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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62화 (62/91)

〈 62화 〉 chapter 5:두 번째 봄을 팔다.(11)

* * *

익숙한 무게감이 내 손에 실렸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마치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고작해야 내 손바닥보다 작은 이 십자가가 너무나도, 역겨웠다.

“....하?”

이해하기 힘들었다.

금방, 하린이 뭐라고 했지?

분명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면 나 스스로 이해하는 것을 거부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죽여.”

하지만 내 거부에도 하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공중에 떠다니는 귀찮은 모기를 죽이라는 듯, 너무나도 가볍게 말했다.

“주...죽이라니...? 제...제가요? 이...이걸로....쏘...쏘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죽이라니.

나보고 사람을 죽이라니.

“어어, 총구가 흔들리잖아? 제대로 꽉! 잡아야지~”

“흐읏...!”

내 떨리는 말과 같이 자꾸만 흔들리는 손을, 하린이 감싸 쥐었다.

“간단하잖아? 미영이 너는 신분이 꼬옥 필요하지? 응? 별거 없어~ 그냥 당기면 돼~”

“그, 그치마...안...이...이건...사, 살인....!”

“지금 이 공간에서,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까?”

하린의 말에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아...아니야...”

제발.

“아...아니야..!”

제발.

제발.

“이...이건 사, 살인이야! 미....미친 짓이라고!!!”

제발,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줘.

살인은 나쁜 행위를 넘어선 죄악의 행위이며, 생명의 존엄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제발.

“흐음~”

“...!...!!....!!”

하지만, 내 처절한 외침에도 그 누구 하나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공허하게 주변을 지키며 서 있을 뿐.

아무도, 이 행위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살인이, 죄악이라고? 정말, 저엉말로 그렇게 생각해? 응?”

“다...당연한 거 아니야...? 다...다들 미쳤어...제정신이 아니라고!”

“컴퓨터.”

“.....뭐?”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컴퓨터가, 전쟁 때문에 생겨난 건 아니?”

“........”

맞다.

어디서 얼핏 들었던 적이 있었다.

전쟁에서 더욱 효율적인 자원 계산과 포탄 계측을 위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우주선. 이것도 전쟁에서 사용하는 로켓에서부터 출발했지.

인터넷? 당연히 전쟁 시 기밀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어.

살인? 정말로 그게 죄악이라고 생각해?

수많은 사람이 죽는 전쟁은? 돈을 움직이는 청부살인은?

어째서, 살인이 죄악이라면, 아직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지?

당연히, 인간의 본능이니까.

성경에도 있었지, 그 잘난 신이 빚은 인간이, 질투심 때문에 형제를 죽인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고.

있지, 사람은 정말, 정말로 별것 아닌 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어.

우리 구역에 침범했다든지, 말대꾸를 했다든지, 심지어, 더럽고 냄새난다고 길거리에서 죽이는 사람도 있어.

그런데, 미영이 너는 정말로, 다행인 거 아니야?

자, 봐봐.”

“으...으윽...!”

하린은 내 손을 감싸 쥐던 자신의 손을 빼내어, 내 고개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박 실장의 얼굴이 보이도록 고정했다.

“피하지 마. 똑똑히 봐.

이 남자. 너를 창년으로 일하게 하고, 함부로 사용한 데다가, 네가 그토록 원하던 신분을 살 돈을 훔쳐서 자기 좋을 대로 썼어.

‘원수’ 잖아?

죽이고 싶지 않아?

네가 그토록 증오하고, 혐오하는 새끼가 바로 눈앞에 있다니까?

죽여.

네 안에 꾹꾹 눌러두었던 모든 것을, 발산해.”

맞다.

하린의 말이 맞았다.

모든 일의 시작이자, 내게 절망감을 안겨준 사내.

마음속으로는 이미 수 번, 수십 번을 죽이고, 갈기갈기 찢었다.

그런데, 바로 내 눈앞에 무방비로 묶여있고, 나에게는 총이 있다.

여기서 죽인다고 해도, 나 대신 시체는 처리해 주겠지.

그야말로,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내가 이 남자를 죽인다고 해서,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다.

운이 좋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내가 금방 뭘 생각한 거지?

사람을 죽이는데, 운이 좋다고?

미친 생각이다.

나도, 점점 물들어가는 걸까?

“....그럼, 금방의 그 남자는 왜 쐈어?”

“그...그건..!”

처음으로 사람에게 총을 쐈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정말로 그가 살아 있을 때, 안심만 했던 걸까?

죽이지 못했다.

그래서 아쉽다.

라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봐봐. 너도 결국, 너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했잖아?”

“하..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네가 죽어서?”

“........”

“후훗~ 미영아. 결국, 같은 거야.

네가 이 남자를 죽이면, 네가 그토록 바라던 신분이 생겨.

결국, 네가 이 일을 하는 것도 다 그걸 위해서였잖아?

신분이 중요하지 않아?”

“......아.”

신분.

내가 그토록 바라던, ‘평범’해 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

그 신분이 있다면, 더 이상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 계좌를 만들 수 있다.

직접 일을 할 수 있다.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된다.

현수의 옆에, 나란히 걸을 수 있다.

“괜찮아~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

그리고, 총을 쏴버려.”

“허억...! 흐억...! 흐어억...!”

점점 숨이 가빠져 온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가락에 힘이 집중된다.

“쏴.”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나는 입을 열었다.

“어째서, 어째서 내 돈을 훔친 거야?”

내 손가락의 미약한 움직임 하나에 삶과 죽음이 갈라질 그를 향해. 말했다.

“당시...신은 알잖아....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그리고 그토록 바래왔는지.

다 알잖아 씨발새끼야!!!!!!!!!!!!!”

악에 받친 고함소리가 공장 내부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하지만 그는 그저 무표정하게 내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말해. 어째서야. 어째서........흐윽....! 도대체 왜!!”

자꾸만 목이 막혔다.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또르르 내 뺨을 타고 툭. 하고는 바닥을 적셨다.

침묵이 이어졌다.

“....어째서...훔쳤냐....고...?”

마치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쉬어버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서기는....내가...그 돈이 필요...하니까....훔쳤지....당연한 소리...를...하는 군...”

“아.”

그렇구나.

그에게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냥, 돈이 필요했고.

근처에 돈이 있었고.

그 돈이 내 돈이었을 뿐이었다.

악감정도, 좋은 감정도 없다.

나를 저주하며 망하길 빌었던 것도 아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훔쳤던 것도 아니다.

엄청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숨겨진 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랬던 것뿐이었다.

내가 신분을 원했던 것처럼, 그는 돈을 원했을 뿐.

그냥, 내가 운이 없었다는 거였구나.

“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미칠 듯이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하린.

이 여자는 정말 진심으로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익을 위해, 사람도 쉽게 죽이는 그런 괴물.

그런데, 박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내 눈앞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뿐, 그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을 테고, 이미 했을지도 모른다.

다 괴물이었다.

자신을 위해서 괴물이 되었어.

쉽게 사람을 속이고, 훔치고, 죽이고, 나락으로 빠뜨렸다.

모두가 괴물인데, 혼자 인간인 내가 이상하지 않아?

“정말 나쁜 새끼네, 그치?”

“.......그러게. 정말, 미친 새끼야.”

내 뒤에 선 그녀가 미소를 짓는다.

“망설임은, 없어?”

“....이제 없어. 후련해졌어.”

그렇다.

금방까지 안개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이제야 뻥 뚫린 기분이 들었다.

망설임은 사라졌고, 결단은 확고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그래. 죽여.”

하린이 속삭였다.

“......”

나는 총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총을 꺾어, 총알을 빼내었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총신 사이에서 튀어나와, 명쾌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뭐 하는 거야?”

그 모습을 바라본 하린은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총을 다시금 접어, 십자가 형태로 만든 뒤.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는, 괴물이 되지 않아.”

그랬다.

어떤 원한이 있든, 속사정이 있든, 법에 걸리지 않든.

살인은 살인이다.

이런 단순 명료한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망설이고 있었다.

“하....신분은? 이거 필요 없어? 응?”

내 모습에 하린은 주머니에 넣었던 내 사진이 그려진 민증을 꺼내 들어 물었다.

신분.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

“사람을 죽여서 얻을 생각은 없어.”

맞다.

신분은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지.

괴물이 사람 흉내를 내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고, 그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분명, 나에게 신분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얻을 생각이 없다.

이 결정으로 나는 앞으로 더욱 힘들지 모른다.

다음번 신분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고통과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결국 얻지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현수가 있다.

괜찮을 거야.

신분이 없어도, 너 앞에서 당당하지 못해도.

너는 언제나 나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 줄 테니까.

“...재미없네.”

“....!”

순간, 나는 보았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보았다.

그녀가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았던 무표정한 얼굴.

그녀가 짓던 수많은 표정 중, 순간이었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써왔던 수많은 가면들의 속내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가면의 뒤에는 공허함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에이~ 왜 그래? 장난 한번 쳐 봤어~ 우리 미영이한테 그렇게 심한 일을 시킬 생각은 없지~”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그녀는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면을 썼다.

“자, 가져.”

“어...어어...?”

내가 내밀었던 총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던 그녀가, 내 손바닥 위에 민증을 올려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나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버버 할 뿐이었다.

“자. 일단 지금까지 고생 많았어~ 이렇게 범인도 찾았고, 신분도 얻었으니 좋지? 이제 오지 않아도 괜찮아. 물론,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럴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고! 응. 미영이를 다시금 여기로 끌고 오는 건 이 언니의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아....어...”

“나는 이 새끼랑 좀 놀아야 할 것 같네. 아주 긴 밤이 될 거야. 차라리 금방 총구가 앞에 있었을 때 쏴달라고 빌 정도로 말이야.”

“.....!...”

나한테서 멀어진 그녀는 묶여있던 박 실장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를 손톱으로 내리그었다.

잠시 후, 그 상처에는 붉은 핏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자, 미영이는 이제 내보내.]

[하, 하지만 정말 이대로 보내도 괜찮으십[내보내.]....알겠습니다.]

“자, 마지막 드라이브를 즐겨~ 그럼, 안녕~”

“아..? 어..어어...?”

그러는 사이, 내 손에는 민증과 서류들이 들려있었고, 덩치 큰 사내들이 내 어깨를 붙잡아 질질 당기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공장을 나오게 되었다.

*

끼익.

타이어가 작동을 멈추며 바닥에 마찰음을 냈다.

벌컥, 하고 열리는 자동차에서, 나는 엉거주춤 내렸다.

그러자 내가 나온 동시에 차 문은 닫히고 그대로 나를 내버려 둔 채로 떠나버렸다.

“........집인가...”

고개를 들어, 아파트를 바라본다.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걸었다.

오늘 하루는 정말 길었다.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죽을 뻔하고, 죽일 뻔하고.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새 신분도 얻었다.

여전히 시끄러운 초인종이 내 귀를 때렸다.

“미영씨?”

잠시 그대로 기다리자, 철문이 열리며 네가 나왔다.

“세...세상에! 몸 상태가 왜 그러세요! 괜찮아요?”

그는 전신이 붕대투성이인 내 모습을 보더니 얼굴이 새파래지며 다급하게 물었다.

“어...어서 병원으로 가야...! 응급실!”

그가 허둥지둥거리다가 실수로 목발을 놓칠 뻔했다.

포옥.

“미영...씨?”

나는 그런 현수를 그대로 끌어 앉았다.

“오늘 무슨 일 있으셨...“미영”...네?”

그리고, 말했다.

“내 이름....김미영....이야....”

계속해서 말했다.

“미영. 김미영....내...이름...”

그토록 원했던 것.

“김...흐윽....미영이라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

“미영....미영이....야...내 이름..흐윽..!...김미영...!”

이제 두 번 다시 ‘김상국’ 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미영.

그렇게 나는 ‘김미영’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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