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chapter 4:우리가 춤추던 9월은, 분명 맑은 날 이었어요.(1)
* * *
“후우....”
시커먼 폐 속을 지나, 하염없이 가벼운 담배 연기가 훅, 하고 차 안을 뒤덮는다.
연식이 상당히 오래된 시꺼먼 밴은, 가볍게 덜덜 떨리며 차가운 공기를 내며 온도를 내려주고 있다.
진하게 코팅된 선글라스를 벗자, 그의 오른쪽 눈가부터 진하게 그어진 흉터가 바깥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박 실장은 자기 손에 들린 담배를 대충 구겨 창밖으로 던지고는, 몸을 기울여 자신이 앉아있는 운전석 옆의 조수석에 달린 수납장을 열었다.
“....벌써 이거밖에 안 남았나....시발...”
손을 휘적휘적 하며 잡히는 것을 전부 끄집어낸 박 실장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새하얀 가루가 들어있던 지퍼백.
분명 그가 거금을 치르고 하린에게서 구매할 때는 가득 차 있었지만, 어느새 총량의 1/5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제기랄....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군.”
박 실장은 손에 들린 지퍼백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지려다가, 이내 혹여나 터질까 봐 조심스럽게 원래 지퍼백이 들어있던 곳에 넣어두었다.
박 실장은 답답했다.
사면 살수록 미칠 듯이 올라가는 약 가격과 조금씩 줄어드는 돈벌이. 심지어 자신의 이름으로 돈도 빌려두었던 그였기에, 점점 자신의 목을 향해 다가오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씨발년....그 개씹창년만 아니었다면.....시발...”
박 실장은 자신을 낭떠러지로 밀어 넣은 장본인을 떠올렸다.
하린.
그녀의 첫 만남은 별것 없었다.
그저, 이 어플을 이용하고 싶었고, 자신은 수수료를 받고 실어주는 것뿐.
다른 창년들과 똑같이 그저 그런 비즈니스 관계.
그랬을 터였다.
어느 날, 박 실장은 아주 우연히, 하린이 자신을 이용해서 몰래 마약 운반원처럼 쓴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격분하며 하린에게 욕지거리를 하며, 협박하려던 찰나.
내가 미안하네~ 말을 못 해줘서. 이거, 사과의 의미로 받아 둬.
아주 작은 지퍼백에 담긴 어떤 가루.
박 실장은 본능적으로 그 안에 담긴 가루가 어떤 것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마약.
박 실장이 수금 질을 할 때도, 마약에 미쳐, 감당치 못할 돈을 빌리던 놈들도 있었다.
아는 형님이 여러 물건에 손을 대며 돈을 끌어 모으다가, 비명횡사한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그것을 챙겼는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그녀는 사라진 지 오래.
그저, 자신의 손안에 쥐어진 작은 봉투와 튜브 끈, 그리고 작은 주사기만이 놓여져 있었다.
당장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창년과 무슨 수를 쓰거든 멀리 떨어져야 한다. 고 머릿속은 시끄러웠지만.
박 실장은 그저, 손에 쥐어진 물건이 혹여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싶어 곧바로 차 안에 숨겨 들어왔다.
그렇게 물건을 자신의 차 안에 실어놓은 체, 그는 자기 집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심장이 요동치고 식은땀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거리를 달리는 경찰차를 발견 했을 때는, 말 그대로 심장이 내려앉을 뻔해서 급정거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그런 박 실장을 못 봤는지, 그냥 갈 길 가던 경찰차를 바라보고 나서야, 다시금 운전 페달에 발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어떻게 운전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빠진 박 실장이 간신히 주차를 마치고, 흘낏,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주 무덤덤하게, 하지만 분명,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자기 집 앞이었지만, 그는 창문을 열어 얼굴을 내밀고는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나서야, 자신의 주머니에 모든 것을 쑤셔 넣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다리는 계속해서 떨리고 있어서, 두어 번 넘어질 뻔했다.
도어락 버튼을 누르고, 철컥하고 열린 문을 급하게 잡아당겨, 빠르게 집에 돌아온 박 실장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도 켜지 않아, 어두운 방에는 달빛만이 창문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대충 땅바닥에 앉아,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물건을 꺼내어 바닥에 두었다.
안다.
지금 당장, 이 물건 따위는 그냥 변기에 내려버리든, 태워버리든, 어떻게든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쯤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손을 뻗었다.
바스락거리는 결정들이 들어 가 있는 지퍼백을 집은 그는 무엇을 했는가.
머리가 시키는 대로, 바로 버려버렸을까?
그는 곧바로 소거해버리는 대신, 아주 천천히, 천천히 지퍼백을 열었다.
창문을 통해 내려오는 달빛을 받은 새하얀 결정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박 실장은 자기 손바닥에 결정들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코에 가져다 대, 빨아들였다.
어째서, 그러고 말았을까.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궁금증이었다.
실제로 본 적은 많지만, 해 본 적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째서 사람들이 마약에 빠져들고.
어째서 마약은 법적으로 금지되고.
어째서 그럼에도 마약은 거래가 되는가.
그런 궁금증은, 박 실장을 움직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크고 작은 결정들이 코를 타고 올라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황홀감.
박 실장은 여태까지 살아왔던 생전동안 느껴보지 못한 황홀감을 느꼈다.
그는 어딘가에도 있었고, 어딘가에도 없었다.
늘어나고, 줄어들고.
하늘을 날고 있다.
전신이 꼬여 들어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가 정신을 차릴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인 시간이 돼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그가 느낀 감각은 바로.
허망함.
자신은 금방까지 느꼈던 감각을 되새기며, 여운에 찌들지도 못했다.
단순한 되새김으로는, 그때의 감각을 발끝도 쫓아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켜, 무언가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지퍼백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챙겼다.
두려움.
자신을 현혹하는 그 물건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한 번만 더 그것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 또한 자꾸만 피어올랐다.
______________
5일 뒤.
박 실장은 하린에게 연락했다.
현금다발을 챙겨둔 채로.
________________
“시발....”
돈.
돈이 필요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마약을 그만둔다는 선택지 따위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아무리 벌어도 벌어도, 마치 모래처럼 그의 손을 빠져나가고, 그의 빈손을 채우는 것은, 이젠
지긋지긋한 하얀 가루뿐이었다.
“.....일단, 지금은 생각을 비워야겠다.”
한참 동안 얼굴을 감싸던 손을 내린 박 실장은, 다시금 조수석의 수납장에서 하얀 가루를 꺼냈다.
기어 뒤에 있는 또 다른 수납장에서는 물과 숟가락, 그리고 주사기가 들어있었다.
하얀 가루를 숟가락에 담고, 물을 부어 휘휘 저은 후, 라이터로 숟가락 바닥을 지져 끓인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액체를 식히고, 주사기로 빨아들인다.
손매를 걷어, 팔뚝 위를 튜브 관으로 묶어, 혈관을 보이게 만든다.
이미 구멍투성인 팔뚝에, 주사기를 가져다 댄다.
단순한 현실도피라는 것쯤은 그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지금은, 하늘을 날고 싶군.”
자기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약물에 취하며.
박 실장은 중얼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