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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75화 (75/91)

〈 75화 〉 chapter 7:행복한 신기루(1)

* * *

삐이이익.

“....현재…..급속도….전이….지금까….안 된 것…기적….”

자꾸만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

“전이속도….길어봐야….몇개월…..마음…준…”

앞에서 분명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명 덕분인지 잘 들리지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천창에 마치 지렁이처럼 새겨진 무늬가 보인다.

“보호…분..?...호자분..?”

아 시끄러워.

가뜩이나 귀에서 삐이삐이 거리는데, 시끄럽단 말이야.

“..신…차리…보호자….정…!”

형광등에서는 아주 밝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태양과는 다르다.

그런데.

저거 무늬 맞지?

그래, 저 조그만 무늬.

마치 기생충처럼 가늘면서 이리저리 굽어있는 저 무늬.

무늬 맞지?

왜 움직이는 걸까?

수많은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우와, 끔찍해라.

역겨워.

*

정신을 차리니, 나는 병원의 복도에 갖춰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

아니지, 틀렸네.

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 또 틀렸네.

나는 ‘의도적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섭다.

정신을 차리는 것이 무섭다.

귀에서 들려오는 이명이 점점 줄어든다.

흐물텅거리는 천장의 구더기들이 어느새 멀쩡한 무늬로 바뀌어간다.

제발.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줘.

내가 지금, 환각을 보고 있는 거라고, 누군가가 말해 줘.

너무 행복해서.

앞으로의 나날을 떠올리자니 너무나도 행복해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기어나온 게 기뻐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제발.

이게 현실일 리가 없잖아.

현수가 죽는다고?

왜?

어째서?

왜?

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

아니지.

차라리 죽는다면 내가 죽어야지.

나는 더러운 년이니까.

아무한테나 가랑이를 벌리고.

술이나 퍼마시고.

가족에게 다가갈 용기도 없는 한심한, 내가 죽어야지.

어째서, 네가 죽는 건데.

그럴 리가 없지.

그럼.

이렇게나 멋지고, 훌륭한 네가 죽을 리가 없잖아?

그치?

이거 다 꿈이지?

“보호자분, 환자분 송치 끝났습니다.

…..안내해드릴까요?”

그때, 한 간호사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언제나 그랬다.

달콤한 꿈에 빠져있다 보면, 지독하리만큼 날카로운 현실이 내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간호사는 얼이 빠져 멍한 내가 걱정되어 말했겠지만, 그녀의 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네.”

하지만 나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있었다.

*

“일단 당장은 다인실에 입원 중이신데, 개인실로 준비해 드릴까요?”

“........”

“...여기, 908호실입니다. 오른쪽 제일 안쪽에 환자분 계셔요.”

“........”

908호.

언제나 보던 익숙한 숫자인 1304가 아닌, 낯선 번호.

이곳에 현수는 있다.

“..잠시만요.”

나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나서, 화장실을 찾았다.

수도꼭지를 틀어, 미치도록 차가운 냉수로 세수를 하고, 비치된 휴지를 한 뭉텅이 뜯어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었다.

물기를 다 닦아내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꼼꼼하게 살피며 무언가 이상하지 않는지 확인했다.

“.....!”

억지로 미소를 지어본다.

입꼬리가 올라가질 않는다.

손가락을 써서 입꼬리를 올려본다.

거울속의 나는, 웃고 있다.

웃어야 한다.

심각한 얼굴을 그에게 보일 수는 없다.

하지만, 손가락에 힘을 풀면 어느샌가 지어진 미소는 사라지고, 무표정이 되었다.

난 이 얼굴을 잘 알고 있다.

모든것을 잃고 그저 돈을 모으기 위해 하루하루 몸을 팔던 그때 그 시절.

그 시절의 내가, 딱 이런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미소를 짓기 시작한 계기도 그였다.

그래서 그런가, 미소가 지어지질 않았다.

그래도 웃어야 한다.

씨익.

미소를 지어본다.

이미 금이 가서 갈라지고 누덕누덕한 가면을 억지로 썼다.

그래야만 하니까.

화장실을 나와, 금방 내가 박차고 나왔던 입원실의 앞에 가니, 어느샌가 간호사는 사라져 있었다.

“..금..따끔해요~”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병실의 내부에서 들려왔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그럼에도 떨림이 멈추지 않아, 나는 오른손을 등 뒤로 감췄다.

그리고, 그를 향해 입원실 내부로 들어섰다.

뚜벅뚜벅.

그를 향해 걸어가니, 금방까지 내 옆에 있었던 간호사의 등이 보였다.

쭈욱.

그의 팔에서 새빨간 액체가 주사기를 통해 빠져나고오 있었다.

“채혈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 드릴게요~ 푹 쉬세요~”

그녀는 그의 피가 들어찬 주사기를 들고 나를 지나쳐 병실을 나섰다.

“.....”

“......”

나와 그가 대치했다.

그의 눈동자가 보인다.

그의 눈가 또한 보였다.

빨갛다.

“ㄱ, 괜찮아?! 갑자기 쓰러져서 놀랐잖아~”

나는 가면을 쓴다.

“몸은 좀 어때? 그나저나 나 앰뷸런스? 그거 처음 타 봤는데 엄청 신기하더라~”

금이가 너덜너덜한 가면이, 내 얼굴을 감춰주었다.

절대로 슬퍼해서는 안 돼.

그의 앞에서, 울면 안 돼.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가면의 끈을 꽉 조여 맸다.

“....미영 씨.”

“...응? 왜?”

그런 내 모습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저, 시간이 별로 없나 봐요.”

“........아.”

깨졌다.

쩍쩍 갈라진 금이 내 가면을 완전히 깨부숴버렸다.

억지로 끌어올린 입가가 천천히 내려온다.

“...아니야…그…그럴리가 없지…”

눈가가 아른거리고, 물방울이 맻친다.

“부…분명 착오일 거야?! 응! 너, 너무 갑작스럽잖아!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왜?!”

후들거리던 다리가 풀려서, 이내 주저앉아버렸다.

“나…나 때문이야..?”

가면만이 아니라 가슴 또한 깨져버릴 것 같다.

“내…내가…무리하게…밖으로 끌고 나와…서?”

어떻게든 감추려고 하던 말들이 자꾸만 쏟아져 나왔다.

“미…미안해…내가…내가 미안해…나 때문에…니가….!”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 보이는지, 금방까지 소란스럽던 주변의 소리가 뚝, 하고 끊겼다.

환자실에 있던 모두가 우리를 쳐다본다.

“뭘 봐 씨발!!! 구경났어!?!!”

나는 그들을 향해 강하게 윽박질렀다.

“우…우리가…구경거리냐고…..어…?”

견디기가 힘들다.

어째서.

그가 죽어야 하는 걸까.

힘들어.

슬퍼.

괴로워.

이대로 쓰러지면, 모든 것이 꿈이라고 하지 않을까?

커피냄새에 깨어난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가서, 커피를 타고 있던 너에게 ‘오늘 엄청난 악몽을 꿨어’ 라고 하진 않을까?

그럴 리가 없지.

안 그래?

언제나 그랬어.

여자가 된 것도.

민준에게 강간당한 것도.

몸을 팔게 된 것도.

돈을 빼앗긴 것도.

세상 모두가 나를 자꾸 괴롭게 만들어.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어째서….

“미영 씨. 기억나요?”

“...!”

그가 말했다.

“말씀하셨잖아요. 여러 곳을 돌아다니자고.”

나는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본다.

“여행을 다니자고, 수많은 곳에서 같이 하늘을 바라보자고.

그동안 같이 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을 해보자고.”

[...있지…많은 곳을 돌아다니자.]

[여행을 다녀보자! 수많은 거리에서, 하늘을 바라보자.]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같이 해보자.]

맞다.

내가 병원으로 오기 전, 그에게 했던 말들이다.

“저는요, 미영 씨의 그 말에 심장이 마구 뛰었어요.

맞아요. 여러 곳을 가보고 싶어요.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수많은 거리에서, 하늘을 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미영 씨와 같이하고 싶어요.”

“아…아아….”

“기대되지 않나요? 처음에는 어디를 가 볼까요?

일단, 전국여행은 어때요?

저, 수학여행도 못 가봤거든요….매일 달리기만 하느라고…하하…

소풍하면 경주잖아요!

경주빵도 메니저님이 출장 기념으로 사주신 것 말고 먹어본 적이 없네요.

제주도도 가보고 싶고.

수학여행하면 또 제주도니까요.

등산….은 무리겠죠? 하하..”

“...아냐, 등산 좋지. 내가 도울게.”

머리가 맑아진다.

금방까지 깨어질 것 같던 가슴이 어느새 평안해진다.

“그래, 여러 군데 가 보자.

돈 모아둬서 뭐해? 해외여행도 가 볼까?”

“그거 멋지네요! 전 프랑스가 좋은데.”

“프랑스? 미술관 때문에 그래? 참 너답다.”

“아니면 일본은 어때요? 온천에 가보고 싶어요.”

“맞다. 일본에 가면, 꼭 본고장 라멘을 먹어봐야겠어.”

“그거 기대되네요! 퇴원은 언제 할까요?”

“글쎄…내가 나중에 가서 물어 볼게.”

그가 웃는다.

그의 미소에, 나 또한 웃는다.

가면이 없어도, 괜찮아.

그는 역시 멋지다.

훌륭하다.

사랑스럽다.

그는 어느새 내 전부가 되었고, 그런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괜찮아.

이제 고민은 안 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를 위해 뭐든지 할 거니까.

지금은 말할 수 없는 내 사랑을 위해서.

그러니까.

네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명쾌하네.

네가 죽은 이 세상에, 더는 가치는 없으니까.

그래.

적어도, 혼자 쓸쓸하게 죽게 하지는 않을 거야.

같이가자.

등산도, 해외여행도.

죽음도.

나는 언제까지고, 너의 곁에 있을 거야.

그게 내 행복이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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