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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36화 (36/91)

〈 36화 〉 chapter 3: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11)

* * *

민준과 마지막으로 만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분명, 그 기억을 민준과 함께 떨쳐내려고 했지만, 아직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 녀석이 했던 말이었다.

차라리 나를 잊어버리고 나쁜 놈처럼 굴지.

지금까지 뿅 하고 사라졌던 나를 찾아다녔다고? 바보 아냐?

그런 주제, 나를 덮친 건 기억도 못 하고, ‘나’를 찾기 위해 ‘나’에게 화를 냈다니.

아.

속이 꽉 막히고, 답답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확인해야 했다.

그 녀석이 그냥 해본 말인지, 나를 엿 먹이려고 한 말인지는 몰라도.

나는 반드시 그것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두렵다.

정말로, ‘그것’을 마주한다면, 나는 그대로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덮어두는 것.

진실을 들춰볼 용기가 없다면, 그저 덮어두고, 무시하자.

응. 그게 맞아.

오늘도, 현수의 집에 가자.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괜찮아, 아직, 망가지진 않았어.

나는 노랗게 변색된 집의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공기가 들어가, 부푼 부분.

살짝 어긋나 도배가 벗겨진 부분.

그것들을 바라보며, 그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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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잠시 일을 쉬고 있었다.

곧 있으면 목표액까지 도달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일하다가는 분명 어딘가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박 실장은 전혀 건들지 않았다.

“이번 달 치, 돈 내놔라.”

아니, 3일 전에 월세랑 이것저것 합친 금액이 적힌 계산기를 들이밀며 돈을 요구할 때 빼고는 말이다.

“잠시만요, 어째서 돈이 더 올랐나요?”

“....문제있나?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말만 해, 그대로 이 집에서 나가면 되니까.”

“...아뇨, 문제없어요.”

분명 40~60만 원 언저리였던 돈이, 순식간에 두 배 이상이 늘어났지만, 따지고 들 힘도 없었다.

“그래, 열심히 창녀 짓 해서 돈 벌어, 돈이 최고니까.”

박 실장은 내가 코인 보관함에서 챙겨온 돈을 챙기더니 실실 웃으며 방에서 나갔다.

“...돌았나?”

요즘의 그는, 상당히 이상해 보였다.

언제나 무표정이었던 그는 점점 언행이 과격해지고, 자주 멍을 때리거나 하곤 했다.

무언가, 무언가에 찌들어버린 사람처럼, 그는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늘은 컵라면 말고 딴 걸 먹을까....”

하지만 그런 것 따윈 알 바 아니지.

그 새끼가 밖에서 뭘 하고 돌아다니던, 나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저, 하루빨리 돈을 모아,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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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째서 그림을 그리는 거야?”

흠칫, 하고 사각거리던 연필을 움직이던 그의 손이 멈추었다.

그러자 연필의 소리가 가득 차 있었던 작업실의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무슨 계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누구나 어떤 일을 하다 보면 그걸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잖아?”

언제나처럼, 나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던 현수에게 난 그렇게 물었다.

현수와의 사이가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그는 언제나 나의 그림을 그릴 때면 빳빳한 새 돈이 담긴 봉투를 건네고는 했다.

그저,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를 만들어 준 현수였기에, 더는 돈은 굳이 안 줘도 했지만, 그는 내 손을 벌려 봉투를 쥐여주었다.

무언가, 우리 사이가 결국, 철저한 비즈니스처럼 느껴지는 행동이어서, 나는 그런 그의 행동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볼일이 끝난다면, 다시금 남남으로 돌아갈 것 같은, 선을 긋는 것 같아서,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네요, 그림을 시작한 계기...라..."

그는 내 질문을 듣고, 잠시 팔짱을 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시작한 계기를 떠올린다기보단,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움, 네, 그리움이네요.”

“그리움?”

그리고, 그의 대답은 상당히 뜻밖의 대답이었다.

“저는 아직도, 푸른 하늘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새파란 하늘을.”

“그런 녀석이 하늘은커녕, 조금의 빛도 새어 나오지 않는 암막 커튼을 모든 창문에 걸어두는 거야?”

현수는 상당히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의 괴멸적인 가구 선정은 둘째치고, 상당히 이질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의 집은, 말 그대로 암흑 같았다.

집 내부의 전등은 언제나 밝게 유지되어 있지만, 집 전체에 가려둔 암막 커튼은, 조금의 빛도 허용하지 않는 듯, 그의 집에 있다 보면 시간 감각이 조금씩 어그러지는 것 같았다.

분명 새벽인 줄 알았는데, 담배를 피우러 가면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다든지.

아직 해가 떠 있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붉은 노을이 눈을 부시게 만든다든지 말이다.

마치 바깥과 이 집을 단절시키는 것 같은 현수의 행동에, 조금 의문이 들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하늘이 그리워서, 라니.

“그렇게 그립다면, 커튼을 걷고, 창밖 너머를 바라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 현수에게, 나는 퉁명스럽게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대답했다.

“하하....그럴수는 없어요.”

“어째서?”

그럼에도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저는, 다시는 그 하늘을 느낄 수 없을 테니까요.”

“....뭐?”

“탁 트인 하늘도, 기분 좋게 뺨을 간질이던 바람도, 모두, 이제는 그리울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미련하게도 다시는 느낄 수 없는 하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붓에 담아 그렸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화가가 되어 있었죠.“

“.....점점 알기 힘들어. 어째서 그런 거야?”

“지금 바깥을 나가서, 맑은 하늘을 보더라도, 어쩔 수 없는 허무감이 저를 휘감고 말 테니까요. 하하. 그래도 저는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하며 지내요. 다행히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그걸로 돈을 벌며, 미영 씨 같은 좋은 인연 또한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바보 아냐.”

저런 대답은 정말 잘한다니까.

누구 마음도 모르면서 말이야.

“하하.”

그리고 그는 웃었다.

체념과 허탈이 담긴 미소였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느낄 수 있었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그의 마지막 말에 흔들리느라고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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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사실 언제 무너질지 모를, 아슬아슬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몰랐었다.

내 마음 추스르기에도 바빠서, 눈치를 챌 수도 없었다.

그때, 그것을 눈치를 챘었더라면 어땠을까?

행복할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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