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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49화 (49/91)

〈 49화 〉 chapter 4:우리가 춤추던 9월은, 분명 맑은 날 이었어요.(13)

* * *

똑딱거리는 비상등이 꺼졌다, 켜졌다 할 때마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의 텅 빈 공간을 마치 연속 촬영을 하는 것처럼 비춘다.

두근. 두근.

어떻게든 태연한 척을 하려고는 하지만, 심장 박동은 그런 그의 외면과는 다르게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 박 실장은 태연한 척, 담배를 물었지만, 떨리는 손은 자꾸만 부싯돌을 헛돌아 불이 붙혀지지 않았다.

결국 피지도 못한 담배를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그대로 골목길을 바라본다.

“......”

묵직하다.

뒷주머니를 쓰다듬는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강철의 한기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가 이렇게 될 것은 이미 예정된 순서일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폭력과 일반인들보단 조금 더, 이쪽 세계에 아는 것이 많았을 뿐.

능력이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더 위의 것을 탐했다.

그렇기에, 고작 창관의 지킴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주제에 맞지 않는 것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강한 척, 여유로운 척 해 봤지만, 그에게 보이는 것은 낭떠러지 끝까지 몰린 자기 모습이었다.

이젠,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해도, 상황은 그를 자꾸만 뒤로 내몰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는 잠깐의 하늘을 부유하다가, 이내 처참하게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왔다.”

깜빡이는 불빛이 비치는 골목길에 그림자의 음영이 나타났다.

또각또각 거리는 구둣발 소리가, 열어둔 창문을 통해 들려왔다.

한 손에는 가방을, 그리고 양쪽에는 덩치가 비대한 남성 둘을 데리고 나타난 여성.

하린 이었다.

*

[여기서 기다려.]

하린은 자신의 양옆에서 걸어가던 그들에게 손을 내밀며, 대기시켰다.

아무리 골목길이라곤 해도, 박 실장이 세워둔 차는 골목길의 바로 출구에 주차되어 있었다.

괜히 우르르 몰려갔다가 사람들 눈에 띄어봤자,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지, 두 사내 또한 그녀의 말을 받아들여, 그대로 정지한 체, 그녀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코쟁이 놈들은....”

러시아 마피아들은, 덩치도 크고 과묵해서,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뭐, 자기 자신도 엮여있으니,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나 산다니....무슨 생각인거야?”

그동안 보아온 박 실장은, 이렇게나 많은 양의 물건을 살 돈이 없어 보였는데, 갑작스레 자신을 불러낸 것에 하린은 약간의 의아함을 가졌다.

아니면 다른 속셈이라도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곧 그 의문은 잊어버렸다.

금방 자신의 호위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가 괜히 난동을 피운다면, 사람들이 금세 눈치를 챌 것이고, 그렇다면 박 실장 자신에게도 좋을 건 없었다.

돈이야 뭐, 운 좋게 얻었든, 아님. 약에 찌들대로 찌들어, 뇌가 녹아버려서 앞뒤 생각 안 하고 여기저기 빌려왔거나 했을 것이다.

별 것 아니다.

그저, 약을 팔고, 돈을 번다.

참으로 단순하고 명쾌한 일.

심지어 박 실장하고는 이미 수십 번은 했던 행위였다.

그저, 단순히 오가는 거래의 양이 늘어났을 뿐.

그렇기에 하린은 마지막까지 의심하지 못했다.

하린은 어느새 박 실장이 주차해 둔 밴까지 다가와,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아니, 앞 좌석으로 올라타.”

“뭐?”

그 찰나, 창문을 열어 하린에게 얼굴을 보인 박 실장이 앞좌석으로 탈 것을 요구했다.

“빨리.”

“...그래 뭐.”

언제나 뒷좌석에 올라탔던 그녀였기에, 약간의 의문이 다시금 들었으나, 의심까지는 가지 못했다.

반쯤 열리던 뒷좌석의 문을 닫고, 하린은 앞으로 올라탔다.

“자....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이 정도의 양을 부르다니, 돈은 있는 거 맞아?”

“물건, 물건부터 보여 봐.”

“돈부터.”

“........”

하린의 말에, 박 실장은 뒷좌석에 있던 큰 가방을 당겨서, 가지고 왔다.

“세 봐.”

“.....이런 돈을 어디서 구한거야?”

박 실장은 무성의하게 가방을 하린에게 던져 보이자, 그녀는 지퍼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살폈다.

가짜는 아니다.

만약, 위조라면 죄다 뻣뻣한 새 돈 일 테지만, 이 가방에 들린 현금은 어떤 것은 낡았고, 어떤 것은 새 지폐였다.

그리고 애초에, 박 실장 같은 사내가 어디서 위조화폐를 구하겠는가.

이 돈은 진짜였다.

“알 것 없어, 그러니까 어서 물건이나 보여 봐.”

“....그래.”

지폐를 확인한 하린은, 자신이 들고 온 가방을 박 실장에게 내보였다.

“.....색이 다른데?”

하지만, 가방을 열어본 박 실장은 의아한 듯이 하린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본디 그가 사던 약은, 백설탕 같은 새하얀 색이었지만, 그녀가 들고 온 가방에 담긴 가루는, 분홍빛이 감돌고 있었다.

“아, 신제품이야, 질은 더 좋아졌고, 효과도 더 뛰어나지.”

“.....설마 나를 속일 생각은....”

“그럴 리가, 이 일은 결국 신용이야, 신용이 깎이면 당신 같은 약쟁이들이 살 리가 없잖아.”

“........”

“자, 이제 가방 넘겨, 잘 쓰고. 담에 또 이용해 줘.”

약이 담긴 가방을 넘긴 하린이, 박 실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대로 끝난다면, 그저 그런 거래 중 하나가 될 것이었다.

하린은 약을 넘기고 돈을 받고, 박 실장은 돈을 넘기고 약을 받고.

늘 그랬듯이, 그런 거래.

하지만, 박 실장은 이미 낭떠러지 끝까지 밀려 있었다.

그렇기에, 늘 그랬던 거래는, 이제 없었다.

“그렇지....그래....움직이지 마라.”

“....!”

철컥, 하는 불쾌한 금속음.

오른손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

박 실장이 하린에게 겨눈, 권총의 무게가, 순식간에 차 안의 공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때 늦은 만우절 장난이라고 생각 안 해? 아님 할로윈인가? 내가 알기로는 할로윈은 아직 멀었는데?”

“장난? 네가 보기에는 이게 장난감 가게에서 파는 싸구려 장난감처럼 보이나?”

그럴 리가.

하린은 잘 알고 있다.

저게 진짜 총이라는 것쯤은.

이 일을 하면서, 저런 걸 보지 못한다는 것이 기적일 테니까.

“하. 약에 찌들더니 이젠 완전히 미쳐버렸나봐...?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

하린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신의 목에 걸린 십자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의심했어야 했다.

자신을 보호해 줄 호위들은 너무 멀었다.

어떻게든 소리를 질러, 상황을 알린다고 한들, 그 전에 차가운 납탄이 자신의 머리를 꿰뚫을 것이다.

“.......사람을 쏴 본 적은 있어?”

“....닥쳐.”

“손이 벌벌 떨리네? 응?”

“......”

박 실장이 들고 있는 권총이 자꾸만 흔들거렸다.

안다.

이 사내의 뇌는 단순하고, 허세에 찌들어있었다.

사람을 패고, 구타하고, 협박하는 인간 말종 쓰레기.

근데, 그런 그가.

사람을 죽여본 적은 있을까?

“지금이라도 관둬, 저기 있는 코쟁이들이 이 광경을 아직 못 봤으니까, 이대로 넘어가면 아무 일도 없어. 여기서 나를 쏘고, 무사히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다 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지랄하고 있네.”

“아윽...!”

갑작스러운 통각에, 하린은 신음을 앓았다.

어느새, 그녀의 허벅지에는 날카로운 날붙이가 깊게 박혀있었다.

“내가 사람 쑤시는 건 하나 잘해, 그리고, 이젠 총도 한번 잘 쏴보려고 하는데, 어때?”

“이...씨...발새끼...!”

박 실장은 하린의 허벅지에 칼을 박아 넣은 왼손으로, 하린의 얼굴을 잡아끌었다.

“헛수작 부리지 마라, 자꾸 어디로 손이 가?”

“이 개새끼야.....끄아...! 읍...!”

“어이구, 닥쳐, 니가 입을 여는 건, 남자 새끼 좆이나 빨 때 빼고는 쓸모가 없으니까.”

자꾸만 신음이 터져 나오는 하린의 입을 거칠게 틀어막은 박 실장이 매섭게 윽박질렀다.

“......후회할거다...”

“이미 한 평생 할 후회는 다 했다. 그리고, 이건 절대로 후회 안 해.”

“윽....!”

이제, 그의 오른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

[상당히 늦는군.]

[뭘 하는지, 설마 재미 좀 보고 있는 거 아냐?]

하린의 말 대로, 그저 멍하니 서서 검은 밴을 바라보던 두 사내는 시시껄렁한 소리나 하며 하린을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물건 거래는 어쨌든 시간이 중요했다.

말은 최소한, 행동은 신속하게.

그리고 그런 것은, 자신들 보다 이 일을 오래 해온 하린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가봐야 겠군.]

[뭐? 됐어, 저 계집이 여기 있으라고 했잖아. 뭐, 갔다가 서로 물고 빨고 하고 있으려면 어쩌려고? 너도 끼게? 하....확실히 저 년 빨통이 죽이기는 하지~]

마르칠은 그런 동료의 헛소리를 가볍게 무시한 채, 천천히 뚜벅뚜벅 차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앞문이 벌컥 하고 열리더니, 하린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이제 끝났나 싶어 잠시 걸음을 멈춘 순간.

하린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쓰러지고 말았다.

동시에 깜빡이가 켜진 차는, 이내 거친 시동음을 내며 빠르게 골목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무...무슨!]

마르칠은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빠르게 발을 놀려, 하린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그녀가 쓰러진 곳으로 다가가니, 그녀의 허벅지가 닿는 바닥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칼에 맞은 하린에게 다가간 마르칠이 그녀에게 물었다.

[쪼......쫏아...! 약을 들고 도망갔....어...!]

그런 질문에 그녀는 고통을 참아가며, 간신히 말을 이어 나갔다.

[마르칠?! 오...이런....개새끼가...!]

그런 돌발 상황에 놀란 것은 마르칠 뿐만이 아니었다.

뒤늦게 달려온 동료가 하린을 살펴보고는, 급하게 그녀를 지나쳐 골목길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이미 밴은 도로에 올라, 빠르게 달려 나가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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