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chapter 7:행복한 신기루(11)
* * *
“음….으음…”
뭘까.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따르르르르릉!!!!
“.....으…폰…폰…어디있어….”
그때,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가 내 고막을 휘저으며 몽롱한 뇌를 바짝 깨웠다.
아직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남은 한 손을 이불 밖으로 꺼내어 열심히 시끄러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으…하아아아~음.”
간신히 찾아낸 휴대폰의 알람을 끄고, 크게 팔을 뻗어 몸을 풀어준다.
밝게 빛나는 따뜻한 아침 햇살이 간지럽게 내 빰을 간질거렸다.
아직 침대에 앉아있는 나는, 가볍게 목과 전신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커피냄새는 이제 없어서는 어색할 정도로 익숙해지고 말았다.
“좋은 아침…”
아직 반쯤 잠기는 눈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셨나요?”
고소한 커피 향.
은은하게 비치는 햇살.
잔잔하게 울리는 노랫소리.
그리고, 너.
현수는 언제나 그렇듯 나보다 먼저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어라?
“다리는 괜찮아?”
“다리…요? 어떤 다리…?”
“...아냐, 잠이 덜 깼나 봐.”
뭐지.
어째서 나는, 그가 다리를 움직이기 불편하다고 생각한 걸까?
그는 예전부터 줄곧 이랬는데.
“그럴 때는 커피 한 잔이 최고라고 생각하는데…우리 아가씨는 어떠신지?”
“풋….! 아가씨는 무슨…차라리 레이디라고 불러주라.”
“네~ 우리 아리따운 레이디. 커피 한 잔 어떠신가요?”
“좋아. 세바스찬이 끓인 커피는 언제나 맛있으니까.”
“......큽!”
“.....푸하하하핫!!!!!!”
그의 가벼운 농담에 능청스럽게 받아친 내가 신체 사이즈보다 조금 더 큰 박스티의 아랫부분을 손으로 들어 올려, 마치 예의 바른 귀족의 영애가 인사하듯 모션을 보이자, 우리 두 사람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 아침부터 이게 뭐야~”
“뭐 어때요? 재미있는걸요? 아참, 아침 드시기 전에 세수 한번 하고 오세요~”
“네이~네이~”
사소한 장난 하나만으로도, 이렇게나 웃을 수 있다니.
즐겁다.
욱신.
“....?”
뭐였지?
….모르겠다. 세수나 하자.
나는 그렇게 햇볕이 비치는 복도를 통해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라.
원래 우리 집에 햇빛이 이렇게나 비쳐왔었나?
*
“하~ 맛있었다~”
나는 든든한 아침식사로 인해 빵빵해진 배를 두들기며 쇼파에 몸을 기대었다.
“그래요? 장 볼 시간이 없어서 어제 아침이랑 반찬이 같았는데…”
“난 맛있던걸? 네가 만들어서 그런가 봐.”
“저 칭찬에 엄청 약해요….”
“히~”
“잠시 쉬고 계세요. 금방 설거지 끝낼게요.”
“뭐? 아냐 아냐! 아침도 먹었는데 내가 해야지!”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현수가 고무장갑을 꺼내 들자, 나는 황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네? 그래도 금방 끝나는 건데…”
“괜찮아~ 물에 담가놓고만 와줘~ 나중에 내가 할게~”
“그래도….”
“쓰읍…! 누나 말 안 들어?”
“힝…”
“옳지.”
이게 문제라니까.
착하고 좋지만, 나도 거들어줘야 서로 기분이 좋지.
내가 가볍게 그를 부르자, 그는 총총 걸어 내 곁에 앉았다.
“하~ 배불리 먹어서 그런가…아직도 눈이 자꾸 감기는 것 같아.”
“어젯밤에 늦게 주무셨나요?”
“글쎄….잘 모르겠어.”
이상하다.
분명 깨어있는 것 같은데, 자꾸만 몽롱하고 눈이 반쯤 감겨서 떠지지를 않았다.
왤까.
“그나저나, 장모님이 어제 연락하셨어요.”
“...장모….엄마..?”
엄마?
그리고 뭐…장모?
“네, 언제 한 번 집에 들러달라고 연락하셨는데, 주말에 한 번 갈까요?”
“어…어어..?”
“장인어른께서 낚시를 갔는데, 씨알이 굵은 갈치를 왕창 잡으셨다네요~”
“아…아빠…가…?”
엄마. 아빠.
어라.
뭔가 이상한데.
아침부터 느껴지던 기시감이 더욱 날카롭게 전신을 찔러왔다.
뭐지.
분명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같은 날들인데, 왜 이렇게 이상하지?
이상해.
불안해.
뭔가가, 잘못된 것 같아.
계속해서 느껴지는 불안한 감정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아…!”
어느새 내 왼손 약지에 투명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왜 그래요?”
“아…그랬지..?”
맞다.
나, 현수와 결혼했지?
맞아.
그랬었어.
아직도 기억나.
오늘따라 이상하게 말도 더듬고 어정쩡하던 네가 헤어질 때쯤 되니까 수줍게 건넨 반지.
나도 모르게 끄덕여진 고개.
그렇게 우리는 결혼했다.
어머니는 선머슴 같던 내가 이런 참한 신랑을 어찌 데리고 왔느냐고 나를 이 잡듯이 갈궜지.
아버지는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눈물을 흘리시며 현수에게 나를 부탁했고.
그때는 좀 놀랐었지.
그래.
여기는 우리 신혼집.
나는 그의 아내.
그렇구나.
나, 현수랑 결혼했구나.
“.....”
“..? 왜 그러세요?”
나는 내 옆에 앉은 현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아니…그냥….너무 행복해서…”
행복해.
아무 걱정없는 아침이 행복해.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걱정해주는 부모님이 있어서 행복해.
안정되는 집이 있어서 행복해.
그리고, 사랑하는 네가 내 곁에 있어서, 무척이나 행복해.
지금 이 순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평온한 일상이.
영원토록 이어지면 좋을 텐데.
*
“아윽…! 욱….”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아..아아악!!!”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
뭐지?
“혀…현수야아…”
그를 불러본다.
“현..흐윽….어…어디있어어….!”
어디 간 거지?
금방까지만 해도, 내 곁에 있었잖아.
같이 아침밥을 먹고.
소화시킬 겸 쇼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잖아.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서로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고.
엄마, 아빠도 보러 가기로 했잖아.
근데, 너는 지금 어디야?
커피를 타주는 현수.
나를 바라보고 웃는 현수.
내 곁에.
“아.”
나는 줄곧 감았던 눈을 떴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
널브러진 옷가지와, 잡다한 쓰레기.
왠지 모르게 양손에 감겨있는 자살용 끈과, 그 옆에는 부서진 주사기와 반쯤 구부러진 숟가락.
“아…하하….하하하….”
맞다.
그는, 죽었지.
내 눈앞에서.
그랬었지.
그랬던 거야.
그는 이제 없어.
“우욱…!”
목 아래까지 올라오던 토기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구역질했다.
먹은 것이 없던 위장은 쓴 물만 꾸역꾸역 뱉어냈다.
뭐였던 거지.
지금까지 내가 봤던 것들은, 뭐였는데.
나는 왜 쓰러져 있더라.
어째서.
어째서.
“맞다….그랬지…”
봄.
나는 지금까지 마약으로 인한 환상을 봤던 것이다.
마약.
영화로만 보았던 그 무서운 물건을 실제로 봤을 당시에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마약이 뭐길래 그렇게까지 돈을 바쳐가며 하는 걸까.
그리고 무지했던 나는 그 이유를 뇌리에 때려 박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봄.
말 그대로 그 마약은 나에게 봄을 보여주었다.
싱그럽고 아름다웠던 나날.
그가 멀쩡하고, 내가 처음부터 여자였던 세계.
모두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
그래.
그 광경은 봄이었다.
아름다운 벚꽃이 피어나듯, 맑고 높은 하늘을 바라보는 듯.
그야말로 봄과 같았다.
“아…아아….”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수는 죽었다.
“아냐…아니야…”
현수는 죽었다.
“아니야…그럴리가 없어…”
현수는 죽었다.
“금방까지 내 옆에…있었는데….”
현수는.
“살아있잖아.”
그래.
현수는 살아있어.
우리는 행복했어.
나는 남자도, 매춘부도 아니었어.
그도 아픈 곳 없이 멀쩡했어.
엄마도, 아빠도, 다시 만날 수 있어.
우리는 행복했고,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어.
“그래…살아 있어….그러니까…만날 수 있어…”
그저, 조금 먼 곳에 있을 뿐이야.
다시 만날 수 있어.
아니, 만날 거야.
반드시.
“..봄…”
봄만 있으면 돼.
나는 간신히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 널부러진 옷가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몸을 굽혀 옷가지를 뒤적이자, 보라색의 크로스 백을 열었다.
아아.
그는 나에게 봄이었다.
봄을 팔아버려, 봄을 느끼지 못한 나에게 내려온, 나만의 봄.
3월의 벚꽃처럼, 싱그럽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
풋풋하고, 새로운,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나의 봄.
조금만 기다려 줘.
곧, 너를 만나러 갈게.
이 지독한 겨울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줘.
여기는 너무 추워.
나는 그 가방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집었다.
밋밋하기 짝에 없는 무색의 폴더폰을 열어, 전화번호부를 열었다.
“....”
딸깍.
뚜우
뚜우
뚜우
딸깍.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