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chapter 7:행복한 신기루(3)
* * *
드르륵.
미닫이문을 가볍게 열자, 자연스럽게 열렸다.
“나 왔어.”
“아, 오셨어요?”
내가 말하자, 그는언제나처럼밝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가 반기는 장소가 집이 아니라, 병실로 바뀌었어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오늘은 좀 어때?”
“저야 늘 그렇듯 펜이나 잡고있죠 뭐…하하.”
내가 그의 안부를 묻자, 그는 자신이쥐고 있던연필을들어 보이며웃었다.
“무슨 그림인데? 나도 좀 보자!”
“앗…!안 돼요! 아직 미완성이에요!”
그가 열심히 펜을 놀리던 스케치북 안에 담긴 내용이 궁금했던 나는, 고개를 쓱 빼내어 슬쩍스케치북의내면을 보려고 하자,현수는다급하게스케치북을끌어당겨 그림이 보이지 않게 몸으로 막아냈다.
“에이…치사하게…나삐진다?”
“아이고…미영 씨삐지면엄청오래가는데…”
“누구놀리냐!”
“하핫!”
“....그래서, 언제보여줄 거야?”
“....완성이 되면,보여 드릴게요.”
“...저번에도 그랬잖아. 완성이언제 되는데?”
“걱정 마세요. 꼭,완성할 테니까.”
그렇게 웃던 그는 마저 연필을 들었다.
“잠깐만! 너 오늘 그림 얼마나 그렸어? 손이 떨리잖아!”
그것을 지켜보던 나는 다급하게 그의 오른손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얼마 그리지는 않았는데, 벌써 이러네요….점점 빈도가 빨라지는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지만, 망쳐가면서 그리지는 마.”
“고마워요. 걱정해줘서.”
“나중에 또 이러면 그냥 펜이고 스케치북이고 다 뺏는다?”
“아이고 그것만큼은!”
“쿡…아 맞다. 과일 좀 사왔는데, 먹을래?”
“또 손가락 베시는 거 아녜요?”
“날뭐로 보고! 그게언젯적인데! 지금은엄청능숙하게깎을수 있거든?”
내가 들고온 바구니에서 사과를 한 알꺼내 들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흥, 나를뭐로 보고.
비록, 저번에는 실패했지만, 오늘은 이 새 도구와 함께라면 과일껍질쯤이야.
*
사각사각.
“....엄청빠르기는 하네요.”
“.....”
“마치 연필을 칼 대신 연필깎이로깎는것 같은…”
“아 그래! 미안해! 과도는 너무 힘든 걸어떡해?!”
그래.
현대인이라면 도구를 쓸 줄 알아야지.
누가 과일을 칼로 깎아?
감자칼로도 잘 깎이는데.
“봐봐! 얼마나 깨끗해? 이걸 쓰면 얼마나 편한데 굳이 과도로 깎는 사람이멍청한 거야!”
“네~네~”
“....웃지마. 부끄러워졌어.”
“푸핫!”
“야이씨…!웃지 말고이거나 먹어.”
“쿡…네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한 그에게 사과 한 조각을 물려주니, 조용하게 우물우물 잘도 먹는다.
귀엽네.
*
그는 계속해서 집에 있고 싶어했지만,그럴 수가없었다.
양 다리를 좀먹던 병은, 어느새 허리까지 다가왔고.
이제는 나조차도 그의 수발을 들기 벅찰 정도였다.
밤중에 갑작스럽게 발작을하는 일도 있었기에, 결국 다시금 병원을 찾게 되었다.
안다.
우리의 여행은, 이제 끝나버렸다는 것을.
이 입원도, 다른 환자처럼 잠시 몸을낫게 하기위해 머무르는 곳이 아님을.
그는 이제 앞으로쭈욱, 이 병실에 있겠지.
그리고 천천히 시체처럼 죽어갈 것이다.
그런 그를, 나는 곁에서 지켜볼 뿐.
그렇기에 우리는 그런 암울한 현실을 외면하고, 만날때마다서로 장난치며, 즐겁게 웃었다.
미소를 짓고, 활발하게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즐거운 이야기를 했다.
오는 길에 고양이를 봤는데 너무 귀여웠다느니.
오늘 밥은 별로 맛이 없어서, 내가 준 과일이 가장 맛있었다느니.
병실에놓인TV로 본 영화가 재미있었다느니.
시시콜콜하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이 대화의 흐름이 끊기는 것이 싫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이, 끊어져서 나에게 날아오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우리는 계속해서서로를당기고, 놓치지 않았다.
허울뿐인 평화.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너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까?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그저 가면을 쓰고, 덧칠된 미소를 지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계속해서주고받을뿐.
굳이 이 흐름을깨고 싶지않았다.
깰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멍하니 TV를 보거나, 그림을 그리는현수를구경하는 등.
우리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간다.
"시간 다 됐네….."
"벌써 그렇게됐네요."
어느새 붉은 노을빛이 창문을 통해 우리를뒤덮을 때쯤되면, 나는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다.
"그럼, 내일 또 보자."
"네. 내일 또."
"응. 내일. 또 봐."
우리는 잘 있어 라던지, 잘 가요. 같은 인사는 하지 않았다.
언제나,내일이라는 단어를꼭 집어넣었다.
이 평화로운 하루가, 내일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나에게 손을 흔드는현수에게나 또한 손을흔들어주곤, 병실을 떠났다.
"........."
툭, 하며 가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힘겹게올려 왔던입꼬리가 어느새 내려갔다.
그리고, 이젠 네가 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
창 밖으로 붉은 노을이 밝게 빛난다.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다.
태양이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은, 지기 직전이라고.
현수는언제나 밝게 빛나지만,최근 들어서더욱 반짝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아팠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 나는 편의점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어서 오세요~"
"...XX 한 갑 하나랑, 이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네~ 실례지만,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
이제는 자동차도 몰고 다니는 내가 되었지만, 아직도 이 앳된 외모는 나이를 먹을 줄 몰랐다.
그래도민증이없어서시발시발하며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묵묵히 지갑에서민증을꺼낼 수 있다는 점 덕분에 괜찮았다.
내가 건넨민증과나를몇 번이고번갈아 보던알바생은한다섯 번쯤 내 얼굴을 바라보고 나서야 봉투에 물건을 담아주었다.
그것을한 손으로받은 나는 심드렁하게 편의점을 나서서, 다시금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봉투를 넣으니,쨍쨍하며유리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다시금 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철컥.
빠르게 집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다.
고요하다.
언제나 느껴지던 인기척은 전혀 없고, 쌀쌀한 적막만이 나를 반겼다.
커피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최근 들어서직접 내린 커피를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네가 없는 집에서 나는 커피향기는, 이상하게도 이질적이고 불쾌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커피를 내리지 않았다.
봉투를 냉장고에 대충 집어넣고, 나는 청소기를 돌렸다.
나 밖에 없는 집이지만, 나는 매일같이 바닥을 닦고,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관리했다.
만약, 네가 돌아온다면 더러운 집 따위는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비록, 이 행위가 헛된 희망으로점칠 된의미 없는행동일지 몰라도,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청소가 끝나면, 나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봉투의 내용물을 꺼냈다.
초록빛이 감도는 유리병.
술.
현수가 입원하고, 나는 끊었던 술을 다시금 시작했다.
그가 입원한첫날밤.
인기척 없는 집에서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질 않았다.
자꾸만 몸이 떨리고, 불안했다.
이 어두운 암흑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있는 감각.
끝없는 공허함과 두려움이 자꾸만 발목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이내 내 목을 졸랐다.
숨이 가빠지고, 동공이 흔들렸다.
결국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 위 속에 있던모든 것을게워냈다.
심장이 세차게 쿵쾅거렸다.
시야가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어둠이 두렵다.
밤이 두렵다.
나 혼자만의 밤이, 두려워졌다.
앞으로도 계속, 이 밤을 그 없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왈칵. 하며 눈물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어느새술을 들이켜고있었다.
몸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볼이 빨개졌다.
머리는 몽롱해지고, 생각이 점점 사라진다.
헤헤.
헛웃음이 나왔다.
한세 병쯤 마시고 나서, 나는 술을 마시던 테이블에 그대로 뻗어, 잠들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내가 벌인 일을 깨달았다.
또다시 술로 도피했다는 죄책감과허망감이들었지만, 나는 그날 밤에도 술을 마셨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왜 술독에빠져 살았는지깨달았다.
술을 마시는 그순간 동안은, 그 어떤 고민도 없다.
반드시 다가올 미래도, 그의 모습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병을 입에 가져다 대어, 술을 마시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렇게나 두렵던 밤이. 더 이상은 두려워지지 않았다.
현수에는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
매일 밤, 술에 취해 간신히 잠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 익숙한 손동작으로 술병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갑던 술이, 이상하게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180도 돌변해 뜨겁게 달궈진다.
전신에 열이 오르고, 머리가 몽롱해진다.
아.
아하하.
나는 웃었다.
집 내부까지 내 웃음소리가울려 퍼졌지만,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지금 취했으니까.
아무렇지 않다.
다시금술을 들이킨다.
달콤한 소주가 자꾸만 혀를 간질거린다.
어라.
왜 달지.
누가 설탕을 탄 모양이다.
그럼 소금을 넣어볼까.
에퉤퉤.
이건 좀 아니지만, 그래도 아까우니 먹어야지.
그런데궁굼했다.
웨술병는언재나초록색일까?
ㅇ웨빠알간색이나놓란색은업지?
빨강생은 내가만들수잇는대.
나는 소매를 걷어, 손목을 드러냈다.
이거지!
비린데...마시써.
에헤.
어라. 다 마셔내.
그럼 하나 더!
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