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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32화 (32/91)

〈 32화 〉 chapter 3: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7)

* * *

그 뒤로 나는 현수와 ‘조금’ 친해졌다.

그 일이 있었던 이후, 현수는 나를 부를 때는, 오로지 박 실장을 통해서 불러야 했지만, 내가 먼저 직접, 공기계에 깔아둔 메신저의 아이디를 알려주어, 친구를 맺었다.

휑하니 비어있는 연락처에는 박 실장과 현수, 딱 두 연락처만이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그림을 그릴 때는 언제나 확실하게 금액을 치러주기도 했다.

그냥 이대로, 현수의 모델을 하며 목표금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정 금액을 박 실장에게 상납하지 않으면 나는 곧바로 살 곳을 잃어버릴 테니, 결국 매춘 일도 그대로 하고는 했다.

그래도 현수는 가끔 나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놀러 오라거나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잡다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다지 싫지 않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지금의 상황을 잊어버리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가 있었다.

그래.

웃을 수가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째.

웃음기가 많던 나는 어느새 감정을 죽이고, 행복을 잊었다.

처음 그와 대화를 나누며 웃을 때, 나는 그런 티는 내지 않았지만, 아주 크게 놀랐다.

나도 웃을 수 있구나.

아직, 나도 웃을 수가 있구나, 싶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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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뚝.­

“.....아, 졸려...쓰읍...”

슬슬 듣기만 해도 짜증이 솟구치는 알람음에 나는 살짝 신경질적으로 손에 들린 휴대폰을 이불 위로 떨어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점 군대에서 듣던 기상 음악 정도로 이 알람음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다른 알람으로 바꿔야겠다...”

바닥에 나뒹굴던 휴대폰을 다시 들어, 알람음을 새가 지저귀는 소리로 바꾼 뒤, 클러치 백에 넣어둔 피임약부터 먹기로 했다.

빨간 클러치 백을 열어 피임약을 찾으려고 했더니, 지퍼를 열자마자 현금 덩어리가 삐죽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는 상당히 피곤해서, 코인 보관함에 들렀다 오는 것을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은 피임약을 꿀꺽 삼킨 나는, 클러치 백에서 현금을 챙긴 후, 화장실로 들어가 외출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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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625...627....좋아, 확실히 다 있네.”

언제나처럼 돈을 넣을 때마다 현재 금액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은, 여전했다.

현재 4천627만 원.

앞으로 목표액까지 373만 원 남아 있었다.

이제 곧, 정말 곧 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클러치 백에서 꺼낸 현금 뭉치를 전부 넣으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상당히 닳았네...이 옷...”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각기 다른 옷들을 입고 지하철을 바삐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에 비해, 몇 년을 입어 소매 부분은 너덜거리고, 천이 늘어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옷을 입고 현수를 만나러 갔었는데....

“....옷을 좀 사야겠다.”

나는 들고 있던 돈 중, 살짝 넉넉하게 여윳돈을 챙기고, 남은 돈을 도로 넣어두었다.

곧 있으면 목표금에 도달하기도 하고, 옷 정도는 사도 괜찮겠지, 싶었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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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나를 발견한 옷가게 직원이 후다닥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어떤 옷을 찾으시는지?”

“아...괜찮아요, 제가 둘러볼게요.”

그에 그치지 않고, 계속 내 옆에서 무어라 말하는 직원을 뿌리친 나는, 시선을 돌려 옷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단 윗옷인가...’

대충 박스티면 충분하겠지, 싶은 나는 박스티가 걸려있는 구간으로 다가가, 적절한 치수의 아무 무늬 없는 회색 박스티를 하나 골랐다.

“손님~ 손님 체형이면 박스티도 좋지만, 이런 옷은 어떠신가요?”

그러자 분명히 뿌리쳤을 직원이 어느새 내 옆까지 다가와 자신의 손에 들린 옷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이쪽 블라우스도 요즘 잘 나가구요~이쪽 니트도 어울리시는데,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아니...저는...”

그런 직원이 들이대고 있는 옷은, 누가 봐도 여자들이 입을 법한 하늘하늘한 옷들 투성이었기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면 이쪽 루즈 핏 티셔츠도 어울리시겠다~색감도 여러 가지 있거든요~ 일단 한번 입어 보시겠어요?”

내가 싫은 티를 내도, 계속해서 들이대기 시작하는 직원.

아니 싫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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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예쁘긴 예쁜데...”

직원의 계속되는 추천에 결국, 나는 탈의실로 들어가 직원이 추천해준 옷을 입고 말았다.

확실히, 디자인은 나쁘지 않았다.

통풍도 잘되고, 옷 라인에도 잘 맞아 들어갔다.

단순한 회색도 아니라, 자연스럽기도 했고.

“........”

아무 의미 없이 자꾸만 손이나 허리를 흔들어 보자, 그에 맞추어 옷이 하늘하늘하며 팔랑거렸다.

“.......괜찮긴 하네...”

이런 옷을 입고가면, 그 녀석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울린다고 말할까?

예쁘다고 말할까...?

“아...아니 시팔 뭔 소리야....! 정신 차려야지...!”

나는 남자인데, 같은 남정네 놈에게 칭찬받는다고 뭐가 좋다는 건...

“네~4만5천원입니다~”

“...여기요, 카드도, 포인트도 아무것도 없고 현금으로 바로 계산해 주세요”

그래, 아무리 그래도 낡아빠진 옷을 입고 다니는 건 그렇지.

새 옷을 사는 건 이상한 게 아니야. 음.

어느새 나는 탈의실에서 나와, 금방 입었던 옷들을 계산하고 있었다.

“손님~계산 끝났습니다! 포장해 드릴까요?”

“아뇨, 그냥 이대로 입고 갈게요.”

“네에~다른 상품은 구매하시나요?”

“다른....상품이요?”

후딱 계산하고 가게를 나서려고 하던 나를, 직원은 눈을 반짝이며 막아 세웠다.

“이번에 나온 옷들도 예쁜 게 많이 나와서요~일단 다른 것도 한번 둘러보시겠어요?”

“아...아니 저는...”

“이쪽 카라 니트는 어떠신가요? 아아! 이쪽 브이넥도 여러 가지 색이 나와서 손님들이 눈독 들이시는 것들 중 하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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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렇게 결국, 나는 금방 샀던 옷 말고도 바지 포함 세 벌이나 사고, 그제야 옷가게를 나올 수 있었다.

상당히 넉넉히 들고 왔던 돈들이 어느새 바닥을 들어내었다.

“그래....새 옷 샀으니까, 그려려니 하자...”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든 나는, 어쩔 수 없다며 길을 나섰다.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언제나 밋밋한 옷들만 입던 내가 아닌, 여성복을 입은 내 모습을 바라본 너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살짝, 콧노래를 내어본다.

흥흥 하는 목소리가 아주 작게, 내 귓속에 흥얼거렸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놀러 가겠다고 문자를 보내봐야겠다.

“........잠시만, 너 뭐야....”

그렇게 길을 걸어가던 내 팔목을, 누군가가 우악스럽게 잡았다.

"아니 무슨 짓......"

아.

갑작스럽게 팔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눈살을 찌뿌리며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지려던 나는,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맞지...? 너, 저번에 상국이 연기하던 몰카녀.”

익숙한,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살짝 갈라지기는 했지만, 나는 이 목소리를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이내 잡아끌던 팔을 잡아당겨져 끌려온 내가 몸을 돌리자, 나는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여자가 되었을 때. 기댈 곳을 찾던 내가 처음으로 만나러 갔던 남자.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가 평생을 고통스러워할 기억을 남겨준 남자.

“.....박....민준...?”

그곳에는 내 팔을 강하게 잡고, 얼굴을 구기고 있는 박민준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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