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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65화 (65/91)

〈 65화 〉 chapter 6:태풍의 눈 중심에서.(3)

* * *

그 일 뒤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당장에 곤란한 일은 없지만, 일단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의 인생은 길고, 어서 적응해야 했으니.

“이거…의외로 스커트가 짧아….”

스타킹을 신기는 했지만, 치마 자체를 거의 입은 적이 없어서, 괜스레 나풀거리지는 않는지 불편했다.

애초에 스타킹도 이번에 입는 것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입으면 되나?”

어찌어찌 옷을 다 입고 거울 앞에 서자, 평소의 내가 아닌,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옷이라는 것은,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모습이 확확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옷을 다 입은 나는, 직원실 문을 열어 나왔다.

“그래서….아, 저기 오시네. 크흠….오늘 부터, 새로이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김미영 씨 입니다.”

홀에서 직원들 앞에서 무어라 말하고 있던 점장은, 옷을 갈아입은 나를 발견하더니 직원들에게 나를 보이며 소개했다.

“바…반갑습니다! 김미영이라고 합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점장의 옆으로 달려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나는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

딱히 돈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모델료로 돈을 벌기도 했고, 당장 현수의 집에서 살고 있기에, 집세가 필요한 것도, 식비가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신분을 얻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현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태하게 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

문득, 예전에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나 보던 히키코모리 썰이 떠올라서 섬뜩해졌다.

이대로 산다면, 나는 계속 현수에게 얹혀서 백수 히키가 되어 인간쓰레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현수도 집에 있지만, 그는 그림을 그려 돈을 버는 입장에서 절대로 백수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사회 적응도 할 겸,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마침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레스토랑이라면 사회성도 기를 수 있을 것 같았던 나는, 곧바로 매장에 연락했다.

다음날, 직접 레스토랑으로 가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리 알바 면접이라고는 해도, 후드티나 입고 가면 그럴 것 같아, 대충 깔끔하게 보일 수 있도록 스웨터 한 벌과 청바지를 입고 면접을 보았다.

나와 면접을 본 사람은 점장이었는데, 4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성에 웃는 상이었던 그는, 내가 이상하게 말을 더듬어도 친절하고 꼼꼼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다.

*

“미영 씨는 오늘 처음이니까…..한석?”

“예.”

“그래, 한석이 한테 일을 배우면 되겠다. 미영 씨? 오늘 하루는 일단 일을 한다기보단,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를 한석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일을 배워 봅시다.”

“ㄴ, 넵!”

“자, 그러면 해산. 일들 합시다~”

““““네에~””””

점장의 손뼉에, 그 자리에 모여있던 직원들이 우수수 흩어졌다.

“미영…씨? 맞죠?”

“아, 네에…”

그 광경을 멀뚱멀뚱 지켜보던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전 지한석 이라고 합니다. 일단, 이 가게에서 1년 정도 일 했으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보세요.”

“네, 넵!”

자신을 한석이라 밝힌 남성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한 갈색 머리에, 나이대는 20대 중반처럼 보이는 그가 손을 내밀자, 나는 덥썩 그 손을 잡아 흔들었다.

“어우, 힘 쎄시네~ 일 잘하시겠는데요?”

“가, 감사합니다아….”

내 행동에 그가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나는 화들짝 손을 떼었다.

“자, 우선 가실까요? 일을 배워 보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상국이 아닌, 미영으로써의 첫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

*

“미영 씨는 홀 담당이죠?”

“네, 홀에 지원했어요.”

여기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봤을 때는 주방과 홀, 각각 한 명씩 뽑았는데, 나는 홀을 지원했다.

애초에 요리의 요 자도 모르는 실력인데다가, 사회성을 기르려면 홀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일단 테이블을 치울까요? 홀 같은 경우에는 계속해서 홀 안을 살펴보면서 언제나 깔끔하게 유지를 해 줘야 하거든요.”

“네..!”

나는 그를 따라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먼저 테이블을 치울 때는, 그릇부터 차곡차곡 쌓아서 치운 다음, 어디 음식물이 떨어진 곳은 없는지, 냅킨은 다 차 있는지 확인하고, 순서대로 치워 주세요.

포크와 나이프는 따로 모아두고, 다 치우고 나면, 새 컵을 자리에 놔두면…끝!”

“음..”

“어때요? 쉽죠? 그럼, 다음 테이블은 미영 씨가 치워 보실래요?”

“넵!”

한석이 테이블을 치우는 것을 보았던 나는, 저 정도라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힘차게 대답했다.

“음…..처음에는 우선, 접시부터 쌓고…”

다음 테이블에 도착한 나는, 그에게 배운 대로 천천히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어라? 포크하고 나이프는 어디에 놔두더라..?”

기운차게 시작한 것은 좋았지만, 진행은 영 깔끔하지 못했다.

“냅킨…은, 다 있고….아, 테이블 닦아야하는데….행주가…? 어디 있더라?”

금방 그가 보여줬던 것과는 달리, 엉망진창에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잘해야 하는데.

한번 실수하니, 패닉에 빠지는 것은 쉬웠다.

결국, 나는 테이블을 치우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괜찮으세요?”

“아..! 그….그게….”

그런 내 모습을 본 한석이 말을 걸자, 나는 대답도 못 하고 어버버 거리고 말았다.

쪽팔리고, 부끄럽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할망정, 금방 알려줬던 것도 잘 못 하는 머저리처럼 보인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자, 다시 한번 천천히 해보죠. 처음에는 뭐라고 했죠?”

“그….그릇을 천천히 쌓기…”

“네. 그런 다음에는…?”

“그…그러니까아…..”

“음식물이 테이블이나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아!”

그의 말에, 까맣게 잊고 있던 순서들이 차례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순서대로…그렇죠. 수저도 따로 치우고…새 컵까지….잘 했어요!”

다시금 떠오르는 대로, 천천히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당황하는 일 없이, 침착하게 순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새 컵까지 올려놓은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 아뇨! 처음이신데 이 정도면 잘하시는 거에요.”

“하…하지만…”

“여기 사람들, 아직 미영 씨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니까, 실수하던, 까먹던,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이 좋아요. 괜히 잘못 배웠다가는 고치기 까다롭거든요….제가 딱 그런 케이스였어서…하하.”

하지만 그는 내 사과에 멋쩍게 웃으며 나를 배려하는 것이 보였다.

“자, 그럼 다음 일을 배워 볼까요?”

“ㄴ, 네!”

이런 사람이 내 사수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후우…”

밝게 빛나던 태양이, 어느새 저문 저녁.

오늘치 일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퇴근한 나는, 레스토랑 건물 뒤편에 있는 흡연구역에서 연기를 내뿜었다.

“....불고기 필라프…갈릭 필라프….불닭 필라프….필라프는 볶음밥…비스무리 한 거고….빠네? 가 뭐더라…?”

나는 미리 휴대폰에 찍어놓은 가게 메뉴들을 살펴보며 중얼중얼 읊었다.

주문을 받는 홀인 이상, 빠르게 메뉴들을 외워야 일에 지장이 없을 터였다.

“어라? 미영 씨, 퇴근 안 하셨네요?”

“아…아뇨..그게 뭐냐…”

“아, 한 대 피우고 계셨구나?”

그때 뚜벅뚜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 발치에서 한석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도 흡연자인지, 입가에는 담배 한 개비가 물려있었다.

“후우…뭐 보시는 거에요?”

“네? 아…그게…저희 가게 매뉴요…빨리 외워야 할 것 같아서…”

“오! 엄청 성실하시네요?”

“...아니에요. 오늘도 실수만 잔뜩 한 것 같은데…”

“에이~ 제가 여기 일하면서 알바들 많이 봤는데, 미영 씨 처럼 성실한 사람은 없었는데요?”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칭찬받으니, 왠지 부끄러우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의외네요.”

“네?”

“미영 씨, 담배 안 필 것 같았는데, 의외로 독한 거 피시는구나~ 싶어서요.”

“...하하…”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안 피고 버티기에는 내가 참 약했다.

“미영 씨는 집이 어디세요?”

“아, 저는 그…XX동 쪽에 있는 아파트요.”

“오~ 가까운 곳에서 사시네요? 저는 XX 쪽에 사는데, 거리가 좀 있어서 출근하는 게 고역이라니까요….에휴…”

“XX 동이면, 지하철로 출근하시나요?”

“네, 한 번 환승해서 와야 하는데…”

그렇게 나는 그와 담배 하나치 만큼의 잡담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얼마만이더라….이렇게 평범한 대화를 평범한 사람과 나눈 적이.

"그럼, 내일 봐요~"

"네. 내일 뵈요..."

내일도 힘내자.

내일은 실수를 줄여야겠다고 다짐한 나는, 현수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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