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chapter 7:행복한 신기루(7)
* * *
“후우….”
숨을 크게 들이키는 행위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담배가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보다 술이라도 가득 들이키는 편이 더 좋을까?
적어도 제정신은 아닐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이 작은 한숨에 오만가지 잡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멍하니 문 앞에서 죽치고 있을 때는 아니다.
나는 간신히 병실의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 아…오셨…네요?”
“....응.”
그러자 곧바로 보이는 현수가, 나를 보며 놀란 듯이 동공이 커졌다가, 이내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당분간 오지 않으실 줄 알았어요.”
“연락을 못 한 건 미안해….그냥…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
그의 말대로, 내가 병실을 뛰쳐나가고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총 서른두 번의 전화가 왔지만, 나는 그대로 무시하며 받질 않았다.
그의 연락을 받았다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을 네가 아닌 네모난 검은 판떼기에 모조리 쏟아 부어버리고 꼴사납게 버둥거릴 것 같았다.
“......”
“.......”
그 뒤로, 의자를 하나 챙겨 언제나처럼 그가 누워있는 병실 침대에 다가가 앉을 때까지, 우리는 단 한마디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서로 눈치를 보듯, 시선은 자꾸만 흔들렸어도, 선뜻 말이 나오질 못했다.
그렇게 1초가 1분 같은 끔찍한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만 갔고.
우리는 계속해서 침묵을 이어나갔다.
“....어젠….죄송했어요.”
그리고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현수였다.
“너무 성급했던 걸까요.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뒷일은 생각지도 못하고 저질렀네요.”
그는 조금, 미련을 털어놓은 것처럼 허탈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허나, 저는 미영 씨를 사랑합니다.
이 감정만큼은, 전혀 흔들리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미영 씨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가 미영 씨를 사랑하니까.
미영 씨도 저를…저를….좋아하기를….사….사랑..하기를 바랐습니다.”
“...........”
그는 조금, 붉어지는 얼굴을 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행복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몇 년이라는 세월보다.
미영 씨와 함께 살아온 시간이, 더욱 소중해졌습니다.
즐겁습니다.
영화나 소설처럼 화려한 데이트나, 격렬한 사건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저 같이 대화를 나누고, 즐겁게 웃으며, 같이 존재하는 공간 자체가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 다짐을 한 것처럼, 다시금 고개를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다시금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따뜻한 그의 손이, 내 손을 덮었다.
“사랑합니다. 미영 씨.”
흔들리던 그의 동공은, 어느새 확고하게 굳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사랑합니다.
이 마음에 거짓은 없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솔직히.”
“...네?”
“솔직히….어제 병문을 박차고 나온 뒤부터, 여기에 오기까지, 그 감정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바랐어.”
나는 드디어, 마음속에 간직하던 말을, 꺼냈다.
“.....그게…무슨…”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그 감정이, 그저 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한 변덕이기를 바랬다고.”
나는 천천히, 그의 손에 덮어진 내 손을 빼내었다.
“그냥 착각이겠지….그저, 한순간의 치기로 그런 거겠지.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네였어.
그런데, 역시 아닌가 봐.”
수없이 바랬다.
이 감정이, 사실 그의 착각이기를.
그저 사람들과의 교류라고는 나밖에 없어서, 그저 호감을 사랑이라고 착각했기를.
오늘 다시금 찾아온 너는, 허탈하게 웃으며 어제의 너를 스스로 비웃으며, 재미없는 농담이었다고 말하기를.
아니, 차라리 그 감정이 진짜였다고 한들, 어제의 내 반응을 보고 접었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런데.
“....좋아해.”
나는 결국, 말했다.
가면은 이미 박살이 나 바닥을 굴러다니고.
내 마음속을 감출 것은 아무것도 없어졌다.
“좋아해….너무 좋아해……”
나는 손을 뻗어, 그가 입고 있는 병원복을 끌어당겼다.
“미…미영씨…?”
“....사랑해. 나도.”
아.
말했다.
내 비밀.
네가 죽을 때 까지 감추려고 했던, 내 마음.
“네가 너무 좋아, 사랑해. 사랑해…흐…윽…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한번 터진 댐은, 더 이상 감정이라는 폭포를 막을 수 없었기에, 내 마음은 마치 폭발하는 화산처럼 몰아쳤다.
“....미영…씨..도…저를…?”
갑작스러운 오열과 사랑 고백에, 그는 잠시 멍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매일 아침 일어난 나를 반기는 너를 사랑해.
맛있는 밥을 차려주는 너를 사랑해.
식사 후에 느긋한 아침을 깨우는 커피를 내려주는 너를 사랑해.
그림 연습을 할 때 조용히 다가와 천천히 조근조근 도와주는 너를 사랑해.
시덥잖은 농담에도 잘 반응해주는 너를 사랑해.
내 곁에 같이 있어주는 너를 사랑해.
언제나 웃어주는 너를 사랑해.”
“미영씨…”
“그래서….난 널 사랑하면 안 돼.”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렇기에, 사랑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너도 날 사랑하면…안 돼…”
“...어째서인가요?”
내 마지막 말에, 그는 물었다.
“이 마음이, 이 감정이, 서로에게 있는데, 어째서인가요?”
그는 다시금 손을 뻗어, 나를 일으키고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도 미영 씨를 사랑하고, 미영씨도 저를 사랑한다면……사랑…하는데…어째서….”
그는 잠시 혼란에 빠진 것 처럼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나는 말이야.
네가 너무나도 좋아.
사랑해.
그래서 네가 없는 세상을 견딜 수가 없어.”
“......네?”
“있지? 나는 네가 죽고 나면, 나도 죽을 거야.
네가 없으면 난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는걸?”
“....죽는…다니? 저…제가 죽는다고..미영 씨가…?”
당혹, 놀람.
그렇지.
이게 보통 인간의 반응이지.
내가 망가진 게 분명해.
하지만, 어떡해?
이렇게 망가져 버린 게, 나인걸?
“너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너는 내 전부가 되어버렸어.
그러니까, 너는 나를 사랑하면 안 돼.
너는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잖아…?”
“.....!”
그를 본다.
무언가 참음하고, 깨달은 표정.
그리고 이내, 암담해져 간다.
“아니..저…저는…그…”
“그렇지?
너는,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잖아.
내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기를 바라잖아.
그런데, 어떡해?
네가 없는데?
나 혼자, 살라..고?”
울컥.
무언가가 내 목구멍 위까지 올라왔다.
언제라면 어떻게든 삼켜낼 그 울화를, 이번에는 그대로 토해냈다.
“이 세상이!
이 좆같은 세상이!!
내 모든 것을 앗아갔어!!!
내 신분, 내 가족, 내 친구!!!
그리고 이제는….내게 모든 것을 가져가는데, 그래도 살라고…?”
그러지 마.
“아니지…그건 아니지…”
제발, 그러지 마.
“이젠, 나도 못 견뎌.”
나에게, 저주를 내리지 마.
“그러니까 제발, 내가 죽게 해줘.”
그저 텅 비어버린 내가, 너의 신기루의 흔적을 좇으며 간신히 살아가는 저주를, 주지 마.
…..아.
“그거 알아?”
그렇다면, 그가 나를 싫어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나, 실은 남자였다?”
그렇게 나는, 내가 죽여버린 나 자신을 끌어올렸다.
그저, 그가 나를 싫어하기를 바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