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chapter 5:두 번째 봄을 팔다.(10)
* * *
"후….보아하니 뼈가 다치거나 하진 않았네."
입에 물던 담배를 땐 중년의 남성이 시큰둥하다는 듯이 말했다.
금방까지 상처투성이던 전신에 붕대를 감아주던 중년의 남성이 자신의 입에 물던 담배를 빼고 시큰둥하다는 듯이 말했다.
"애초에, 총탄에 맞아 너덜너덜한 손으로 때렸으니, 제대로 주먹이 들어갈 리가 있나.
대부분 타박상이고, 살짝 찢어지기는 했는데 꿰매야 할 정도는 아니니 그냥 소독 잘하고 연고나 발라.
근데 안에 핏줄이 터져서 멍은 조금 오래 갈 거다. 냉찜질을 해주면 조금 빨리 사라질 거야.
목을 조른 흔적도 오래 갈 테니, 잘 가리고 다녀."
"예...예…감사합니다...의사 선생님…"
그런 그의 일방적인 통보가 끝나자,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런 수상쩍은 곳의 수상쩍은 남자의 진찰이기는 했지만, 왠지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다는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분이 없는 나는 병원 한번 가는 것도 일이었기에,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닿아놓고,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서 다행이라니.
금방까지 죽느니 마느니 하던 나였지만, 참 실없다 싶었다.
"됐어. 의사 면허도 없는 놈한테 뭔 의사 선생 타령이야. 난 돈만 받으면 그만인 양반이다."
그런 내 감사 인사에 그는 질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믿어도 되는 거겠지?
"예에…"
마음 같아서는 왜 면허를 정지 당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부스럼을 만드는 것 같았기에 그저 수긍하며 대답했다.
"자, 그럼 이제 나가 봐."
"가...감사했!....습니다..."
금방까지 누워있던 간이식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바닥에 내딛자, 전신에 고통이 찾아왔다.
그래도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닥터, 닥터도 잠시 나와 주셔야겠습니다. 누님의 말이 있어서.]
"뭐?" [아니 나는 왜?....아니다. 환자도 없는데 부르는 거면 그거겠지. 알았어. 미리 준비해둘 테니, 먼저 나가.]
[예.]
그런 내가 밖으로 나갈 찰나, 나를 데려온 남자와 중년의 남성은 또다시 내가 알 수 없는 말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중년의 남성이 한숨을 푹 쉬며 등을 돌렸다.
한국인 이었지만, 하린처럼 러시아어가 익숙한 듯 보였다.
"그...그럼, 안녕히….."
나는 그가 등을 돌린 상태였지만, 다시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방을 나왔다.
"하….집에 가고 싶어…"
피로에 찌들고, 고통에 담겨진 몸뚱이는, 자꾸만 비명을 질렀다.
어서, 집에 가서, 너를 만나고 안심한 채로 쉬고 싶어.
이런 꺼림직한 공간에서, 도망치고 싶어.
그런 바램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은 바라는 대로 된 적이 없었다.
"미영아! 몸은 괜찮아?"
내가 처음으로 보았던 넓은 광장에서, 그녀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네. 아프기는 하지만, 특별히 심한 곳은 없다고 하셨어요."
"다행이다~ 자, 어서 가자!"
"네? 어디를…?"
내 몸 상태를 묻던 그녀는 어느새 잡은 내 손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당황하던 내가 팔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럴 힘도 부족해서 결국 질질 끌리다시피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네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을 텐데~"
넓은 공장의 중심.
그곳까지 걸어온 나에게 하린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서가던 그녀가 옆으로 비켜나자, 하린의 몸에 가려진 앞 풍경이 보였다.
그 곳에는, 두 남성이 의자에 묶여 있었다.
왼쪽의 남성은, 아까 전, 나를 죽이려고 하던 남자였다.
내가 쏘았던 오른팔은 붕대를 둘둘 말아 놨지만, 붕대의 중심에 조그마하게 진홍빛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런 사고를 쳤으니, 순순히 놔 줄 리는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느새 이곳에 끌려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저….저 새끼는….!"
"오랜만이지? 네가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
짙은 눈썹.
왼쪽 뺨에 그어진 큰 흉터.
잊을 수가 없다.
절대로,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내가 봄을 팔게 된 계기와 내가 스스로 죽을 뻔한 계기를 준 남자.
박 실장.
그가 지금,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그의 얼굴은 원래 있었던 뺨의 흉터보다 더욱 지독한 상처들이 가득 보였다.
옆에 있는 남자와 똑같이 의식을 잃었는지,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아아…!"
"참, 쥐새끼처럼 잘 숨기는 했지만. 찾아냈지."
너무 놀란 내가 입만 벌린 채, 어버버 거리고 있자, 하린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뭐해? 둘 다 깨워.]
하린이 무어라 말하자, 그들의 옆에 서 있던 남자들의 밑에 있던 양동이를 들어, 그 안에 들어있던 물을 두 사람의 얼굴에 퍼부었다.
"푸헉! 켁…!켁…!"
"크헉! 푸그륵..!"
그러자 두 사람은 기겁하며 감았던 눈을 번쩍 떠냈다.
"안녕? 오랜만이지?"
"....일어나자 보는 게 네 빻은 면상이라 역겹네."
"어머, 내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줄 선 꼬추 새끼들만 몇 명인데, 말이 너무 심하다~ 오랜만에 보는 아아주 반가운 사이인데~"
"지랄...한다. 미친년…"
"아 맞다. 옆 사람에게 인사 한번 해. 저놈도 너같이 돈도 안 내고 약을 털다가 잡혔거든~ 사이좋게 지내야지~"
의식을 되찾은 박 실장이 하린과 살벌한 대화를 나누던 사이, 그녀는 흘낏 옆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너야?"
"이...이게 무슨…!"
그는 약에서 깼는지, 자신의 상태를 보며 무척 당황하며 몸을 달싹거렸지만, 의자에 묶여 구속되었기에,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기억 안 나? 우리 물건을 감히 돈도 안 내고 처 빨아 댄 데다가, 우리 귀여운 아이를 이렇게 엉망진창 만들었잖아?"
"허..허억…!"
그런 모습을 마치 우스꽝스러운 공연을 보는 것처럼 웃던 하린이, 뒤에 있던 나를 불쑥 앞으로 밀며 말했다.
그의 눈이 당황에서 깨달음으로, 그리고 공포로 물들어 갔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런 개짓거리를 했을까….우리가 개 좃으로 보였던 걸까….아니면, 약에 절은 뇌가 미친 건가…"
"내...내가..! 아니..! 제...제가 잘못했습니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제발 살려만 주세요..!!!"
그는 구속되어 움직여지지 않는 몸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의자를 덜컹거리며 발악했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말 참 잘했네. 맞아.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히..히익…! 하...하지마…! 하지 말라고…! 씨..씨발..! 씨바알!!!"
그의 눈에서 핏방울이 방울방울 맺혔다.
그의 상처를 감싸던 붕대는, 벌어지는 상처의 핏물을 막아내지 못하고 붉게 물들었다.
버둥버둥.
마치 그물에 낚인 물고기처럼, 그는 발악했다.
[그어.]
촤악.
"...어?"
물방울이, 마치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뺨에 맞닿은 촉감에 손가락을 올려 문지르자, 새빨간 색이 손가락에 물들어 있었다.
"부..부그륽…! 그극…!"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피거품이 허파까지 들어차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단말마는, 얼마 오래가지 못했다.
"우웨에에엑!!!"
토기가 쏠린 나는 그 즉시 위장에 있던 모든 것을 바닥에 게워내었다.
씁쓸한 위액 맛이 났다.
죽었다.
금방까지 발악하고, 살아있던 사람이, 죽었다.
이렇게나 간단하고, 허무하게.
이미 게워낼 것이 없는데도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왔다.
끔찍했다.
자꾸만 귓 속에선 그의 마지막 단말마가 되풀이되며 들려왔다.
"꺄악! 미영아, 괜찮아? 바닥에 토하면 어떡해~!"
그런 나를 보던 하린은 가벼운 비명을 지르며 내 등을 두들겨 주었다.
괴물.
바로 눈앞에서, 자신이 명령해서 사람을 죽였는데.
그녀에게 동요라는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섭고, 위험한 존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니까 마약을 파는 거겠지.
하지만, 어렴풋이 아는 것 하고, 그 실체를 마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영화에서의 범죄 조직은, 사람을 참 쉽게 죽였다.
박진감 넘치는 총격 씬,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죽이는 씬.
그런 영화들을 보며,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것들은 다 연기고, 배우들은 멀쩡하게 살아있으니까.
그런데, 이건 아니다.
실제로 사람이 죽었다.
벌벌 떨거나, 사고로 죽인 것도 아니다. 우발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죽였다.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나도, 팔이 자꾸만 떨리고, 머리가 아파오고, 속이 뒤틀리는데.
[닥터한테 가져가서 팔 만한 거 다 챙기고 짱깨 놈들한테 연락해. 이렇게라도 도움이 돼야지.]
이 여자는, 괴물이다.
인간의 감정이 없는, 괴물.
"자, 언니 좀 봐. 에고, 얼굴이 더럽잖아! 이걸로 닦아내자!"
그녀는 무릎 꿇은 내 앞에 다가와 여기에 왔을 당시처럼 손수건을 꺼내, 내 토사물이 묻은 얼굴을 닦아 주었다.
"아...아으아…."
"미영이가 충격이 큰 모양이네~"
"...괴물년."
"....그런 미영이를 위해서 선물을 줘야 하겠는걸?"
내 얼굴을 다 닦아낸 그녀는 뒤로 돌아 손짓했다.
그러더니 한 남성이 다가와 종이 서류를 그녀의 손에 올려 두었다.
"자, 이거 보여? 네 신분이야."
"내….신...분...?"
종이 서류를 풀어헤친 그녀는 손을 넣어, 무언가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손을 빼내어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김미영]
[xx03252xxxxxx]
민증.
내 이름과 언제 찍었을 지 모를 내 사진이 담겨진.
나의, 민증.
"이….이건!"
"그래~이제 다쳤던 허벅지도 다 나았고, 훔쳐 간 범인도 찾았으니, 약속했던 선물을 줘야지?"
내가, 그렇게나 바라던 것.
그것이 내 눈앞에 있다.
"아...아아..!"
나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하린이 들고 있는 민증에 팔을 뻗었다.
하지만.
"잠깐! 아직은 일러."
"아으...아아…!"
그런 내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는 내 손이 닿을락 말락 한 위치까지 민증을 뒤로 가져갔다.
줘.
내놔.
내 신분.
내 거야.
나에게 줘.
"내꺼….내…...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입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계속해서 손을 휘저을 뿐이었다.
"자, 이게 갖고 싶지? 일단, 일어날까?"
그녀는 기어코 내 손에 민증을 얹어주지 않고, 자신의 주머니에 넣더니, 쓰러진 나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인사해. 니가 뒤통수친 미영이야~ 반갑지 않아?"
"........"
박 실장의 앞까지 나를 데려온 하린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콧소리까지 내며 싱글벙글 웃었다.
[마르틴, 아니, 마르칠? 맞지? 미영이가 쐈던 총, 어디 있어.]
[여기 있습니다. 벽에 박힌 탄환은 미리 빼두어 처분했습니다.]
[응, 잘했어.]
그런 그녀가 고개를 돌려 무어라 말하자, 나를 데려온 남성이 무언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새파랗게 번뜩이는 은색의 십자가가, 그녀의 손에 달려 있었다.
하린은 능숙하게 십자가의 버튼을 누르더니, 반대로 꺾었다.
그러자 그 안에 숨어있던 작은 탄피가 핑. 하며 튀어 올라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녀는 비어있는 십자가에 새로운 총알을 넣어, 다시금 원래대로 꺾어 내었다.
"역시, 익숙한 게 좋겠지? 한 번 쏴봤잖아~"
"...아?"
십자가의 이음새가 잘 맞아떨어지던지 확인하던 하린은 그 총을 내 양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죽이면, 줄게~"
그대로 내 팔을 들어, 박 실장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