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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86화 (86/91)

〈 86화 〉 chapter 7:행복한 신기루(12)

* * *

“오랜만이네, 미영아?”

철컥. 하고 문을 열자 그녀는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거침없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휴~ 담배 냄새! 저번에 왔을 때는 풍겨오던 커피냄새가 좋았는데….환기 좀 시키지 그러니?”

그녀는 집으로 들어오자 코를 막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약.”

“응?”

“약 줘. 빨리.”

하지만 나는 그녀를 그저 놀러 오라고 집까지 부른 것이 아니었다.

*

[....이 전화로 연락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미영아?]

수신호가 잡히고,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린.

처음에는 그저 같은 창부인 줄 알았으나, 상당히 위험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여성.

다시는 연락하고 싶지도 않았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봄….”

[응? 뭐라고?]

“봄을 줘,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까.”

봄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우리 고객이 되시겠다…? 네가?]

“그런 건 알 바 아니고! 팔 거야 말 거야!!”

금방까지 아주 밝고 명량 하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자, 소름이 돋았던 나는 신경질을 부리며 결정을 강요했다.

[어머, 이렇게 나와봤자 너한테 득이 되는 건 없을 텐데…?]

“....!으…!”

[....곧 찾아갈게. 기다려.]

뚝.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겼다.

그 뒤로도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수신 차단을 했는지 연결음이 몇번 울리고 끊겨 버리고 말았다.

그 통화가 끝난 지, 이틀 뒤.

그녀는 집으로 찾아왔다.

*

무언가 이상했다.

“어머, 이 쇼파 좋네~ 푹신하고 부드러워! 나도 하나 살까…?”

언제나 같이 다니던 양복의 사내도 없이, 그녀는 홀로 거실에 있는 쇼파에 앉아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영아~ 손님이 찾아왔는데 차 한잔 안 내오는 거니?”

“...약은..?”

“차. 한잔 부탁해?”

싱긋.

그녀는 내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차는 없고, 물은 있는데.”

“저 커피 머신은? 안 쓰는 거…”

“시끄러!!! 물밖에 없다고!!”

커피는 없어.

이제는, 영원히.

“.....힝…난 커피가 좋은데…하지만, 우리 미영이가 타주는 거라면 뭐라도 좋아~ 물 한잔 부탁해?”

“........”

그녀의 부탁에, 나는 대충 컵에 물을 받아서, 그대로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에~ 아무리 그래도 냉수를 그대로 주는 거니? 요즘 꽃샘추위 때문에 몸이 추운데…”

“....”

“....그래, 약이 가지고 싶다고?”

섬짓.

그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금방까지 웃고, 울상을 짓고, 천진난만하게 굴던 아가씨는 이제 없다.

그때 보여준 것처럼 사람을 죽여도 아무렇지도 않은 잔혹한 마피아가 내 눈앞에 있었다.

“.....그래, 부르는 값에 줄 테니까….어서 줘…”

“...이거, 말하는 거지?”

부스럭.

그녀는 같이 들고온 가방을 열어, 한 지퍼백을 꺼냈다.

그 안에는, 분홍빛 수정가루가 그득히 꽉꽉 채워져 있었다.

“그….그래! 그거! 어서 줘!”

그녀가 봄을 꺼내 들자, 나는 성급하게 그녀에게 달려들어 봄을 채가려 시도했다.

“잠깐, 기다려.”

하지만 그녀는 봄이 들린 손을 뒤로 빼며, 내 손길을 피했다.

“ㅇ..왜! 돈 준다고! 빠…빨리!”

장난치지 마.

난 당장 급하단 말이야…!

빨리.

빨리 현수를 만나러 가야 해.

그러니까, 빨리…!

“....그때, 기억나니?”

“...뭐?”

“네가 말했잖니. 괴물이 되지 않을 거라고.”

[나는, 괴물이 되지 않아.]

그녀의 의도대로, 총을 들고 박 실장을 겨누었을 때, 했던 말이다.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감동 받었어~ 그거 아니? 우리는 어딘가가 닮았다는 걸.”

“....”

“우리는 마찬가지로 선택의 갈림길에 섰지, 나는 손을 더럽히는 쪽을 택했고, 넌 그러지 않았어.

네 눈은, 무척이나 빛나고 있었단다.

그런데….이게 뭐니?”

그녀는 손에 쥐었던 마약을 탁자에 쾅! 하며 내리던졌다.

그 충격에 의해, 지퍼백에 들어있던 봄이 조금 새어나와 탁자 위를 덮었다.

“그때의 넌 어디 있지?

그렇게나, 아름답게 빛나던 너는…?

참으로 안타깝구나…”

“....닥쳐…”

“그래, 차현수. 그가 죽었다지? 뉴스에도 나왔어.”

“닥쳐….닥쳐…!”

“결국 너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구나…너무나도 쉽게 망가지고, 부서져 버려…”

“닥쳐!!!”

쿵.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탁자를 내리쳤다.

쨍그랑.

그 충격으로 인해 탁자에 올라가 있던 컵이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가여운 미영아, 안타까운 미영아.”

“...!”

그러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나에게 오렴.

너에게, 새 삶을 줄게.”

“...뭐?”

“웃는 법을 알려줄게,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알려줄게, 어떻게 해야 강하게 나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손익을 계산하고 사람을 배신할 수 있는지.

모두 알려줄게.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가면을, 씌워줄게.”

“.........”

그때, 나는 보았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잠깐 보았던.

가면을 쓰지 않은 그녀의 본얼굴.

웃는 표정도, 우는 표정도 아닌.

그저 무표정.

그것이, 그녀의 가면에 가려진 진짜 얼굴.

“그래, 나에게 오렴.

너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게.

그 누구에게도 당하지 않을, 강한 힘을.

다시는 무너지지 않게, 내가 만들어 줄게.”

그녀의 제안은, 매우 달콤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지 않다.

나를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를 따라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도 더욱, 어두운 거리로 걸어가는 행위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나를 붙잡지 않을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현수도 없으니까.

“......싫어.”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살아갈 이유가 없는걸…?”

그래.

“현수…현수가 없는 세상에서…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어…

나..난…굳이 살고 싶지 않아….

나는 그것보다…당장 현수를 만나게 해 줄 저 약이 필요해.”

그녀를 따라간다고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지?

이미,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는데.

“....그래. 그렇구나.”

“윽…!”

내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자, 그녀는 그대로 내 얼굴을 잡던 손으로 나를 옆으로 치웠다.

“돈은 됐어.

지금까지 날 도와줬던 걸로 퉁칠게.

하지만, 다시는 나를 찾지 마렴.

이게 마지막이야.

그거 한 봉지면, 적어도 고통스럽게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잘 지내렴? 미영아~”

그녀는 다시금 가면을 쓰고, 웃으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대량의 봄을 얻었다.

*

마약에 취하는 것은, 좋았다.

주사자국이 하나씩 늘 때마다, 나는 현수를 볼 수 있다.

현수가 내 곁에 있다.

내 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같이 웃고, 사랑을 속삭였다.

엄마도, 아빠도, 모두가 웃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하고, 꿈만 같았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이 모든 것은 꿈이고, 신기루일 뿐이니까.

이 신기루가 끝나면, 지독하리만큼 무거운 현실이 나를 덮쳤다.

봄에 취하면 취할수록, 현실의 내가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그가 없다는 사실이, 몇 배로 커져서 나에게 다가왔다.

너무나도 허무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봄을 원했다.

봄은 좋다.

따뜻하고, 즐겁다.

그 순간만큼은, 그 무엇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행복하다.

이질적이지만, 나는 봄을 취하고 나서 더욱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간단한 운동을 한다.

집도 청소하고, 빨래도 하고, 집을 깔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봄에 취했다.

그래야만, 계속해서 봄을 가질 수 있으니까.

내가 죽기 전까지, 저 봉투에 담긴 봄을 모두 사용하려면, 몸이 건강해야만 했다.

참으로 이질적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매일 밤, 현수를 만나러 가고, 그는 나를 웃으며 반겨준다.

행복해.

이대로.

이대로 봄을 다 사용할 때까지 이 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게 된다면, 봄을 치사량으로 투여해, 죽을 것이다.

그래.

나는 네가 없는 현실이 아닌, 네가 있는 신기루에서 죽을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현수의 매니저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신지..?”

“그동안 저희가 맡아왔던, 현수 작가님의 작품과 유품을, 전달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랬다.

그가 죽고 나서 마지막으로 집 앞에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과정에서, 한 번 언급된 적이 있었다.

“작가님이 그린 그림 1점과, 유품이 담긴 상자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보자기에 쌓인 그림과, 종이 상자를 건네주었다.

“작가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 또한 그 들 중 한 사람이죠.”

“....네.”

“....그럼 저는 전달도 끝났으니,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내게 짐을 전달하자마자, 곧바로 떠날 채비를 마쳤고, 나는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녀가 떠나고 나면, 나는 곧바로 현수를 만나러 갈 예정이었으니까.

“.....그럼, 안녕히.”

그녀가 떠나고, 또다시 집은 고요해졌다.

하지만, 알 바 아니다.

이곳은 그저, 단순한 생활을 위한 집.

진짜 집과 진짜 현수는, 곧 만날 수 있다.

“....유품…”

하지만 나는, 차마 곧바로 방에 들어설 수가 없었다.

그의 유품.

그것이 내 시선을 자꾸만 이끌었다.

어째서?

진짜 현수는 여기 없잖아.

이건 단순한 물건일 뿐이야.

나를 위한 현수는, 곧 만날 예정이잖아?

그런데 왜?

나는 어째서 그의 유품을 열어보고 있는 것일까.

박스에 감긴 테이프를 떼고, 상자를 열었다.

“...이건…”

[....완성이 되면, 보여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꼭, 완성할 테니까.]

그가 병실에 입원할 동안, 계속해서 손에서 떼지 않았던 것.

그의 스케치북이, 내 손에 들려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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