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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82화 (82/91)

〈 82화 〉 chapter 7:행복한 신기루(8)

* * *

“....네?”

내 말에 그는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는, 궁금하지도 않아?

내가 왜 몸을 팔았는지.

내가 왜 그날 밤, 그 언니가 찾아온 이후로 매일 밤늦게까지 돌아다녔는지.

내가 왜, 그때 그날 밤에, 몸에 가득 상처를 입음에도 얼빠진 것처럼 웃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그랬다.

그는 처음 나를 보았을 때부터, 나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한참 몸을 팔고 있을 때 그를 만나러 갔을 때도.

하린에게 협박받아 강제로 마약을 팔고 다닐 때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결국 신분을 얻어서 행복했을 그때도.

그는 전혀 나에 대해 캐묻거나, 조사하지 않았다.

그저, 그 집에서.

언제나 나를 반겨줄 뿐이었다.

그게 너무나도 따스해서, 나 또한 의도적으로 내 정보를 숨겼다.

그는 나에게 그 일을 꺼내지 않았고.

나 또한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나 따스하고, 다정했던 네가.

내 일면을 알게 된다면.

내가 사실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럼에도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를 혐오할 것 같았다.

애초에 그날 이후로, 나는 과거의 나, 김상국은 없다.

정확히는, 내가 죽여버렸다.

김상국은 이제 없다.

내 과거는 그저 차갑게 식은 납골당의 비어있는 유골함의 공간을 찾아, 안식을 맞이했으니.

나는 김상국이 아니라, 김미영이니까.

그래서 더더욱,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 스스로 이미 시체가 되어 걸레짝이 된 김상국을 꺼내, 그에게 들이밀었다.

“그래….3년…아니, 이젠 4년 전이네.

나는 그냥….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 복학을 준비하는, 복학생이었어.

엄하지만 따스한 아버지와, 상냥한 어머니와 함께 한집에서 살았지.

복학 전에 알바 하면서 용돈도 벌고, 친구들이 부르면 새벽까지 술을 들이켜며 청춘을 즐기는…그런….남자.

그게 나야.

김상국. 이 이름을 내 스스로 말한 지도 엄청 오래됐네.”

“....남자…라면….그…”

“아니, 네가 생각하는 건 다 틀렸어.

나는 내 성 가치관에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어.

여친도 사귀고 싶고, 섹스에 안달난, 그런 어디에나 흔한, 그런 남자였지.

그런데….큭…하핫..! 내…내가 말하는데도 지…진짜 어이없거든…?

그…그냥…끄윽…크…..자다가…큭…일어나니…이 꼬라지더라…?”

나는 내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고, 가슴살을 끌어모으며 말했다.

“놀랐어.

처음에는…그냥 꿈인가 했지.

그렇잖아? 자다가 일어난 아침에, 갑자기 여자가 되어 있다니?

말 그대로 질 낮은 만화나 소설에서나 볼 법한, 그런 일이잖아?

그런데….이게 꿈이 아니더라.”

나는 그때를 떠올린다.

처음으로 여자가 되었던 그날.

언제나 짧았던 머리는 내 허리춤까지 내려오고.

가슴에는 살집이 붙어, 흔들거리고.

내 성기는 온데간데 사라진 그날.

“그리고 곧바로 부모님이 내 모습을 보자, 매우 당황하며 나를 보더라고.

그렇지? 나도 그때 그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데, 부모님이라도 그 상황을 이해해주겠어?

무어라 소리치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해서, 그냥 도망쳤어.

한심하지…?

그때 뭐가 어떻게 됐든 부모님께 설명을 해 드려야 했는데…많이 늦어버렸어…

나중에 가니까….이미 내 이름이 적힌 유골함이 납골당에 있더라?

큭…사진도 좀…좋은 걸 쓰지…고등학교 때 쓰던 증명사진을…..하핫…

슬펐어. 정말.”

부모님.

기회는 많았다.

집을 나서서 바깥을 이리저리 돌아다닐 게 아니라, 경찰에 잡혀들어가던, 뭐가 됐던, 부모님에게 설명을 해야 했다.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지만.

“그 뒤로는, 먹고 살 방법이 막막하더라고.

성별은 갑자기 바뀌었지, 내 신분은 사라졌지.

그러니까 집도 못 구해, 알바도 못해.

……..친구한테는 강간당해.

당장 내일 하루가 어떻게 될지도 몰랐어.

그래서, 몸을 팔았어.”

그때를 떠올린다.

새벽의 한적한 피시방 구석진 자리에서.

혹시 신고 당할까 봐 두려워하며 새우잠을 자던 그때.

당장 내일은 어떡하지? 라는 생각만 가득했었다.

그래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버렸다.

“진짜….죽겠더라고.

머리는 남자인데, 몸은 여자니까.

섹스고 자시고 남자 놈들이 웃통 까고 덜렁거리는 좆을 나보고 빨라고 하는데, 뭘 어떻게 해.

빨고, 보지에 넣고, 돈을 받았지….

더럽지….?”

역겨웠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 수가 없었다.

매일 밤 꿈에, 엄마, 아빠가 나왔다.

그 꿈에서 나는 웃고 있지만, 일어나면 싸늘하게 식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는 내가 있었다.

“3년, 3년을 굴렀어.

그 거지 같은 일을 때려치우기 위한 신분을 얻으려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내 몸을 남정네들한데 던져가면서, 악착같이 모았어.

그런데, 그걸 통수 맞고 잃어버렸어.”

그래도 그때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언젠가, 정상적인 삶을 살고 말겠다는 희망이.

매일 쌓여가는 돈다발을 바라보며, 그 희망을 붙잡았다.

그리고 박실장.

그가 내 돈을 가로챘다.

“정말 죽고 싶더라.

아니, 죽으려고 했어.

…..결국 죽지는 못했지만.

그 뒤로 너와 함께 살기 시작했으니까, 너도 기억이 날 거야.

그렇게 살아가다가, 그 년이 찾아왔지.”

하린.

마치 뱀 같았던 그녀의 달콤한 미끼에, 나는 다시금 범죄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마치 인형처럼.

신분을 준다는 말에 개처럼 따랐지.

그래서….결국 얻었어.

참….그때 정말로 행복하더라.

드디어 신분이 생겼다기보단, 너와 같이 있어도 이제는 안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신분이 생겼다.

드디어, 너와 마찬가지인 신분이.

이젠, 정상적인 일을 하면서 현수와 같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동안 힘들었으니까, 앞으로는 너와 함께. 살아가고 싶었어.

….사랑하는 너와.”

큰걸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 이대로.

평온하게 너와 살고 싶었다.

“그런데, 진짜 좆같지 않아…?

네가 죽는다잖아….

네가 얼마 못가서 죽어버린다잖아!!!!!!!!!!!”

쾅.

나는 주먹을 쥔 채로 근처 탁자를 쿵 하고 내리쳤다.

탁자 위에 올라갔던 꽃병이 충격으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져,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그러니까, 난 이제 버틸 수가 없어.

그러니까, 제발.

나를 사랑하지 말아 줘.

내가, 죽을 수 있게….해 줘…”

모든 것을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비밀.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지.

만약, 진짜라고 생각한다면, 혐오하겠지.

날.

나를..

나를….싫어…하겠지.

“....”

싫다.

그건 싫어.

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어.

나를 싫어하지 마.

그런데, 좋아하지 말아 줘.

너무나도 역설적인 이 감정은, 나를 좀먹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겠어. 이젠.

그냥….많은 걸 바라지 않았는데.

그저, 어제와 같이, 그저 남은 시간 동안 평온하게, 같이 있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아…"

그가 입을 연다.

두렵다.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너무나도 두렵다.

뭐라고 할까?

당장 꺼지라고 할까?

아님, 질 낮은 농담이라며 화를 낼까?

그것도 아니면, 당혹스러우면서도 이런 어이없는 망상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나를 위해서, 맞장구를 쳐줄까?

수많은 예상답변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에 맞먹는 말뚝이 내 심장을 고통스럽게 꿰뚫었다.

그리고.

"....괜찮으신가요?"

"....아?"

그의 답변은, 그 모든 예상을 뒤엎었다.

"...정말….힘드셨어요….저라면, 상상치도 못 할 고통일 텐데….많이 괴로우셨죠?"

"아...어….! 너...울어…?"

어느새 그의 눈가는, 눈물에 젖어 반들거리고 있었다.

"저...저는...몰랐어요….미영씨가...그렇게나 아픈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그럼에도, 저를 도와주시고, 저를 이끌어주셨네요."

"....아냐...그게 아냐…."

아니다.

난, 엄청 나쁜 년이야.

네 사랑을 짓밟고, 망쳐뒀다고.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네가 울고 있는 거야…"

왜. 날 싫어하지 않아?

"더럽잖아….쓰레기잖아…..! 그게 나잖아…!!!"

왜, 날 밀어내지 않아…?

"나…! 나는….!!!"

어째서.

날 포기하지 않아…?

"......혹시, 그때 저에게 해주신 말. 기억하시나요?"

"...뭐?"

그는 다시금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과거의 영광에 목마르고, 하늘을 그리워하던 저에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는 내 팔을 끌어당기며, 나를 침대 위로 이끌었다.

"넌 한심한 사람이 아니야.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오직 나만큼은, 네 편이 되어 줄게. 라고요."

"아."

그랬다.

몇달 전.

그의 과거를 마주한 그 날.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를 구하기 위해, 내가 했던 말이다.

"미영 씨가 언제까지고 제 편이 되어주는 것 처럼, 저 또한 미영 씨의 편이에요.

미영 씨는 한심한 사람이 아니에요.

미영 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날 흔들리게 하지 마.

이대로, 이대로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하지 말아 줘.

"....미영 씨.

이번엔 다르게 말할게요.

저와 함께…..죽어주실래요?"

"...!!"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란 내가, 그를 바라본다.

"사랑합니다. 미영 씨.

언제까지고, 당신만을. 영원히."

그는 언제 그랬다는 듯이 활짝 웃고 있지만, 눈시울이 빨개져 있었다.

그 뒤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정확했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나 또한,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 감정은, 영원토록 바뀌지 않을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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