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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63화 (63/91)

〈 63화 〉 chapter 6:태풍의 눈 중심에서.(1)

* * *

살짝 부어오른 뺨이 아직도 따갑다.

입가에 헐은 상처가 자꾸만 거슬리게 아팠다.

아직 전신의 멍은 다 빠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움직일 만은 했다.

“다녀올게.”

“정말...괜찮으시겠어요?”

현수는 현관문 앞에서 나에게 물었다.

그날 밤.

나는 현수에게 안긴 채 그대로 기절해 버렸고, 아무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의식을 차린 후, 현수는 상처투성이인 내 몸에 대해 자꾸만 물었지만, 나는 그저 괜찮아. 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오지랖이 넓은 네가 괜히 끼어들었다가, 잘못될 것 같아서 무섭고, 내가 행했던 일들을 알아버린다면, 네가 나를 싫어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숨겼다.

자꾸만, 자꾸만 현수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이 늘어갔지만. 괜찮다.

이제는 다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린도, 박 실장도, 마약도.

모두.

이제는 잊어버리면 돼.

그러면, 괜찮을 것 같았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근데, 진짜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늘은 잠시 은행에 다녀오려는 거야.”

“.....네. 잘 다녀오세요.”

나는 그런 현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했지만, 입가를 올리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너무 쓰라려서, 미묘한 웃음이 지어지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현수는 그저 힘없게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지갑을 하나 꺼냈다.

갈색의 무늬는 없는 모던한 가죽 지갑.

어느새 내 후드 주머니에 민증과 함께 들어있었다.

하린이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 것 같았다.

지갑을 펼쳐, 민증을 바라본다.

[김미영]

처음으로 박 실장의 소개로 나에게 신분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던 한 팀장이 보여줬던 신분하고는 다른 점이 있었다.

일단, 나이대가 상당히 어리게 되어 있었다.

그때 봤던 그녀의 신분은 거의 30대가 다 되어 가는데, 내 민증에 적힌 생년월일은 이제 20대 초의 나이대가 적혀져 있었다.

이건, 그녀 나름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하긴, 이런 외모에 30대라고 하면, 이상하게 보일 테니까.

내 신분.

“아..아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자꾸만 소용돌이치는 기분.

나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곧바로 나와 서둘러 발을 옮겼다.

*

“28번 고객님~일반 창구로 와주세요.”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뽑았던 번호표의 숫자가 창구 앞 전광판에 껌뻑거리며 비추었다.

평일 아침의 은행은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내 맞은편에 앉은 은행 창구원 웃으면서 나를 반겼다.

“그....저.....체..체크 카드 하나...발급 받으려고요...”

정말, 별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말이 떨리는지.

내가 수상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지금 숨은 어떻게 쉬고 있지?

여기가 어디지?

겨우 말 한마디 꺼냈을 뿐인데, 하늘이 노래지고 숨이 가빠졌다.

“아~ 저희 은행에서는 처음으로 발급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따로 계좌가 있으실까요?”

“처, 처음이...에요...”

“네에~ 신분증 부탁드립니다.”

신분증.

드디어 처음으로 신분증을 쓸 때가 되었다.

“ㅈ...잠시만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곳에 있는 내 사진이 찍힌 민증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신분 도용으로 잡히는 건 아닐까?

사실....하린이 말했던 것들은 전부 거짓말이고, 그냥 비슷하게만 만들어서 준 게 아닐까?

내가 그것을 온전하게 믿을 수 있을까?

“저..고객님?”

“ㄴ....네? 아...그...여기요!”

계속해서 미궁으로 떨어지는 머릿속에서 창구원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나도 모르게 망설이던 손을 움직여 민증을 건넸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건넸다.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입이 바짝 말랐다.

“19 XX 년 XX 월 XX일 맞으시죠?”

“네? 아 네! 맞아요! 네...”

가뜩이나 의심받지 말아야 하는데, 내 행동거지는 자꾸만 불안하게 만들었다.

“네~ 그럼 이쪽 서류 좀 작성해 주시겠어요? 여기 형광펜으로 표시된 부분만 작성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에...”

그렇게 마음 졸이던 사이, 내 앞으로 서류 뭉치가 넘겨져 왔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번호와 집 주소 같은 기본적인 개인 정보를 적어 넣으면 되는 것 같았다.

주민등록번호는 은행에 오기 전, 필사적으로 외워 놓았기에 민증이 없어도 충분히 적을 수 있었다.

휴대폰은 없으니까 안 적어도 되겠지.

그런데.

‘.....집 주소를 어떻게 하지...?’

현재 나는, 현수의 집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냥 현수의 집 주소를 적어서 넣으면 되는 걸까?

아니면, 따로 신청했어야 하는 건가?

집 주소도 없음. 이라고 적는 건 너무 이상할 텐데....

‘...일단 적자.’

끙끙대서 고민하고 싶어도, 집 주소 가지고 이렇게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의심받을 행동같이 느껴졌기에, 나는 결국 현수의 집 주소를 채워 넣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서류를 건네고, 창구원 여성은 서류를 확인하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저...저기...”

“네~?”

“시간이 조금 걸리면, 잠시 밖에 나갔다 와도 괜찮을까요?”

“네~”

운 좋게도 당장 나를 제외한 손님은 없었고, 창구원의 허락도 떨어졌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향했다.

“하아....후....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냐...”

차가운 바깥 공기를 마시며, 숨을 골랐다.

주변을 둘러보다 보이는 재떨이가 구비된 흡연장으로 다가가, 담배를 하나 물었다.

이렇게 긴장한 적은 아마, 고3 수능 날 때와 비슷, 아니 그것보다도 더욱 긴장되었다.

카드가 발급된다면, 나는 아직까지 의미심장하던 내 신분의 대한 것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이렇게 만들었다.

“..허.”

불을 붙이는데 자꾸만 손가락이 헛돌아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금 은행 문을 열어서 들어왔다.

그때.

“저, 손님?”

“ㄴ..네네?”

은행으로 들어온 나를 발견한 창구원이 나를 불렀다.

그 소리에 나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럴 거면 내가 자리에 앉은 이후에 말해도 되는 거잖아.

민증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어떡하지?

걸린 건가?

민증이 가짜라는 게, 걸린 건가?

두근.

두근.

심장박동이 세차게 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떻게 움직였을지 모를 정도로 다리에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무..무슨..문..제라도..?”

나는 경련하는 입술 근육을 움직여, 그녀에게 물었다.

“아~ 별건 아니시고, 여기 서류에 주민 번호가 잘못 적혀 있어서 다시 한번 적어 주시겠어요?”

“아.”

아.

그 순간.

미칠 듯이 솟아오르던 아드레날린이 푹 꺼지는 것이 느껴지며 안도감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네에..”

너무 힘이 풀어져서, 지적받은 오타를 또 한 번 틀리게 적고 나서야 서류 작업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카드 비밀번호 네 자리 입력해주시겠어요?”

“네.”

키보드에서 손을 뗀 창구원이 숫자 키보드가 박힌 기계를 내밀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번호를 입력했다.

0.8.2.9

[다시 한번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0.8.2....

멈칫.

“.......죄송한데, 다시 처음부터 비밀번호를 설정해도 될까요?”

나는 잘 누르던 손가락을 멈춰, 창구원에게 물었다.

“네네~ 다시 한번 입력해주세요~”

0829.

내 생일이 ‘었’던 번호.

예전 원룸 집의 비밀번호이자, 내 지하철 보관함 비밀번호였다.

예전부터 이런 네 자리 비밀번호에서 잘 사용하던 숫자였고, 기억하지 못해도 손이 움직이는 정도였다.

바꾸자.

나는 이제, 김상국이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다른 번호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

“네~ 카드 발급되셨습니다.”

“아...네....”

그리고 잠시 후, 내 앞으로 종이 통장 하나와 작은 카드 하나가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통장과 카드를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행을 나와, 한참을 걸었다.

발을 바닥에 내딛는데 자꾸만 휘청거렸다.

걷고, 걷다 보니, 어느새 ATM 기계가 보였다.

유리로 뒤덮인 작은 은행 창구 같은 느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카드를 넣었다.

비밀번호 네 자리를 입력하고, 입금 버튼을 눌렀다.

가방에 넣어 두었던 지금까지 현수에게 받아온 돈들을 넣고, 입력 버튼을 눌렀다.

오만 원 짜리 지폐들이 기계에 들어갔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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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금 금액 XXXXXX원.]

[계좌 금액 XXXXXX원.]

[거래가 종료되었습니다. 카드를 받아 가세요.]

입금이 종료되고, 카드가 나왔다.

나는 카드를 받아, 지갑에 넣었다.

“...하..하하....하아....윽...! 끅...! 끄흐윽...!”

진짜, 생겼다.

내 신분.

내 계좌.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계좌가 있으며, 일도 할 수 있고, 차도, 집도, 병원 진료도, 뭐든지 가능해졌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들.

그럼에도 너무나도 간절했던 것들.

드디어, 간신히 내 품에 돌아왔다.

“아아...! 흐윽...!...끅...!...끄흑....!”

ATM 기계가 들어있는, 사람 한 명 누울 공간 없는 좁은 은행 창구.

나는 그곳에서 한참을 울었다.

3년 전 그날.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 사이로, 울고 있던 내가 비춰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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