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chapter 5:두 번째 봄을 팔다.(1)
* * *
“에구...우리 미영이....많이 아팠어?”
“...........”
살벌한 얼굴로 내 허벅지를 태연하게 찔렀던 하린이, 이제는 콧소리까지 내며 직접 상처 부위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읏..!”
“미안해~ 그만큼 언니가 많이 급했거드은....그래서 성질을 좀 내버렸네?”
이 여자의 얼굴은 몇 가지나 되는 걸까?
금방까지 나를 협박하던 그 여자가 맞는 걸까?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태도를 바꾸어대니, 나마저 혼란에 빠질 지경이었다.
“자....깊게 찌르지도 않았으니, 금방 아물거야. 내가 조절해가면서 찔렀거든...”
“...........”
밝게 웃으며 연 입에서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들이 나오니, 괴리감이 엄청났다.
“자....그럼 이 정도로 하고, 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네.”
마지막으로 붕대를 묶은 그녀가 내 허벅지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그전에, 아까 말했지?”
“무....뭘요?”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하린은 나에게 물었다.
“커피 한 잔 하기로 했잖아~ 여기 근처에 진짜 맛있는 카페가 있거든~ 일단 거기로 가자.”
“커...커피요?”
살벌하기 그지없는 이 상황에 천진난만하게 커피를 마시자는 하린의 말에, 나는 더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왜? 싫어?”
“........아니요...”
“그래, 그럼.....[거기로 가자.]”
[알았다.]
그런 하린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하질 못했다.
딴지를 거는 것도 지치고, 차라리 그냥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멈춰져 있던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고, 이윽고 나를 태운 차는 도로로 진입해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
“여기 어때? 좋지?”
“네....뭐...”
내 맞은편 자리에 앉은 하린이 탁자에 턱을 괴고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가 데려온 카페....라기보단 펍에 가까운 이 가게는 상당히 시끌벅적했다.
맥주와 안주도 팔지만, 커피도 파는 신기한 가게였다.
가게의 구석에는 구닥다리 네온사인이 꿈뻑이며 반짝거렸고, 주변에는 신나게 맥주를 마시는 손님들과 비치된 당구대에서 당구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커피는 뭘로?”
“저...저는 그냥 에스프레소....”
“으음~ 우리 미영이는 완전 도시 여자구나? 멋있는데? 난 그거 써서 못 먹어~ 난 달콤한 걸로 마실래~”
메뉴판을 뒤적거리며 고민하던 하린이 나에게 묻자, 의외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는 우리가 앉아있는 좌석의 바로 앞쪽에 앉아있던 정장의 사내들에게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그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바텐더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자...커피는 시켰고....이젠 진짜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네?”
“.........”
“자. 이게 네가 팔아야 하는 물건이야.”
하린은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가방의 지퍼를 열더니, 무언가를 주섬주섬 찾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
작은 지퍼백에 담긴, 분홍빛 가루.
하린이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마약이라는 것을.
“[весна...] 라고 부르는 물건이야. 한국말로 하면....봄...그래. 봄이라고 하네.”
“....봄...”
“색깔이 분홍빛인 것도 있고, 이걸 하고 나면, 마치 봄 길에 피어난 동산에 눕는 기분이라나 뭐라나....아무튼 약쟁이 새끼들 생각하고는 참....”
봄.
분홍빛의 반짝거리는 가루는, 사람들에게 봄을 심어주는 모양이었다.
“별것 없어. 너는 내가 연락하면, 정해진 물건과 주소지를 받고, 약을 넘기면 돼. 간단하지?”
“.......네....”
간단해서, 마약을 얻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간단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실패한 미국처럼, 학생들도 대마초를 구매한다던가, 코카인을 살 딜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마약이라는 건,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소재였다.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해 봐야, 아주 가끔 뉴스에 나오는 마약사범들, 특히 고위층 자제들의 마약 거래 같은 것이 뉴스에 나오고는 했다.
그런 마약이, 당장 내 눈앞에 있고, 방법이 있다면 쉽게 구할 수 있다니.
너무나도 어이가 없고, 허탈하고, 역겨웠다.
“....왜? 해보고 싶어?”
내가 그녀의 손에 들린 마약을 빤히 보고 있자니,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 아...아뇨! 절대로...! 싫어요...!”
나는 그 즉시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미쳤다고 내가 마약을 하겠나.
“그...그냥.....하...한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 그것참 다행이야.”
“....네?”
내가 극구부인을 하며 말하자, 하린은 무언가 안심한다는 듯이 말했다.
“딜러가 약에 빠지면, 정말 쓰잘대기 없어지거든.
손님 주라고 건넨 물건에 손을 대질 않나, 혹해서 물건을 들고 튀질 않나.
우리 몰래 가격을 후려쳐서, 지 주머니에 돈을 쑤셔 넣으려 하질 않나.....정말로.......귀찮아지거드은....“
섬뜩.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마약에 흥미가 없다는 것에 안심한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하린이 말했던 행동들을 하지 않도록, 협박하는 것.
만약, 내가 하린이 경고한 행동을 몰래 했다가 걸린다면, 그녀는 스스럼없이 날카로운 독니로 나를 물어 죽여버릴 것이다.
“......”
그렇게 생각하니까 손발이 떨리고 자꾸만 식은땀이 났다.
“........물로온! 우리 미영이가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
“으...으븝...!”
날카로운 눈빛을 순식간에 거둔 하린은 내 볼을 꼬집어 늘리며 웃었다.
“연락은 이걸 사용하면 될 거야.”
하린은 마찬가지로 마약을 꺼낸 가방에서 작은 휴대폰을 하나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선불폰이야, 연락은 여기로만 할거고,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는 전화하지 마.”
무색에 딱딱한 폴더폰을 이리저리 만지던 나에게 그녀는 당부했다.
“그리고, 이게 필요할 거야.”
“......그...그게요?”
나에게 폰을 건넨 그녀는, 갑자기 손을 자신의 목뒤로 넘겨, 목걸이를 풀었다.
언제나 그녀의 목에서 찰랑거리는, 그녀의 내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은색 십자가.
그 목걸이를 풀어 해친 그녀는, 나에게 그 목걸이를 내밀었다.
“자, 잘 들어. 딱 한 번만 설명 해줄 거야.”
그러던 그녀는, 은색 십자가를 뒤집어, 작게 튀어나온 작은 무언가를 꾹 눌렀다.
그러자, 십자가의 끝부분에 작은 구멍이 열렸고, 아주 작은 손잡이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설마.
“이....이건?”
“조금 작긴 하지만, 위험할 때 써, 한 발밖에 쏘지 못하니 신중하게, 머리를 조져.”
총.
그것은 너무나도 이질적이며, 생김새와 맞지 않는 물건이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에서도, 총을 쏴 본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것보다는 수십 배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엄청난 반동과 함께, 순식간에 표적지를 꿰뚫어버리는, 살인 도구.
그런 물건을, 그녀는 나에게 들이밀었다.
“초...초초...총이잖아요...! 이...이걸 어째서 나한테...?”
“약 때문에 가끔 머리가 돌아버리는 놈들이 있거든, 그런 놈들한테 써.”
“히...히익...!”
갑작스러운 총기의 등장에 놀란 나한테 억지로 십자가를 쥐여 주려던 하린의 손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쳐내고 말았다.
“자, 가만히 있어. 내가 목에 매어 줄 테니까.”
“흐윽....!”
하지만 그녀는 내 의사 따위는 존중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서는 손수 은빛 십자가를 내 목에 걸어주었다.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십자가는, 전혀 성스럽지도, 안정감 있지도 않았다.
이 싸늘한 철기의 차가움이, 나는 그저 너무나도 역겹게 느껴졌다.
“...왜...왜 십자가인 가요...?”
“응? 어째서 모양이 십자가냐고?”
그런 흉흉한 무기를, 어째서 그녀는 성스러움의 상징인 십자가의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난, 신이라는 작자를 안 믿어.”
그렇게 말하며 하린은 웃었다.
*
“아, 오셨어요?”
철컥하며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 앉아있던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발을 짚으며 다가왔다.
“.....기다리고 있던 거야? 좀 쉬지...”
“괜찬아요! 늦은 시간이라 좀 걱정도 되기도 했고.....그 여성분과는 즐거웠나요?”
“어?....어어..?! 오...오랜만에 보니까 즐거웠어.”
“그렇다면 다행.....엇? 미영씨, 허벅지가 왜 그래요?”
“아...? 아아.... 이거? 그....실수로 넘어져서....언니가 치료해줬어.”
자꾸자꾸 거짓말이 나왔다.
그렇게 반갑게 나를 반겨주고, 걱정해주는 너에게.
‘나는 지금 협박받아서 마약 딜러가 됐어, 그 협박은 너를 목표로 하는 협박이었어.’ 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절대로.
“아...나 조금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볼게. 오랜만에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를 해서...그런가봐.”
“네, 푹 쉬세요!”
괜찮아.
너는 나를 도와줬잖아.
언제나 나를 반겨주고, 해맑게 웃어주잖아.
그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절대로 용납 못해.
괜찮아.
네 앞에서 가면을 쓰고, 일을 열심히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신분도 생긴다면, 너와 더욱 즐겁게 살아갈지도 몰라.
괜찮아.
“나는, 괜찮아.”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목에 걸린 십자가를 손으로 쥐었다.
바깥바람에 식혀진 은빛 십자가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