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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59화 (59/91)

〈 59화 〉 chapter 5:두 번째 봄을 팔다.(8)

* * *

지친다.

몸을 이끄는 것이 나인지, 아니면 그저 몸에 꿰인 보이지 않는 실이 조종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상당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단순한 육체적 피로감이 아니다.

그거라면 몸을 팔았던 시절이 더 힘들었다.

정신적 피로감.

그것이 가장 컸다.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니는 이 가방에, 마약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무섭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면, 나를 의심하는 것 같다.

가끔씩 순찰을 도는 경찰차만 봐도, 나를 잡아가려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친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다.

모든 것이 지치고, 힘들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봄을 팔고 있으니까.

내가 팔아야, 현수가 무사할 수 있으니까.

내가 팔아야, 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봄을 팔고 있다.

*

[다녀와라.]

“예, 뭐 뭐라고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알았어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보인 남성이 나를 배웅했다.

아직 저게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대충 다녀오라는 뉘앙스라는 것은 알 것 같았다.

여전히 선글라스와 양복을 차려입은 그는, 전혀 마피아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런 복장을 차려입은 것이겠지.

마약을 파는 마피아가, 나 마피아요. 하는 옷을 입으면 그게 더 웃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드 같은 걸 보면 구석의 갱단들은 다들 힙하게 입던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모텔의 문을 열었다.

그래도 익숙해진 탓일까?

처음에는 이런 잡생각 따윈 할 여유가 전혀 없었는데.

익숙해진다.

왠지 모르게 섬뜩해진 나는 가방끈을 고쳐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익숙 이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소름 돋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은 405호.

약 한 봉지만 팔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다.

어서 약쟁이들에게 봉투를 던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나는 거침없이 걸어가, 405호의 앞에 서서, 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정확히는, 아주 조금만.

“....뭐야.”

손가락 마디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좁은 사이로,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가 보였다.

마치 짐승이 무언가를 경계하듯 신경이 잔뜩 쏠린 것 같았다.

“봄을, 팔러왔습니다.”

나는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언제나 불안하고, 신경이 날카로우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렇기에 큰 마찰은 빠르게 피하고, 돈만 받은 뒤 재빠르게 나오는 것이 좋았다.

내 말을 들은 그는 잠시 문을 다시 닫더니, 이내 문을 열었다.

그는 언제 빨았을지 모르는 옷에 기름이 튄 자국과 땀내가 진동하는 옷을 입었다.

턱수염은 자르지도 않았는지 길고 너저분하게 자라나 얼굴을 가렸다.

그의 팔에는 주사 자국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전형적인 마약 중독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소리 지르면, 알지?”

그의 손에 들린 시퍼런 칼을 제외하면 말이다.

*

“으윽....!”

손에 묶인 밧줄이 내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칼로 나를 위협한 그는 나를 묶어두고, 화장실 구석에 처박아버렸다.

그가 나에게 칼을 들이댄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무섭다. 라는 생각만 들었다.

어떻게든 뒤로 돌아,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 모텔은 무인 호텔이었고, 청소부 또한 이미 청소를 끝냈는지 복도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상황에서 소리를 지르며 뒤로 달려간다고 해도, 누가 도우러 올지도 모르고.

1층까지 도망가기 전에 저 날카로운 칼날이 내 몸을 꿰뚫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해야 할 행동은, 일단 저자의 말을 듣는 척하며, 외부에게 연락할 수단을 강구하는 것.

다행히 그는 내 가방에 든 마약 만에만 관심을 가지고, 내 옷을 수색하지도 않은 채 화장실에 처박아 버렸다.

그때 당시에는 겁에 질려 그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차라리 반항 대신 가만히 있는 것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손발이 묶여있어서 무언가를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1층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가 무언의 이상을 눈치채고 도와주기를 바랄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무섭다.

축축한 바닥에 바지에 스며들어 내 몸을 차갑게 식혔다.

윙윙 울리는 환풍기 소리가 어두운 화장실에서 울려 퍼졌다.

어둠.

간신히 어둠에 익숙해져서 근처의 윤곽만 흐리게 보일 뿐, 어둠 그 자체였다.

무섭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가 나를 죽이려 드는 걸까?

판매원을 협박하고 마약까지 뺏은 그를 하린이 소속된 조직이 가만둘 리가 없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나를 죽일까?

아니야.

그는 그런 위협을 지금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약에 취해 칼을 쥔 그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리가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 행위를 하기 전에 그 뒤의 일을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가 정상적인 사람인가?

마약의 구렁텅이에 빠진 그가, 정상적으로 행동할 리가 없다.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시발..! 시...이발...!”

무서워.

살려줘.

누군가가 제발...

살려줘.

너무 무서워.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지만, 체감상 하루는 이곳에 박혀 있는 것 같다.

팔이 아파.

다리가 저려.

극도의 공포감은, 신체에 전해지는 고통에 조금씩 누그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침착을 되찾았다.

아직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주머니의 휴대폰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이 소식은 불행이면서, 다행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휴대폰을 들고 있는지 모른다.

가방에 자주 쓰는 공기계 휴대폰을 넣어두었기에, 그것만 확인하고는 주머니에 있는 통신용 휴대폰을 살필 생각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 휴대폰이 울린다면, 그는 내가 전화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고.

당황한 그가 나에게 무슨 행동을 해올지 모른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내가 먼저, 이 속박을 풀어 최대한 조용하게, 내 상황을 바깥에 알려야만 했다.

“이...씨발...! 될 것 같은데...!”

나는 뒤로 젖혀져 묶인 팔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생각 외로 그리 튼튼하게 묶이지 않았기에, 내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밧줄이 헐거워지고 있었다.

조금 움직이다가, 다시금 멈춰 바깥의 소리를 들어본다.

“.....하.....아....으어.....아....아아...!”

미세하게 들려오는 소리.

아마 약에 한참 취해있을 터.

“빨리...! 빨리 좀...! 시발...!”

그 소리에 나는 안심하고 손목을 움직였다.

밧줄에 쏠린 손목이 마찰에 의해 너무 아팠다.

찔끔, 눈물이 삐져나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돌아가야 한다.

그거 한 가지만 생각하며 계속해서 손목을 움직였다.

“...아! 됐다!”

이윽고 매듭이 풀리는 밧줄이 맥없이 스륵 하고 풀렸다.

손의 자유를 찾은 나는 곧바로 발목에 묶인 매듭 또한 풀어내었다.

이제, 휴대폰으로 몰래 연락하면 끝이다.

그렇게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려던 찰나.

화악.

“아악...!”

갑작스럽게 화장실에 불이 켜졌다.

어둠에 익숙해진 내 눈은 밝은 불빛의 충격에 큰 타격을 입어 눈을 감싸 쥐고 버둥거렸다.

그때.

불이 켜졌다. 고?

“서...설마...”

제발.

아니기를.

너는 시발 금방까지...!

이윽고 부신 눈을 억지로 떠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벌컥 열린 문 앞에, 그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칼이 들려있었다.

언제 온 것일까.

손에 묶인 밧줄이 풀린다는 안도감에 그가 다가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아....으....”

“...아?”

그가 내 손에 들린 휴대폰을 봤다.

끝났다.

이대로 그가 발작하여 나에게 덤벼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일에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질끈 감았다.

하지만.

“....엄마...? 엄마지...? 왜 여기 있어...?”

“....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로 뜻밖의 말이었다.

그 목소리에 슬며시 눈을 뜨니, 그의 눈은 완전히 풀려 광인과도 같았다.

“어릴 때 날 버리고...어디 갔던 거야...? 응...?”

“.....”

돌았다.

지금 그는 약 덕분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건 다행인가? 불행인가?

“나.....많이 힘들었어....! 아ㅃ...아빠느은...술만 마시면 나를 때렸어....너무 아팠어.....”

“....어어....그랬구나...”

모르겠다.

나는 이 흐름에 몸을 맡기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이대로 그를 진정시키고, 도망갈 수만 있다면, 희망은 보였다.

그리고, 절망이 찾아왔다.

“왜...도망갔어...? 왜...나만 버리고....응?”

“....어?”

그의 흐리멍텅한 눈에, 힘이 보였다.

절망과 그리움, 그리고 분노가 보였다.

뭐가 되었던 나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내가...얼마나 힘들었는데....이제야 나를 보러 온 거야...?”

꽈득.

거의 떨어뜨릴 것 같았던 칼 손잡이에 힘이 들어간다.

죽는다.

나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이대로라면, 저 칼에 찔린다.

광기에 찬 그가, 나를 죽인다.

먼저 죽여야 한다.

손이 움직였다.

목에 걸린 십자가를 강하게 당겨, 목걸이에서 뜯어냈다.

버튼을 누르고,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오지 마...!”

그리고, 그를 향해 겨누었다.

스멀스멀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이, 내 손가락에서 느껴졌다.

내가 뭘 하는 거지?

지금 들고 있는 게, 뭐지?

“....이제 와서 장난감이야...? ㅅ...시발! 난 이미 다 컸다고!”

“이거...장난감 아니야. 너...죽는다고....!”

작은 총을 겨누었음에도, 그는 더욱 분노에 차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아마 이 총이 십자가가 아닌 진짜 총이라고 해도, 다가올 테지.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개새끼야아!!!!! 이거 진짜 총이라고!”

마치 입에서 피를 토하는 것 처럼 소리쳤다.

제발 오지 마.

그런 마음을 빌며, 나는 감정을 토해냈다.

벌벌 떨린다.

자꾸만 조준점이 흐트러진다.

쏴야 하나?

진짜로?

사람을, 죽여?

죽인다.

안 그러면 내가 죽는다.

죽인다.

죽인다.

이 방아쇠를 당기면, 그는 죽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총이라곤 해도, 이 정도 근거리라면 죽는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움직이는 그가, 사람이, 이내 단순한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당기지 않으면, 내가 그렇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해...?

난.

어떻게 해?

“이 시발련아!!!!”

그는 내 충고에도 결국, 칼을 번쩍 들어 나에게 달려들었다.

죽는다.

죽는다.

죽인다.

나는 방아쇠에 힘을 주었다.

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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