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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55화 (55/91)

〈 55화 〉 chapter 5:두 번째 봄을 팔다.(4)

* * *

지독한 술 냄새.

시야를 가리는 자욱한 담배 연기.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는 내가 실제로도 본 적 없는 비싼 술병들이 가득했다.

커다란 쇼파가 줄지어 있었고, 남성과 여성이 비슷한 비율로 앉아있었지만, 여성들의 복장이나 얼굴을 보니, 아마 돈으로 고용된 사람들 같았다.

“아~가루 주시러 오신 분이네! 어라? 언제나 오시던 그 여성분이 아니네?”

“아...그, 그분은 잠시 일이 생겨서...당분간은 제가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아쉽네....내가 물건을 살 때마다 그분 얼굴을 보는 낙으로 사는데, 하하!”

그런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쩔 줄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를 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반겼다.

밝게 빛나는 금발 머리에 귀에는 체인이 달린 피어싱이 마치 호준을 연상케 할 만큼 그는 상당히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가 이 모임의 중심 같았다.

“어? 가루? 설마, 그거야? 그거?”

“지...진짜로 구했어? 대박인데?”

금발의 남자가 내뱉은 ‘가루’ 라는 말이 무엇인지 눈치를 챈 다른 남성들이 벌떡 일어나 흥분을 감추지 못한 듯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저기 오빠들~ 가루가 뭐야?”

“서얼마...영화에서 보던 그거? 에이~ 농담이지?”

그러자 그들의 곁에 앉아 술병을 들고 있던 여자들은 흥분해 날뛰는 그들과는 다르게, 전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잠만 조용히 해봐. 넉넉히 샀으니까 진정 좀 하고. 딜러분이 불편해하잖아.”

남성들의 흥분이 점점 고조되자, 금발의 남성은 나에게 천천히 걸어오며 그들을 중재했다.

“예에....그럼 돈을...”

“그전에, 물건 좀 보죠. 제가 뭐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알죠?”

순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기에, 순번에 맞추어 돈을 요구하자,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뭐...잠시만요.”

평소 같으면 언제나 돈을 먼저 받고 물건을 보여주었지만, 하린이 VIP라고 강조한 것도 있고, 최대한 그의 기분을 맞추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났던 나는, 가방을 열어 가루를 꺼내 보였다.

“어라? 원래 사던 그 가루가 아닌데?”

그는 내가 가방에서 꺼낸 지퍼팩에 담긴 가루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색깔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았다.

하린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하얀색의 가루를 팔았다고 했으나, 최근 새로운 물건이 들어와서 이 분홍빛 가루로 바꿨다고 들었다.

“아 그게, 새로 들어온 신상품입니다. 질은 예전보다 더욱 좋아졌다고...하네요.”

나는 하린에게 들은 말 그대로 그에게 들려주었다.

“흐음....뭐, 설마 나를 속이거나 하진 않을 테니, 알겠습니다. 야, 저기 구석에 있는 종이가방 좀 들고 와.”

“뭐? 이거?”

“어, 그거.”

내 설명을 들은 그는 손으로 턱을 괴며 잠시 고민하는 듯, 보이다가 다시금 해맑게 웃으며 뒤에 있는 남자에게 무어라 말했다.

“야...근데 너무 많은 거 아냐?”

“그럼 구하는 게 쉬운 줄 알아? 이 정도면 괜찮아.”

종이가방을 들고 오던 남성은 금발의 남자에게 종이가방을 넘기기 전, 슬쩍 열어보더니, 살짝 식겁했다는 듯이 물었지만,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호쾌하게 받아넘겼다.

“자, 여기 있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아....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가 건네는 종이가방을 받아들자, 상당히 묵직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 쪼그려 앉아,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종이가방의 안에는, 수많은 노란빛 지폐들이 각을 맞추어 틈새 하나 없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놀랍다.

이게 다 얼마야.

농담이 아니라, 내가 3년을 걸쳐 모은 돈의 절반 조금 안될 만큼 많았다.

분명 하린이 평소보다 두세 배는 더 가격을 후려쳤다고는 했지만, 너무 많았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아무렇지 않아 보이도록 빠르게 돈을 세었다.

수많은 돈을 세면서 느끼는 감정을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렇게나 많은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낸다는 놀라움.

그렇게나 이 가루가 가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마약쟁이들의 생각을 어찌 알겠어?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환멸감.

내가 이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 얼마나 몸을 굴려야 했는가.

그때마다 갈려 나갔던 내 마음과 몸이 얼마나 안타까웠는가.

그래도, 그래도 돈을 벌기 위해서 마음을 죽이고, 일해왔다.

그런데 그는, 내 앞에 선 남성은.

이 좆같은 가루 좀 사겠다고. 이런 돈을 척척 내었다.

환멸이 났다.

내가 이런 돈을 벌려면 얼마나 봄을 팔아야 할까?

나와 이 남자의 차이점이 뭘까?

그는 한평생 돈 걱정해본 적 없겠지.

신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항상 움츠러들고, 벌벌 떨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을 할 필요도 없겠지.

그는 내가 살던 빌라보다 수십 평은 더 넓은 곳에 살 것이고.

삼각김밥에 깡소주나 들이켜는 나보다 화려한 안주와 수배는 비싼 고급스러운 술들을 이렇게나 많이 마시지 않는가.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세계.

그것이 이 남자가 살아가는 세계인 것이다.

“맞죠?”

“네, 맞습니다. 여기, 물건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돈을 새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지폐까지 다 세었다.

돈은 확실히 액수에 맞았다.

나는 가방을 열어 남아있던 가루가 담긴 지퍼백을 마저 건넸다.

“자! 한번 즐겨 보자!”

“그렇지! 좋다!”

“나 저번에 한 번 맞아보고 완전 뿅 갔다니까?”

그는 나에게 받아 간 물건을 그들에게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오...오빠들...? ㅇ, 예지는 조금 바빠서,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으, 응! 다...다음에 또 불러줘?”

남성들은 그런 금발의 남성에 환호했지만, 그가 들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이제야 이해한 여성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임을 느끼고 자리를 뜨려고 하기 시작했다.

“에이....가려고? 이제 재미있어지는 순간인데?”

“에, 에이~ 미안해~ 다음에 또 불러 줘, 응?”

그런 여성들의 태도에 약간 실망한 듯이 금발 남자가 말했다.

“흠, 그럼 이건 어때? 시간 좀 연장해서 우리랑 놀아주면....큰 거 한 장씩 얹어줄게.”

금발의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그 행동이 빨라서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얼핏 봐도 상당한 액수가 적혀 있었다.

“......그...그래?”

“그...그러면 조금만 더 있을까...?”

돈.

저리 얇고 얄팍한 종잇조각.

하지만 그녀들의 눈이 흔들리며, 차츰차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딜러분은 어떠신가? 같이 즐기실지?”

금발의 남성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봐 물었다.

“괘, 괜찮습니다. 전 바빠서 이만...”

미쳤냐.

순간 눈이 돌아갈 금액인 것은 확실했지만, 나는 곧바로 돈이 가득 든 종이가방을 챙겨 나갈 채비를 했다.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저건’ 해선 안 된다.

하린의 당부도 있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던 찰나.

“에이, 왜 빼고 그래? 같이 놀자니까?”

“죄, 죄송하지만 괜찮습니다...”

금발의 남성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내 팔뚝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빼지 말고 우리랑 놀자니까?”

“야야, 적당히 해. 괜히 수작 부리지 말고 그냥 여기 있는 애들이랑 놀아.”

“에이, 아깝잖아? 얼굴도 반반하게 생겼는데. 어때? 우리랑 놀면 저 창녀들보다 두 배는 쳐줄게. 응?”

“그...그만...!”

금발의 남성이 내 팔뚝을 잡은 남성을 말렸지만, 그의 손아귀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노...놓으라고! 하기 싫...다니까?!”

“허, 시발 내가 신사답게 좀 구니까 개띠껍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그의 손을 뿌리치자, 그는 금방까지 실없이 웃던 미소를 집어치우며 강압적으로 굴기 시작했다.

시발.

그만, 그만 좀.....시발 진짜...!

“야, 그만 하라니까?”

“아니 근데 이 시발련 말하는 싸가지가 좃같잖아. 지가 뭔데 시발.”

“야.”

철썩.

무언가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팔뚝을 쥐어 잡던 힘이 약해졌다.

“하지 말라니까? 응? 내 말이 개좃같이 들려? 응?”

“아...아니 상수야...그...그게 아니고...”

상수.

상수라고 불린 금발의 남자.

그는 계속해서 유지하던 미소 짓는 얼굴을 구기며 내 팔을 잡아당기던 남자의 얼굴을 쳤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당황하던 그는 무언가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

“큽..! 윽..! 우욱...!”

하지만 상수는 계속해서 그의 뺨을 가격했다.

뺨을 얻어맞는 충격에 그 남자는 계속 뒷걸음질을 쳤지만, 상수는 계속해서 다가가 그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를 정도로 가격했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보았다.

완전 다른 사람 같았다.

금방까지 헤실헤실 웃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180도 바뀐 그는 흉흉한 기운을 내며 말했다.

“하 시발. 야, 너 때문에 분위기 곱창났잖아아~ 응? 이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할까....?”

“미...미안....내가 잘...못했다...”

“....그래! 실수할 수도 있지, 안 그래? 자, 니가 먼저 저 분한테 사과해.”

그리고, 그는 또다시 얼굴을 바꾸어 내가 알던 미소 짓는 얼굴을 만들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죄....죄송합니다...”

“아, 아뇨 됐어요....”

그의 말에 따라 나에게 고개를 숙이는 남성의 사과를 건성으로 받은 나는,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가시나요? 실례 많았습니다. 앞으로 좋은 거래 기대할게요!”

“......예.”

철컹.

문이 닫혔다.

역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분명, 금방까지 내 팔뚝을 잡고 억지를 부리는 남성처럼 나에게 고압적으로 굴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저 상수라는 남자는, 너무나도 위험했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이라도 이 거지 같은 건물에서 나가고 싶었다.

*

“하....”

요즘 들어 자꾸 기운이 없다.

계속해서 마음이 답답하고, 힘이 빠진다.

그 이유는 잘 알고 있다.

미영.

그 누나 때문이라는 것을.

비가 거세게 내리던 날, 그 누나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공허하고,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모습.

그래도 저번 카페에서 만났을 때는, 생기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사는 남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는 말이다.

안다.

나 같은 새끼보다 훨 좋은 남자가 많고, 아무리 그래봐야 아직 군대도 안 다녀온 애송이인 나한테는 그다지 끌리지 않겠지.

그래도,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이 마음도 정리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꺼내 달라 아우성을 치니, 너무나도 괴롭다.

그렇게 힘없이 다음 수업의 강의실로 발을 옮기고 있을 찰나였다.

“여! 호준? 왜 이렇게 힘이 없어?”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등 뒤의 충격에, 나는 뒤돌아본다.

“아이....깜짝 놀랐잖아요. ‘상수’ 선배.”

내 뒤에는 반짝거리는 금발 머리를 휘날리는 상수 선배가 나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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