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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66화 (66/91)

〈 66화 〉 chapter 6:태풍의 눈 중심에서.(4)

* * *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커피를 홀짝이던 나는 시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늘 아르바이트 가시는 날이었죠?”

“으응…..아. 일하기 귀찮아….”

그런 나와 같이 커피를 즐기던 현수가 묻자, 나는 칠칠맞게 탁자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일하는 것은 너무나도 귀찮다.

첫날의 두근거림도 익숙해지다 보면 밍숭맹숭해질 뿐.

역시 일 안 하고 놀고먹는 불로소득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래도 저는 요즘 미영 씨 얼굴이 밝아져서 좋아요.”

“...그래?”

그런 내 심정도 모르면서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슬슬 다녀올게.”

나는 다 마신 커피잔을 싱크대에 내려놓으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철컥. 하며 집을 나오자, 아직 아파트 밖으로 나오지 않았음에도 쌀쌀한 공기가 뺨을 간질거렸다.

곧 영하로 온도가 떨어진다고 하니, 겨울용 옷도 사야 할 것 같다.

“자…일하러 가즈아…”

가볍게 어깨를 풀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

알바를 시작한 지 한 달 째.

“미영 씨. 이거 24번 테이블이요”

“네~”

“미영 씨. 4번 테이블 주문 좀 받아주세요~”

“네에~”

지금까지 알바를 하면서 우여곡절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슬슬 일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주문도 제대로 못 받고, 메뉴도 다 못 외우는 데다가 손님들의 주문을 받을 때 말을 떠듬거리고는 했지만.

“주문하신 볼로냐 스파게티입니다~”

지금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한결 쉽게 일할 수 있었다.

“오~ 미영이! 이제 나 없어도 잘하네?”

“그럼요. 저도 이젠 한 사람분은 할 수 있는걸요.”

손님들이 떠난 자리의 빈 그릇을 치우고 있자, 어느새 한석이 다가와 엄지를 척 올리며 말했다.

그런 그에게 나 또한 엄지를 올리며 맞대응해 주었다.

지난 한 달 동안, 한석에게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내가 외워야 할 것이나 해야 하는 일들, 실수했을 때 바로잡아주거나 도와주는 등.

사수인 한석이 든든하게 받쳐주었기에, 빠르게 일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드디어 오늘이 첫 월급날이네?”

“그렇네요. 시간 참 빠르게 흘러요.”

오늘이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자, 월급날이었다.

“월급으로 뭐 할 거야?”

“음…글쎄요…? 한석 선배는요?”

“나는 일단 절반은 저축하고, 절반은 뭐. 노는 데 쓸 거 같은데?”

“큭큭..”

월급을 어디에 쓸 거냐는 물음에 한석은 소주잔을 들이키는 손동작을 보이며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이젠 선배라고 안 불러도 돼. 딱딱하잖아. 오빠라고 불러.”

“...저한테는 이게 편해서요. 하하…”

“그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그는 조금 섭섭하다는 듯이 호칭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깔끔하게 거절했다.

아직 오빠라는 호칭이 익숙하지도 않은 데다가. 그가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 같은 명칭 하나 가지고 뭐 그리 가까워 지겠냐마는, 그냥 그랬다.

“이크, 나도 이제 다시 일하러 간다~ 나중에 보자~”

“네에~”

가볍게 대화를 마친 그는 다시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급히 달려 나갔다.

“후….나도 일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금 빈 접시를 옮겼다.

*

“휴~ 살 것 같다.”

나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중얼거렸다.

여자가 된 이후로 남자와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소변을 참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론상으론 남자가 여자보다 요도가 길어서 참는 것이 유리하다고는 하는데, 그 이론처럼 남자 시절 때 기억대로 소변을 참았다가 큰일이 났던,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얼떨결에 떠올린 나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일하던 도중에 잠시 화장실에 들렀던 거였기에, 나는 서둘러 화장실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때.

“아…미영 씨 계셨네요?”

“아…안녕하세요…”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여성과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이름은….아마 손하란…이였나? 아마 그랬을 것이다.

갸름한 턱선과 자연스러우면서 세련된 화장을 한 그녀였기에, 첫날에도 그녀의 얼굴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미영 씨, 오늘이 한 달째죠? 일은 할 만해요?”

“ㄴ, 네에….괜찮아요…”

“저도 처음에는 일에 잘 적응도 못하고 그랬어요. 미영 씨 정도면 그때 저보다 훨씬 잘하는데요?”

“그런가요…?”

“.........”

“.........”

단순한 몇 마디의 대화를 끝으로,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ㅈ, 저는 이제 다시 홀로 돌아가 볼게요.”

말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던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그녀를 지나쳐 곧바로 홀로 향했다.

아직 이 알바에서 말을 튼 것은 한석밖에 없었고, 여자와 대화하는 것이 아직 어색했던 나였기에 거의 도망치듯이 나와버렸다.

“.....쯧.”

그래서 그런가, 그녀가 나를 보며 중얼거린 그 말을. 나는 듣지 못했다.

*

“자! 오늘도 다들 고생 많았고~ 오늘 월급날이지? 이미 너희들 계좌에 월급 보내놨으니 이상 있으면 연락해! 그럼, 다음 주에 보자~”

“““네에~! 점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다.

모두들 가볍게 점장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삼삼오오 모여 퇴근하기 시작했다.

“월급….어서 확인해 봐야지…”

나는 새로 개통했던 내 체크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쥐며, 가게를 나왔다.

그때.

“미영!”

“어, 선배?”

어서 ATM기로 향하려던 나를 불러세운 것은 한석이었다.

“알바 끝났는데 시간 있어?”

“그건…..왜요?”

“월급도 나온 김에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려는데, 너도 올래?”

그 이유는 바로, 알바 뒤풀이 술자리에 나를 초대하는 것이었다.

술자리, 인가.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일이 있어서….죄송해요.”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뭐, 별수 없지. 그럼 다음 주 보자~”

“네~ 다음 주 봬요.”

그런 내 거절이 아쉽다는 듯이 머리를 긁던 그는 작별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 걸어 나갔다.

술.

그동안 매일같이 먹었고, 지겹도록 마셨던 술.

나는 그 당시에는 술을 마시는 것이 하루의 낙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술에 빠져 사는 것도 그렇고, 애초에 내 돈을 날렸던 그 사건의 시작점도 술이었기 때문에, 나는 술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남자들과 술을 마시는 것도 거부감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 그런 자리에 권유해 준 것이 고맙기는 했지만, 나는 거절해야만 했다.

“.....월급 받은 걸로 맛있는 거라도 사 갈까?”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현수와 같이 먹을 음식 고민하며, 나 또한 그처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너도 까였냐?”

안주로 나온 음식을 와작와작 씹던 남성이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라면 몰라도, 한석을. 너는 걔랑 대화도 잘하고 사이도 좋아 보이더만.”

그의 옆자리에 앉은 남성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며 물었다.

“...푸하!.....그러게…철벽을 존나게 단단하게 새우니까, 뭘 비빌 틈이 없던데.”

맥주잔에 있던 맥주를 벌컥벌컥 비워내던 한석은 머리를 박박 긁으며 중얼거렸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일도 잘 알려주고, 담배도 같이 피우고, 흐름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중요한 포인트에서는 너무 단단하게 철벽을 세웠다.

“남친 있는 거 아냐? 그러니까 철벽 치지.”

“남친은 없는 거 같던데….저번에 넌지시 떠보니까 없다고 하더라고.”

“니 와꾸가 막히는 날이 오네. 병신 꼴 좋다. 큭큭…그러니까 맨날 그 얼굴 믿고 여러 구멍 돌려먹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니가 그렇게나 공을 들일만큼 그 애…미영? 이라고 했나? 그렇게 예쁘냐? 난 잘 모르겠던데?”

“어. 그냥 거리에 돌아다니는 화장빨 년들이랑은 달라. 화장도 대충 하는 거 같은데 잡티 하나 없고, 와꾸도 평타 이상인 데다가, 맨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다녀서 그렇지, 젖통도 커.”

한석은 그렇게 대답하며 떠올렸다.

눈썹도 길고, 몸매도 좋았다.

그렇다고 거지 같은 내숭도 안 부리고, 묘한 매력이 있었다.

“꼴리잖아.”

“하…이 새끼 진짜 쓰레기라니까…”

“그러다가 천벌 받는다.”

“병신들…지들 와꾸가 안되는 거면서….”

“시발..”

“진짜 좃같네.”

한석은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있었다.

몸매도 꾸준한 운동으로 관리했고, 키도 컸다.

그렇기에 예전부터 여러 여자와 끊임없이 문란한 하루하루를 보냈고, 어떤 여자든 자신이면 쉽게 꼬실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같은 알바의 미영이라는 여자는, 그런 자신에게 순수한 호의라면 몰라도. 계속해서 중요한 순간에 밀어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필요 없어? 나 없이 너네들 끼리 여자들 꼬시고 올래?”

“어우 아니죠 형님.”

“형님 선수 아니십니까! 저희가 어리석었습니다!”

계속되는 한석의 말이 기분 나빴던 남자들이 얼굴을 구기자, 한석은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한석을 붙잡았다.

“새끼들…”

그런 모습이 우스운 한석이었다.

내가 저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감각.

스스로 구멍들 꼬실 생각도 못 하는 등신들이, 나에게 안절부절못하며 기대는 것이 의외로 쾌감이 있었다.

“자…..그럼 오늘 밤에 같이 놀 년들 좀 볼까?”

“아, 저쪽 테이블 세 명, 와꾸도 좋은데. 저긴 어때?”

“음….합격! 그럼 다녀온다? 술 시켜놔.”

“다녀오십쇼!”

한석은 피식 웃으며 그들이 말했던 오늘의 목표물이 있는 테이블로 천천히 걸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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