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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78화 (78/91)

〈 78화 〉 chapter 7:행복한 신기루(4)

* * *

“....그 붕대는 뭐에요?”

“아…이거?”

왼손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던 현수가 물었다.

“그…어제 요리하다가 실수로 다쳤어….하하…멍청하지?”

“크게 다치신건 아니죠?”

“걱정 마. 살짝 긁힌 것 뿐이니까.”

나는 의도적으로 크게 웃으며 그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또 자해를 했다.

술에 취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망가지지 않기 위해 마신 술이,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다.

나는 이미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고, 낙하산 따위는 없으니까.

그저, 아둥바둥 발악하며 고통스럽게 떨어지는 것 보단.

자세를 가다듬고, 그저 곧 다가올 차가운 절벽의 바닥에 도달하는 것만 신경쓰자.

괜찮아.

지금의 나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여.

네 앞에서는 웃고, 장난치고, 밝은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되.

내가 망가지던, 부러지던, 무너지던.

네 걱정을 끼치는 것 보다는 훨 나으니까.

“그래도 조심하셔야죠, 다치시면 안 돼요.”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아, 오늘은 그림 안 그려?”

더 이상 이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의도적으로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언제나 그가 들고있던 스케치북과 펜이, 그의 옆에 있는 탁자 위에 그대로 올라가 있었기에, 내가 물었다.

“아….오늘은 괜찮아요.”

“그…래? 그렇지? 가끔 쉬는 날도 있어야지!”

무언가 이상하다.

언제나 그림을 달고살던 그가, 어떤 연고로 오늘 하루는 쉬는 거지?

설마 몸 상태가 더 안좋아졌나?

그러고 보니 어제 팔을 심하게 떨던데, 벌써 팔 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된 건 아닐까?

혹시 내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변명한 건가?

웃는 내 얼굴과는 다르게, 내 머리 속은 그에 대한 걱정으로 팽팽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말 별 일 없는 거 맞지?”

이상하다.

오늘따라 그가 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아니,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대화의 흐름도 자꾸 이상한 곳에서 끊기고, 침묵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는 자꾸만 머뭇거리며,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뭐지?

정말로, 괜찮은 거 맞지?

그런거 맞지?

응?

“그나저나, 아직 점심 안 먹었지?”

아픈 거 아니지?

사실 한계가 온 거 아니지?

“짠! 저번에 네가 먹고싶다고 한 햄버거 세트!

이거 숨겨오느라 정말 진땀 뺐다니까? 간호사들이 환자는 무조건 병원밥을 먹어야한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맛 없잖아? 그치?”

멀쩡하지?

아직….아니지?

점점 가면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이제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두렵다.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 앞에서, 나는 자꾸만 움츠려든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직. 터지지 말아 줘.

“...미영 씨.”

“응? 이거 별로야? 네가 먹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역시 버거왕이 나았을까?”

“...할 말이 있습니다.”

두근.

심장이 거세게 뛴다.

손에서 식은땀이 자꾸만 흐른다.

당장이라도 이 가면이 벗겨 질 것만 같다.

무슨 말?

할 말이라니?

이렇게까지 망설이면서 말해야 하는 말이 뭔데?

응?

“....에이~ 갑자기 왜 이렇게 진지해? 할 말이 뭔데?”

“...그..”

말하지 마.

이 행복이 깨지게 하지 말아 줘.

제발.

멀쩡하다고.

사실 별 거 아닌 말이라고.

말해 줘.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이 상황을 깨뜨리지 말아 줘.

나도 알아.

언젠가는 이 유치한 소꿉놀이도, 끝이 찾아온다는 걸.

하지만,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행복한걸.

네가 여기 있고, 내가 여기 있잖아.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하며, 웃으며, 있잖아.

그러니까 제발, 그냥 멋쩍게 웃으면서 별 거 아니라고 말해 줘.

내 바람과는 다르게,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이걸, 받아주실래요?”

“....뭐?”

그리고는, 자신이 덮었던 이불속에 감춰놓았던 오른손을 빼내어, 그 손 안에 들린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반….지?”

그 곳에는, 보라빛 케이스에 담긴, 너무나도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반지 한 쌍이 담겨져 있었다.

“사실….며칠 전에 몰래 간호사 님께 부탁해서, 어렵게 구했어요.”

그는 조심스럽게 케이스 안에 있던 반지 하나를 손가락으로 집었다.

“이…이걸…왜?”

당황스럽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어느새 가면은 벗겨져 있었다.

“줄곧,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뭔지, 뭘 하는지, 이 감정은 무엇인지.

미영 씨와 같이 살기 시작한 날 부터, 병상에 누워있는 지금까지, 끝없이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이 마음이 과연 맞는 건지.

그냥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저, 죽음 앞에서 흔들리는 내 감정이 이상해진 것은 아닐지.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가 붕대에 감긴 내 왼손을 붙잡았다.

“그래서, 더 늦기전에, 이 마음을…미영 씨,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가 내 왼손을 펼쳐, 반지를 쥐어주었다.

뭐?

사랑?

나를, 네가, 사랑?

“...나를….사랑한다고?”

“예.”

“....진심이야?”

“예.”

어째선지, 눈물이 멈추지가 않는다.

시야가 흐려지고, 고동이 금방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나만 그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저, 이 마음을 숨기고, 나만이 이 감정을 몰래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너 또한. 나와 같았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참으로.

그리고 나는 입을 열었다.

“....잠시만….그…나는….아….그…어? 아니….나를?”

머리가 어지럽다.

바닥이 울렁거리고, 나를 집어삼키는 것만 같다.

“미…미영씨?”

“멈 춰!! 자…잠시만….기다려….”

내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그가 나에게 손을 뻗자, 나는 필사적으로 그 손을 뿌리쳤다.

“아…하하….미안….나….오늘은 이만 가 볼게….”

“미영 씨…?!”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곧바로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바라본 그의 얼굴은, 당황과 자책이 섞여 있었다.

“우윽…!”

울렁울렁.

머리는 뜨겁고, 숨이 차오른다.

다리는 자꾸 후들거리고, 손은 축축하다.

그러나, 나는 달렸다.

“꺅!”

“으악! 뭐야?”

쿵, 쿠당.

복도를 거닐던 다른 환자들과 부딪혀도,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계단을 타고, 복도를 달리고, 출구로 향했다.

“하아….하아…”

병원의 출구로 나와, 한계까지 다다른 몸이 털썩하고 쓰러졌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져서, 빨리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팔다리가 후들거려서 너무 힘들었다.

별 거 아니라고.

그냥 지친거라고 말해야 하는데, 숨이 너무 가빠서 그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저…괜찮으세요?”

“아…허억….허억…”

“일어나실 수 있으시겠어요?”

병원 출구 앞에 그대로 뻗어있자, 당연히 내 모습을 바라보던 간호사가 달려와, 나를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허억…그….괜…찮아요….네….그냥…지쳐서….허억…”

“일단 숨을 천천히 고르세요. 네, 천천히.”

“허억…….후…후우….후우…”

간호사의 부축 덕분에, 헐떡이던 내 숨은 어느새 가빠진 정도로 돌아왔다.

갑자기 달려서 허벅지와 다리가 욱씬거렸지만, 그래도 몸을 일으킬 정도는 되었다.

“감사…합니다…그럼…”

“앗!”

완전히 몸을 일으킨 나는, 간호사에게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곧바로 또 다시 달렸다.

“허억. 허억.”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

그가 나를 사랑한다.

오롯이 나만이 가지고 있을 줄 알았던 이 감정을, 그녀 또한 가지고 있었다.

사랑.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또한 나를 사랑한다.

어째서?

“아니..야..”

날 사랑하지 마.

“이…건 아..니야…”

너는, 나를 사랑하면 안 돼.

이 마음은, 이 감정은.

오롯이 나만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버틸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거절당하는 것이 무서웠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면 좋을까.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거절당하는 것이 무서웠던 게 아니었다.

곧 죽어버리는 네가 나를, 내 생각을 바꾸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게 무서웠던 것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무서워졌다.

지금까지는, 내가 너를 사랑하더라도, 나만 감추면 괜찮았다.

그저 하던 것 처럼 가면을 쓰고, 그렇지 않은 척.

이 불완전하지만 행복한, 이 관계를 즐기기만 하면 괜찮았다.

온통 거짓말 투성이라도,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우리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건 안 된다.

네가 나에게 마음을 주면 안 된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니까.

그저 짝사랑으로만 끝난다면, 나만 슬퍼하면 되잖아.

그냥 네가 죽고, 나 또한 죽어버리면 되잖아.

그런데, 네가 나를 사랑하면, 그러지 못하잖아.

이 마음은, 이 사랑은.

언제나 일방적이어야만 한다.

그저, 내가 너에게 사랑을 할 뿐이야.

그래야만, 내가 견딜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관계가.

이 마음이.

서로에게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곧 죽어버리는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해?

나를 사랑하는 네가, 매일 매일 죽어가는 걸 바라보는 나는?

지금보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다가오는 걸, 그저 지켜만 봐야하는 나는?

몸이 굳어가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다가오는 네 사랑을 받는다면.

나는 더 이상 버틸수가 없어.

곧 죽어버리는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아끼고,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내가 너를 따라 죽지 않기를 바란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나는 이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없는데.

너가 없다면,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없는데.

네가 나를 사랑하고, 이 마음을 돌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현수라면 내가 죽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사랑하니까. 그 말을 그대로 들을 수 밖에 없겠지.

그 뒤에는, 네가 없는 세계에서 텅 빈 몸을 이끌고 살아갈지 모른다.

그것이 두렵다.

나는 결국, 다시금 바닥에 엎어졌다.

“아.”

어느새 꽉 쥐고있던 왼손을 펴자, 반짝거리는 보석이 달린 반지가, 나를 비추고 있었다.

우리의 불완전한 관계는, 그렇게 끝을 맻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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