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chapter 6:태풍의 눈 중심에서.(11)
* * *
“.....시시하죠? 저는 이렇게나 나약해 빠진 인간이에요.”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친 현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자신의 과거를 마주할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도 없는, 한심한 사람.
그게 저예요.”
언제나 웃던 얼굴이 아닌, 힘없이 늘어진 그의 말이,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나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미래를 빼앗기고 살아가는 사람.
나는, 그였다.
그제서야 나는 어째서 현수와 이런 인연을 만들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동질감.
그래, 나와 같은 처지인 그에게 이끌린 것은, 그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그가 이렇게나 슬퍼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처럼.
그렇다면, 나 또한 그때의 그처럼 해야만 했다.
“...잠시만 기다려.”
벌떡.
나는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방을 나왔다.
“....미영 씨?”
“금방 올게.”
그런 내 행동에 의문을 가진 그가 물었지만, 나는 그대로 복도를 지나, 주방으로 들어왔다.
주방에 들어서자 곧바로 보이는 커피머신에 전원을 눌렀다.
위잉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커피머신에 불이 들어오자, 나는 그가 준비해 둔 새로운 원두를 넣고, 그대로 커피를 내렸다.
쪼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머그컵에 커피가 담겨졌다.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향과, 머그컵에서 새하얀 김이 흘러나왔다.
두 잔을 준비한 나는, 다시금 왔던 길을 따라, 그에게 돌아갔다.
“자, 이거 받아.”
“이건….커피?”
“맞아.”
그때.
상처입고 힘들었던 나에게 그가 해준 것처럼.
따뜻한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그에게 내밀었다.
“나도, 네가 저번에 말했던 것 처럼 남이 힘들어할 때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잘 몰라.”
그동안, 남을 위로하기는커녕, 제 몸 추스르기에도 바빴으니까.
“그러니까….그….음……”
쭈뼛쭈뼛.
그러면서도 나는 착실하게 손을 움직여, 천천히 그의 얼굴을 가슴팍에 끌어안았다.
“.....”
“...힘들었지..? 괜찮아.
넌, 한심한 사람이 아니야.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오직 나만큼은 언제나, 네 편이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넌, 좋은 사람이니까.”
그가 말했다.
자신은 반드시 내 편이 되어주겠다고.
그렇다면 나 또한, 반드시 그의 편이 될 것이다.
“....내가 좀 어휘력이 딸려서…여기서 뭔가 멋있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이럴 거면 책 좀 읽을 걸 그랬나 봐…하하…”
무언가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지만, 얄팍한 지식밖에 없는 나로서는, 내가 그동안 받아온 것을 흉내 낼 뿐이었다.
“.....따뜻하네요…”
“...금방 막 내린 거야, 뜨겁지는 않아?”
그의 말에 혹여나 커피가 너무 뜨겁지는 않을까 싶어 걱정되었다.
“하핫…네. 너무나도 따뜻해서, 이대로 녹아버릴 것 같아요.”
“으앗…!”
그런 내 말에 그는 가볍게 웃으며, 머그컵을 내려놓고 내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마시지 않고 내려놓은 커피는 식어갔지만, 이상하게 가슴은 계속해서 뜨거워져만 갔다.
*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는 잠을 청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다시금 고이 담아둔, 자신의 옛 상처들이 담긴 상자를 들고 말이다.
나 또한 먼지 구덩이에 있어 더러워진 옷을 새로 갈아입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잠이 도통 오질 않았다.
그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와 내가 닮기는 했지만, 나는 그가 아닌 것 처럼, 그 또한 내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사는 삶에 만족하지만, 그에게는 다를 수 있었다.
“...도와주고 싶다.”
한순간 중얼거린 말.
맞다.
나는 그를 도와주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뭘 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그를 도울 수 있을까.
그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뭐지?
과거의 상처.
그렇다면,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시킬 수 있을까.
천천히 생각해본다.
그의 상처.
달리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
“저기, 부탁이 있어.”
그로부터 며칠 뒤.
아침식사를 하던 도중, 나는 입을 열었다.
“부탁이요?”
“응. 하지만, 거절해도 좋아.”
“...뭔데 그러시나요?”
팬케이크를 잘라내던 칼을 내려둔 그가 물었다.
“나…나와 같이…밖에…나가지 않을래?”
나는 팬케이크 위에 올려둔 버터가 완전히 녹아 버릴 때까지 오물거리다가, 간신히 말했다.
“.....밖….이요…”
“무, 물론! 네가 힘든 건 잘 알고 있어! 나..나는 그냥…너를 도와주고 싶어서….”
“..........”
금방까지 미소를 짓던 그의 입꼬리가 멈칫 거리는 것을 느꼈던 나는 황급하게 말을 더 추가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켰다.
“....하하…곤란한 부탁이지…? 미안, 그냥 없던 걸로 해 줘.”
너무 성급하게 말했나 싶어진 나는 결국 손을 휘저으며 다시금 식사를 재개했다.
“...네. 좋아요.”
“...뭐?”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나는 포크로 찍었던 팬케이크를 탁자 위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미영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거절할 수는 없죠.”
“저…정말 괜찮은 거야?”
“...언젠가, 시도는 해보려고 했어요. 그 시기가 조금 이르게 다가왔다고 생각하죠.”
정말로 괜찮을까 싶어 되물어 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다시금 칼을 들어 요령 좋게 팬케이크를 잘라냈다.
*
“이거면 될까?”
“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사 뒀던 건데, 결국 쓰게 됐네요.”
나는 신발장 구석에 박힌 커다란 양산을 꺼내, 그에게 내보였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암막 커튼처럼, 무척이나 짙은 검은색 양산이었다.
“그나저나, 조금 떨리네요. 휠체어는 처음이라…..언제 구하신 거에요?”
그는 그 몰래 내가 준비한 새 휠체어 위에 앉아 새로운 감각에 익숙해지려는 듯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물었다.
“그냥 뭐…인터넷을 뒤지면서 구했지.”
같이 나가게 되면, 그의 목발이 불편할 것 같아 구매하기 전, 날이 새도록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가장 좋은 물건을 찾아, 그 몰래 다른 곳으로 배송시켜 숨겨둔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번 외출의 목적을 위해서 더욱 좋은 물건이 필요했다.
“불편하지는 않아?”
“네, 아주 좋아요.”
“가자, 택시는 미리 불러뒀어.”
“...잠시만요.”
도어락 문을 열고 그가 탄 휠체어를 밀려던 찰나, 그는 나를 멈춰 세웠다.
“...후….네, 이제 가죠.”
“...정말 괜찮겠어?”
“네.”
그는 한참이나 심호흡을 마치고는, 무언가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간다?”
그렇게 나와 그의 첫 외출이 시작되었다.
*
“....괜찮아…?”
“....일단은….요…”
그는 고개를 아래로 박은 뒤,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의 손은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아파트 1층에서부터 큼직한 양산을 쓴 그는, 택시에 타고 나서는 어떻게든 창문과 멀리 떨어지려 하며 내 곁에 딱 달라붙었다.
이렇게나 그가 바깥을 무서워할 줄은 몰랐는데, 이번 외출이 더욱 그를 상처 입게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도착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어느덧 속도를 줄이던 택시가 멈춰 서고, 택시 기사의 말이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카드를 꺼내 기사에게 내밀고, 그보다 먼저 내려 트렁크에 실어두었던 휠체어와 양산을 꺼냈다.
그에게 양산을 건네자, 그는 곧바로 택시의 문 바깥으로 양산을 내밀어 펼쳤다.
나는 그 즉시 그를 부축하여 간신히 휠체어에 태울 수 있었다.
“....그런데, 저희.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택시가 떠나고 내가 천천히 휠체어를 밀자, 그가 물었다.
“음…이런 건 비밀이 좋을 것 같으니까. 도착하면 알려줄게.”
“그것참 괴롭네요. 하하.”
조금 짓궂은 마음이 들어, 웃으며 말하자, 그 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휠체어를 밀며 가는 동안, 그는 양산을 꽉 잡고는 계속해서 아래만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지는 반면, 이번 외출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천천히. 천천히 휠체어를 밀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가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그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휠체어에 커다란 양산이라는 기묘한 조합 때문에 그런 걸까.
거리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인파가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신기함.
흥미.
마치 흥미로운 서커스단을 보는 것 처럼 느껴지는 그들의 시선이 역겹게 느껴졌다.
심지어, 휴대폰을 들어 우리를 향해 들이대는 사람 또한 보였다.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혹여나 그가 상처받을까 봐 그러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평범함.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우리.
무엇이 옳은 걸까.
평범하지 않은 것이 죄인 걸까.
내가 그토록 바라던 ‘평범’ 이라는 것이, 저런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휠체어를 밀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는….?”
계속해서 바닥을 바라보던 그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 말했다.
당연했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잘 아는 곳이니까.
새빨간 바닥과, 새하얀 선들.
“다 왔어.”
그 즉시 나는 휠체어를 세워 말했다.
“.....”
그는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렸던 양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이내 양산이 그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여기는, 운동장.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육상 트랙의 바로 위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