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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31화 (31/91)

〈 31화 〉 chapter 3: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6)

* * *

“.......”

“.......”

한참을 훌쩍이던 나는, 빨갛게 물든 코끝을 비비적거리며 힐끗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금방까지만 해도, 품속에 안기게 해 주었던 그는 어느새 반대편 쇼파의 멀찍한 구석에 앉아, 나와 마찬가지로 나를 힐끔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면 그새 큼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색하다.

그리고, 눈물을 그치고 머리가 차가워져, 냉정해진 나는 현재.

‘시발....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매우 부끄러웠다.

한때 덩치도 큰 남자였던 내가, 육군 만기전역도 한 내가, 남자의 품에 안겨 그렇게 흐느껴 울다니...

쪽팔려.

마음 같아서는 담배라도 피우러 간다는 변명을 대서라도 잠시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큼큼....저기요?”

오히려 나 스스로 먼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말을 걸었다.

늦은 밤에,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음에도, 상냥하게 반겨주고, 나를 위로해준 사람이 바로 저 사내, 차현수 였다.

그렇게 환대를 받았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봤자, 서로 불편하기만 하니, 나는 용기를 쥐어 짜내어 말을 걸었던 것이다.

“아, 네?”

그러자,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해맑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현수.

그렇게 웃지 마, 뭔가 간질거리잖아.

“그....나이가?”

그의 대답을 들었음에도,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내뱉은 첫마디가, 몇 살이냐는 말이었다.

‘병신, 진짜 병신이냐?....아냐, 일단 제일 기초적인 질문은 맞잖아? 그게 말이냐 병신아, 갑자기 나이 얘기를 왜 꺼내?’

그리고, 그 즉시 후회하고 말았다.

누가 봐도 어색하기 짝에 없는 상투적인 발언.

“저는 올해로 스물세 살이네요, 미영씨는...?”

“아...아아 저는 올해로 스물 아호..아니 스물다섯입니다.”

그런데도 밝은 미소를 유지하며 스스럼없이 대답한 현수의 말에 당황하며 실제 나이를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조금 줄여서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몸에 스물아홉은 조금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보다 연상이셨군요? 그렇다면 부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아뇨, 괜찮아요...”

그래도 스물다섯도 많았는지,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현수.

“저야말로 괜찮습니다, 그쪽이 더 편하기도 하고요.”

“그..그러면...그래, 알았어...”

그렇게 그의 부탁으로 말을 놓고, 우리는 천천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날씨 이야기, 아니면 금방 마신 커피 이야기 등.

쓰잘머리 없고, 진부한 대화였지만, 점차 납덩이 같던 속은 천천히 녹아 들어갔다.

“아무리 화가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그냥 우산도 아니고 무지개색 우산이라니?”

“그런가요? 저는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만?”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참....”

어느새 마치 서로 오랫동안 보고 지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내 모습이 있었다.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 가벼운 대화는 어느새, 다시금 내린 커피와 같이 어울리는 과자도 탁자 위에 올라와 있었다.

“아, 미안한데, 담배 한 대만 조금...”

“아 네, 다녀오세요.”

잠시 대화를 끊은 나는, 내가 입고 있던 옷에서 꺼낸 담뱃갑을 들어 보이며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손에 쥔 라이터와 담배를 들고, 발코니로 향하자, 순간적으로 새어 나오는 밝은 빛에 잠시 눈을 찌푸렸다.

그런가, 그와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려, 날이 밝은 것 같았다.

이 집에는 특이하게 모든 창문이 암막 커튼에 가려져 있다 보니, 날이 밝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발코니의 창가에 몸을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

일렁이는 담배 연기가 후욱 하고 피어올랐다.

“.....참....착한 놈이네...”

어느새 말도 놓고, 대화도 많이 나누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내가 오늘 왜 찾아왔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게 말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갑자기 사람이 찾아왔다면, 무슨 일이지 물어보는 것이 보통일 텐데, 현수는 달랐다.

신경을 쓰지 않는다기보단, 아마 나를 위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안지 얼마다 됐다고 참....

“그래서 그런가....”

어째서, 내가 그 일 이후로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와 대화하면서도 자꾸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나는 바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여자로 변한 지 어언 3년.

이미 과거의 김상국은 사라졌다.

나를 아껴주시는 부모님도, 스스럼없이 놀던 친구도, 전부 이제는 없다.

가끔 아는 척 말을 걸어오는 손님이나 박 실장 또한, 그저 철저한 손님과 고객, 그리고 비즈니스적인 관계일 뿐.

그 누구도 아무런 대가 없이 나에게 잘해주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 꼬맹이도 있었지.

호준인가 뭐시긴가.

글쎄, 아무리 봐도 그 녀석은 그냥, 어린 나이에 성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꼬맹이일 뿐.

허나, 현수는 달랐다.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나에게 커피를 한 잔 타준다.

울고 있는 나를 안아주고, 상냥하게 쓰다듬어 주었..

“어...왜 이러냐...?”

뭐지, 그냥 단순히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을 뿐인데, 자꾸만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진짜 쪽팔리기는 했지.....에휴...”

그렇겠지, 그냥 쪽팔려서 그런 거 겠지.

아무튼, 나는 바라고 있었다.

포근하고, 상냥한, 스스럼없이 친하게 굴 수 있는 사람을.

그런데도 아직,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소리가 들려온다.

­글세, 과연 저 녀석이 마냥 착해서 저러는 걸까?­

­무언가 노리고 있는 거 아니야?­

­지금까지 봐왔던 남정네들은 다 그 모양 그 꼬라지였잖아.­

­그래, 저번에 그 새끼도....­

그만.

지금 와서까지, 그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혹시나, 라는 생각은 언제나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사람을 믿는다.

이 세상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하하호호 즐거운 동화 속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 3년 동안,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 일단은 너무 풀어지지 말자. 혹시 하는 것도 있잖아?’

그렇게 다짐한 나는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마저 남은 불씨를 꺼트렸다.

“아, 기다렸....하하...뭐야...”

그리고, 다시금 그가 앉아있는 쇼파로 돌아오니, 금방까지 다짐했던 마음이 너무나도 손쉽게 풀어지고 말았다.

“스으....쿠....스으...”

그는 이미, 미세한 숨소리만 내며 곯아떨어져 버린 상태였다.

너무나도 무방비하고, 태평하게.

“뭐냐고....금방까지 고민하던 내가 바보 같아지잖아...”

그는, 그런 사람이다.

곤란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대가 따위는 바라지 않는, 그런 사람.

“여기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편하게 자.”

“아...죄송하네요...잠들었나요?”

“그러니까, 들어가서 자라니까.”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느낌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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