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chapter 4:우리가 춤추던 9월은, 분명 맑은 날 이었어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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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다.
3년 만에, 언제나 꿈에서만 보던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꿈에서처럼 내게 성질을 내거나, 웃는 모습이 아닌, 일그러진 눈매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엄마의 얼굴을 본 나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아니, 최악이었다.
당장이라도 내가 김상국이라는 것을 밝히고, 끌어안고 싶었다.
내가 엄마 아들이라고, 지난 3년간,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부모님을 걱정시킨, 못난 아들이라고....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김상국’이 아니고 ‘김미영’이 되어있었다.
저 사람은 ‘김상국’의 엄마지, ‘김미영’의 엄마가 아니었다.
김미영이 다가가 엄마라고 불러봤자, 혼란만 들고 올 뿐.
그렇기에 나는 도망쳤다.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일.
부모님이 기겁하며 나를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던 일.
부모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었고, 당시에 나도 잠시 당황했을 뿐,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일이, 지금에 와서야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왔다.
만약, 다시금 다가갔다가, 또다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어떡하지?
당황과 혼란함으로 가득 찬, 수화기를 든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는 눈.
내 모든 것을 부정당하는, 그 눈.
그 눈이 너무나도 무서워, 나는 도망쳤다.
“하아....하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엄마가 있었던 납골당을 빠르게 걸어 나온 뒤로, 버스 정류장까지 전력으로 달렸다.
당장이라도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담배에 찌든 폐가 따끔하게 아려오고, 속은 매스꺼워 헛구역질이 자꾸만 나왔다.
“우으윽....! 흐윽...!”
그렇게 무릎을 굽혀 한참 헐떡이다 보니, 어느새 눈가가 흐릿하게 젖어 들었다.
겁쟁이에 울보인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혐오감이 들었다.
하지만.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깨지고, 망가진 마음을 어떻게든 꿰매고 덧대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더 이상의 상처는 버티기 힘들지 몰라.
그러니까, 묻어버리자.
항상 하던 것처럼, 잊어버리자.
현수, 현수에게 가자.
그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쉬고 싶다.
그렇게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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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46.
이제는 상당히 익숙해진 속도로 외워둔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자, 철컥하고 문이 열렸다.
“아, 오셨어요?”
“응, 안녕?”
그러자, 마침 거실에 나와 있던 현수가 목발을 짚은 체로 나를 반겨주었다.
언제나 초인종을 누르고 현수의 집에 찾아왔지만, 그의 다리가 불편한데 괜히 왔다갔다하는 것도 미안하고, 그의 동의가 있었기에, 나는 현수의 집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커피 한 잔 타줄래...?”
“그럴까요? 마침 저도 무언가 마시고 싶은 기분이에요, 아 참! 선물로 받은 쿠키가 있었는데...”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부탁을 거슬려 하지 않은 현수는 커피 드리퍼에, 갈아두었던 원두 가루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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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맛있다~!”
“그런가요? 이번에 처음 만들어 본 소금 라떼에요.”
“커피가 짭짤하다는 소리를 들어서 반신반의했는데, 위에 올라간 휘핑의 달콤함이랑 잘 어울려서 맛있어!”
“그래요? 다행이다~”
그는 내가 오기 전까지는, 언제나 물은 일절 타지 않은 에스프레소만 마셨지만, 나와 같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여러 가지 변화를 주는 것에 맛이 들었는지, 상당히 생소한 커피들을 만들어보고는 했다.
“쿠키는 어떠신가요? 먹을 만한가요?”
“음, 정말 맛있어, 언제나 맛있게 먹고 있어.”
“그런가요? 하하, 미영 씨가 그렇게 드셔주시니 보람이 있네요!”
나의 단순한 감사 인사에도, 이렇게까지 활짝 웃어준다.
기뻐.
“읏..!”
“어?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나는 순간적으로 떠올린 단어에 화들짝 놀라, 몸을 덜컹거렸다.
“아...아무것도 아니야..! 하하...! 커피 참 맛있네!”
“네에...”
‘뭐...뭐가 기쁘다는 거야? 그...그냥 웃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응...그런 거잖아. 괜히 놀라기는....하하...’
“......너는 근데 언제부터 혼자 살기 시작한 거야?....가족은..?”
다급하게 대화의 주제를 바꾸기 위해, 나는 언제나 혼자 지내고 있는 현수에게 물었다.
가끔, 그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그림의 일로 관계자와 연락하는 것 외에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기에,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가족.....이라...”
“오...왜? 가족이랑 사이가 안 좋아? 내가 괜히 물었나?”
“아뇨, 그냥.....한 번도 가족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뭐?”
“네, 저는 고아에요, 보육원에서 자랐고, 지금까지 혼자 살았어요.”
그리고, 들려오는 대답은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대답이었다.
고작, 가족과 사이가 안 좋겠거니 싶었던 나였기에,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미안....미안해....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아...아뇨! 괜찮아요, 이미 익숙해서...”
어떻게 들으면, 내 질문은 조심성이 없는,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그는 상냥하게 웃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가족 없이 살아왔고, 상당히 살 만하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미영 씨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란 나 보다, 훨씬 멋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내가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있지, 미안한데, 안겨도 괜찮아?”
“....이리 오세요.”
“....응.”
나는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앉아있는 쇼파로 다가갔다.
그가 크게 팔을 벌리면, 나는 그의 품에 들어가, 꼬옥 껴안는다.
그럼 현수가 나를 감싸, 안아준다.
저번에 나를 위로해 주던 것처럼,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에게 안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언제나 같은 섬유유연제 냄새와 커피 냄새.
이게 좋아.
언제나, 나를 껴안아 주는 그의 품.
항상 포근함을 느끼는 그의 품이었지만, 요즘 따라 그에게 안길 때면, 누그러지던 심장이 시끄럽게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나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걸 알아채지는 않는다.
아니, 알아채려고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거면 충분해.
커피를 내려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이렇게 껴안아 주기만 해도, 괜찮아.
만약, 그가 내가 원래 남자였다는 걸 알아버리면, 그는 어떤 태도로 나를 대할까?
혐오스러워할까? 불쾌해할까?
무섭다.
나는 겁쟁이니까, 응, 겁쟁이는, 겁쟁이처럼 있으면 충분해.
지금,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가 내가 남자였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앞으로도 계속.
내 곁에 있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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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골목길의 거리는, 음습하고 어두워,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껌뻑거리는 가로등의 아래를 걷는 나는, 살짝 느껴지는 한기에 어깨를 팔로 쓸어내렸다.
여름이라곤 해도, 아직 초여름이라 상당한 일교차가 있었다.
오늘도 그의 집에서 묵고 싶었지만, 요즘 들어 매일같이 드나들고 있었기에, 조금은 그의 시간을 주고자 원래의 내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길이었다.
마치 감옥처럼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빌라에 들어서자, 조용한 빌라의 내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리 밤이라곤 해도, 아직 오후 10시쯤 정도일 텐데, 불이 켜져 있는 다른 건물에 비해, 단 하나의 방에도 불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로 나와 박 실장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 구역이 곧, 재개발로 인해 사라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집 근처의 골목길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한층 더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살 곳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때쯤까지 충분히 신분을 살 수 있을 테니까, 이번에는 창녀 일 말고, 다른 일을 해서, 어떻게든 진정한 내 집을 찾을 것이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 이윽고 내 집의 현관까지 다가왔다.
무기질적으로 피곤한 손가락을 들어, 도어락 비밀번호를 치고 있을 무렵.
철컹
“...?!”
바로 뒤에서, 무언가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내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여어, 이제 돌아오냐?”
“....집에 계셨어요?”
자신의 집 현관을 벌컥 연, 박 실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당장 할 일도 없고 말이지.”
“...그럼 실례.”
“아, 잠깐.”
그런 그를 애써 무시하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그가 나를 불러 새웠다.
“이런 밤에 혼자 있기도 적적한데, 술이나 한 잔 할래?”
박 실장은 자기 손에 달린 비닐봉지를 들어, 흔들어 보였다.
챙챙 하며 유리가 시끄럽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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