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chapter 6:태풍의 눈 중심에서.(12)
* * *
“이게…뭔가요?
저를 데리고, 어째서? 아니…그….왜?!”
그가 소리쳤다.
“아….아시잖아요…! 제 지난날들을…제…제가…어, 얼마나…아니….왜…?”
현수는 제대로 된 문장을 이어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당혹스러워하며 전신을 비틀었다.
확실히, 이 행동은 그의 상처에 소금을 들이붓는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며칠 전, 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어린 시절 꿈.
현재 자신의 초라한 모습.
시체처럼 죽어가는 신체.
그 모든 것은, 나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이기에 내가 마치 배신과도 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아니다.
“네가 말했지. 하늘이 그립다고.”
나는 알 수 있다.
“이 새파란 하늘이.”
모든 것을 잃은 나.
“이 신선한 바람이.”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너.
“그리고, 이곳이 그립다고.”
그런 우리였기에, 나는 알 수 있었다.
도망치고, 낙담하고, 절망해도.
그는 여전히 이곳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그리워서, 어떻게든 잊으려고 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잃어버린 것을 네가 찾을 수 있도록 해준 것처럼.
나 또한 너를 도와, 다시금 되찾게 해 주고 싶었다.
“다리가 망가져도, 다시는 뛸 수 없다고 해도 괜찮아.”
나는 다시금 손을 뻗어, 그가 타고 있는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달리기 트랙의 선에 맞추어 밀기 시작했다.
“미…미영 씨?”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휠체어에 그는 당황하며 버둥거렸지만, 그는 휠체어의 받침대를 꽉 쥐고 있었다.
“괜찮아. 네가 달릴 수 없다면, 내가 대신 달리게 해 줄게.”
덜그럭. 덜그럭..
내 힘이 가해진 휠체어는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밀리기 시작했다.
바퀴가 회전하며, 점점 속도가 붙었다.
“내가…네 다리가 되어 줄게.”
후웅.
바람이 불었다.
천천히 걷던 다리는 어느새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숨이 점점 차오른다.
운동이라는 것과 연이 없었던 연약한 다리는 어느새 부들거리고, 성인 남성의 무게를 지탱하는 팔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봐…봐! 우린 지금 달리고 있어!”
“.....아.”
헐떡거리는 소리로 간신히 외치자, 그는 드디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탁 트인 하늘은 어느 때보다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광활한 태양이 겨울임에도 따뜻하게 우리를 쬐고 있다.
빨개진 볼을 날카로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코끝이 찡해지고, 귀가 새빨개진다.
“...하…하하…!”
그가 웃는다.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게, 웃음을 짓고 있다.
그의 얼굴을 아쉽게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상당히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았다.
“으…헛!”
어느덧 코너 길에 도착하자, 나는 전력으로 휠체어를 오른쪽으로 꺾었지만, 상당한 속도를 내던 휠체어를 연약한 내 신체가 감당하지 못했다.
우리는 동시에 기우뚱하더니, 어느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아씁….ㄱ, 괜찮아?!”
나는 급하게 바닥을 찍은 손바닥이 쓰라림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쓰러진 휠체어를 향해 달려 나갔다.
나와 마찬가지로 넘어진 그는 휠체어와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대자로 넘어져 있었다.
상태를 걱정하며 그의 전신을 살펴보자, 그의 옷은 흙먼지로 가득했다.
“다치지는 않았어? 미…미안..! 내가 너무 속도를 낸 것 같…”
“하늘.”
“...뭐?”
나의 염려가 섞인 물음에 그는 말했다.
“파랗네요. 엄청.”
“....그러게. 오늘은 날씨가 참 맑아. 만약 비라도 왔으면 참 힘들었을 텐데.”
그는 허탈하면서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의 모습에 나 또한 그의 옆에 앉아 대답했다.
“....얼마만일까요? 이렇게 하늘을 본 적이.”
“....어떤데?”
“...글쎄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편하게 말해 봐.”
“.....좋아요. 너무나도.
푸른 하늘도, 제 뺨을 간질이던 바람도. 붉은색 트랙도.
저는 여전히,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었네요.”
그렇게 말한 그는 웃었다.
그 웃음은, 오늘 보았던 미소 중, 제일 밝아 보였다.
*
“하….전신이 땀투성이야…바깥이 겨울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고생하셨어요.”
그 뒤로, 나는 그를 태우고 몇 번은 더 그 트랙의 위를 달렸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코너를 꺾을 때는 수없이 넘어졌지만, 그 실패로부터 요령을 얻어 마지막에는 보기 좋게 그 구간을 넘길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 또한 달리기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분명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근육통 때문에 끙끙 앓겠지만.
“나 먼저 샤워해도 괜찮아? 너무 찝찝하네.”
그 덕에, 내 옷은 땀으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서 매우 불쾌해졌다.
“네, 먼저 사용하세요.”
“고마워.”
다행히, 먼저 샤워권을 얻어서 좋았다.
“...저기…미영 씨.”
“아, 응?”
그렇게 갈아입을 옷을 찾으러 가는 나를, 그가 불렀다.
“....고마웠어요. 오늘.”
그는 여느 때처럼 집에서 사용하는 목발을 짚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나약한 놈이에요.
분명, 다른 수단 또한 있었겠죠.
재활 훈련이든, 아니면 오늘처럼 선수용 휠체어 연습이든.
하지만, 저는 모든 가능성을 두고 도망쳐버렸어요.
그냥….모든 게 망가진 것 같았거든요.
다시는 이 두 다리로 달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마치 제가 끝없이 깊은 늪에 잡아먹히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도망치고, 숨었죠.
…..그런데, 그렇게나 잊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은데도, 저는 계속해서 하늘을 그렸어요.
참 웃기죠? 외출은 고사하고 햇빛 한 뼘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사는 주제에.
바로 조금만 움직여도 볼 수 있는 하늘을….무시하고 외면하면서도 미련하게 매달렸어요.
하지만, 미영 씨.
미영 씨 덕분에, 저는 다시금 하늘을 볼 수 있게 됐어요.
그게…그게…너무나도 기뻐요…!
고마워요, 미영 씨.”
“....아냐…아니야…”
아니다.
그는 나를 구세주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 반대다.
내가, 그에게 구원받았다.
상처받고, 모든 것에서 도망치던 나를 끌어 잡아준 게 바로 너다.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내..내가 대단한 게 아냐….전부…네가 강인해서…그래…”
그는 멋있다.
훌륭하다.
강인하다.
초라한 나와는 다르다.
“네가, 하늘을 다시금 보고싶어 했으니까, 그런 거야.”
가족.
나는 그와는 다르게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와는 다르게, 계기가 있었음에도 도망쳤다.
분명, 어떻게든 고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날, 비어있던 내 유골함 앞에서.
그때 말을 꺼낼 수 있었는데, 난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나와 다르게, 계기가 주어지자 곧바로 잡았다.
그래서,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다.
“아뇨. 미영 씨.
미영 씨가 없었으면, 저는 그 하늘을 보지 못했어요.”
“.....”
그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
“고마워요. 미영 씨.”
그가 말한다.
나보고, 고맙다고.
“...아냐…정말로…”
내가 더 고마워.
그 절망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줘서.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줘서.
내일을 기대 할 수 있게 해 줘서.
“....그래.”
그 모든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삼킨 내가 대답핬다.
그 말들을 모조리 꺼내버린다면, 차마 숨기고 있는 모든 것들마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맞다.
이 감정을 속이고, 숨기려고 했지만, 무리다.
나는 현수를 사랑한다.
남자였던 내가, 남자를 사랑한다니.
처음 이 감정을 느꼈을 때가 언제였을까?
모른다.
그의 말, 행동, 몸짓.
그 모든 것들이 이 감정을 이끌어낸다.
누군가는 역겹다고 할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저, 착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들을 알게 된 그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너무나도 두렵다.
그런데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있지…많은 곳을 돌아다니자.”
너와 여러 곳을 다녀보고 싶다.
“여행을 다녀보자! 수많은 거리에서, 하늘을 바라보자.”
너와 수많은 곳에서 추억을 쌓고 싶다.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같이 해보자.”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너와 함께 하고 싶다.
“그러니까…..그러니까……”
나와, 언제까지고 함께.
이 말을 꺼내려던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이건 고백일까? 아닐까?
모르겠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박동수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는 적어도, 이 말은 할 수 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쿠당탕.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무언가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무..무슨..?”
그 소리에 놀란 나는 고개를 돌리려다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고개를 돌려서, 등 뒤를 바라본다면.
그 이후는 마치 지옥과도 마찬가지일 것 이라는 느낌.
고개를 돌리면 안 된다고, 내 본능은 외치고 있었다.
허나,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어라…?”
그가 보였다.
그가 바닥에 꿇어앉아 있다.
그가 금방까지 쥐고 있던 목발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얼굴로 아래를 쳐다본다.
그의 양손은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
“미…미영 씨…이..이상하네요…?”
그의 양손은 오른발을 붙잡고 있었다.
“오…오른발이…움직여지지 않아요….
왜…왜 이러지…? 하..하하? 오…오랜만에 움직여서 그런 걸까요….?”
그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하며, 주먹을 쥐어 자신의 오른발을 두들기고 있었다.
“아.”
처음으로 사랑을 자각한 날.
그 사랑의 끝을 얼핏 본 느낌이 들었다.
얼핏 이지만, 그 끝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