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chapter 5:두 번째 봄을 팔다.(9)
* * *
고막을 꿰뚫는 소음.
점점 퍼져나가는 화약 냄새.
그리고, 손끝에서 아직도 느껴지는 반동의 희미한 흔적.
“아….아아….!”
쐈다.
쏴버렸다.
결국, 쏴버리고 말았다.
땡그랑.
쇠칼이 바닥에 떨어지며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아...아으아….아프아아…!!”
“...!”
내 앞에 서 있는 그는, 오른손을 감싸 쥐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손에서는 새카만 피가 꾸역꾸역 터져 나오고 있었다.
스멀스멀 비린 피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죽지 않았다.
그를 조준하는 사이, 그가 손에 든 칼을 크게 휘두르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가렸기에, 그의 오른손에 탄환이 박힌 모양이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내 심정의 문제였을까?
그렇게 나를 죽이려던 그는 여전히 상처 난 오른손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런 그를 보며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후련함도, 죄책감도, 분노도 아니었다.
안심.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 안심했다.
죽지 않았다.
죽이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런 감정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다리가 풀려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서, 도망가야 하는데.
내 다리는 마치 체인이 빠진 자전거 바퀴처럼 바닥을 헛짚으며 허우적거렸다.
그때.
“씨발!”
퍼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왼쪽 눈에 암흑이 찾아왔다.
무슨 상황인지 알 새도 없이, 나는 그대로 고꾸라져 화장실 바닥에 얼굴을 맞닿았다.
“어…? 어어…?”
왼쪽 뺨이 화끈거렸다.
손바닥을 만져보니, 찐득한 피가 가득 묻어 있었다.
간신히 고개를 올려 위를 바라보자, 그 사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뚝. 뚝. 흐르는 그의 오른손은 주먹이 쥐어져 있었다.
뭐야.
이게 무슨 일이지?
저걸로 내 얼굴을 후려친 건가?
자꾸만 귀에서 이명이 들려왔다.
화끈거리던 뺨이 뒤늦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아...아파! ㄴ...니가 날 아프게 했지? 자..장난가므로! 아프자나아아!!!”
“아악! 욱! 커헉…!”
질척한 피가 묻은 주먹이 내 전신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아프다.
뼈와 뼈가 부딪히고, 피부가 찢겨 나간다.
아파.
그만.
“아...아으...아..!”
“으악!”
이러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던 내가 어떻게든 손을 내밀어 휘젓자, 그는 무언가에 할퀴어진 듯 잠시 주춤거리며 폭력을 멈추었다.
“하...하아...흐윽...하아…!”
명치에 주먹을 맞았는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팔다리는 이미 꼼짝할 힘도 없이 추욱 늘어졌다.
“이 개년이!”
“크헉….!”
그리고, 나보다도 거대한 그의 우악스러운 손이 내 목을 움켜잡았다.
“죽어! 죽어버려!”
“히익...ㅎ...으…”
공기를 호흡하기 위한 통로가 막혀 들어, 뇌가 고통스럽다는 듯이 위급신호를 보내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힘을 짜내어 발버둥을 쳤다.
그의 팔뚝을 할퀴고, 주먹으로 내려치고, 콧등을 때렸다.
하지만 그의 변화는 점점 더 짙어져 가는 그의 동공에 새겨진 붉은 핏줄뿐이었다.
점차 발버둥 치는 팔다리의 세기가 약해지더니, 이윽고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다.
그의 얼굴이 점점 희뿌연 안개가 들어차듯 가려진다.
어느샌가, 그렇게나 나를 괴롭히던 끔찍한 고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뇌가 산소를 받아들이지 못해, 모든 신경을 하나씩 끊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두근.
두 근.
두. 근.
그렇게나 요동치던 내 심장 박동이, 점차 세기를 잃어간다.
아.
죽는 건가.
사경을 헤매던 나는 불현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죽는 건가.
결국,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지 못하고, 이렇게 죽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자, 희뿌연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얼굴이 지나간다.
마치 잿가루처럼 바스라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다음으로 박민준의 얼굴도 지나갔다.
마찬가지로 가루가 되어 사라져갔다.
허름한 모텔방도, 박 실장도, 검은 차도, 하린도.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가루만이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현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의 모습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밝게 빛나며, 나를 이끄는 것 같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끊어졌다..
*
암흑.
암흑.
[....새끼 개판을 쳐 놨네.]
암흑.
암흑.
[시발…..누님한테는 뭐라고 연락을 해야 할지…]
소음.
[이봐, 살아있어?]
뭐라는 거야.
하나도 모르겠어.
[정신 좀 차려봐! 어이!]
그러니까 하나도 모른다고. 한국말로 말해.
[어이!]
밝은 빛이 찾아왔다.
“커흑! 후하...후하...쿨럭 쿨럭! 크하아…! 쿨럭!”
번뜩, 눈을 뜨자 내 폐는 미친 듯이 산소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폐에 산소가 들어서며, 전신의 통증이 아릿하게 느껴졌다.
[저번에 하린 누님이 당하고 나서 진통제를 챙겨두길 잘했군. 자칫했다간 쇼크로 죽었겠어.]
“아….다….당신은….”
내가 비쳐 보일 정도의 선글라스가 바로 내 눈앞까지 다가왔다.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해야….아 누님, 접니다 마르칠. 그게….]
“하...하하…”
그런 그는 손에 들린 휴대폰을 귀에 대고 나에게서 떨어졌다.
아마, 연락이 없던 나를 찾기 위해 찾아온 모양이었다.
슬쩍, 그의 가려진 뒷쪽을 흘겨보니, 만신창이로 쓰러진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왠지 저번에 겪었던 일이 생각이 나, 헛웃음이 나왔다.
살아 있다.
지금, 나는 살아있다.
아니면, 현실의 나는 이미 죽고, 주마등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현실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산소를 갈구하며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새끼는...예...예….예.]
전화가 끊기는 소리와 함께, 뚜벅거리며 그는 다시금 나에게 다가왔다.
[일단 일어나 봐. 움직일 수 있나?]
“....아윽…! 아...파파….!”
그가 내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 벽에 기대어 주었다.
그런 간단한 움직임에도 전신은 따끔하게 아파져 왔다.
[쯧...귀찮네…]
그는 벽에 기댄 나를 바라보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었다.
“.....”
[뭐야?]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힘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까딱. 까딱.
[.....어이없는 년…]
손가락 두 개를 약간 벌리고 구부려, 흔들었다.
그는 나를 질린 표정을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의 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내 입에 물려주고는 불을 붙였다.
“쓰으읍….콜록! 콜록!”
금방까지 산소로 가득 찬 폐에 담배 연기가 들어오자, 매우 따가웠다.
“하….”
그렇다고 손으로 담배를 쥘 힘도 없었기에, 나는 그 따가움을 견디며 계속 담배 연기를 빨아내었다.
살아 있다.
어이없지만, 나는 금방 의식을 차렸을 때보다, 고통에 신음할 때 보다.
담배를 피는 이 순간이 더욱 절실하게 그 감정이 느껴졌다.
*
그 뒤로는 힘없이 널브러진 나를 가볍게 들쳐멘 남자가 차 뒷좌석에 짐짝처럼 내려놓고는, 계속 자동차 페달을 밟으며 어딘가로 향했다.
환한 빛들이 반짝거리는 거리를 지나.
은은하고 사람들을 매료시킬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가득한 골목길을 지나.
이윽고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는 거리가 나타났다.
나는 무언가의 의혹이라든지 질문을 건넬 힘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내가 뭐라고 한들,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리도 없으니, 별 선택지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이윽고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가 멈췄다.
그 충격에 잠시 몸이 공중에 떴다가 다시금 좌석에 안착했다.
그는 차의 시동을 끄더니, 차에서 내려 나를 다시금 짐짝처럼 어깨에 매달았다.
도착지는 상당히 큰 공장 같은 건물.
그 건물은 꽤나 낡아 있었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건물들 또한 사람의 때가 타지않은 빈 건물들 투성이었다.
그는 나를 들쳐멘 채로 그 공장으로 들어섰다.
쾅쾅.
셔텨가 내려간 정문을 두들기자, 끼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금방까지 불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거리가 환하게 보일 정도로 밝은 빛이 문에서 새어 나왔다.
그는 고개를 숙여, 살짝 열린 셔터에 내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공장 내부의 공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겉 부분은 낡아빠진 폐공장이었지만, 내부는 깔끔했다.
상당히 많은 남자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국인이었고, 한국인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 왔다.]
[마르칠? 왔나? 허, 말 그대로 씹창 나 있네.]
그런 그를 반갑게 반기는 한 남성은 나를 힐끗 쳐다보니 대화를 이어 나갔다.
[누님은?]
[그 여자? 금방까지 여기 있었는데, 뭐 곧 돌아올 거야.]
[알겠다.]
[그나저나 누님이 뭐냐? 어차피 보스가 그렇게 시켰을 뿐이지, 고작 입 잘 터는 계집이잖아?]
[.....]
[시키는 거 하나하나가 명령조라서 좆같다고, 완전 보스 흉내라니까? 지가 뭘 잘났다는 건지 말이…]
[좀, 닥쳐라 미켈.]
[왜? 너도 그 계집 빨통이나 좀 핥으려고 이젠 충견 흉내냐? 어이구 병신 같네]
[참, 즐거운 이야기 나누나 보네?]
그렇게 이어지던 대화에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났다.
[아? 아...그게….그러니까…]
[...눈치 없는 병신…]
어느새 그들의 뒤에 나타난 하린이, 싱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멍청한 개도, 주인 앞에서는 꼬리를 만다지? 설칠 거면 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설쳐 줄래? 침이나 질질 흘리는 멍청한 강아지는 나도 별로 필요 없는데….]
[죄...죄송합니다!! 그...말...실수가...좀…]
[변명한다는 게 고작 말실수? 하아...그래 알겠으니까 꺼져.]
[ㄴ...넵!]
갑작스럽게 나타난 하린이 무어라 말하자, 그와 대화를 나누던 남성은 꽁지 빠지게 뒤로 달렸다.
“아이고! 우리 미영이! 많이 아팠어? 괜찮아?”
“.......”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온 하린이 내 앞에서 무릎을 땅바닥에 닿은 채로 손수건을 꺼내며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얼굴이 이게 뭐야….숙녀는 얼굴이 무기인데….일단 몸 상태가 괜찮은지 한번 보자.”
[어서 닥터에게 미영을 보여줘.]
[예.]
내 모습을 보던 하린이 울상을 지으며 나를 들고 있는 남성에게 무어라 말하자, 그는 나를 들어, 어딘가로 옮기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