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chapter 3: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8)
* * *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
전신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입은 뻐끔뻐끔 열었지만, 정작 나오는 소리는 새된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공포.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억눌러 두었던 그날의 경험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지금 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 있었다.
“너...너! 맞지?! 야....너 뭐야.”
“아....으아...”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민준은 내 팔을 잡았던 손을 놓더니, 이내 내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내며 외쳤다.
“김상국 그 새끼 어디 있어? 어?!”
“아?”
김상국.
군대 재대하고 띵가띵까 알바나 하던 그저 그런, 3년 전의 나.
그런데 어째서, 민준은 ‘나’에게서 ‘나’를 찾고 있는걸까?
“그날 이후로 상국 그 새끼는 말 그대로 사라졌어, 이건 질 낮은 농담 정도가 아니라고 시발!!”
그는, 나에게서 내가 어디 있는지 격분하며 말했다.
친구.
지금 내 눈앞의 남자는 자기 친구가 사라져버려, 격분을 내고 있었다.
‘나’에게 말이다.
“하....하하..”
그런 민준의 감정을 눈치를 채고만 나는, 이내 다리의 힘이 풀려버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이가 없었다.
누가? 누굴?
네가, 나를?
그렇게 무참히 나를 망가뜨려 버린 네가, 사라져 버린 나를 찾고 있다고?
어째서.
왜?
“하....웃어? 뭐냐고...대체....내 친구 어디 갔냐고 시발련아!”
그런 내 모습을 보던 민준은,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착각한 나머지, 더욱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길가에서 어떤 남성이 여성의 멱살을 잡으며 욕지거리를 하고 있으니, 이내 우리 둘 주변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민준은 내 멱살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봐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덥석 하고 내 멱살을 잡은 민준의 팔목을 누군가가 잡아끌었다.
“너...넌 뭐야?”
“길가에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일단 놓으세요!”
“이..이거 놔! 난 물어봐야 할 게 있다고!”
여러 문양의 타투가 새겨진 오른팔.
슬쩍 시야를 위로 올리니, 찰랑거리는 귀걸이가 보인다.
“계속 이러시면 경찰 부를 겁니다.”
호준.
그가 민준의 팔을 잡은 채로 강경하게 말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가 여기에 있는 걸까?
아, 근처에 커피숍이 그가 알바하던 곳이었지.
“이...이...! 시발...!!”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던 민준은 상황이 심각해진다는 것을 느꼈는지, 내 멱살을 놓고 인파를 헤치며 뒤로 나아갔다.
멱살이 풀리자 나를 지탱해주는 것이 사라져 버리고 말아서, 나는 그대로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둔탁한 바닥에 머리를 가볍게 찍었지만, 딱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으흐..하...하아...하아...”
마치 그 고통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무서웠다.
민준의 얼굴을 보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렌지빛 천장.
헐떡대는 민준의 숨소리.
역겨운 이물감.
그 시간의 고통들이 자꾸만 내 머리를 휘젓고 다녔다.
“누나...괜찮아요?”
몸을 일으켰다고는 하나, 아직 땅바닥에 앉아있던 나에게, 호준이 손을 건네며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나.
“손대지 마!”
“앗...! 누,,,누나?”
“가...가까이 오지 마....건들지 말라고!”
나보다 한참은 더 큰 남성의 손이, 나에게 다가온다고 느끼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호준의 손을 쳐내고 뒤로 물러났다.
무서워.
저런 손이면, 나는 그의 폭력에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거야.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나는 그대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켰지만, 자꾸만 다리에 힘이 빠져 두세 번 넘어졌다.
“누나...진짜 괜찮은게 맞...”
“오지 말라고!”
“....!”
그런 내 모습에 잠시 주춤했던 호준이 다시금 다가오자, 나는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이 소리를 지르고는, 벌떡 일어나 뒤로 달렸다.
팔목에 걸린 옷가게에서 산 옷이 담긴 봉투가 자꾸만 휘날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달렸다.
그저 달렸다, 아니 도망쳤다.
거의 패닉에 빠진 사람처럼, 동공이 자꾸만 흔들리며 시야가 흐려졌다.
자꾸만 오렌지빛 전등이 시야에서 일렁거렸다.
내 귓가에는 나에게 거칠게 욕을 하는 민준의 욕지기가 들렸다.
아.
아아.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뭘 했어?
하염없이 달리느라 숨이 턱 밑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이윽고, 내가 살고 있는 빌라가 보여도, 계속해서 달렸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고, 도어락을 누르는데 자꾸만 틀리게 번호를 눌렀다.
빨리. 빨리.
이내 3번의 실패 끝에, 경쾌한 소리를 내는 도어락이 열리자, 벌컥 열고는 곧바로 문을 닫았다.
한계까지 달린 다리가 욱신거리며, 주르륵 풀렸다.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고, 폐가 따끔거렸다.
오늘 샀던 옷들을 손목에서 대충 풀어서 던져두니, 팔목에는 빨갛게 쏠린 흔적이 남아있다.
“아...흐...하..”
“흐...흐아아....흐.....그만...그만해애...제발...”
분명, 민준은 여기 없다.
근데 어째서, 내 방이 오랜지 빛으로 물들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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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몇 병째더라?
몰라, 일단 열어봐.
크.......맛있네, 술이 맛있다니, 나도 어지간히 맛이 갔네.
달콤한게 완전 꿀맛인데?
아하하!
콜록, 콜록, 씁....아 연기 잘못 마셨네.
좋아, 두 개피 동시에 피기!
후우...나는 안개를 뱉는다! 이건 내 능력이지!
크하....그러고보니, 소주병은 던지면 깨지나?
우왓...! 산산조각으로 깨졌잖아?
아아, 벽에 얼룩 생기겠네, 아 내 알 바는 아닌가?
와...조각이 반짝거리네?
그러고 보니,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돌을 던져서, 날카로운 조각을 만들어 칼로 사용했다던가...그랬던가...
진짜로 베이나?
이거, 뾰족한 게 멋있는데?
아야...! 와...진짜로 베이네?
아프기는 아픈데 뭔가 독소 빼는 것 같아서 개운한데?
하하하! 새빨간 피다 피!
술에다가 섞으면...즉석 피 칵테일!
우웩, 비린 맛이 난다.
맛없어.
하하.
하.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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