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chapter 3: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1)
* * *
사각. 사각.
일정하고, 반복적인 연필의 소리가, 천천히 심장 고동과 맞닿은 듯이 들려왔다.
그는 오늘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나를 그리고 있다.
그래도 다른 점 하나는 분명했는데.
‘소파가 참...푹신하네.’
저번의 차갑고 딱딱해서 엉덩이가 아프던 나무 의자 대신, 푹신한 1인용 쇼파에 앉아있는 점이다.
저번에는 그 나무 의자 덕분에 엉덩이와 허리가 아파, 자주 쉬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휴식할 때마다 곡소리를 내며 허리를 펴는 모습을 보았는지, 현수는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쇼파를 가져다 두어서 깜짝 놀랐다.
몸이 푹 들어갈 만큼의 부드러운 쇼파 덕분에 한결 편하게 앉아있을 수 있었다.
이런 것까지 필요 없다고 말했더니.
[아닙니다, 미영씨가 편해야, 저도 그림이 잘 그려져요, 사양하지 말고 편하게 계셔요.]
그렇게 까지 말하니, 미영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편하게 고급진 쇼파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허나 단점이라면.
“...아, 죄송하네요, 잠시 졸았어요.”
너무 쇼파가 편해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깜빡깜빡 잠이 들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아, 아뇨, 이런 시간이라서 졸리실 텐데, 잠시 쉴까요?”
“으음...혹시 노래 같은 걸 틀 수는 없을까요? 너무 적막해서 그만큼 눈이 감기는 것 같네요.”
자꾸 감기는 눈을 비비며 내가 말했다.
사각거리는 연필의 소리가 싫은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저 소리를 들을 때면 잠이 한 무더기로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노래라도 들으면서, 잠을 깨워보고 싶어진 나였다.
“그럴까요? 미영씨가 듣고 싶은 노래는 있나요?”
“저요?”
“네, 마침 블루투스 스피커도 있으니까, 미영씨가 듣고 싶은 노래를 틀어도 괜찮아요.”
“...현수씨는요?”
“아...저는 딱히 노래를 듣지를 않아서, 뭐가 좋은지 모르겠네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젤에서 일어나, 작업실을 나섰다.
아마 스피커를 가져오려는 참이겠지.
노래도 듣지 않으면서, 블루투스 스피커는 왜 있는 걸까?
그런 모순적인 현수의 행동에 의문을 느끼던 나는, 그가 들고 온 스피커를 보자마자 그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아아....이 사람, 스피커라는 이용목적 따위는 개나 줘버렸구나.’
그가 들고 온 블루투스 스피커는 깊게 눌러쓴 스투피드 신사 모자와 거뭇거뭇한 콧수염, 자신만만하게 짚고 있는 지팡이, 그리고 얼빵해 보이는 얼굴.
맞다, 자그마한 찰리 채플린이었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냥 그의 마음에 들어서, 스피커든 인형이든 상관없이 사 버린 듯 보였다.
“이거면 괜찮을까요?”
“엄....페어링도 되고, 괜찮은 것 같아요.”
생긴 건 영 아니었지만, 스피커 부분도 달려있고, 내 공기계와도 호환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가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 스피커를 사 놓고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던터라...”
“....그래요? 예술가들은 노래를 많이 들을 것 같은데 말이죠.”
“하하. 그러게요.”
역시, 특이한 사람이야.
“그럼 틀게요.”
공기계와 페어링을 끝내고, 나는 재생 버튼을 눌러서 노래를 틀었다.
[♪~~♬]
그러자, 적막했던 작업방에, 어느새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하...제가 듣던 노래는 좀 오래된 노래라서, 최신 노래랑은 좀 다르게 지루할 것 같아요.”
“아뇨, 충분히 좋은걸요?”
언제나 듣는, 상당한 세월이 지난 발라드 노래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그럼, 다시금 시작할까요?”
“네, 좋아요.”
노래도 틀었겠다, 나는 다시금 쇼파에 앉아, 자세를 취했다.
사각 사각.
흑연이 아무것도 없던 흰 바탕의 종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언제나 듣던 노래가, 그 소리에 맞추어 천천히, 천천히 내 안으로 새어 들어온다.
“...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 만나....”
이내 나는, 그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아주 조용히, 찰리 채플린의 모자 위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옛적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창문을 열면, 은하수가 보일 것 같은 늦은 밤.
이 자그마한 그의 집이 마치 다방처럼 느껴졌다.
뭐, 커피도 맛있으니까,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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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 만나.]
[홍차와 냉커피를 마시며~]
[매일 똑같은 노래를 듣다가, 온다네~]
[그대, 그대, 그대.]
[그대, 그댈, 그댄~. 그대, 그댈, 그대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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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괜찮은가..?”
마무리 선을 연필로 그어대던 현수는 팔짱을 끼고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모델을 부탁한 그녀가 앉아있는 모습.
아직 인체에 관해 공부할 부분이 많고, 풍경화만 그려왔기에 아직 미숙해 보이는 부분이 많이 보였다.
“미영씨는....아, 주무시네....”
한참 얼굴을 찡그리고 이젤을 바라보던 현수가 고개를 내밀어 미영의 모습을 바라보자, 그녀는 이미 꾸벅꾸벅 잠이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음....이대로 앉아서 주무셔도 괜찮을까...”
그녀가 앉아있는 쇼파가 상당한 금액인 만큼, 그렇게 무리가 가지는 않기는 할 텐데.
그래도 이왕이면 침대에서 잠드는 편이....
“......담요라도 가져 와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던 현수는, 차마 곤히 잠든 미영을 깨울 수가 없어, 목발을 짚고는 그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담요를 가져와, 조심히 그녀의 몸 위에 덮어 주었다.
“......”
“....스으....하아.....스으...하아...”
그녀의 어깨가 천천히, 리듬에 맞추어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숨소리에 곤히 잠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어떨까...”
그 모습을 곤히 바라보던 현수는, 다시금 이젤에 앉아, 새로운 도화지를 하나 꺼내었다.
사각 사각.
평소와는 조금 빠르게, 하지만 상당히 섬세한 스케치가 도화지를 덧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상당히 긴 속 눈썹과, 얇은 목, 살짝 도드라져 보이는 쇄골.
현수가 바라보던 미영의 모습이, 도화지에 스며들고 있었다.
“...사랑은....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 만나...”
한참 전, 그녀가 틀었던 노래가, 현수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홍차와 냉커피를 마시며...매일 똑같은 노래를 듣다가, 온다네~”
응.
좋은 노래다.
현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연필이 들린 손을 움직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