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chapter 6:태풍의 눈 중심에서.(5)
* * *
“미영…이라고 했나? 걔, 좀 짜증 나지 않아?”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미영이요? 음…..아! 그 좀 음침해 보이는 걔요? 걔가 왜요?”
잠시 휴식실에 모여 여러 가지 잡담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같은 아르바이트생의 이름이 나오자, 그녀들은 갑자기?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 한마디를 꺼낸 사람은 바로, 손하란 이었다.
“봐봐. 이제 알바 시작한 지 한 달은 됐는데, 우리랑 말 한마디 제대로 섞으려 들지를 않잖아….우릴 무시하는 거 같아.”
“아~ 맞아요. 언니. 저도 저번에 그릇 치우는 거 도와주면서 말 좀 걸려고 했더니, 그냥 쌩~ 하고 지나치던데요? 그때 어이가 없어서….”
“맞다 맞다. 우리를 자꾸 피하더라고요….그냥 사람이랑 잘 못 어울리는 거 같던데….”
그런 하란의 의견에 같은 여성 동료들 또한 동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까지는 그냥 그런 애구나 하며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들이랑은 틈만 나면 딱 달라붙어서 이야기하던데?”
“진짜요?”
“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단번에 부서지고 말았다.
“특히, 한석 오빠랑 매일같이 옆에 붙어서 꼬리 치더라~ 난 진짜 놀랐다니까?”
“와…난 그렇게 안 봤는데….”
“아…그래도 얼굴은 기가 막히게 보네요..”
그녀들은 특히 한석과 엮인다는 사실에 어이없어하며 슬며시 격분했다.
키 크고, 얼굴 잘생겼고, 누구에게나 상냥한 모습을 보여주던 한석이었기에, 그의 속내와는 관계없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혹시나 자신과 잘 되지는 않을까…라고 모두들 생각할 정도의 남자였기에, 느닷없는 방해꾼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들과는 전혀 엮이지 않고 남자들이랑만 엮이려고 하는 미영의 태도는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저번 주에 화장실 가는데 마주쳤거든? 그래도 내가 선심 쓰듯이 이야기를 건넸는데….그냥 어깨를 밀치면서 지나치더라고. 와…..”
“진짜요? 나 걔 그렇게 안 봤는데….완전 쌍년이네…”
“언니는 괜찮아요?”
하란은 자신의 왼 어깨를 가볍게 주무르며 말하자, 그녀들은 그런 하린을 걱정하며 미영의 욕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미영이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도 했고, 전혀 부딪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란에게 진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제 내 편이 생겼다는 사실.
그것만이 중요했다.
“열 받더라고….”
하란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들 몰래 삐뚜름하게 입가를 끌어올렸다.
*
“....어라?”
이상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나에게 할당된 락커를 열었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스타킹 올이 다 나가있네….”
여기 와서 처음으로 입어보는 스타킹의 겉 부분이 구멍이 나고, 올이 나가 있었다.
저번에 출근했을 때, 막 새로 받은 스타킹이었기에, 바로 버리기는 아까워서 락커에 넣어 놓았었다.
“........쩝. 락커 어디에 걸려서 찢어졌나…?”
아깝기는 하지만 별수 없지.
나는 걸레짝이 된 스타킹을 휴지통에 버리고, 새로운 스타킹을 신기기 위해 락커를 뒤적거렸다.
그런데.
“...어? 왜 하나도 없지…?”
분명히, 점장에게 새로 받아두었던 여분의 스타킹이 보이지 않았다.
또 내가 대충 쑤셔 박아서 안 보이는 걸 줄 알고 락커를 거의 뒤엎어가며 찾았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또 내가 어디에 놔둔 거야…!”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뒤적거렸지만, 결국 나오지 않았다.
“아오….별 수 없지…일단 편의점에 가서 대충 사와야 하겠다.”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한 나는, 대충 지갑을 챙겨 들고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오늘은 버스가 일찍 와서 조금 이르게 출근했기 때문에, 그 정도 시간은 여유로웠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실수했거나, 까먹었던 건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
쨍그랑.
새하얀 도기 접시가 내 눈앞에서 아주 천천히 추락했다.
이윽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접시가 바닥에 부딪히자, 곧바로 원래의 형체를 잃어버리면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아….”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은 나는 급하게 일어나 보았지만, 이미 부서진 유리의 파편이 바닥에 널리 퍼져있었다.
“어머, 괜찮아요?”
그렇게 사고를 쳤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빈 접시를 옮기며 걸어가던 나와 부딪혔던 그녀가 말했다.
“ㄴ, 네에…”
“그러니까 조심 좀 하지…앞 좀 제대로 살펴줘요. 일단 유리가 있으면 위험하니까 어서 치워주세요.”
“...죄송…합니다…”
뭐지?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히 나는 접시를 들고 가는 사이, 주변도 신경 쓰면서 조심히 옮기고 있었다.
막 일을 시작했을 때도 한 번 접시를 깼던 전적이 있었던 나였기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내 사각에서 튀어나온 그녀가 내 어깨와 부딪히며 접시가 깨어진 것이다.
아무리 내가 당사자라고 해도, 객관적으로 보면 사과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사과를 하는 걸까.
“뭐 해요? 이거 그대로 놔둘 거에요? 손님들이 다니다가 다치면 어쩔 거에요?”
“죄…죄송합니다…!”
“흥…”
하지만 계속해서 나를 다그치는 그녀의 말에, 나는 반박도 못 하며 계속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래.
나보다 여기서 오래 일했으니까, 내가 잘못한 게 맞겠지.
나는 허리를 숙여, 우선 커다란 파편들 먼저 치우기 시작했다.
“..아얏…! 쓰읍….!”
그렇게 파편을 줍던 도중, 손가락 끝에서 고통이 느껴져 화들짝 손을 빼내어 내자, 검지의 끝 부분에 새빨간 핏방울이 맺혔다.
“...아파라…”
나는 다친 손가락을 입에 넣으며 나머지 큰 파편들을 주웠다.
하지만, 미처 숨기지 못한 핏방울이 흰 접시 파편에 붉게 물들었다.
*
대충 반창고를 붙이고, 나는 계속해서 일을 이어 나갔다.
큰 접시 파편들은 따로 종이에 싸 두고, 작은 파편들은 빗자루로 쓸어내어 깔끔하게 치워냈다.
“다 치웠어요? 깔끔하게 안 치우면 손님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시 한번 확인하세요.”
쓰레받기에 쓸어낸 접시 파편들을 쓰레기통에 쓸어내자, 나와 부딪힌 여성이 아닌 다른 알바생이 나를 거의 떠밀듯이 다시금 그곳으로 떠밀었다.
그렇게 먼지 한 톨 없는 바닥을 몇 번이고 다시금 쓸어내야 했다.
“미영 씨. 저희 바쁜 거 안 보여요? 지금 거기에 그렇게까지 시간을 쏟아야 해요?”
간신히 청소를 끝내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도로 돌려놓으러 돌아가자 나와 부딪혔던 그녀가 나를 노려보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누구는 요령 부릴 줄 몰라서 이러고 있어요? 다 같이 바쁜데 미영 씨 혼자서 그렇게 빠지면, 남은 우리가 더 고생해야 하는 거 알아요 몰라요?”
“그….금방 다른 선배님이 손님들이 다칠 수 있다고 꼼꼼하게 치우라고 하셔서…”
“변명은 됐고, 어서 이거부터 7번 테이블에 가져다주세요.”
“...네.”
“.....쯧. 참 편하게 일하네~”
“............”
나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요리가 담긴 접시를 넘기고 등을 돌린 그녀의 중얼거림이 어느새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혔다.
“....나 진짜 뭐하냐….등신….”
그녀가 무심코 던진 중얼거림에 상처받아도, 나는 나 자신을 자책하며 마음을 되잡았다.
다 내 실수니까.
바쁜데 괜히 접시를 깨뜨려서 일하는 데 방해가 됐으니까 신경이 날카로운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일해서,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면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허리를 곧게 폈고, 마비되어가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 미소를 지었다.
원래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니까.
내가 더 잘하면, 될 거야.
*
“아, 선배님.”
“미영~ 사고 쳤구나? 겁나 혼나던데…”
“하하…다 제 실수죠 뭐…”
어느새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조금 여유가 생긴 홀에서 마주친 현석과 아까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아, 형님! 그거 힘드시죠? 도와드릴게요!”
“어! 고맙다!”
“고마우시면 나중에 한 까치 주시죠.”
“에라이 양심도 없는 놈!”
“아….”
내 잘못이기는 하지만, 조금 억울했던 감정을 그에게 털어놓으려 하자, 그는 옆쪽으로 지나가던 알바생을 바라보더니, 내 말을 끊어버리고 그에게 달려가 같이 짐을 들어주며 웃음꽃을 피웠다.
이어지던 대화가 갑자기 끊어져 버린 것에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무어라 따질 수도 없었다.
현석은 성실하고, 착하니까.
그래서 그를 도와준 거겠지.
“....나도 일해야지.”
잠시 뻘쭘하게 그 자리에서 계속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발을 옮겼다.
왠지 오늘 따라 발걸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
“그러고 보니. 아까 너랑 이야기하던 쟤, 여자애들한테 찍힌 거 같더라.”
현석과 함께 식품 창고에 상자를 쌓던 그가 현석에게 말했다.
“예, 그런 거 같더라고요.”
그 사실쯤은, 그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현석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오늘의 행적이나 여자들이 미영에게 구는 태도만 봐도, 그녀들에게 미영이는 달갑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들과 많이 엮여보았던 현석이기에, 여자들이 한번 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집요하게 괴롭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 애, 아는 사람이 너밖에 없던데? 나도 딱히 말도 안 걸어봤어.”
그는 살짝 측은하다는 듯이 현석에게 말했다.
“음….뭐, 나이도 있는데 설마 그러겠어요? 알아서 잘하겠죠.”
귀찮네.
현석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지만, 그의 속내는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걔랑 떡 한번 치자고 여기 여자애들이랑 척지기에는 좀 그런데….뭐, 포기해야겠다.’
“그것보다도 담배나 한 대 피우시러 가시죠. 형님.”
“그럴까?”
뭐. 미영 말고도 여자는 많고, 그만큼 미영이 간절하지는 않았던 현석은 깔끔하게 미영이와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미영은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