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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57화 (57/91)

〈 57화 〉 chapter 5:두 번째 봄을 팔다.(6)

* * *

“다녀올게.”

철컹하는 소리와, 이어지는 도어락의 기계음.

“....슬슬 춥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로비에서, 움직이는 나를 발견한 동작감지 센서에 이어진 전등이 밝은 빛을 내었다.

하. 하는 한숨을 내쉬자, 마치 담배 연기처럼 새하얀 연기가 입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후드티만으로도 추위를 감당하기는 힘든 밤이 되었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는 계절.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

“선배...진짜 괜찮아요?”

쿵. 쿵.

귓가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내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음이 올라갔다.

“으응~ 뭐라고?”

“진짜 이런 데 공짜로 와도 되냐고요!!”

하지만 상수 선배도 마찬가지로 이 음악 소리가 크게 느껴지는지, 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분명, 술을 사준다고 들었다.

그것도 내가 마시는 소주 같은 것이 아니라, 비싼 걸 마신다고.

평소의 선배는 나 같이 애 같은 남자가 아니라, 어른스럽고 고풍 있는 선배였다.

그런 선배가 비싼 술을 산다고 들었기에, 나는 고급진 바를 떠올리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 뭐,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곳을 가지 않던가.

절도 있게 앞에 서 있는 웨이터에게 “늘 마시던 걸로.”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나는 기대에 부풀어 선배가 운전하는 대로 따라갈 뿐.

그런 나를 기다리는 것은,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나이트클럽이었다.

당황한 내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선배는 내 손을 붙잡고 클럽으로 향했다.

다른 건물 입구까지 닿을 정도의 긴 인파로 이루어진 줄을 가볍게 무시한 선배는 곧장 입구로 향했다.

그런 선배의 돌발행동에 더더욱 당황했지만, 입구를 지키던 덩치 큰 남자는 선배의 얼굴을 보자마자 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클럽의 내부로 들어오게 되었다.

귓가를 울리는 음악 소리.

번쩍번쩍한 불빛들.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흔들고 술을 마시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계 같은 클럽의 공기에, 나는 잔뜩 위축된 채로 선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런 내 마음을 선배는 아는지 모르는 지, 자꾸만 건물의 아래층으로 향했다.

아래로, 더더욱 아래로.

마침내 지하 3층까지 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인파는 전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지하로 내려오기 전, 1층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고는, 여기 사람들은.....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다들 조금 더 과격했다.

여성들은 마치 다 보일 것 같은 자극적인 옷을 입고, 사람들은 가득 취해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춤추고 있었다.

마치, 마경처럼 느껴졌다.

“어머 오빠~ 타투 멋지다아~ 나도 타투 있는데.....볼래?”

그렇게 자꾸만 긴장되는 걸음걸이로 선배를 쫓아가던 중, 한 여성이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투톤으로 물들인 분홍빛 머리칼과 수많은 피어싱, 그리고 가슴골이 강조된 옷을 입고 있던 여성이 자신의 어깨를 들어내 보였다.

“지...지금 좀 바빠서....죄송합니다!”

차마 대놓고 볼 수도 없었던 나는 급하고 고개를 조아리고 다급히 선배를 따라나섰다.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시끄럽다.

바닥을 딛는 발바닥이 마치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주변에서 풍겨오는 지독한 술 냄새.

메스꺼워.

그렇게 얼마나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녔을까.

벌컥 하고 열리는 소리와 함께, 상수 선배의 앞에 있던 거대한 문이 끼익하며 열렸다.

“자, 어서 들어와.”

“ㄴ, 네에...”

선배의 부름에 문 너머로 발을 내밀었다.

철컹, 하며 문이 닫히자, 그렇게나 시끄럽던 음악과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신기하게 잦아들었다.

“여...여긴 어디예요?”

높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번쩍거리는 고급진 가구들과 먼지 하나 없는 깔끔한 대리석 바닥.

금방까지 있었던 클럽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 같았다.

“뭐긴, 술 마셔야지? 저긴 사람들도 많고 시끄러워서 별로라서, 따로 방을 잡아뒀어. 어서 와.”

“와아....!”

과연, 그렇구나.

하긴, 저렇게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은 너무 힘들긴 하지.

선배는 선배 나름대로 다 생각이 있었구나?

역시, 선배.

그렇게 나는 다시금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선배를 따라나섰다.

길다란 복도에는 수많은 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중, 5호관이라고 적힌 방 앞에 선 선배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 또한 곧바로 따라 들어섰다.

“미안, 늦었지?”

“으엉...? 어어! 이제 왔어어...? 우리끼리 먼저 한 잔씩 하고 있었지이....”

“잘 했어.”

자욱한 담배 연기.

곳곳에 널브러진 술병.

잔잔하게 울리는 노랫소리.

그것은 내가 기대했던 공간과는 한 뼘 크게 차이가 났다.

“응? 옆에는 누구야?”

“아, 내 대학 후배. 인사해, 내 친구들이야.”

“아, 안녕하십니까...! 한 호준이라고 합니다....!”

“응~ 그래그래, 호준? 술 좀 하나?”

“그, 예....그럭저럭...합니다.”

갈색 쇼파에 앉은 사람 중, 소매를 걷고 술잔을 연거푸 들이켜는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자, 아무데나 편하게 앉아, 마시고 싶으면 아무거나 골라서 마셔.”

“예에...”

그런 분위기에 압도되어 굳어있는 내 어깨를 두드리던 상수 선배는 쇼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올라간 잡동사니를 대충 치우더니, 편하게 발을 올리며 말했다.

나는 우물쭈물 선배 근처에 앉아, 앞에 놓인 술병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로마체로 쓰여진 술병은 딱 봐도 상당히 비싸보이는 것들 뿐이었다.

대충 주변을 둘러보자, 이미 선배도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기에, 나도 손에 잡히는 술병 아무거나 집어, 술잔에 따라 마셨다.

“.....후아...! 이게 뭐야....?”

첫맛은 달콤한 맛.

그 뒤로 혀를 무겁게 누르는 중후한 맛.

깔끔한 목 넘김에 타오르는 속.

동네 술집에서 마시던 소주나 맥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맛있다.

“우리 동생은 양주는 처음이야? 얼음을 안 넣어서 마시네? 그나저나 그걸 한방에 털어넣네에~ 완전 사나이구만!”

“가, 감사합니다.”

그런 내 행동을 즐겁다는 듯이 보던 맞은편 사내가 낄낄 웃자, 이런 걸 못 마셔봤다는 티를 팍팍 낸 것 같아. 금새 부끄러워졌다.

“그나저나, 오늘도 ‘그거’ 있어?”

‘그거...?’

한참을 낄낄대던 사내가 의미심장한 물음으로 상수 선배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당연하지, 이미 시켜놨으니까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야.”

그런 물음에 상수 선배는 뭘 그런 것까지 다 물어보냐며 싱긋 웃어 보였다.

‘그거’ 가 뭐지?

“캬햐~! 저번에 한 번 해보니까, 진짜 뿅 갔다니까? 내가 얼마나 그랬으면 오늘은 창년들도 안 불렀어! 그런 게 있는데 보지들이 보이겠냐?”

“그러게나 말이야. 상수 너는 어떻게 그런 걸 다 구하는 거냐?”

“뭐, 살다 보니 우연찮게....”

‘창녀? 보지? 뿅가? 구해...?’

계속해서 귀를 기울여 선배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았지만, 상스러운 말만 들려올 뿐, 정작 ‘그 거’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서....선배. ‘그거’ 가 뭐에요...?”

결국, 음습하게 느껴지는 불안감과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선배에게 귓속말하며 ‘그거’의 정체를 물었다.

“그거? 뭐, 좀 이따가 알게 될 거야.”

“.....예.”

하지만 선배는 내가 원하는 답을 말해주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기고 말았다.

그때.

똑똑.

“.......실례합니다.”

“오! 왔나 본데?”

“아, 들어와요.”

바깥문에서 들려오는 노크와 한 여성의 목소리.

그런데.

“.....이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이상하게 그 여성의 목소리는,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실례, 물건을 들고 왔.....”

“.....누나?”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온 여성이 푹 눌러쓴 후드티 모자를 벗자, 그곳에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김미영.

미영이 누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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