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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41화 (41/91)

〈 41화 〉 chapter 4:우리가 춤추던 9월은, 분명 맑은 날 이었어요.(5)

* * *

“술...이요?”

“뭐, 혼자서 마시기에는 적적해서, 술 좀 마실 것 같은데? 매일같이 소주병이 나와 있더군.”

“예에...뭐...”

‘갑자기 뭐지?’

나는 느닷없는 박 실장의 제안에,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3년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살갑게 굴지 않았던 박 실장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심경의 변화라도 있는 걸까?

아님 무슨 속셈이라도 있는 건가?

“갑자기 술이라뇨....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로 같이 있던 적 없었잖아요....가...갑자기...술 마실래? 라고 해도...”

“뭐....그냥 오늘따라, 조금 적적하더라고. 싫으면 말아라.”

나는 경계감을 늦추지 않고, 어째서 그러는지 묻자, 박 실장은 아니면 말고 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술...인가...’

그러고 보니, 요즘 술을 마시지 않았네.

몸도, 마음도 지치고, 마침 냉장고에도 술이 뚝 떨어진 참이었다.

‘같이 마실까? 어짜피 내 집에서 뭐 훔쳐 갈 것도 없잖아. 아니, 뭔가 좃같은 일을 벌일 거면, 자기가 들고 있는 마스터키로 내 집 문을 따서 들어왔겠지....’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명의는, 박 실장이었다.

집을 빌린 건지, 아님 산 건지는 모르지만, 결론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도어락을 간단하게 열 수 있는 마스터 키를 들고 있었고, 실제로 불쑥불쑥 우리 집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언제나 월세를 받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일,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면, 진작에 하고도 남았을 그가, 이렇게 술을 마시자는 귀찮은 제안까지 하면서 일을 꾸밀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그럼 좋아요. 어디서 마실까요?”

“내 방이 지금 더러워서, 네 방으로 가지.”

“......네.”

결국, 나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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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너무 휑한 거 아니냐?”

“.......굳이 무언가를 사서 넣을 이유가 없어서요.”

자그마한 화장대, 구석에 개어진 이불과 배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빈 병과 재떨이 대용 종이컵.

그 밖에는 단순한 기본 옵션 밖에 있지 않는, 텅 빈 방을 바라보던 박 실장이 투덜거렸지만, 대충 흘려들었다.

여기가 뭐가 그리 좋다고 공을 들여?

좀 있으면 나갈 건데.

“아무리 그래도 작은 책상 정도는 놓지 그래? 바닥에서 먹게 생겼네.”

“......”

그렇게 말한 박 실장은 바닥에 털석 앉아, 자신이 들고 온 검은 비닐봉지를 뒤적거리며, 술병을 꺼냈다.

“잔은?”

“.....여기 종이컵이요.”

소주 뚜껑을 딴 박 실장이 잔을 찾자, 나는 대충 근처에 있는 종이컵을 건네주었다.

그러고 보니, 술 마실 때 잔이나 컵에 따라 마신 게 얼마 만이지?

매일 병나발만 불었으니 말이다.

“이것 좀, 냉장고에 넣어놔.”

종이컵에 술을 따르던 박 실장이, 여분의 술이 담긴 비닐봉지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굳이 냉장고에 넣어놔야 하나요? 그냥 여기서 꺼내 마시면 될 텐데...”

“난 술이 식는 게 싫어, 그러니 얼른 냉장고에 가져다 놔. 혹시 물도 좀 있으면 가져오고.”

“....네.”

굳이 귀찮게 다 마실 때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귀찮기는 했지만, 술이 식으면 맛이 없다는 것에 동의하는 나는, 귀찮은 구색을 숨기며 냉장고로 향했다.

대충 봉투째로 쑤셔 넣으려다가, 그게 나중에 더 귀찮아질 것 같았던 나는, 하나씩 차곡차곡 냉장고에 술을 채워 넣었다.

그나저나, 술을 얼마나 많이 산 거야?

“저기? 이거 오늘 다 마실 생각이신가요?”

“어..?! 어어!! 그냥 대충 박아놔. 다음에 마시든가 하지.”

‘쯧....여기가 자기 술 창고인가? 그나저나 왜 놀라?’

수많은 술을 집어넣던 내가 고개만 뒤돌아 묻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대충 대답하면서도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음은 없네요.”

“별수 없지. 일단 이거나 받아.”

“네에..”

술을 전부 정리한 내가 자리에서 돌아오자, 그는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르고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뭐, 요즘 돈은 잘 벌고 있나?”

“.....뭐....그럭저럭이요.”

“....신분을 산다고 했나?”

“......네...”

술잔을 받은 채로, 아주 어색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나와 박 실장.

‘이 양반 진짜로 뭐 잘못 먹었나? 오늘따라 왜 이래?’

언제나 단답형 형식의 필요한 말만 건네던 우리 사이인데, 그는 무언가 자꾸 말을 걸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일단 마시지.”

“..네.”

“건배.”

“건배...”

잠시간의 침묵 뒤에, 우리는 대충 잔을 부딪치는 시늉만 하고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

“술맛이....원래 이랬나?”

한순간. 언제나 마시는 술일 텐데, 무언가 맛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무언가....쓰면서도, 이질적인...무언가가....

“실장님. 술맛이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나는 그대론데?”

“그런....가요...?”

그런 이질적인 술맛에, 박 실장에게도 물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대답만이 들려왔다.

“아......뭐...뭐지..? 갑자기 어지러....운데.....”

그리고, 분명 딱 한 잔 마신 것 같았는데, 갑자기 시야가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마셨나? 취기가 훅 오는 것 같다.

“아......으.....아...”

자꾸만 눈꺼풀이 닫히려 하고, 졸음이 쏟아져 내렸다.

“술....더 마셔야 하는데...”

그런 이상한 취기에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그대로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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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들었군.”

박 실장은 급하게 숨기느라고 자기 다리 밑에 숨겨둔 약봉지를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미영에게 다가갔다.

그대로 쓰러졌지만, 맥박도 있고, 숨도 쉬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한동안 깨지 않겠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박 실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왔다.

“.......미안하다고 말은 안 한다. 속는 새끼가 등신이니까.”

마지막으로 미영의 문을 닫기 전, 박 실장은 작은 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림을 끝으로, 철컹하고 문이 닫혔다.

박 실장은 빌라 계단을 내려와, 바깥으로 향하면서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다.”

­뭐야? 벌써 약이 다 떨어졌어?­

그의 귀에, 너무나도 익숙하고, 찢어 발겨버리고 싶은 여성의 목소리가 나긋나긋 울려 퍼졌다.

“그래, 준비해라, 지금 바로 사도록 하지.”

­......그래, 얼마치?­

“5천만 원 치.”

­.....미쳤어? 남은 돈 전부 꼬라박고 약에 취해 형편없이 뒤질려고?­

“닥치고, 준비나 해.”

­........그 정도의 분량을...[닥쳐! 어서 계량이나 해!].....당장 가져갈 수는 없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알겠다. 준비되면 연락해.”

전화를 마무리한 박 실장은, 자신의 차로 다가가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 부드럽게 울리는 엔진음과 밝게 켜지는 불.

박 실장은 허리를 틀어, 저번에 약을 꺼냈던 조수석 수납장에 손을 넣었다.

이번에도 중요한 물건을 수납장에 넣어놓았다.

“......후...”

하지만, 저번의 하얀 결정이 담긴 지퍼백이 아닌, 묵직한 손맛이 느껴지는 차가운 강철이라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정말, 정말 어렵게 구한, 그의 마지막 생명줄이었다.

“.....시발 모르겠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그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자. 매캐한 연기가 차 안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필터까지 빨려, 재만이 남은 꽁초를 대충 창밖으로 집어던진 박 실장은, 페달을 밟아, 길을 나섰다.

그의 차가 달려 나가는 도로에는, 지하철을 지나치려는 차들이 함께 달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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