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69화 (69/91)

〈 69화 〉 chapter 6:태풍의 눈 중심에서.(7)

* * *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미영 씨."

"네. 점장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며칠 뒤, 아르바이트 직원실.

나는 점장과 면담 후, 일을 그만두기로 정했다.

열심히 고민해 봤지만 괴롭힘은 멈출 생각이 없었고, 더 이상 이 일을 한다고 해도 고통스러울 뿐이다.

굳이 이 알바를 꼭 해야 할 이유 또한 없었기에, 결정은 빠르게 났다.

그래도 나는 직접 점장과 눈을 마주치고 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일단 오늘까지 일하신 일당은 월급날에 맞추어서 계좌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조금 아쉽기는 하네요….미영 씨 처럼 일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적응도 빠르고 일 처리도 좋아서, 저는 계속 미영 씨와 같이 가고 싶었거든요."

"하하….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죄송할 것까지야…"

약간 씁쓸하다는 미소를 지은 점장이 손을 내저으며 내 사과를 막아 세웠다.

그의 말처럼, 일 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점장이면서도 홀이 바쁘면 직접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일을 돕기도 하는 등. 그는 성실하고 일에 진심인 남자였다.

"혹시, 그만두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뭐…..미영 씨 탓을 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궁금증이 생겨서 말이죠."

"아….."

"곤란하시면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하….제가 좀 주책맞았네요."

그는 질문을 받은 내가 대답을 망설이는 것을 눈치를 채고는, 곧바로 괜찮다며 콧등을 매만졌다.

그만두는 이유라…

"...점장님."

"네?"

나는 그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철컥.

"무슨….?"

미세하게 열려있던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걸어 잠그는 내 모습을 본 점장은 갑작스러운 내 이상행동에 적잖아 당황한 모습이었다.

"제가 재미있는 것 좀 보여드려도 될까요?"

그래.

어차피 그만두는데 뭐.

조금 홀가분하게 생각하자고 다짐한 나는, 휴대폰의 잠금을 풀었다.

*

타악.

나는 이때까지 입어온 유니폼을 개어, 보관 락커에 넣어놓고 나왔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짧은 치마가 불편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디자인은 나쁘지 않았다.

이제 볼일도 끝났고, 집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직원실과 홀을 잇는 작은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때.

"어머, 미영 씨."

화장실에서 나오는 하란과 눈이 마주쳤다.

음. 타이밍이 참 안 좋네.

"고생하세요."

굳이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대충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그녀의 옆을 지나쳤다.

"자, 잠시만요..!"

그렇게 스쳐지나치려던 내 어깨를 그녀가 잡아 세웠다.

"그만두신다면서요? 어쩜….아무리 그래도 같이 일한 동료인데, 어떻게 말 한마디를 안 해주실 수 있어요?

이런 태도면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금방 그만둘 것 같은데…..미영 씨는 사회성을 좀 길러야 할 것 같아요~"

"....."

그렇게 나를 멈춰 세운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의 의도는 그녀의 미소처럼 순수하지 않았다.

그런 하란의 태도에 나는 경멸을 넘어,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대놓고 꼬리치고 다니지 마세요? 그러다가는 정말 큰일 나요~"

꼬리?

꼬리를 치고 다녔다고? 내가?

내가 알바하면서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는 고작 한석밖에 없엇….

"아….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네?"

나도 모르게 나온 중얼거림에 하란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물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추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질투.

그녀가 나를 선동하며 괴롭힌 이유가, 고작 자기가 좋아하는 남정네랑 말 좀 나눴다. 라는 너무나도 하찮고 어이없는 이유.

"그냥…좋아하는 사람한테 감히 말도 못 걸고, 애꿎은 사람이나 괴롭히는 하란 씨 인생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말이에요."

지금까지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괴롭힘의 이유가 너무나도 하찮았기에,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뭐...뭐라고요?!"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할 지 몰랐던 건지, 아니면 감히 자신에게 대꾸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 그녀는 내 비꼼에 당황하면서도 울컥하며 소리쳤다.

"아뇨, 그냥 잊어주세요.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어차피 한석 선배는 그 쪽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던데, 헛된 생각이나 하고 김칫국이나 마시는 하란씨 모습이 너무나도 우스워서 그만…"

"이...이게 말 다했어!?"

계속되는 내 독설에 그녀는 이제는 예의 상 하던 존댓말까지 집어던지더니 화를 참지 못하고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럼, 나도 더 이상 예의를 차릴 이유가 없었다.

"어. 말 다했어 시발년아."

"ㅁ...뭐? ㅅ, 시발련? 입에 걸레를 물었나!!"

"내 입에는 몰라도 니 대갈빡에는 걸레가 꽉 차있는 거 같은데? 선배...아니 그 남자한테 박히고 싶어서 아랫입에서 침이 질질 흐르고 있잖아."

"ㅎ..허! 참!"

그녀가 멱살을 잡으며 고압적인 태도를 취해도, 고삐가 풀려버린 내 입은 쉴 새 없이 독설을 날려댔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나는 평소에는 욕을 잘 안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쉴새없이 욕을 퍼부었기에, 예전 친구들은 나를 욕쟁이라고 불렀다.

"어서 이거나 놓지? 이제는 아예 한 대 치겠다? 응?"

"너...너 진짜!"

짝.

나는 매우 하찮은 것을 본다는 눈빛으로 내 멱살을 잡은 그녀를 흘겨보자, 머리끝까지 화가 난 하란은 오른손을 펼쳐, 내 뺨을 내려쳤다.

"....진짜 쳤네?"

"너….!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살짝 머리가 핑 돌 정도의 충격이 왼쪽 뺨에 느껴지자, 손을 대니 화끈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 행위는 명백히, 싸움을 걸어왔다는 의사 표현과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받아줘야지.

[....언...니..! 아까전에 그년 표정 봤...어요?]

".....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 같지 않아?"

치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내 휴대폰에서 새어 나왔다.

[진짜 대박ㅋㅋ..ㅋ]

[그나저나 너 연기 엄청나게 잘하더라? 영화 배우 해도 되겠다!]

[제가 연기 좀 하죠~ 자연스럽게 물컵 옮기다가 슬쩍 그년 머리부터 부어버렸거든요!]

[진짜ㅋㅋㅋ 제가 옆에서 봤는데, ‘어머! 괜찮아요? 미안해요!’ 라면서 연기하는데…웃참하느라 죽는 줄ㅋㅋㅋ]

세 여성의 꺌꺌거리는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 주인 중 한 명인 하란이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의 동공이 커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너….너…이걸…어떻게….!”

“내가 너무 억울해서, 왜 날 괴롭히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며칠 전에 몰래 직원실에 몰래 녹음 어플을 틀어놓고 나왔거든. 뭐, 결국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너…! 내…내놔! 지금 당장!”

그녀는 당장이라도 내가 들고 있는 휴대폰을 집어 던질 기세로 달려들었지만,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주머니 속으로 넣어버렸다.

“이…이거 범죄인 거 몰라?! 시…신고할거야!”

“아~ 신고? 그럼 경찰서에 가서. ‘제가 알바 동료를 괴롭혔는데, 그 증거를 괴롭힌 동료가 몰래 녹음했어요!’ 라고 하려고? 지금 보니 대갈빡에 걸레가 아니라 우동사리가 차 있었네?”

한참이나 휴대폰을 뺏기위해 실랑이를 벌이던 그녀는 분노로 파들파들 떨리는 입가를 열어 어처구니없는 말을 꺼내자, 나는 피식 웃으며 맞받아쳤다.

“이…! 이…!”

그렇게 잡고 있던 멱살을 내려놓은 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한지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분해할 뿐, 그 무엇하나 하지 못했다.

“어…언니…”

“...어?”

그렇게 한참이나 대치가 이루어질 때, 같은 알바 동료이자 하란과 함께 나를 괴롭히는데 일조했던 여성이 복도의 끝에서 하란을 불렀다.

“그….점장님이…잠깐 보자고…직원실로 부르셨어요…”

“저..점장님이? 지금?”

오늘 그만두는 나.

몰래 녹음해 둔 증거.

갑작스러운 점장의 호출.

세 가지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조립하던 그녀는, 한가지 답을 만들어 내었다.

“너…설마…!”

“내가 어디서 나오고 있었는지 몰라?”

그녀는 자신의 예상이 제발 틀리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저 무신경하게 엄지를 들어 올려, 뒤를 가리켰다.

내 뒤에는, 직원실이 있었다.

“어…언니…!”

“.....”

“뭐….수고 하고, 앞으로 다시는 보지 말자.”

“꺅!”

“어머, 실수.”

이제는 거의 울먹이는 수준으로 얼굴을 구기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나는, 그녀를 지나쳐,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거리는 그녀의 동료 또한 고의적으로 어깨를 밀치며 지나갔다.

“....후…”

그렇게 복도를 나와 그녀들이 보이지 않는 홀로 나오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간신히 펼쳐진 내 손은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싸움의 긴장감, 한 방 먹였다는 통쾌감과 고양감이 한껏 들어찼다.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자, 홀에서 일하던 알바생들 모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복도에서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던 소리를 전부 들었는지는 몰라도, 마찬가지로 나를 괴롭히던 여성 두세 명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급히 하란이 있는 복도로 달려갔다.

시선이 집중된 나는 지금까지 떨리는 다리를 아무렇지 않은 척, 쭉 펼쳐 당당하게 출구로 걸어갔다.

“미영?”

“....”

그렇게 출입구를 잡고 열려던 찰나, 또다시 어떤 목소리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오늘 그만둔다며…? 아쉽네…”

“그렇게 됐네요.”

그 목소리의 정체는, 한석이었다.

“그나저나, 금방 복도에서 있었던 일 말이야…괜찮아? 난 전혀 몰랐는데….그런 일이 있었다니….”

“.....”

“혹시 괜찮으면, 나중에 밥이나 한 끼 먹자. 번호 좀 알려줄래?”

그는 자신은 전혀 몰랐다는 듯이 말을 더듬으며 머쓱하게 자신의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선배.”

“응?”

“저, 선배랑 떡칠 생각 없으니까. 사양할게요.”

“....뭐?”

내가 모를 줄 알았나.

그녀의 괴롭힘이 시작된 이후로,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일이 끝난 지금에서야 밥 한 끼 먹자고 번호를 달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새끼 또한 나를 호구로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의 행동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

순진한 알바생 꼬셔보려다가, 알바녀들에게 찍히니까. 엮이면 귀찮아 지겠네~ 하고 버리고, 내가 그만두면 더 이상 그 여자들이랑 연관이 없어지니 다시 들이댄다.

진짜 역겨웠다.

남자였던 나와,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에게 몸을 팔았던 나에게는, 현석이 어떤 태도로 나에게 다가왔는지 다 보였다.

대충 한 번 따먹어볼까? 하며 다가오는 남자들.

그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 감각을 알바를 막 시작할 때쯤에도 느끼기는 했지만, 여자로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알바였고, 내 착각일 수도 있어서 일단 거리를 조금 뒀던 것이 옳았던 판단이었다.

“그럼, 선배. 아니. 이젠 선배도 아니지? 다시는 보지 말자 등신 새끼야.”

그는 내 대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충격을 받아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는 그런 그의 면전 앞에서 시원하게 욕을 내뱉어주고, 그대로 가게를 나왔다.

“후하…후련하다….”

지금까지 막혔던 속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슬퍼져 왔다.

처음으로 일했던 알바에서, 이렇게나 적응을 못 하다니.

다른 곳에서도 이런 식으로 일이 터지면 어떡하지?

나는, 제대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냥, 조용히 넘어가도 되는데.

같은, 막연한 고민과 후회 또한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가는 곳마다 이런 식이라면, 어떡하지.

그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못하는 걸까.

“.....뭐, 괜찮겠지.”

살짝 침울해진 기분을 털어내듯이, 나는 다시금 활기차게 걸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에게는, 현수.

네가 있다.

아무리 괴롭힘을 당해도.

배척당해도.

적응하지 못해도.

오직, 너만 있다면 나는 괜찮다.

너만은, 나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미영’으로써 첫 알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