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chapter 7:행복한 신기루(6)
* * *
“죽…는다니….? 아니…죽을 수 있냐니…?
그게 다…무슨 이야기에요?”
호준은 내 물음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혼선을 일으키는 모습이 마주 보고 있는 나에게도 아주 잘 보였다.
“말 그대로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죽을 때, 같이 죽어줄 수 있어?”
나는 그저 무덤덤하게, 금방 뱉었던 말을 정리해서, 다시금 그의 귀에 박아넣어 주었다.
“아니…그…그건….”
“못하겠지?”
“....저기, 너무 갑작스럽게 온 질문이라 잘 모르겠는데….아니, 애초에 뭔가요? 혹시 저랑 심리테스트 하려고 오신 건가요?”
호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저는….그 때 그 일 이후로 누나를 봐서, 기뻐요.
솔직히, 누나가 순전히 저를 만나러 온 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요.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니까 나를 만나러 왔겠지. 라고요.”
“....”
“그런데, 저는 그런 건 상관이 없어요.
제가 도움이 된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갑자기 자신을 사랑하냐느니, 내가 죽으면 같이 죽을 수 있냐느니….”
그러더니, 그는 천천히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도 참 지독한 짓을 한다 싶다.
나는 그저, 호준이 나에게 품은 감정을 이용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후회는 없다.
“....못 하겠지?”
“....그런 마음은 당연히 이해가 가죠….뭐…영화나 소설 같은 걸 보면 그런 소재를 많이 쓰잖아요…? 로미오나 줄리엣 같은 거나…아니면 뉴스에서 동반자살…?”
“...그렇지…”
그렇구나.
너에게 있어, 아니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내가 가진 이 감정은.
소설이나 영화, 아니면 뉴스에서나 볼 법한.
아주 먼 이야기구나.
이 마음은 비정상이고 뒤틀린, 감정이구나.
“그래서, 도대체 왜 이 이야기를…”
“...려고.”
“...네?”
그는 한 차례 말을 끝내고, 다시금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답해주었다.
“죽으려고. 나도.”
“.........”
“사랑하는 그가 죽으면, 나도 죽으려고.”
“사랑….누…누나가…사랑하는….사람요…?”
그의 동공이 커진다.
정말 최악이네.
나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당당히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한 다음에, 죽을 거라고 말하다니.
나, 진짜 쓰레기가 다 됐구나.
“맞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에게 있어 모든 것인 그 사람.
그 사람이, 곧 죽거든.”
“곧 죽는다니…”
“불치병이래.
맞아.
네가 아까 말한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진부한 끝이지?
근데 어떡해?
아무리 발버둥치고, 꿈이라고 중얼거려도,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건 다 사실인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점점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병실에 갇혀서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데?”
“누…누나…!”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가 몸을 일으켜 나에게 손을 뻗지만, 내 입은 멈추지 않았다.
“넌 알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으려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
미소를 잃어버린 나에게 미소를 돌려준 사람.
같이 있는 것만 해도 행복하고, 더 바랄 게 없는 사람.
나에게 봄을 돌려준 사람.
그 사람이 죽는다는데, 난 어떻게 해야 해?
응?”
“이…일단 진정 좀 하시고…”
“진정…?
못해.
그 사람은 내 모든 것이야.
그래서,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지 못해.
가끔 그가 침대를 비울 때, 그가 베던 베개를 보면 눈물로 젖은 흔적을 볼 때.
그러면서도 나를 보면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
그가 죽고 나면, 내가 버틸 수 있을까?”
“.........”
“못 버텨.
그래서, 죽을 거야.
괜찮아.
나에게는 그게 최선의 방법인걸.
그래서 지금까지, 이 마음을 숨기고 지냈어.
그냥, 서로 만나서 실없는 이야기로 웃고, 같이 지내는 거.
그가 죽기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가며 그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오늘. 이걸 주더라?”
나는 힘겹게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그 안에 담긴 것을 보였다.
“...반지…네요..”
투명하고 아름다운 보석이 박힌 반지.
“그가 나를 좋아한대.
사랑한대.
내가 그에게 가진 이 감정이, 그 또한 가지고 있대.
내가 웃으면 좋겠고.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감정이 있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그가 죽고 나서, 나 혼자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는 거야?”
싫어.
그것 만큼은 싫어.
우리는 언제나 같이 있을 거잖아.
그때 병실에서 말했잖아.
언제나 같이 가자고.
그런데, 왜 나만 여기 남겨두려는 거야?
“알아.
내가 이상하게 뒤틀렸다는 건.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내일을 살아가겠지.
그런데, 나는 못하겠어.
이미 그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평범하지 않았으니까.
그를 만나고 나서, 평범이 뭔지 알게 됐는데, 그가 죽어버리면, 나는 평범을 유지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저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가 말한다.
“알…잖아요…
저를 찾아와서…물어..볼 정…도면….누나도 알잖아요…
내가 누나를 좋아하는 걸….”
어느새 그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런데, 저는 어째서, 제가 좋아하는 상대가 죽을 거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죠…?
네?
어째서?!”
호준은 결국 소리를 지르며 나를 바라보았다.
뚝. 뚝. 하며 바닥에 무언가가 흘렀다.
“....이 마음이 어떤지 궁금했어.”
그랬다.
“이 감정이, 사랑이.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나와 같아지는지.
그게 궁금했어.
하루라도 그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지.
그가 죽으면 자신 또한 죽을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지.
그게 궁금했거든.”
“아.”
사랑은, 나만 하는 게 아니잖아.
내 앞에 있는 호준도.
길거리의 사람들도.
세상 사람 중 그 누군가는 사랑을 하겠지.
그런 사람들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번 대화로 알았다.
역시 망가진 건 내 쪽이라는 걸.
그렇다면 이제 어쩌면 좋을까?
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이게 순수한 사랑인 것인지, 절망과 슬픔에 뒤섞인 애증이라는 이름의 의존인 것인지.
모르겠다.
“...고마워. 커피 잘 마셨어.
한 가지만 말해줄게, 날 잊어.”
“......”
“이렇게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 좋아해 봤자 너만 손해니까……”
참,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나조차도 하지 못하는 일을, 무책임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인걸.
“.....저는 슬슬 정리 좀 해야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는 내 말에 천천히 책상 위의 컵을 챙기며 말했다.
“응…”
나는 그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려던 찰나.
“있지….사실 말야. 나…”
“...네?”
“..............아냐, 잊어줘.”
나는 잠시 멈춰, 몸을 돌리고 그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그대로 카페를 나섰다.
“....이제와서 내가 남자였다고 말한들…..뭐하겠나…”
그래.
이건 내가 남자였다는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난 더 이상 김상국이 아니니까.
난 이제 김미영이고, 이건 김미영의 문제야.
“.....끝을 내자.”
나는 주머니에 담긴 반지를 쥐며 중얼거렸다.
뭐가 됐든,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이 감정이 어쨌든, 끝을 내야 했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