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39화 (39/91)

〈 39화 〉 chapter 4:우리가 춤추던 9월은, 분명 맑은 날 이었어요.(3)

* * *

어릴 적, 철이 없던 시절.

지금도 철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춘기 때의 나는 자기혐오의 덩어리였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것 같았고, 다른 친구들과의 격차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

그런 열등감과 사춘기 특유의 민감한 마음은, 문득 돌발행동을 하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갑자기 버스킹을 하겠다며 기타 학원에 다녀놓고, F코드도 제대로 치지 못할 만큼 땡땡이나 치고 그만두기도 했고, 어느 때는 게임에 푹 빠져, 밥도 먹지 않고 주구장창 게임만 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그러면 그럴수록 성적은 바닥을 쳤고,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자기혐오와 될 대로 되라는 막무가내 성질이 더욱 타올랐다.

그렇게 수학 0점이 새겨진 성적표가 집으로 날아와 부모님이 그걸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몽둥이를 드셨고,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게 늦은 밤, 쓰린 엉덩이를 부여잡고 이불속에 파묻힌 나를 찾아오신 어머니.

어머니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자는 척하는 내 손을 붙잡으셨다.

포근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손이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한 5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말없이 손을 잡아주시고, 방을 나가셨다.

차라리 혼을 내던지, 아님 무슨 말이라도 해주시든지.

그 따뜻한 손이 내 손에 포개어진 내내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나가시고 나서는,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신 걸까?

무언의 의미가 담겨있는 걸까?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왜 그랬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는, 무언가가 내 마음에 들어앉은 것처럼, 불안하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도 모두가 장점도 가지고 있는 반면, 나한테 보이는 단점 또한 있는 친구들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열등감도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무엇을 위해 내 손을 잡으셨던 걸까?

모르겠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누구...?”

“아....! 저....그러....니까아....상국 선...배님 대학 후배...입니다...”

“아아....그렇구나...”

예상치도 못한 엄마의 등장에,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한 나는, 자신을 상국의 대학 후배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고운 아가씨가 제 아들을 찾아오다니....상국이 복 받았네요.”

“아...네...”

내가 여자로 변한 날, 나를 신고하려고 하던 엄마는, 다행히도 내 얼굴을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머리도 자르고, 그때와 분위기가 달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다행인 거야?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게?

지금이라도, 사실 내가 김상국이라고, 제발 믿어달라고 한다면, 이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저기..”

“상국아, 엄마야.”

아주 조금, 조금이지만 용기를 가지고 엄마에게 말을 걸려는 찰나, 엄마는 이내 내 사진이 들어있는 납골관 유리를 매만지며,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는 길에 하늘이, 참으로 맑더구나. 내가 온다고 하니까, 상국이 네가 도와준 걸까? 엄마 기분 좋게 해주려고?”

“........”

“정말로, 정말로 아직도 믿기지 않아, 어미보다 먼저 가버리다니, 이거 엄청난 불효란다? 나중에 하늘에서 만날 때, 싹싹 빌어도 용서해주지 않을 거니까....”

‘엄마...’

“그러니까...제발....살아있었으면 했어.....어디로 가버린 거니....도대체 어디로...! 이 엄마를 놔두고 어디로 가버린거야...!”

아.

말해야 해.

엄마가 그토록 찾고 있는 김상국이, 여기 있다고.

여자가 되어버린 채로, 다시금 엄마를 만났다고.

“흐윽.....죄송하네요....이런 꼴을 보이...다니...”

“아...아닙니다...”

흐느끼던 눈물을 닦고, 나를 돌아본 엄마가 말했다.

“상국이는.....참 착한 아이였죠, 그런데 이렇게 떠날 줄은, 그날 때 화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

그랬다.

내가 여자가 되기 전날.

친구들과 술을 진탕 먹고, 늦게 집으로 들어갔다가, 엄마와 한바탕 싸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내가 화내서 그런 걸까요...? 내가....내가 잘못해서.....상국이가 떠난 건 아닐까요...?”

엄마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흐느꼈다.

엄마의 마음속에는, 그때 그 일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요....아뇨 엄...어머님.....그건 결코 어머님 잘못...이...아니에요....! 그러니까.....울지 마세요....”

아냐.

엄마 잘못이 아니야.

다 내 잘못이야.

여자로 변했고.

신고 당할까 봐 무서워서 도망쳤고.

이리저리 치이느라, 해명조차 못한 채로 3년이 지났어.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손을 잡고 있는 엄마를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품이, 너무나 따뜻한........

나는 여기 있는데, 여기 없다.

김상국은 여기 있는데, 저기 사진 쪼가리가 되었다.

엄마는 나를 찾고 있음에도, 나를 껴안으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아.

말하고 싶어.

내가 김상국이라고.

내가 엄마 아들이라고.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미친 사람 취급하겠지.

하물며, 아들을 찾으며 울부짖는 어머니에게, 뜬금없는 여자가 자기 아들이라고 한들, 믿어줄까?

더 큰 충격을 주는 게 아닐까.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야?

그저 못나지만 착한 아들, 그럭저럭 친한 친구, 공부는 못해도 성실한 학생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신분도 없고, 술 마시다가 자해나 하는 정신병자 창녀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내 품에서 울고 있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마워요, 참....이런 아가씨한테 매달리다니, 저도 참....”

“아...아닙니다.”

그렇게 한참을 끌어안았던 엄마는,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내 품에서 떨어졌지만, 눈가는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되겠죠, 상국이가, 만약에, 만약에 돌아왔을 때, 최대한 멀쩡해야 하니 말이에요, 모두 상국이가 죽었다고 하지만, 저는 믿고 있어요. 아직, 아직 그 아이는 살아있다는 것을.”

두근.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 돌아올지도 몰라요, 상국이가 사망보험금을 들었는지, 상당히 큰돈이 들어왔지만, 전혀 쓸 생각이 없거든요, 그걸 써버리면, 상국이가 죽어버린 것을 인정하게 될까 봐.”

두근. 두근.

“오늘은 고마웠어요, 아가씨가 상국이랑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두근. 두근. 두근.

“아...아뇨, 저야말로.”

“네?”

“아...아니에요...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두근. 두근두근두근.

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나는 엄마를 놔두고, 발 빠르게 납골당에서 나왔다.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내가 김상국이었을 때의 기억 빼고 가진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는데, 거기서 엄마한테 뭐라고 말해야 했을까.

모르겠다.

모르겠다.

몰라.

모른다고.

난 어떻게 해야 했어?

애초에 왜 여자로 변한 거야?

왜 몸을 팔고 있는 거야?

어째서.

어째서.

부모님 앞에서도, 내 정체를 밝히지 못해?

아냐.

너도 알잖아.

이곳에 온 이유를.

다시는, 다시는 김상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확립시키기 위해 왔잖아.

넌, 김상국이 아니야.

난, 김상국이 아니야.

김상국은 죽었어, 더는 없어.

오직, 김미영만이 남을 뿐이야.

저 사람도, 이젠 남일 뿐이야.

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사람.....

포근하고....따뜻하고.....보고...싶은.....나와 관련 없는 사람...

엄마.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