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chapter 4:우리가 춤추던 9월은, 분명 맑은 날 이었어요.(2)
* * *
“오늘은 죄송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려주실래요?”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아침이슬을 맞이하는 아침 시간.
보통 때라면 곧바로 박 실장의 차를 타고 집에 갈 테지만, 오늘은 그에게 지하철에 내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지하철은 왜?”
“볼일이 조금 있어서...”
이번 일을 마무리로 내 수중에는 상당한 현금이 쌓여 있었기에, 지하철 코인보관함에 돈을 넣고 싶었다.
“.....알았다.”
잠깐의 침묵 뒤에 돌아온 그의 말과 함께, 그는 핸들을 틀어, 집 방향이 아닌 지하철로 검은 밴을 이끌기 시작했다.
“..........”
“......돈은 잘 벌고 있나?”
“...예...뭐...그럭저럭...”
“그래...지하철이다...이거지?”
“네?”
“아냐, 아무것도.”
“...네에..”
집과 가까운 지하철이었기에,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럼.”
나는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개찰구로 향하기 위해, 차 문을 열었다.
그런데.
“잠깐, 나도 같이 가지.”
박 실장도 마찬가지로 차 문을 열더니, 운전석에서 일어나 차 밖으로 나왔다.
“....담배가 다 떨어져서, 볼일 봐.”
“네에....”
‘뭐지? 보통 이럴 때 맨날 날 시키지 않았나?’
그런 잔심부름이라면 굳이 자신이 가지 않았던 그가, 오늘은 이상하게 자기 스스로 사러 간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뭐, 상관없나.
나는 대충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는, 그를 놔두고 지하철 입구로 들어섰다.
터벅, 터벅.
아침의 지하철은, 언제나 사람이 붐볐다.
보통 사람이 없는 한적한 낮 시간에 오곤 했기에, 이 몰려드는 인파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혹여나 현금이 든 클러치 백을 떨어뜨릴까 봐, 두 손으로 꼭 쥔 체, 사람들 사이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25번.
그것이 현재, 내가 돈을 보관해놓고 있는 락커의 번호.
0829
띠띠띠띠 하는 소리와 함께, 굳건히 닫힌 락커의 문이 철컥하고 열렸다.
“72....73....좋아...”
나는 여태까지 벌었던 돈을 차곡차곡 정리해, 현금다발로 만들어 조심히 락커에 보관된 상자에 담았다.
얼마 안 남았다.
심적으로 자신을 이끌기 위한 말이 아닌, 말 그대로 얼마 남지 않았다.
얼핏 봐도 남은 돈은 약 70 남짓.
그 돈이 모이면, 나는 신분이 생긴다.
본래의 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길었어, 정말...”
고통스러웠다.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었고, 매일같이 자살을 고민했다.
그런데, 그러지는 못했다.
나는 겁쟁이라서, 너무 무서워서.
몸을 파는 건 무섭지만, 죽는 것은 더더욱 무서웠다.
어째서 내가 죽어야 하는가 하는 한탄과 분노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은, 살아야 할 이유가 조금이지만, 생긴 것 같았다.
“다음번엔, 진짜 ‘김미영’으로 만날 수 있겠네...”
대충 둘러댄 이름이 아닌, 창녀 짓으로 돈을 버는 걸래년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너의 곁에 있을 수 있다.
“....가 보자.”
이제 결심했다.
더는 망설이지 않아.
나는 휴대폰을 열어, 메모해두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XX시 XXX동 XX납골당....”
납골당.
이곳에는 내 무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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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국은....서류상 죽은 사람이 됐어...
......뭐?
민준이 떠듬떠듬 꺼낸 말을, 머릿속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실종된 지 3년, 경찰들도 수사해 봤지만,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당연하지, 김상국은 생김새도, 지문도 없는 내가 되어버렸으니까, 찾을 수 있을 리가.
그렇기에 수사는 종결되었고, 사망으로 처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끝까지 내가 살아있을 것이라 믿으며, 수사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주변 사람들과 경찰들의 설득 끝에, 나는, 죽은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 납골당 주소는 여기....이걸로 끝이야, 나도 이제 포기하려던 찰나였어, 정말 우연히, 우연히 너를 길거리에서 만났지.
민준이, 나를 엿 먹이려고 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우리 부모님이 그런 선택을 하신 지는 몰라도.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우습게도 생명보험 들어놓길 잘했다. 였다.
어머니 친구의 부탁으로, 별수 없이 들어두었던 생명보험 덕분에, 부모님이 힘들지는 않겠구나.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나았을지도.
아버지도 나이가 있으시니, 곧 퇴직하실 것이고, 두 사람이 오순도순, 노후를 살 정도는 되겠지.
이제는 남자로 돌아가도, 나는 죽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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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릉거리던 버스에서 내리자, 후끈한 매연을 내뿜으며 버스가 순식간에 나를 두고 나아갔다.
버스는 오랜만이라서, 덜컹거리는 의자 덕분에 엉덩이가 슬며시 아파졌다.
“저기인가...”
버스 정류장에서도 바로 한눈에 보일 정도로 상당히 큰 건물이 있다.
납골당.
이상한 비유지만, 시체로 이룬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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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당의 내부는, 평일 낮이었지만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누구는 꽃을, 누구는 사진을, 누구는 가족의 손을 잡고 있었다.
23관.
민준이 말한 대로라면, 이곳이 내 무덤이었다.
땅에 묻혀있지도, 내 시체도 없지만 말이다.
계단을 올라가며, 지나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누구는 허망한 얼굴을 짓고 있고, 누구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훌쩍거리고, 누구는 같이 온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이윽고, 23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층과, 유리창 너머에 있는 항아리들이 그 층을 메우고 있었다.
“로얄층....인가...”
어떤 만화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를 보면, 최하층이나 최상층에 비해, 중간층의 가격이 더 높은 로얄층이라고.
납골당도 아파트랑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중간이 가장 비싸다는, 그런 이야기.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였을 때의 사진이 보인다.
“....참, 어짜피 유골도 없는데, 싸게 좀 하지...”
딱 내 시야에 들어올 정도의 중간 높이에 위치해 있는, ‘나’
사진뿐 만이 아니라, 어릴 적 학교에서 하던 공작 시간에 만들었던 나무 조각이나, 고등학교 졸업식 날 썼던 학사모, 대학교 학생증, 군대 제대하고 나서 기념으로 챙겨온 인식표 등.
과거의 내 흔적들이 가득한, 눈부실 만큼 빛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조명등 정도의 빛을 내던 내 인생들의 흐름이, 이곳에 있었다.
“그렇구나.....나는....죽어버린 거구나....”
하하.
“다시는...크흡....돌아갈 수...없는...거구나....”
느낌이 왔다.
나는 앞으로도, 절대로 김상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느낌이.
과학적인 명분도 없고, 무당이 이야기해 준 것도 아닌, 단순한 느낌이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고 말았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일은 일어났고, 주저앉지 않고 다른 삶을 살아보려는 내 모습이, 버스를 타고 올 동안 상당히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과거에 집착한 사람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라는 명언이 있다.
글쎄.
적어도 나는, 과거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숨을 쉬기 힘들고, 목이 멘다.
자꾸만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시야를 가린다.
“돌아가고 싶어....남자였던 나로....으흑..!”
꼴사납고, 한심하지만.
‘나’ 인걸.
저건 분명히 ‘나’ 라고.
어떻게 버릴 수가 있어.
내 진정한 모습은, 아직 김상국인걸.
"돌아가고 싶어..."
“저기...누구신지...?”
그렇게 한심하게 내 사진 앞에서 흐느끼고 있었을 무렵, 어딘가 많이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귀를 꿰뚫고, 뇌 속까지 빠르게 침투했다.
“어...엄마?”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새하얀 국화를 한 아름 손에 들고 있는.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