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chapter 5:두 번째 봄을 팔다.(2)
* * *
“그럼, 다녀올게.”
철컥.
현관의 문이 두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응.”
이윽고 집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현수의 배웅에 살짝 움찔했지만, 결국 문은 다시금 닫히며, 나는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아파트를 나온다.
혹여 누군가가 알아보진 않을까, 현수네 집에서 나온 것을 보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입고 있던 회색 후드티의 모자를 덮어, 얼굴을 완전히 가려본다.
그래봐야 알아낸다면 다 알아내겠지만, 이건 내 심적인 문제였다.
그렇게 터벅터벅, 걷다 보면 아파트 단지의 출입구가 보였다.
검은색의 승용차가 이미 조명등을 깜빡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누군가가 나인 것은, 별 설명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굳이 차 뒷번호를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째서 다들 검은색을 선호하는 걸까?
밤에 잘 안 보이니까?
그렇다면 일리가 있다.
승용차까지 10m 남은 시점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다.
후.
하.
침착하자.
그냥 배달이야.
후.
그리고는 다시금 발을 옮긴다.
녹색.
빨간색.
녹색.
빨간색.
아파트 입구에 깔린 콘크리트 타일들을 세어본다.
대각선에서 대각선으로 깔린 타일들에 발을 맞추어, 천천히 걸어간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승용차 바로 앞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난, 아주 재빠르게 차의 뒷좌석의 문을 열고 곧바로 탑승했다.
괜히 망설여봤자, 만약 밖에서 누가 본다면, 수상쩍게 보일 것 같았다.
차 내부에는, 저번엔 있었던 하린은 없었고, 운전석에 있는 무미건조한 남성만이 운전대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아..그....안녕...하세요...?”
[........]
“...앗!”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도, 아무 말도 없는 남성보다 더 빨리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조수석에 있는 작은 가방을 나에게 건넬 뿐이었다.
보라색의 작은 크로스백.
나는 잠시 그 가방을 들어 보이다가, 이내 지퍼를 열었다.
“....윽!”
열자마자 보이는 분홍빛에,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옅은 분홍색의 가루는, 마치 사람의 피가 연하게 희석된 것 같았다.
그만큼 위험한 물건,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작은 쪽지.
이쪽이 중요했다.
나는 저번에 하린이 말했던 말을 천천히 곱씹어본다.
“거래는 일주일에 약 3번.
정확한 시간은 내가 건네준 폰으로 일정이 정해지면 알려 줄 거야.”
그래, 그래서 오늘 오전에 연락이 왔고, 오늘 밤. 이렇게 나왔다.
“그래서 밤 11시에 나오면, 네 아파트 단지 앞에, 우리 조직원이 한 명, 검은 차를 몰고 있을 거야. 번호는 0000.....”
그래, 그래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네가 차에 타면, 앞에 있는 친구가 작은 가방을 하나 건네줄 거야, 거기엔 네가 팔아야 할 물건과 쪽지가 들어있어.”
나는, 그녀가 말한 쪽지를 들어, 조심히 열어보았다.
“거기엔 팔아야 할 손님이 있는 곳, 시간, 파는 양, 가격이 적혀있어.”
그녀의 말대로, 작은 쪽지에는 아주 빽빽이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오늘 팔아야 하는 물건은 총 세건.
그들, 손님이 있는 모텔이 적혀있었다.
그 쪽지를 다 읽고 내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운전석의 사내는 페달을 밟아 차를 운전시켰다.
그렇게, 오늘의 밤은 시작되었다.
*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한 차는 갓길에 주차한 채, 깜빡이등을 켰다.
“.....그럼.”
나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은 남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차 밖으로 나왔다.
308호.
그곳에 첫 번째 손님이 있었다.
도로를 건너고, 입구를 연다.
상당히 오래돼 보였지만, 사람이 없는 기계로 계산하는 시스템이어서 카운터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1층에는 빈방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
308호.
그 방에는 녹색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의미였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탑승한다.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
나는 무의식적으로, 목에 걸린 십자가를 잡았다.
안다.
이 십자가가, 사람의 목숨을 뺏을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을.
그때, 집에 돌아와서 당장이라도 방구석에 처박아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래도 내 몸을 지켜야 하잖아.’
‘안 쓰면 되는 거야.’
라는 말로 치장한다 한들, 나는 그냥 무서운 거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러니까, 보험용이라면, 혹시나 하는 사태에 대비하는 거라면.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내 목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내가 누른 층에 도착했다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뚜벅뚜벅.
수많은 문이 이어진 복도를 걷는다.
308호.
나는 그 문 앞에 섰다.
“...아.”
떠오른다.
내가 처음으로 몸을 팔았던 3년 전.
그때도 이랬다.
몸은 떨리고, 속은 매스꺼웠다.
결국 견디질 못하고 잠시 건물 밖을 나갔다가, 이내 수긍하고 돌아왔다.
그때는, 잃을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망설이고, 도망치고, 현실을 외면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나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
이제 망설임은 없다.
똑똑.
308호의 문을 두들기자, 그 소리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허둥지둥 현관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
빼꼼 열린 문으로, 시선이 느껴졌다.
마구 흔들리는 동공이지만, 무언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매고 있는 가방을.
“윽...!”
이윽고 문이 활짝 열리더니, 우악스러운 손이 튀어나와 내 팔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철컥.
문이 닫혔다.
“너, 뭐야. 그 계집은 어디가고 네가 왔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에 약간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
그는 사각팬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기에, 신체 곳곳이 잘 보였다.
몸뚱이는 술배로 이곳저곳 망가졌지만, 그의 팔뚝에는 용이 그려진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팔뚝에 보이는, 수많은 바늘자국.
“....하...아니 그 사람은 일이 생겨서, 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하린의 이름을 말하려고 하다가, 즉시 멈추고 대충 둘러대었다.
이름을 말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이 내 혀뿌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 이걸 보여주면 안다고, 그러시던...데.”
“뭐야 이건.”
그리고 나는 가방을 뒤적거려, 손님들이 적혀있던 쪽지가 아닌, 다른 종이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맞는 것 같네.”
그는 그것을 펴 보이더니, 이내 다시금 접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 종이에 뭐가 적혀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그 종이를 다시 받아드려, 가방에 넣었다.
“그럼, 어서 물, 물건이나 내놔!”
“......”
308호.
줘야 할 건 작은 지퍼백 하나.
나는 가방을 뒤져, 작은 지퍼백에 담긴 그걸 꺼내 들었다.
“돈부터, 주세요.”
“.....쯧.”
하지만, 바로 건네지 않았다.
하린이 나에게 신신당부했던 것.
바로 계산이었다.
마약을 파는 것도 결국엔 모두 돈을 위한 것.
그렇기에 계산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나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그는 내 말에 혀를 차기는 찼지만, 행동만큼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침대 옆에 놓여있던 가방을 꺼내, 현금다발을 꺼냈다.
탁, 탁탁.
고무줄에 묶인 현금다발이 바로 내 눈앞에 쌓였다.
“자, 빨리 확인해라.”
“그, 그럼...”
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돈을 세었다.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 지폐 100장.
500만 원 이었다.
“마...맞지? 맞지? 그러니까 어서 내놔!”
“아, 네. 여...여기요.”
“하...하하....조....좋아! 얼른 돈 들고 꺼져!”
돈을 다 센 나에게 얼굴을 들이미는 그의 동공은 새빨간 핏줄이 터질 것만 같이 서 있었다.
돈을 가방에 넣음과 동시에 약을 건네자, 그는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내쫓았다.
그렇게 나는 모텔 방에서 나와, 로비에 우뚝 섰다.
500만 원.
이 조그마한 가루가, 500만 원 이었다.
이딴 가루가 도대체 뭔데, 500만 원이라니.
“...미쳤어.”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쾌락에 젖은 남자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
어이가 없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되고 나서 3년.
그 3년 동안 나는 남자들에게 내 몸을 팔았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고, 그렇기에 어떻게든 3년간 버텨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정말로, 정말로 의미 없고 치욕스러운 3년이.
정말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은 다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술과 담배에 찌든 신체와,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수치심과 마음.
그렇기에, 다시는 봄팔이 따윈 할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다시 다른 봄을 팔게 되었다.
3년 전, 그날과 마찬가지로,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
나를 지켜주었던 현수를 위해, 팔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보상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나는, 이미 한 번.
깊은 우물에서 내려온 밧줄이 삭은 밧줄임을 몸으로 겪어서 잘 암에도.
다시금 내려온 밧줄을 잡았다.
이 밧줄은 정말 멀쩡한 밧줄일까?
아니면 저번처럼 삭은 밧줄일까?
하지만, 고민 따위는 할 수 없었다.
분명 메말랐던 우물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으니까.
바닥에 축축이 스며든 물이 발목, 다리, 허리, 어느새 내 목 바로 아래까지 차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기에 잡았다.
이 밧줄이 멀쩡하든, 삭았든, 나는 잡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거다.
우물 바닥에 가라앉아, 익사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아래로 돌리지 않는다.
그저, 밧줄이 내려온 위를 향해.
반짝거리는 별들이 수놓은 맑은 하늘을 보며, 아래를 외면한다.
그래야만, 견딜 수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