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chapter 7:행복한 신기루(2)
* * *
며칠 후.
“드디어 집에 돌아왔네요.”
“그러게, 짧지만 길었어.”
나는 현관문을 열고, 조심히 휠체어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병원에 계속 입원을 한다고 한들, 마땅한 대책도 없었기에 그대로 퇴원하게 되었다.
현수의 의지 또한, 이곳에 있는 것보단 퇴원을 원했기에, 나는 솔직히 걱정이 조금 앞서기는 했지만,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릴루졸, 이라는 약도 처방받았다.
현재, 루게릭 병의 치료방법은 전혀 없었고, 그나마 지연시켜준다는 약 밖에 없었다.
이미 현수의 전이 속도는 아주 빨라서, 약효는 그다지 없다는 말이 의사의 소견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연명할 수 있다면 뭐든지 좋았다.
“먼지가 많이 쌓였네…잠시만, 먼저 청소기 한 번 돌릴게.”
“그럼 저도…”
내가 먼저 나서서 며칠간 비운 집을 청소하려고 나서자, 그가 몸을 일으켰다.
“...아냐, 괜찮아. 응…병원 생활 때문에 지쳤잖아? 내가 할게.”
“....네.”
하지만, 나는 그를 말렸다.
그의 휠체어 옆에는 보행보조기구가 실려있다.
현재, 그가 사용하는 목발로는 더는 움직이기 힘들기에, 병원에서 새로 맞춘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편하게 커피를 타지 못했다.
스스로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한계인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슬퍼졌다.
그래도, 그의 얼굴에 있는 미소는 여전했다.
괜찮아.
내가 하면 되니까.
“그 전에, 먼저 방으로 가 있을래? 도와줄까?”
“괜찮아요. 새로운 보행기에 적응도 할 겸, 제가 스스로 가 볼게요.”
청소기를 돌리기 전, 계속해서 그를 현관에 놔둘 수도 없었던 나는, 그에게 묻자, 그는 천천히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딱. 딱.
바닥에 보행기가 닫는 소리가 들린다.
“오! 정말로 걷기 편해졌네요!”
“...응…다행이야.”
현저히 느리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발을 움직인다.
언제나 사용하던 목발로 움직일 때보다 정말로 느려졌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콕. 콕.
어떻게든 괜찮아지려고 노력하지만, 그의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가슴이 너무 쓰라려 미칠 것만 같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현수의 곁에 있겠지.
그가 아직 다리 말고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지금부터.
그가 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숨을 붙이고 있을 때까지.
그가 입원하는 사이, 나는 몰래 휴대폰을 이용해 그가 걸린 병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곧 그가 마주할 미래 또한 보았다.
전신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호흡도 스스로 하지 못해 호흡기에 의지하는 환자들의 사진들이 보였다.
그 환자들의 얼굴이, 어느샌가 현수로 바뀌는 모습이 떠올랐다.
끔찍했다.
언젠가 마주할 현실이, 섬뜩하고 무섭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의 곁에 있을 것이다.
선인장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가 있더라도, 꼬옥 끌어안는 것처럼.
내가 상처 입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그의 곁에 있을 것이다.
그는 어느샌가 자신의 방 앞까지 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
“.....?”
그는 이미 방 앞까지 도착했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미동 없이 방 문앞에 서 있었다.
“.....!”
그런 그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던 나는, 이내 퍼뜩 깨닫고는, 급히 달려가 그의 방문을 열었다.
“....고마워요..”
그제서야 그는 다시금 발을 움직여, 방 내부로 들어섰다.
“...아냐, 푹 쉬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 부르고.”
나는 그가 들어서자, 그가 편히 쉬게 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
“...아….”
어째서 그가 문 앞에서 그저 가만히 있었는지.
방 문을 열고 싶어도, 그의 양팔은 자신의 몸을 간신히 지탱중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이 이 ‘변화’를 겪어야 하는 걸까.
나는 이미 닫힌 문에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혹여나 그가 듣지 않기를 위해.
*
“배달음식은 오랜만이네요.”
“그….미안해…”
청소를 끝낸 나는, 며칠간 병원식만 먹은 그를 위해서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기 전까지 밥이라는 것은 그저, 움직이기 위한 충전재료만 인식했고.
그를 만나고 나서도 요리는 전부 그가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나는 요리에 대해 매우 무지했다.
도마랑 칼을 찾는 데만 한 세월.
일단 맛있는 것 하면 고기였기에 냉장고에 있던 고기를 꺼내고 한입 크기라고 주장하는 알아보기 힘든 고깃덩어리들을 만드는데 또 한세월.
구우면 괜찮겠지 싶어 달구지도 않은 팬에 기름도 두르지 않고 대충 때려 박다가 눌어붙고, 다 타버린 쓰레기들을 치우는데 한세월.
결국, 시간은 시간대로, 재료는 재료대로 낭비해버린 나는 어느새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에 놀라 어쩔 수 없이 휴대폰어플을 켰다.
“미안….내가 요리에는 별 재능이 없어서…”
“괜찮아요! 그나저나 요즘에는 이런 음식들도 다 배달이 되는군요? 시켜먹었던 적이 정말 오래전이라서, 치킨이나 짜장면같은 것들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파스타도 배달시킬 수 있어서 놀랐어요!”
“나도 놀랐어. 무슨 커피도 배달이 되는구나…”
그는 갑작스러운 배달음식에도 웃으며 말해주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배달음식만 시켜먹을 수는 없는 노릇.
요리를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각오를 조심스럽게 불태웠다.
“커피 한잔할래?”
“아, 부탁드릴게요.”
식사를 끝마친 나는 언제나처럼 식후에 마시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이잉. 하며 커피머신이 원두를 갈아내자, 은은한 커피향이 주변을 채웠다.
고온으로 짜낸 원액을, 컵에 담아낸다.
“자, 여기.”
“고마워요. 향이 참 좋은데요? 미영 씨, 커피 정말 잘 내리시네요.”
“아니 뭘…기계가 다 하는 건데..
그나저나, 어디로 가 볼까?”
갑작스러운 그의 칭찬에 쑥쓰러워진 나는 급하게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그때 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처럼.
그가 다시금 하늘을 볼 수 있게 된 지금, 조금이라도 많이 그의 곁에서 세상을 둘러보고 싶어졌다.
“글쎄요.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섣불리 고르지를 못하겠는 걸요? 하핫.”
“훗…그러게…”
더 이상 궁상떨지 말자.
지금 이 순간만큼은, 즐겁게 웃으며, 행복할 미래만을 떠올리자.
“괜찮아.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시간은 많으니까.”
모순되었지만, 맞는 말일지도 모르는 말을 꺼낸 나는,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예전엔 쓰게만 느껴지던 커피는, 이제 고소한 맛이 났다.
커피의 맛을 즐기게 되었다.
방에는 커피향기가 가득하고, 아늑했다.
내 앞에는 미소를 짓는 네가 있다.
행복하다.
비록, 거짓된 가면을 뒤덮어 쓰고, 다가올 미래를 외면하고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지금 느끼는 감정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으니까.
*
우리는 그 뒤로 여행을 떠났다.
어디든 좋았다.
느긋하게 도심 속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맛보며 수다를 떨거나.
다시금 운동장을 찾아 땀을 뻘뻘 흘리며 그의 휠체어를 밀었다.
등산도 했다.
잘 정비되지 않은 산길을, 거동이 불편한 성인 남성을 이끌고 오른다는 것은,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해냈다.
그때 정상에서 내려다본 경치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캠핑도 했다.
야심한 밤에 피어오르는 모닥불에 감자나 고구마를 던져넣어 구워 먹거나, 밝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일본도 다녀왔다.
그가 말하는 대로 프랑스에 갈까 싶었지만, 타지에서 갑작스럽게 몸 상태가 나빠지면 큰일이기에, 비교적 가까운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의 라멘은….솔직히 짜고 느끼해서 몇 입 만에 질리고 말았다.
그래도 온천은 참 좋았다.
그런데, 우리를 본 종업원이 부부인줄 알았다며 노천온천탕이 딸린 객실을 안내해줘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번갈아 온천을 즐겼다.
유원지도, 놀이공원도, 동물원도, 아쿠아리움도.
그 사이에 나는 면허를 땄다.
언제까지고 택시에 의존할 수 없는 노릇인데다가, 차가 있으면 더욱 자유롭게 둘이서 여행을 다닐 수 있었기에 택한 선택이었다.
운전면허는 남자였을 시절에 딴 기억이 있었지만, 그땐 막 고3이 끝나고 할 것이 없어 따 뒀다가 장롱면허가 되었기에, 실기시험에서 긴장하는 바람에 3번의 재도전 끝에 취득할 수 있었다.
새 차도 뽑았다.
두명이서 타는 차니까 적당한 소형차면 좋을 것 같았는데, 현수는 디자인이 멋지다는 이유로 중형차를 뽑았다.
크기가 상당했기에 운전면허 시절 운전하던 소형차와 비교되어서 살짝 위축되었다.
그래도 막상 사니까, 크기가 넓어서 짐을 싣기에도 좋고, 편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몇개월간, 우리는 정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즐거웠다.
행복했다.
이 행복을, 너와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뻤다.
너는 알까?
너와 함께 있다 보면, 이 마음속 불길이 점차 커지기만 한다는 것을.
너는 알까?
그럼에도 내가 너에게 이 감정을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를.
너에게 짐이 되기 싫었으니까.
만약, 내가 이 마음을 고백하면서, 내 과거의 이야기까지 털어놓는다면.
그래서 내가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네가 거부감을 느껴 거절한다면.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불편하게 보내야 할 테니까, 네가 싫을 거야.
사실 내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다.
거절당하기 싫었다.
그러니까, 이 어중간한 관계에 만족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간에 모를 정도로 어긋난 관계를 맺은 체 몇 개월을 보냈다.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던 나뭇잎들이 어느새 바닥에 떨어질 무렵.
현수는 다시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