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chapter 6:태풍의 눈 중심에서.(8)
* * *
“상당하네….”
알바도 그만두고, 현수네 집에서 뒹굴거리는 나날을 보냈다.
솔직히,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일 하지 않고 돈을 버는 불로소득을 그토록 바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곧 새로운 일을 찾거나, 목표를 찾거나 해야겠지만,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기로 정했다.
그래도, 집안일은 도와야 최소한의 선을 지킨다고 생각한 나는 현수의 방 내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하….”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현수는 그저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의 방은, 깔끔하게 정리된 외부와는 달리 상당히 어질러져 있었다.
정확히는, 쓰레기나 닦지 않은 먼지가 폴폴거리는 것이 아닌,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아슬아슬하게 방 안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러 물건들을 수집하다 보니….제 방이 꽉 차버렸네요…”
현수의 조금 특이한 취향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처음 그와 만나고 느끼던 거지만, 현수의 취미는 특이한 물건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죄다 특이한 건지, 아니면 그저 현수가 조금 특출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이게 뭐야….고양이 모양 항아리…? 광대분장 가면? 히어로 변신 벨트에….불상…? 이건 뭐야?”
“아…그건 그….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내부를 저어주는 머그컵…이네요…”
“....이거 쓴 적은 있어…?”
“...아뇨…”
그의 방 내부에는 말 그대로 인터넷에서 웃긴 장난을 칠 때나 보였던 장난감들부터 시작해서,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 물건들을 넘어, 경외심이 들 정도로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겠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번 싹 정리해야 하겠는데?”
이대로라면 현수가 이런 물건들 사이에 파묻혀버릴 것 같았던 나는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음….그러고 보니, 바로 옆방에 보관하는 건 어떨까요? 거긴 지금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죽어도 버리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 구나?”
“예?! 이걸 어떻게 버려요!”
그는 버린다는 말에 기겁하며 마치 소중한 보물(그에게는 진심으로)처럼 장신구들을 품에 꼭 껴안았다.
“....사용하지도 않잖아.”
“ㄱ, 그건….그렇긴 하지만…”
“그래~ 일단 거기에 옮겨두자~”
이 모습으로 변한 이후,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 본 적 없는 나와, 특이하다 싶으면 일단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고 보는 현수의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
“우와….일단 여기를 먼저 청소해야 하겠는걸?”
현수가 말한 대로, 사용하지 않은 지 꽤나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문을 열자마자 먼지가 폴폴 피어올랐다.
대충 살펴보니, 장롱 하나와 서랍장 하나로 이루어진, 심플한 방이었다.
크기는 지금 내가 지내는 방과 비슷한 크기? 정도였다.
“음…! 이 장롱, 상당히 크네? 여기 뭐 들어있어?”
“글세요….저도 이 방에 들어온 지 정말 오랜만이라서….아마 죄다 쓸모없는 것들 뿐일 거예요.”
“그럼 저 장롱을 비우고, 거기에다가 넣자.”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그 전에, 청소기를 한 번 돌려야겠어요. 아무리 창고라도 바닥에 먼지가 엄청 심하게 가라앉았네요.”
그의 말대로, 슬쩍 방 안으로 발을 내딛었더니, 어느새 양말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그래? 그럼 내가 가져올게.”
“괜찮아요. 제가 다녀올게요.”
“뭐….알았어.”
다리도 성치 않은 녀석이 굳이 내가 가도 되는 걸 자신이 나선다고 할 때마다 살짝 죄책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기운차게 대답하는 현수의 미소를 보면 어쩔 수 없나 싶어진다.
“흠….그런데, 저 안에는 뭐가 들어있지?”
현수가 청소기를 가지러 간 사이, 나는 어차피 양말도 더러워졌겠다. 성큼성큼 방 내부로 걸어가, 서랍장에게 다가갔다.
미리 정리해야 할 물건이니, 먼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사실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한 것도 한 가닥 있었다.
드르륵.
나무로 된 서랍장은 다행히 잘 열려, 내용물을 볼 수 있었다.
“상자?”
그 서랍장의 안에는, 그 안을 전부 채울 만큼, 커다란 종이상자가 들어 있었다.
한번 상자 자체를 꺼내 보려고 했으나, 무엇이 들어있는지 두 손을 사용해 들어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냥 서랍장 안에 들어있는 상자 그대로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운동화?”
맨 처음으로 손에 잡히는 것은 바로,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의 로고가 그려진 붉은 운동화였다.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밑창 부분이 다 닳아서 너덜너덜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응…? 운동화가 뭐 이리 많아?”
처음으로 집었던 운동화를 제외하고 모두 밖으로 꺼내 보자, 상당히 많은 운동화들이 상자 내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죄다 너덜너덜한 운동화였다.
못쓰게 됐으면 버려야 하는데, 왜 여기다 모아 둔 거지?
잠깐.
애초에 운동화…?
현수는….달리는 운동을 하질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물건인가?
수많은 운동화를 발견한 나는 이 신발들 주인의 정체를 알기 위해, 상자의 내부 더 깊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트로피네? 제 16회 국제 청소년 마라톤 대회….우승…..오….대박.”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색이 바래긴 했지만, 여전히 황금빛으로 빛을 발하는 트로피였다.
과연, 이 상을 탄 사람은 누구지?
“보자…수상…수상자는…..차…현..수….현수?”
트로피의 수상자는, 현수였다.
“뭐? 어…어라?....부..분명 그….장애인 올림픽 같은 것도 아닌데?”
한쪽 다리를 움직이지 못해 언제나 목발을 짚는 현수가 마라톤 대회 우승자…?
갑작스러운 사실에 나는 잠시 혼란을 느꼈다.
“잠깐만…그러고 보니까….나는….걔가 어째서 다리를 못 움직이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
그랬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언급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따뜻한 커피를 내려주니까.
그냥 다리가 원래 불편했나 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손에 들린 트로피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는 한층 가벼워진 상자를 직접 밖으로 꺼내, 내용물을 천천히 꺼내 보기 시작했다.
"제15회 준우승…..전국 중학교 마라톤 대회 금상…..세상에…”
그냥, 단순한 상 하나가 아니었다.
트로피와 상장이 상자 내부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웬만한 대회는 거의 다 쓸어모았다는 소리였다.
나는, 그가 마라톤을 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대단하네…!”
그렇게 넋 놓고 차례대로 세워진 트로피를 바라보던 그 순간.
“...미영…씨?”
“아, 왔어?”
“그….그거….어디에서 났어요….?”
쿠당탕.
청소기가 바닥에 떨어지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었다.
“어…? 그….저 서랍장 안에서….”
흔들리는 동공.
떨리는 목소리.
주체하지 못하는 몸.
그는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이라도 본 것처럼 반응을 보였다.
“그….그나저나 대단하네…! 나, 네가 마라톤을 했다는 걸 전혀 몰랐어! 이렇게나 상을 많이 받았네에….”
그런 현수의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나는, 당황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죄송..하지만, 잠시. 나가주실래요?”
“어…?”
탁. 탁.
목발을 짚은 그가 천천히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에는 혼란과 공포가 일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우당탕!
“괘…괜찮아?”
목발을 짚는 속도를 높이며 다가오던 그는 결국 목발을 헛짚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깜짝 놀란 내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보지 마!!!”
“아윽…”
바닥을 기며 놓여진 트로피를 팔뚝으로 강하게 후려쳤다.
벽 쪽으로 날아간 트로피 중 하나는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아….그…….미….미안….해….내….내가아….”
그 행동에 화들짝 놀란 나는 엉덩방아를 찍으며 그를 향해 중얼거렸다.
당황스럽다.
처음으로 보이는 그의 폭력적인 행동에, 충격을 받은 나는 나도 모르게 울먹거리며 잘못을 빌었다.
내가 괜히 저 상자를 열어서, 그가 화가 난 것 같았다.
“......가요.”
“....응?”
“나가주세요. 제발.”
“아.”
바닥에 엎어진 상태로 그는 말했다.
“아…으…응….”
그렇게 나는 몇 번이고 허우적거린 끝에,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가주세요.
현관문 앞에 있는 슬리퍼를 구겨신은 나는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열었다.
제발.
철컥하고 현관문이 닫히자, 나는 그대로 비상계단을 통해 무작정 달리듯이 계단을 내리달렸다.
보지 마!!!
충혈된 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고함소리.
떨리는 전신.
“으악!!”
급하게 계단을 타고 내려가던 나는 발을 삐끗하여 그대로 계단 밑으로 넘어졌다.
다행히 계단을 거의 다 내려온 상태였고, 즉시 몸을 둥글게 말아서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친 옆구리가 쓰라렸다.
“아으…”
간신히 고개를 들어 고통에 찬 신음을 내니,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프다.
이 아픔이, 금방의 충격 때문에 아픈 것이었다면 좋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