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chapter 6:태풍의 눈 중심에서.(6)
* * *
[띠롱.]
밤처럼 어두웠던 방 안이 휴대폰의 빛 덕분에 눈부시게 밝아졌다.
“으음….”
눈 부신 빛에 눈을 찌푸리며 이불속에서 손을 꺼낸 나는 휘적거리며 휴대폰을 찾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미영 씨. 오늘 출근하시는 날 아닌가요?
만약 바쁜 일이 있으시면 출근하기 힘들다고 미리 연락 부탁드릴게요.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출근하지 마시고, 이런 일이 계속되면 저희는 더 이상 미영 씨를 고용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출근 때 뵐게요.]
[점장.]
“하…..”
괜히 봤다.
계속해서 찜찜하던 마음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오늘, 알바를 쨌다.
거기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자잘한 일들이 많기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힘들어…”
힘들었다.
단순히 노동의 강도 문제는 아니었다.
일이야 적응하고 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고, 최근 들어서 나 스스로도 이 정도면 꽤나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이런 알바를 해 본 적이 있었으니, 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사람과 만나는 것이 힘들다.
알바를 시작하기 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섞여서 친분도 나누고, 일도 열심히 하는 ‘평범한’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꼬인 걸까?
이제는 바보가 아니면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나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여성들에게는 직, 간접적인 괴롭힘이 이어졌고, 남성들은 그런 나를 철저히 무시하는 쪽으로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눈치채기 힘들게 교묘한 수로 나를 괴롭혔다면, 이제는 대놓고 나를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배정받은 유니폼이나 물건을 훔치거나, 망가뜨려 놓았다.
일에 대한 것에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고, 답정너 수준으로 나를 밀어붙였다.
그래도 그때는 그냥, 내가 실수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있었다.
근데, 그런 식으로 넘어가다 보니, 어느새 괴롭힘의 강도는 심해지고 말았다.
걸어갈 때 일부러 치고 지나가 놓고 모른 척 하거나.
내가 있는 곳에서 대놓고 험담을 하거나.
자신들이 배정받은 일들을 나에게 몰아주거나.
그런 괴롭힘이 늘어나다 보니. 나는 점점 지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나한테 이렇게 하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그만해줄까?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나는 이런 괴롭힘을 발견하고, 말려줄 사람을 찾았다.
그래서 찾은 사람이 바로 한석이었다.
처음 알바 할 때부터 나를 도와준 그라면, 어떻게든 나를 도와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얼마 가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는 내 괴롭힘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나와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피했지만, 이제는 그냥 의도적으로 내 말을 무시했다.
그것이 너무나도 황당하고, 어이없었다.
어떤 날에는 참다 못하고 나를 밀치던 여성을 붙잡아서 물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어째서 나를 괴롭히냐고.
거의 울먹이듯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어머 미영 씨. 무슨 소리에요? 제가 뭘 괴롭혀요?”
“아니…예전부터 자꾸 나를 의도적으로 밀치고, 제 욕하고, 제 물건도 훔쳤잖아요!”
“네?! 그게 무슨….미영 씨. 혹시 피해망상이라든지, 뭐 그런 거 있어요? 제가 미영 씨를 괴롭혀서 뭘 해요? 돈이 들어와요? 아니면 무슨 이득이라도 있나요?”
“아…아니..!”
“정신 차려요. 여긴 일하는 곳이에요. 에휴…쯧…”
허나,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며 내가 올렸던 손을 신경질적으로 쳐내며 다시금 갈 길을 갔다.
“....!”
그녀가 떠나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또 다른 알바생들.
그들은 모두 나를 흘낏 쳐다보더니, 내가 바라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자기 일에 집중했다.
“......이게 뭐야…”
그때. 내 마음속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퇴근하고 나서, 나는 집에 틀어박혔다.
일하고 싶지 않다.
아니,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무섭다.
모두들 처음에는 웃으며 나를 반겼지만, 그 속내는 전혀 달랐다.
과연,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저렇게 웃고 있으면서, 나한테는 어떻게 그리 차갑게 굴 수 있을까?
그것이 너무나도 무섭다.
사람들은 전부 가면을 쓰고 있다.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웃는 가면, 우는 가면, 화내는 가면을 필요할 때마다 갈아치우며 겉모습을 연기한다.
난 그 가면 너머의 미지가 너무나도 두려워졌다.
그게 ‘평범한’ 사람들인 걸까.
그렇다면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비정상인 걸까.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도망쳤다.
안다. 내가 한심하다는 것쯤은.
나는 언제나 도망만 다녔다.
여자가 되어서는 술과 담배로 도망쳤고.
돈을 뺏길 때는 죽음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어떠한 일이 생기면, 무작정 덮어버리고 외면했다.
그게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현실을 직시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단. 도망치고, 숨고, 덮어버리면 그나마 덜 아플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도망쳤다.
도망친다고 해 봐야 꼴사납게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이불을 뒤덮어 뒹굴거리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괜찮아.
어차피 알바잖아.
거기서 잘리면 뭐 어때.
그냥 그곳을 잊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
그래.
그냥 잊어버리자.
나는 마치 어릴 적 집에서 비밀기지를 만들던 기억처럼 이불을 뒤덮은 채로 중얼거렸다.
포근하게 데워오는 온도가,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
“어라? 미영 씨. 오늘은 출근 하지 않으시나요?”
“아….그게…오늘은 하루 쉬라고 하더라고…하하..”
뭐, 인간인 이상 계속 방안에 틀어박힐 수는 없었다.
사람인 이상, 생리현상도 있고, 담배도 피고 싶고, 배도 고프고, 뭐….
그래서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손으로 빗으며 방 밖으로 나오자, 마침 작업실에서 나오던 현수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래요? 요즘 알바가 힘들어 보이시던데, 이번 기회에 오늘 하루는 푹 쉬셔요.”
“뭐….그닥 힘들지도 않는걸 뭐…”
아니, 사실 너무 힘들어.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어때요? 괜찮은가요?”
“응. 처음 일 할 때부터 세세하게 도와준 사람도 있고, 같이 일하는 사람도 상냥해.”
그 사람은 나를 무시하고, 나는 괴롭힘 당하고 있어.
“다행이네요. 이렇게 말하면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걱정하고 있었어요.”
“내가..어…어린애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 잘하고 있으니까!”
잘하지 못해. 출근이 괴로워.
잠깐의 대화 사이에도, 거짓말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 쉬세요. 저는 마저 작업하러 들어가 볼게요.”
“아…! 그…!”
“네?”
“아….”
그렇게 대화를 마친 그가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리자, 나도 모르게 그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세요….?”
“아니…그…있지…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떤..?”
“....너는…사람을 믿어?”
나는 그를 잡아놓고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무의식적으로 이상한 질문을 내뱉었다.
“사람을…믿는다…인가요?”
“아…하하…! 조금 어처구니없지? 미안, 괜한 걸 물어봤다….”
참나. 내가 뭐라고 하는 건지.
“....그거 아시나요? 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10명 중 1명은 나를 좋아하고, 2명은 나를 싫어하고, 나머지 7명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요.”
“....그래?”
그런 내 한 마디에, 다시금 몸을 돌린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미사여구를 덧붙여서라도 저를 싫어한다고 하네요. 별 이유도 없이 말이에요.”
“.....왜? 왜 싫어하는데? 뭔가를 잘못해서?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니면 외관이?”
“글쎄요…? 사람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의 판단에 저를 싫어한다고 결정했을 수도 있죠.”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뭐야?”
“중요한 것은, 적어도 한 명은. 나를 좋아해 준다는 거에요.
2명은 나를 싫어하고, 7명은 별 관심이 없다고 해도.
단 한 사람은, 언제나 제 편이 되어준다는 걸요.”
“.....모르겠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모르니까 무서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걸.”
무섭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남을 속이고, 기만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헐뜯고, 괴롭힌다.
어째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차라리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면, 별수 없지 라며 넘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래도 저는 미영 씨를 좋아해 줄게요.”
“...뭐?”
“누군가가 미영 씨를 싫어해도, 누군가가 미영 씨에게 관심이 없어도, 저는 미영 씨의 한 사람이 될게요.
어때요? 든든한 같은 편이 반드시 있는걸요?”
“...글쎄, 잘 모르겠어.”
“그런가요?”
“뭐….언제나 신세지고 있기는 하니까…..그럴지도 몰라.”
내 편인가.
내 앞에서 무언가를 감추지 않고, 나를 좋아해 준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의 미소를 보면, 무섭고 불안하던 마음이 차츰 누그러지고 만다.
단 하나밖에 없는 내 편.
그렇게 생각하니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는 사실 언제나 이걸 원했을지도 모른다.
아. 그렇구나.
나는, 네가 전부구나.
너밖에 없구나.
지금, 이 순간, 그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어졌다.
나에게는 오직, 현수. 너만 있으면 될 것 같다.
너만이, 내 전부가 되어간다.
이상한 일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