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chapter 6:태풍의 눈 중심에서.(10)
* * *
그저, 목소리만이 떠올랐다.
50일 밤만 지내고 나면 돌아오겠다는 그 목소리는, 100일 지나고, 200일이 지나고 나서는 그 목소리마저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당시 5살이었던 나는 어렸지만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이 나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이곳, 보육원에는 나와 같은 처지인 아이들 뿐이었으니까.
우울하고, 슬펐다.
버려졌다는 그 사실이, 그때는 정말로 사무치도록 슬펐다.
나는 그럴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게 빛나는 하늘과 두둥실 떠오르는 구름을 보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으니까.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하늘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래서, 나는 달렸다.
하늘을 바라보며 내리 달렸다.
뺨에서 느껴지는 바람이 간질거렸다.
다리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내리쬐는 태양과 턱까지 차오르는 숨이, 심장을 뛰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달렸다.
달리다 보면, 슬픈 기억을 잊을 수 있었다.
달리다 보면, 내가 나로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나는 보육원에서 가장 빠른 아이가 되었다.
*
일단 보육원에서 자란다고 해도, 일정 나이가 되다 보니 학교에 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가는 보육원이 아닌 곳.
처음으로 보는 평범한 아이들.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순수라는 것은, 말 그대로 악이었다.
자신이 느끼는 점을, 필터 한 장 거치지 않고 그대로 표출하던 나이.
그것이 순수였다.
아이들은 나를 비롯한 보육원 아이들을 차별하고, 괴롭혔다.
어째서 그랬을까?
그때의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저, 모두가 같은 사람일 뿐인데, 어째서 이러는 걸까.
하지만 그 아이들은 자신과 우리가 다르다고 여겼다.
쉬는 시간이 되면 매일같이 부모들이 버린 고아라며 놀렸다.
원장님이 사 주신 가방은 낙서투성이에 매일같이 쓰레기통에 굴러다녔다.
나는 괜히 원장님이 우리를 걱정하는 것이 싫어서, 매일같이 수돗가에 꿇어앉아, 낡은 걸레로 박박 닦았다.
축축하게 젖은 가방은, 그저 수돗가의 차가운 수돗물로 젖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흘린 눈물 때문에 그런 걸까, 마르기까지 한참이나 걸렸기에 나는 언제나 해가 질 때쯤이 돼야 보육원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햇볕에 가방을 말리는 동안, 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매일같이 달렸다.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보육원보다 넓은 운동장은, 내가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그저 학교를 마치고 달리는 것에만 푹 빠져있던 나에게, 그 순간이 찾아왔다.
운동회.
모든 반 아이들이 들끓었다.
누구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잘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누구는 상품이 가지고 싶어서.
누구는 그저, 이 상황 자체가 두근거려서.
그리고 나는 제일 후자였다.
나에게는 부모도, 상품도 필요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갈고닦은 나만이 가진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달리기 후보에 스스로 손을 들었다.
아이들의 야유가 쏟아져도, 나는 꿋꿋이 버텼다.
특히, 반에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리더십 있는 아이 또한 후보에 나왔기 때문에, 더욱 격렬하게 아이들은 나를 비난했다.
그런 분위기를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선생님은 나와 그 아이를 운동장으로 불러, 승부를 겨루게 했다.
아이들은 그 아이의 승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에게 보내는 기대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묵묵하게 낡은 운동화의 끈을 다시금 묶었다.
그렇게 승부를 알리는 선생님의 신호가 들렸고, 나와 그 아이는 힘차게 달려 나갔다.
그 결과는?
나의 압승이었다.
아이들은 눈앞에 벌어진 결과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나와 승부를 가린 그 아이는,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리쳤지만, 선생님은 나를 달리기 선수로 결정하셨다.
그 뒤로, 나는 운동회가 열릴 때까지, 매일 반복하던 달리기양을 조금 늘렸다.
그렇게,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학부모가 몰려왔지만, 당연하게도 나를 보러 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원장님께 오늘 내가 달리기 선수로 나간다고 하자, 기뻐하며 평소보다 조금 비싼 재료로 만든 도시락만이 나만을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달리기 트랙의 앞에 섰다.
가슴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수많은 이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하늘을 바라보자 어느새 부담감은 사라진 상태였다.
늘 푸르게 빛나는 하늘.
나는 오직 그 하늘을 바라보며, 달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도착지점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나보다 뒤처진 아이들이 한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1등.
나는 그날 달리기 대회에서 1등을 했다.
비록 그저 학교 운동회에서 이룬 값싼 승리지만,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선생님께서 장하다며 칭찬해주신다.
아아.
그렇구나.
내가 달리면, 나는 인정받을 수 있구나.
그때부터 나는 달리기를 그저 좋아하는 것이 아닌, 꿈이 되었다.
*
시간은 흘러간다.
나이를 먹고, 몸이 자라고, 초등학교에서 중학생으로 올라가는 등,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달리기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지역 마라톤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중학교 선생님이 진지하게 진로를 육상으로 잡아 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삶이 점점 바뀌어 간다.
허름하던 보육원에서 모두와 비좁은 방에서 낑겨서 자는 것이 아닌, 나를 눈여겨보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위해 준비한 방에서 잔다.
낡아빠져 덜렁거리는 운동화가 아닌, 메이커가 그려진 운동화를 신는다.
모든 것들이 달라지지만, 푸르게 빛나는 하늘과 달리기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
어느새 나는, 촉망받는 육상선수 후보가 되었다.
지역 대회는 물론이고, 전국 대회에서도 상당히 큰 결과를 얻었다.
코치님은 언제나 나를 칭찬하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방에 트로피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
평범한 아이들에게 놀림당하며 눈물을 훔치던 아이.
더 이상 그 시절의 내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의 기대와 촉망을 받고 있다.
달리기가 나를 바꾸어 주었다.
나에게는 오직, 달리기가 전부였다.
그리고, 나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 대회에서 잘한다면, 정말로 국가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소식에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언제나 신세를 지는 운동화를 정비하고, 근육 트레이닝을 마쳤다.
보통 때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운동장에서, 수많은 사람의 중심에 내가 있다.
트랙에 서서, 총의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언제나처럼 밝게 빛나고, 하늘은 푸르게 보였다.
그렇게 신호가 울리고, 출발하려는 그 순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스럽다.
이미 나와 같이 서 있던 선수들은 저 발치까지 멀어졌는데, 내 다리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 코치가 곧바로 나에게 다가왔지만, 나는 그저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달리기로 바뀌었던 내 삶은, 다시금 바뀌게 되었다.
최악으로.
*
루게릭병.
정확히는, 근위축성측상경화증.
그게 내 병명이란다.
의사가 내 병명을 늘어놓는 동안, 나는 그저 멍하게 위를 바라보았다.
사방이 꽉 막힌 진료실의 공중에는, 그저 작은 무늬와 밝게 빛나는 형광등의 빛이 보일 뿐이었다.
그 병에 걸리면, 말 그대로 근육이 죽어버린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 내 왼 다리의 상태.
지금은 그저 왼 다리지만, 언젠가 이 상태가 전신으로 퍼져, 스스로 호흡도 못 하고 그대로 죽어버린다. 라고 했지만, 믿겨지지가 않는다.
달리기는커녕, 나는 그렇게 시한부가 되었다.
익숙하지 않아 어색한 목발을 짚고, 코치가 부축해주는 상태로 병원을 나왔다.
맑은 하늘이 보인다.
나는 이렇게 변했지만, 하늘은 변함이 없다.
“...현수? 괜찮아?”
아.
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나는 기겁을 하며 하늘을 피해 병원 입구로 발을 움직였다.
익숙지 않은 목발 때문에, 나는 다리를 접질려 그대로 쓰러졌다.
“현수! 차현수!”
“으아악!!!!!”
쓸모없는 목발을 저 멀리 집어 던지고, 그대로 팔을 움직여 기어갔다.
그 이후로, 나는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망가졌는데, 하늘은 변함없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
그 뒤로, 나는 내 방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이불을 덮었다.
모든 창문에 커튼을 달아, 조금의 빛도 없어 매우 어두웠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내 꿈.
내 삶.
모든 것이 사라졌다.
하늘.
어릴 적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
커서는 내가 꿈을 꿀 수 있게 된 계기.
그리고 지금은, 원망스러우면서도 그리운 하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왼 다리를 절뚝거리며 탁자에 앉았다.
근처 책장에 꽂힌 노트와 펜을 들었다.
그리고, 그저 그림을 그렸다.
하늘을 그렸다.
푸르게 빛나는 하늘을.
너무나도 그리운, 그 하늘을 그렸다.
몇 장.
몇십 장.
몇백 장.
그렇게 그리다 보니, 노트가 떨어졌다.
그러면 새로운 노트를 꺼내 계속해서 그렸다.
아.
하늘이 그립다.
*
정신을 차리자, 나는 병원에 있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그림을 그려서 과로로 기절했다는 모양이었다.
내 상태를 보기 위해 들렀던 코치가 곧바로 신고해서, 병원으로 호송되었다고 말했다.
그저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자, 코치가 말했다.
그림을 그려 볼 생각이 있냐고.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코치는 움직이지 못하고, 밖을 극도로 혐오하는 나를 위해, 스케치북과 물감, 이젤, 연필, 붓 등.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 도구들을 가지고 계속해서 하늘을 그렸다.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은 없었다.
그저, 그때 보았던 하늘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하늘을 그리다 보니, 어느 회사에서 내 그림을 사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림을 팔고, 돈을 벌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 사람들은 내 그림을 흥미롭게 보았다.
내 그림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고 전문가는 말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화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모든 것이 알 바 아니었다.
모은 돈으로 한적한 아파트에 집을 사서, 온종일 박혀서 그림을 그렸다.
하루하루가 똑같았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돈이 넘쳐나게 되었다.
난 그 돈으로 그냥 재미있어 보이는 물건을 마구 사거나, 그림을 그렸다.
그때 산 커피머신이 의외로 먹을 만해서, 커피도 공부했다.
점점 내 입지는 높아져만 가고, 사람들은 내 그림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전부 소용없었다.
이상하게 몇 년 살지 못한다고 했던 루게릭 병에 걸린 나였지만, 왼 다리에 생긴 이후로 몇 년이 지나도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나도 지독했다.
차라리, 금세 금세 전이해서 전신을 움직이지 못했다면.
그렇게 죽어버린다면 좋았을걸.
그저, 다리만 쓸모없이 만들어 버렸다.
나는, 병 때문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의 약함을 이기지 못하고,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날.
내 그림을 담당하던 매니저가 이번 그림에는 사람을 한 번 넣어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나 자신을 상상했지만, 이내 곧바로 포기했다.
실제로는 전혀 할 수 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나를 그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현실을 날카롭게 갈아 나 스스로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애초에 사람을 그려본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그려봐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그렇게 만난 그녀.
미영이 지금 내 앞에 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