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chapter 3: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9)
* * *
민준을 마주치고 나서 3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사람이 술독에 빠진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으윽.....머리가....우웁...!”
갑작스러운 두통에 신음하며 감았던 눈을 뜨자마자 올라오는 토기에 나는 입을 부여잡았다.
“우욱...! 으웨에엑..!!”
서둘러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만 허우적거렸고,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구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먹은 것이 없는지, 씁쓸한 위액만이 고통스럽게 목구멍에서 올라와, 바닥을 시큼하게 적셨다.
마치 위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수많은 헛구역질을 끝내자, 나는 그대로 머리를 땅에 박으며 엎어졌다.
속이 타들어가고, 입이 빼짝 말랐다.
“욱...! 뭐야 이건..!!”
어떻게든 물을 마시려고 팔을 바닥에 붙여, 냉장고를 향해 기어가고 있을 무렵, 오른쪽 팔목에 수많은 상처들을 보고는 기겁을 질렀다.
내가 자해를 했다.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산산조각으로 깨진 소주병과 끝부분이 날카롭게 갈라진 한 조각의 끝은 핏물이 새빨갛게 물들어 눌어붙어 있었다.
“미친....이런 미친...”
술에 취한 내가 한 행동을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거의 다가간 냉장고의 문을 열어 구석에 박힌 생수병을 들으려다가 흠칫, 멈추었다.
생수병 바로 옆에 소주병이 있었다.
“.......”
영롱하게 반짝이는 초록빛의 인광이 자꾸만 시야에서 일렁거렸다.
도망가고 싶다.
몸을 팔아 살아가는 이 상황에서.
생각하기도 끔찍한 기억에서.
그냥.
도망치고 싶다.
땅굴을 파고, 또 파서.
그 누구도 보지 않을 곳으로,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
점차 기어 다니던 다리에 힘이 들어온 나는 바닥에서 일어나, 나 스스로 소주병을 손에 집어 들었다.
냉장고의 문을 닫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금 내가 일어났던 곳으로 돌아왔다.
아직 휘청거리는 몸이 불안정하게 움직였지만 상관없었다.
이윽고 자리에 도착한 나는, 털썩 자리에 앉아 소주병의 뚜껑을 열기 시작했다.
자해든 뭐든.
죽든 말든.
모르겠다.
그냥, 그냥 조금이라도 이 상황에 제정신으로 있기 싫었다.
“...이런 씨발 진짜..!”
3일 동안 먹은 것이라곤 소주밖에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만 미끈거려서 뚜껑이 열리지 않았다.
한참 동안 낑낑대고 나서야 뚜껑을 열 수 있었다.
그렇게 열고 나서, 그대로 들이키려던 순간.
띠링.
바닥에 널브러진 공기계의 휴대폰에서 메신저 수신음이 들려왔다.
“......”
그 소리에 나는 잠시 소주병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들었다.
휴대폰은 충천을 해놓지 않아서인지 배터리는 2%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누구에게 연락이 왔는지는 뻔히 보였지만, 나는 일단 확인을 하기 위해 패턴을 풀었다.
보나마나 오늘 일거리를 알리기 위한 박 실장의 메신저라고 예측한 나는, 대충 거절하기 위해 메신저를 켰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박 실장이 아니었다.
현수, 차현수가 보내온 메신저였다.
그와 메신저 아이디를 나누고 최소 하루에 한 번은 대화를 나눴지만, 한동안 연락이 없자 그가 나에게 연락을 걸어온 것이었다.
“.....이 사람은 참...”
어떻게 이렇게나 타이밍을 잘 맞추는 걸까.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이미 소주에 절여져 제정신을 차리지 않은 상태일 테고, 아니면 배터리가 다 달아, 휴대폰 자체가 꺼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배고프네.”
그의 연락을 받자, 나는 순식간에 배가 고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커피, 커피가 좋겠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휴대폰을 충전시키고, 냉장고로 다가가 집으려다 말았던 생수병과 옆에 놓인 며칠 전에 사두었던 삼각김밥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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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습니다.”
“네, 고마워요, 여기요.”
“예입!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목적지에 도착한 택시 기사가 도착을 알리자, 나는 주섬주섬 현금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싱긋 웃으며 받아들였다.
이상하다.
분명, 민준을 만나고 나서 남자만 보면 겁에 질렸는데, 너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니 다른 남성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무섭다.
지금 내 상태는 정말로 이상한데, 네가 질려하지는 않을까.
상처가 난 오른 손목에는 붕대를 감고, 최대한 밝게 보이기 위해 새로 산 옷을 입었다.
이렇게 찾아가서, 너를 만날 때, 네가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미친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괜스레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택시에서 내린 내가 천천히 그의 집으로 향하고 있어도 그 후들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올라가, 이윽고 너의 집 앞에 섰다.
고작 초인종을 누르려던 것뿐인데도 자꾸만 손에 땀이 났다.
미리 집으로 간다고 연락도 해놨고, 이상하지 않다.
언제나 요란한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지고, 문 너머로 따각거리는 목발 소리가 들린다.
조금 기다리니 이내 두터운 철문이 철컥하고 열리고, 끼이익 하고 열리는 문 너머에 네가 보인다.
“오랜만이네요, 어라? 새 옷을 사셨나 봐요?”
“그...그렇지? 지나가다가 옷가게가 있어서 말이야....”
사각 진 뿔테안경.
언제나 인자한 미소.
나는 그가 열어준 문을 통해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의 집은 역시나 달라진 것 없이,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어때? 어울려? 상당히 비싸더라고, 이러니까 천상 여자 같지?”
“그러네요.”
“요즘 연락이 안 된 건 미안해, 내가 조금 바빠서 말이야, 그나저나 길거리를 걷다가 카페를 갔는데 말이야, 역시 네가 내려 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더라고!”
이상하게 말이 빨라진다.
손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만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리고 있다.
“가끔 편의점을 가는데, 저번에는 도시락이 1+1을 하더라, 그런데 나는 도시락을 별로 안 좋아해서 샌드위치를 샀어. 샌드위치는 에그 샌드위치가 가장 맛있더라고!”
“...미영 씨?”
“샌드위치도 맛있지만, 햄버거도 맛있지! 나는 역시 빅맥이 좋아, 다른 햄버거보단 훨씬 맛있더라고, 그리고 감자튀김도 있는데 난 눅눅한 걸 은근히 좋아해.”
“미영 씨.”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지만, 한번 열린 입은 자꾸만 무언가를 내뱉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뭐더라, 그...아....무언가...아...”
말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이 분위기에서 갑자기 침묵이 이어진다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계속 말하려고 하지만, 머릿속이 어느새 엉킨 실타래처럼 엮여, 정리가 되질 않아 자꾸만 그리고 를 연발하고 말았다.
“미영 씨!”
“....”
그러던 중, 현수는 크게 고함을 질러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날카롭게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렇겠지?
역시 이런 이상한 내가 싫은 거겠지?
하긴, 갑자기 연락도 안 되고, 만나자마자 이상한 소리나 내뱉는 나를 누가 봐도 미친 사람으로 보잖아.
그는 그 표정 그대로 목발을 짚어 따각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이윽고 바로 내 앞까지 다가온 그가, 나에게 손을 뻗었다.
“히,,히익..!”
때리는 건가.
너도, 다른 사람처럼, 민준처럼.
무서워.
때리는 것이 무서운 게 아냐.
네가, 다른 사람처럼.
똑같아진다는 게 무서워.
그렇게 그것에 놀란 내가 눈을 질끈 감으며 벌벌 떨고 있자, 머리 위에서 무언가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거에요.”
“....아.”
“그러니까, 진정해요, 제가 커피라도 한 잔 내려드릴까요?”
“....아윽...”
따뜻하다.
“으큭....흐으윽...”
너는 언제나 다정하구나.
너는, 다른 사람처럼 이 아닌, 오직 너였어.
“무서웠어....너무 무서웠어....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었어....아팠어, 너무 아파...”
“......괜찮아요, 괜찮아....”
그의 따뜻함에 기대는 것 말고는, 나는 견딜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