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chapter 5:두 번째 봄을 팔다.(7)
* * *
이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길가에서 본다면 그저 지나칠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몰래 마약을 산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자기 인생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린다는 데, 굳이 내가 끼어들 여지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엮이는 것도 싫었다.
봄을 팔지만, 그들의 미래는 책임지지 않는다.
참으로 무책임한 짓이지만,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들과 내 관계는 그저 수요와 공급, 구매자와 판매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며, 그들에게 봄을 판다.
나는 그저 판매원.
그런 이야기다.
*
“응? 뭐야? 호준, 너 저 사람 알아?”
“아...그....그러니까...”
“.........”
왜 저 녀석이 여기서 나와?
심히 당황스럽다.
분명, 저 남자는 내가 아는 호준이 맞았다.
하지만, 겉모습은 머리도 염색하고, 타투도 하는 날라리 느낌이 나는 녀석이지만, 마음씨는 착하고 이런 짓에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녀석이 마약을 할 줄은 몰랐다.
“아! 그, 제가 알바 하는 카페에 자주....오시는 분이라서, 얼굴 정도만 아는 분...이에요...”
“.....그래?”
내 얼굴을 확인한 호준은 한참을 버벅거리더니, 간신히 그럴싸한 변명을 내놓았다.
“.....여기 물건입니다.”
진정하자.
내가 아는 얼굴이 나오든, 상관없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자.
그래야 하니까. 하는 거야.
나는 쿵쾅대는 심장을 죽이며, 가방에서 봄을 꺼내어 금발 머리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오! 오늘도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런 우연이 다 있네? 그렇지 않나요? 딜러분?”
“........”
“...딜러...? 미영이 누나가.....? 애초에 저 가루는....내가 생각하는...그거...”
그러자 금발 사내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해맑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한 잔 하실래요? 아는 얼굴도 있으신 것 같은데에...?”
“......괜찮습니다. 물건값을.”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나는 자연스럽게 술잔을 들어 올리는 금발 남자의 제안을 칼같이 거절했다.
“안 그래? 호준아?”
“예? 아뇨 뭐...”
“.........”
그런가.
너도, 이런 사람들과 똑같은 건가.
돈으로 마약을 사고, 즐기는 건가.
호준을 알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둘 사이 무언가 끈끈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첫 만남은 매춘이었고, 내가 힘들 때 도와준 것에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조금, 내 마음속에서 저 녀석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결국 저 녀석은 끝까지 손님이고, 나는 그저 판매할 뿐.
그게 내 몸에서, 마약으로 바뀌었을 뿐.
그래, 그런 거야.
“물건값을 주시겠어요?”
“하하! 미영...씨? 분명 이름이 미영 씨...맞지? 참 깐깐하네~ 좀 즐기는 건 어때요?”
나는 곧바로 그에게 물건값을 요구하자, 그는 어느새 주워들은 내 이름을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괜찮습니다.”
“에휴~ 알았어 알았어. 여기, 오늘 물건은 좀 적으니까, 이 정도면 맞겠죠?”
계속된 제안에도 칼같이 거절하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돈다발을 건넸다.
"......."
나는 평소대로 그에게 받은 돈을 확인하고 있자, 호준은 말없이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짜증이 솟구쳤다.
"예, 확인 끝났습니다. 그럼."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원래 그랬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그랬다.
살짝 고개를 숙인 나는 즉시 방 밖으로 나섰다.
*
"선배….이게...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머리가 어지럽다.
볼이 화끈해지고 취기가 훅하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지끈거리는 머리는 숙취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아~ 너는 처음이지? 어때? 이게 끝장난다니까?"
"선배, 그 가루. 제가 생각하는 그거 맞나요?"
"에이, 왜 이렇게 눈에 힘이 들어갔어? 응? 이렇게 즐거운 날에는 즐겨야…"
"맞냐고요. 그거."
".....눈빛이 좀 사납다. 응? 한 대 후려칠 것 같네?"
금방까지 사글사글 웃고 있던 선배의 입꼬리가 차츰 떨어졌다.
"맞냐고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금방까지 소란스럽던 방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나 멋있고, 동경의 대상이던 선배가,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누나도.
"...맞아. 왜? 뭐 어때? 나는 취해서 좋고, 저 마약쟁이들은 돈 받으니 좋고, 서로 좋은데 너만 안 좋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선배, 정신 차려요. 불법이라고요! 아니 불법인 것도 그렇지만, 그런 걸 하면 몸도 망가지고, 무너지게 되고 말…"
"너는 술을 왜 마셔?"
"ㄴ, 네…?"
"몸에도 좋지 않고, 잔뜩 마시면 다음 날 괴롭지. 토하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내 말을 자른 선배는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왜 마셔? 응?"
"그...그러니까…"
"취하려고, 알코올에 취하려고 마시잖아. 안 그래?"
"그건..!"
"취하면 기분이 좋거든. 술에 절여진 뇌는 내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 감각을 느끼게 해줘. 즐거워. 기뻐."
"그래서 하는 거야. 그렇다면, 내가 하는 마약이랑, 네가 마시는 술이랑 뭐가 다른데?"
"그냥, 취해보자고. 응?"
그렇게 말한 선배는 삐뚜름하게 미소를 지었다.
분명, 오늘 아침만 해도 그 미소는 매우 밝고, 유쾌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미소는, 달랐다.
꺼림직하고, 무거운, 그런데도 유혹적인 미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달아났다.
무서워져서.
평소에 알던 선배가, 동경하던 선배가,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다.
*
"하…"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는 이윽고 밤하늘에 퍼져,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기분이 나쁘다.
솔직히, 충격이 컸다.
그 꺼림직하고 역겨운 물건을, 내가 알던 사람이 한다고 생각하니, 충격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필터까지 담배를 피우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타닥타닥. 거리며 바닥을 박차는 소리가.
"누나!"
"....넌?"
그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숨이 차게 뛰어오는 호준이 보였다.
"여...여기 계셨네요…!"
"....왜 왔어? 거기서 그 양반이랑 뿅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 아니에요! 선배는 분명 술 마신다고 저를 불렀는데….그럴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
그런가.
호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왜."
하지만 입 밖으로는 거칠게 대응하고 말았다.
"....누나는...정말 마약을...파는 건...가요?"
"....그래. 왜? 경멸했어? 싫어졌어?"
갑작스럽게 내 죄악을 묻는 호준에게, 나는 비꼬듯이 물었다.
"...왜요…?"
"뭐…?"
"왜...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뭐?
호준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나에게 보이며 물었다.
"이런 일….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해서는 안 되는 일이잖아요...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평범?"
평범. 인가.
"네, 평범한 사람이라면…"
"내가 너한테 돈 받고 몸 대준 건 되고?"
"그, 그건…!"
평범. 이라고?
"야, 이 시발아."
"...네?"
네가 나한테, 평범을 논해?
"평범? 평범이라고? 내가, 평범하다고?"
내가 왜. 이 지랄을 하고 있는데.
"넌, 잘 곳이 없어서 피시방 구석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봐 전심긍긍하면서 쪽잠으로 버틴 적 있어?
내가 왜, 이러고 있는데.
"돈이 없어서, 당장 오늘 먹을 끼니를 걱정해 본 적 있어?"
"그게...무슨 소리인지…"
"너는 너를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고, 친한 친구가 있고,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지."
내가 그걸 얼마나 바라는데.
"근데, 난 없어."
"...무슨…"
"사랑하는 부모님도, 친구도, 직장도, 심지어 개나 소나 있는 신분도 없다고! 알아!?"
"....."
"나도, 평범해지고 싶어.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과 인사하고, 집을 나와 대학이든, 알바든, 직장이든 성실하게 나가서 친구,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모여서 술도 마시면서….오늘도….보람찬 하루였다고….내일이 기대된다고...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고 싶다고…"
"그런데, 그게 참, 힘들더라? 우습지? 네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든 게, 나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야.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아슬아슬하게 잡힐 듯, 말 듯. 누굴 놀리나 시발...하하…"
어느새 손에 들린 담배의 불이 완전하게 꺼졌다.
그걸 흘깃 쳐다보고 나서, 대충 구겨서 벽에 던졌다.
"넌. 그렇게 살면 돼. 평범하게, 행복하게. 그런데, 선은 넘지 마. 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등을 돌려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
한숨이 어느새 새하얀 연기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온다.
이 좃같은 심정도, 이 연기처럼 내 몸 밖에서 빠져나오기를, 빌어본다.
*
"......."
머리가 어지럽다.
발을 떼야 하는데,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
"...누나…"
누나의 말이 맞다.
마음속에 간직한 마음에 비해, 난 누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울분에 차 소리치는 그 얼굴.
새어 나오는 눈물.
다시는, 다시는 누나가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나씩, 하나씩 알아보자.
모르는 게 있으면, 알아보는 거야.
누나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영화 취향은 뭔지.
그리고, 언젠가.
밝게 미소 짓는 누나의 얼굴을 볼 것이다.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담배를 물었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담배 맛이 텁텁하게 느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