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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43화 (43/91)

〈 43화 〉 chapter 4:우리가 춤추던 9월은, 분명 맑은 날 이었어요.(7)

* * *

없다.

“...어?”

분명, 있어야 할 돈이, 없다.

“....아하하....나도 참...실수로 다른 락커를 열었구나...? 응...그런 거였어...”

텅 빈 락커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바로 옆 칸의 락커를 열기 시작했다.

0829

삐. 삐.

“왜...왜 이러지? 왜 안 열려...?...응?”

덜컹, 덜컹.

허나, 옆 칸의 락커를 열려고 해도,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경고음과 두꺼운 잠금장치만이 나를 반겼다.

“이럴 리가...없잖아..? 응? 열려....열리라고...!....씨발 열리라고!!!”

덜컹, 덜컹, 쿵쿵.

흔들흔들하던 락커를, 전력으로 두들기자,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상당히 큰 소리였기에, 무슨 일인지 싶어 이곳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알고 있다.

내 락커는 여기라는 걸.

애꿎은 다른 락커를 두들겨봤자, 열리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럼.

내 돈은?

“돈....내 돈...! 돈...!”

나는 계속해서 원래의 락커 문을 닫았다가, 다시금 열었다.

장난치지 마.

어?

이렇게 닫았다가, 다시 열면, 다시 돌아올 거잖아?

응?

제발...

“무슨 일이십니까?”

“.....!”

그렇게 한참 동안 락커의 앞에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으니, 지하철의 보안요원처럼 보이는 남성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돈...”

“네?”

“돈이...사라졌어요....! 내 돈!! 내 오천만 원이!!! 사라졌다고!!”

“지...진정하세요!”

“잠깐 숨 좀 쉬고, 진정하세요!”

그들이 다가오자, 나는 두 명 중,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는 청년을 끌어 잡으며 울부짖었다.

­무슨 일이야?­

“아...저기, 한 여성분이, 락커에 있는 물건을 분실한 것 같습니다.”

치칙 거리는 무전 소리에 다른 직원이 무전기를 들고, 무어라 말했다.

“후....저기 여성분? 일단,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 보시죠. 어떤 물건이 사라졌다는 건가요?”

“그...그러니까....제 돈.....분....분명히...! 여기 있었거든요? 네? 제 오천만 원이...종이 상자에 담겨서.....넣어눴단 말이에요...!”

냉정해지라는 직원의 말에, 나는 횡설수설하기는 했지만, 천천히 무슨 일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락커에 넣어둔 오천만 원....어째서 오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락커에 보관하신 겁니까?”

“여기, 경고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만큼 큰돈을 락커에 보관하지 말라는 경고문도 있고, 분실 및 도난의 책임은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예?”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가까스로 붙잡은 희망이란 동앗줄을 잘라버리고 말았다.

“그...그런...! 도...도둑이잖아요! 무...물건을 훔쳐가고..! 범죄를 저질렀는데...! 전부 보관자 책임이라고요....?”

“규정상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큰돈은 은행에 보관하셨어야죠.”

웃기지 마.

내가 은행에 넣기 싫어서 이 지랄을 한 줄 알아?

못 넣으니까.

신분이 없어서 통장 하나 만들지 못하니까.

그래서......그래서 지하철 락커를 사용했던 건데...

“차...찾아 주세요....!”

“네?”

“시...CCTV로 누가 가져갔는지....알 수 있잖아요!!! 제...제발...!”

대한민국의 CCTV는 정말 수많은 곳에 존재했다.

그것은 물론, 이 락커가 보이는 곳에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

어떻게든 범인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어떻게든.....

“...선배, 어떻게 하죠?”

“....제정신이 아니야, 일단 경찰에 넘기자고...”

“....!”

그렇게 내가 손을 싹싹 빌며 그들의 앞에서 빌기 시작하자, 그들은 자기만 들린다고 생각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전부 들렸다.

경찰.

한국의 치안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좋은 나라였고, 그만큼 범인들이 잡히기 쉬웠다.

실제로, 만약 경찰에 신고한다면, 경찰들의 수사력은 순식간에 범인이 누구인지, 어디로 갔는지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신분이 있는, 무고한 시민이었다면 말이다.

경찰에게 가서, ‘나는 신분이 없고, 신분을 사기 위해서 창녀 짓을 하면서, 오천만 원을 모았는데, 그걸 도둑맞았어요.’ 라고 한다면, 누가 먼저 잡혀 들어갈까?

“일단 신고부터 하자고.”

“네....앗! 이봐요!”

그렇게 서로 쑥덕거리며 한쪽이 휴대폰을 집어 들자, 나는 그들을 밀쳐 내고 출구로 달려 나갔다.

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모든 것들이 사라져간다.

지난 3년 동안 있었던 일들이.

내 몸울 팔고, 내 모든 것들이 망가지고, 하염없이 우물 안에서 동앗줄을 붙잡고 올라가던 3년이.

역시 동앗줄은 삭은 동앗줄이었고, 나는 그대로 우물의 제일 깊숙한 곳에 처박혀버렸다.

사실, 알고 있었다.

범인은 박 실장이라는 것을.

나는 박 실장이 수면제든 뭐든 수상한 것으로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달리면서 꺼낸 폴더폰으로 연신 전화를 걸어도, 박 실장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어째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돈도 꼬박꼬박 내고, 자기가 꼴리면 대충 방으로 들어와서 따먹고 가는, 손쉬운 인형이었잖아.

당신이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

그런데, 왜...?

에스컬레이터를 탕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박차고 뛰어올랐다.

사람들을 밀치고, 지나쳤다.

하나같이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지하철을 나오자, 들어올 때는 분명 밝은 하늘이, 짙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내 얼굴에, 톡! 하고 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한 방울로 시작된 빗방울은, 어느새 소나기가 되어,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깜짝 놀라 누군가는 지하철로 들어가고, 뛰어갔다.

미리 우산을 챙긴 사람은 이럴 줄 알았다며 들고 있던 우산을 펼쳤다.

나만이.

오직 나만이 쏟아지는 소나기의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

나는 걸었다.

어디로?

나는 걸었다.

이제 어떡하지?

나는 걸었다.

지난 3년간 개고생했던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어.

나는 걸었다.

이제 신분을 구할 돈은 어디서 찾지?

나는 걸었다.

또 창녀짓을 할 거야?

나는 걸었다.

이제....현수는 어떻게 만나지?

멈칫.

현수.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준 유일한 사람.

젊고, 부자인 화가 차현수.

그에게 오천만 원이라는 돈은, 어떤 돈일까?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만, 그에게는 조금 노력하면 쉽게 구할 수 있을 돈일지도 모른다.

“하아...하아...”

쏟아지는 빗방울에, 체온을 뺏겨서, 너무 추웠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입술이 파래졌다.

일단, 돌아가자.

일단 비를 피해서, 천천히 생각하자.

아직, 당장 살 곳은 있어, 괜찮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내가 사는 빌라로 돌아갔다.

_____________________

“.....뭐야?”

분명, 집에서 나올 때는 저런 게 없었는데...?

덜컹거리는 이삿짐 트럭이, 내가 있던 방으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저....저기?”

그 광경에 놀란 나는 후다닥 달려가, 근처에서 짐을 옮기던 이삿짐센터 직원의 팔을 붙잡았다.

“무슨...우악! 깜짝이야! 괜찮으신가요? 우산이 없으신 건가요?”

“저...저기....저기는 제 집인데.....무슨 일이신가요...?”

비에 젖어 만신창이인 내 꼴을 보고 놀란 직원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물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이신지...?”

“내가! 금방까지만 해도 살고 있었던! 저 집이! 왜 갑자기 이삿짐센터가 짐을 옮기고 있냐고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직원에게, 나는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질렀다.

“어이? 뭔 일이야?”

“아, 저기, 이 여성분이 지금 이사하는 곳이 자기가 살았던 곳이라고...”

“뭐...?”

“무슨 일인데?”

내 고함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한둘씩, 무슨 일인가 싶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에요?”

“아아, 사모님. 그게.....이 아가씨가 지금 이사하는 곳이 자기 집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그리고, 상당히 길쭉한 정장 바지를 입고 있던 한 여성이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었다.

“...무슨 소리인지....이 집 계약은 분명, 일주일 전에 끝난 걸로 알고 있어요. 도대체 무슨 소리이신지...”

“.......그 선글라스 쓰고, 뺨에 흉터가 있는....남자랑요?”

“네. 잘 아시네요.”

박 실장.

그는 언제부터 내 돈을 훔칠 계획을 세운 거지?

어째서, 내 돈을 훔친 거지?

지금 하는 일을 전부 포기하고, 어째서?

“.......”

“......일단 계속해서 짐 옮겨 주세요, 시간이 모자랄 것 같네요.”

“..넵.”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못한 채로, 그저 눈을 내리깔고 서있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아니, 조금이라도 힘을 풀면,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봐요, 당신이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간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니, 이만 가주시겠어요?”

“.......”

그녀는 이런 내가 방해된다고 생각하는지, 나에게 손짓하며 이만 꺼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체, 천천히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

“.......이봐요!”

“.....?”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비를 맞으면 감기 걸려요. 자, 일단 이걸 쓰고, 당장 갈 곳이 없어 보이는데, 이걸로 목욕탕이라도 가서, 몸을 씻으세요.”

그렇게 걸어가던 나를 불러세운 그녀는, 나에게 분홍색 물방울이 가득 그려진 우산과 5만 원 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돈.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는, 이젠 불쌍한 거지 취급을 받으며 동정에 젖은 돈을 받는 꼴이 되었다.

모든 게 망가졌다.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이미 부서진 희망을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이고, 본드를 발라봐도,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런 그녀가 건넨 5만 원을 받고는, 하염없이,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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