어찬 지방 덩어리가 헐떡거리며, 그대로 창부와 함께 엎어졌다.

“후우….역시 어린 계집년이 구멍도 쫄깃하이 좋네….끌끌…”

자신의 욕망이 가득 들어찬 육봉을 구멍에서 꺼내며, 그는 웃었다.

“하아….대다내오….나….몇번을 갔는지이….”

“으하하! 그자? 내 아직 안 죽었제?”

자신의 다리를 타고 흐르는 애액과 정액을 손으로 훑던 창부가 황홀하다는 듯한 얼굴을 지으며 웃었다.

“아직 안 죽었어..?”

“그라모! 내 아직 현역 아이가? 그자?”

“아…그러네?”

피슉.

순간의 발포음.

무척이나 조용하면서도, 뇌리에 정확히 박혀올 만큼 예리한 소리.

“...어..? 이기…뭐꼬…? 어…?”

더듬더듬.

그 사내는 금방까지 땀과 애액에 절어있던 자신의 가슴을 더듬었다.

그리고, 더듬었던 손에는 무척이나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으기이이익!!!! 이 씨발!! 이 씹…!”

금방까지 지어 보이던 여유롭던 번들거리는 미소는 어디로 가고, 순식간에 창백해진 그가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그의 무릎이 풀리며 자연스럽게 바닥을 기었다.

“난 또~ 내일모레 하던 양반 같아서 한 발 빼주면 그대로 뻗을 줄 알았지이~”

“이…씨…니….니 누꼬…!...시발…!”

금방까지 자신의 아래에서 색기 넘치던 신음을 지르던 창부가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고꾸라진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나왔다.

“니…이런 지꺼리를 저질러 놓고…무사할….씨…발…! 끄흑..!”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핏기를 세운 눈동자로 간신히 자신의 상처 부위를 바라보며 피로 번들거려 끈적한 두 손으로 틀어막아 보지만, 마치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어놓은 것처럼 검붉은 피는 계속해서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이 씨발련이!!!!”

“아, 시끄러. 돼지 새끼야.”

푸슉, 푸슉.

그녀는 베개에 쑤셔 박아두었던 작은 립스틱을 꺼내 들어, 엎어진 그의 등을 향해 립스틱의 뒷부분을 계속해서 눌렀다.

그러자 고속으로 배출된 작은 총탄이 그의 등을 무참하게 꿰뚫었다.

“어…커헉…!.....ㅇ..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충격과 고통에 움찔거리던 그는, 곧바로 추욱 늘어지고 말았다.

동공에서 느껴지던 빛이 사라지고, 흐리멍텅해지는 그 순간.

그녀는 그 순간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래서 총이 좋았다.

총에 비해서 숨기기도 쉬운 칼을 쓰라는 말에도, 그녀는 총을 고집했다.

그 동공.

병실에서 보던 그의 동공.

칼로 사람을 쑤시면, 필히 그 동공을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니까, 싫었다.

“....쯧…”

마지막으로 이미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남자의 시체를 발로 뒤적거리던 그녀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나야, 빨리 올라와서 이 새끼 치워.]

[예, 알겠습니다.]

원어민 정도의 유창한 러시아어를 내뱉은 그녀는 간결하게 전달사항만을 이야기하고는 전화를 끊어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똑똑 하는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끝나셨습니까? 누님.]

[여기, 이거라도 걸치십시오.]

[어, 그래.]

총상을 입은 시체와 혈흔으로 인해 붉게 물든 나체의 여성을 보고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던 양복의 사내들 중 한 명이 다가와, 자신이 입고 있던 양복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야, 빨리 이 새끼 옮겨. 안 보이게 잘 감싸라.]

[잠깐.]

[...예?]

그녀에게 옷을 벗어준 사내가 자신을 뒤따르던 남자들에게 무어라 말하던 순간, 그녀가 말을 끊고 시체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쯧…씹새끼…한국인이면 한국 담배를 펴야지…”

그리고 그녀는 이미 피에 물들어 붉게 변한 그가 입고있던 목욕 가운의 주머니를 뒤져, 황금으로 코팅된 지포 라이터와 담뱃갑을 꺼내, 한 까치 물어 불을 붙였다.

“....후”

[....]

[뭐해. 안 치우고.]

[아…예.]

매캐한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녀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내들을 한 번 바라보고는, 천천히 작은 모텔방의 창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둡고 습한, 모텔촌의 거리.

그리고 그 위에는 휘양찬란하고 반짝거리는 네온사인의 불빛.

욕망과 색욕이 뒤엉키는 이 거리.

“....”

촤악.

나는, 그대로 커튼을 내려, 창 밖을 가렸다.

*

“아이고~ 우리 미영이~ 고생 많았어.~”

대충 둘러봐도 무척이나 화려하고, 팍하고 튈 것 같은 방이다.

그녀의 입지에 대해 생각하면, 내가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식 디자인이었다.

“뭘요~ 돼지새끼 좆질은 좆도 못하면서 허리만 흔드는 병신이라 조금 욱신거리는 것 빼고는 뭐….”

“풉…! 우리 미영이 다 컷네~ 암, 좆달고 태어난 새끼들이 좆질도 병신이면 그냥 좆병신이지~ 안 그래?”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천박한 농담을 던지자, 그녀는 아주 밝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아무튼, 고생 많았어 미영아.”

“아네요. 하린 언니.”

하린.

나를 그곳에서 꺼내온 여자.

나는 그녀의 제안에 응했고, 이 뒷세계로 발을 내딛었다.

하린은 철저했다.

일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가르쳤다.

방중술, 각종 암살기구 사용법, 능동적 미소, 처세술.

그리고 러시아어까지.

그녀는 온전히 완벽함을 추구했고, 나는 그 뜻에 응했다.

하린은 나에게 철저한 가면을 씌워주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법.

쉽게 다가가는 방법.

유도질문 던지기, 몸으로 유혹하기.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법도.

나는 그녀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그녀는 그 덕에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인형이었고, 아직은 실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피곤하지?”

“아네요~ 전 괜찮아요!”

“그래? 마침 잘 됐다~! 있지, 오늘 선물로 아주 ‘좋은’ 원두를 받아서 커피를 내렸는데….같이 마실래?”

하지만, 그녀는 나를 믿지 않는다.

“....커피요?”

“응? 싫어?”

커피.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커피를 못 마신다는 것쯤은, 아주 잘.

검게 물든 액체가 들어찬 컵을 바라보다 보면, 산산히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현수가 내 옆에 있는 듯한 망상이 보였으니까.

내가 얼마나 현수를 기억하는지,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따금, 하린은 나를 불러서, 의도적으로 커피를 마시게 했다.

내 트라우마를 건들고, 나를 시궁창으로 떨어뜨렸다.

이 뜻은 명확했다.

‘감히 나에게 대들 생각은 죽어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라는 무언의 압박.

“아뇨? 저야 고맙죠~”

“그치? 우리 귀여운 미영이에게 커피를 타주다 보니까, 커피 내리는 실력이 많이 늘어서 말이야~ 나, 나중에 다 때려치우고 카페나 차릴까?”

“그럼 첫 손님은 제가 가도 될까요?”

“물론이지! 백 잔은 사줘야 해?”

웃음.

거짓된 웃음.

그녀는 나와 단둘인 상태에서도, 가면을 벗지 않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자!”

“고마워요!”

“아니 뭘~ 어서 마셔!”

어느새 막 내려 김이 폴폴 나는 커피를 내 앞에 내놓았다.

“....”

“...안 마셔?”

“마셔야죠.”

나는 조심스럽게, 컵을 들었다.

고소한 커피향이 내 코를 찌른다.

그때가 기억이 난다.

포근한 집.

아늑한 소파.

그리고 너.

우리는 너무나도 완벽했고, 행복했다.

꿀꺽.

커피는 씁쓸했다.

*

“우욱…! 우웨에엑!!”

간신히 억눌렸던 토기를 간신히 참아낸 나는, 내 방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구역질을 할 수 있었다.

쓰고, 신.

역겨운 토사물이 변깃물을 통해 사라졌다.

“...씨발….”

나는 토기로 인해 흘러내리던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며 거칠게 중얼거렸다.

역겨워.

그년도.

이 일도.

커피도.

모두 역겨워 미칠 것 같아.

시발.

나는 조금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침대를 향해 걸었다.

“어.”

그러다, 침대 가장자리에 놓여진 상자가 보였다.

아주 고운 분홍빛 포장지와 새빨간 리본이 묶인, 선물 상자.

아.

오늘이 벌써 그날인가.

나는 곧바로 상자의 포장을 거칠게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아하…아하하….”

[오늘 수고 많았어~ 이번에도 최상급으로 질 좋은 물건~]

수기로 쓰인 편지가 붙은 지퍼백.

나는 편지를 대충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보았다.

마치, 벚꽃처럼 일렁이는 분홍빛 가루.

그래.

나는 여전히 봄을 탐했다.

사람을 죽이고, 약을 받았다.

돈도, 조직간의 지위도 덩달아 따라왔다.

그딴건 좆도 필요 없어.

“현수….”

봄이 그리워.

여기는 너무 추워.

추워서 얼어붙을 것 같아.

나는 곧바로 지퍼백을 열어, 가루를 소량 꺼냈다.

이제는 숟가락이 아닌, 전용 플라스크에 가루를 담아, 물을 타고 라이터로 지진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물은, 어느새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서랍을 열어, 하나씩 포장된 일회용 주사기를 꺼내, 약을 빨아들였다.

봄.

여기는 겨울이다.

삭막하고, 춥다.

봄이 그립다.

나는 팔뚝을 걷었다.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주삿바늘이 흉터로 남아있었다.

푹.

나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약을 찔러넣었다.

“아….아아…”

봄이 그리워.

나는 봄을 원해.

그렇게 나는, 마치 봄을 기다리는 뱀처럼.

한겨울의 나무 밑동에서 겨울잠을 자듯, 잠들었다.

언제 올지 모를 봄을 기다리며.

끝없이, 끝없이.

겨울잠을 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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