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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25화 (25/91)

〈 25화 〉 chapter 2: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12)

* * *

“오늘도 거기냐?”

빌라 입구에 세워진 벤에 탑승한 나를 돌아보던 박 실장이 내게 물었다.

“...네.”

“....네가 상당히 꼴리나 보네, 이번에도 가격을 두 배나 내고 말이야. 큭큭...”

“...”

대충 대답해 주자, 이런 처지인 나를 비꼬는 건지, 아니면 그저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인 건지 나를 보며 낄낄거리는 박 실장을 무시하고 내 몸에 안전밸트를 채웠다.

저번에 나에게 그림 모델을 부탁했던 화가, 차현수가 오늘 밤, 나를 다시금 불렀다.

첫 방문 하고 약 5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는 상당히 친절하고, 내 몸을 전혀 요구 안 하면서 돈은 두 배로 주는, 나에게는 정말 좋은 일거리였기에,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는 그저 그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고, 상상에 빠진다.

은은한 커피 향이 맴도는, 그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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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리리!­

마치 온 아파트 단지를 뒤덮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커다란 기계음을 내는 벨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저번에도 들었지만, 어지간히 소리가 컸다.

벨소리가 이내 잠잠해지며, 나는 그저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자, 이내 두꺼운 철문 너머 탁! 탁! 하며 목발이 바닥을 짚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오셨어요?”

그리고, 저번에도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철컹하고 현관문이 열렸다.

“......”

“....제...제 얼굴에 무언가가 묻었나요?”

분명 저번에는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듬성듬성 자란 수염 때문에 누가 봐도 예술가처럼 보였던 그의 얼굴이, 말끔하게 빗질 된 머리칼과 깔끔하게 씻어낸 턱수염 덕분에 순간적으로 그때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나? 싶어진 내가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는 무척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박박 긁으며 물었다.

“아...아뇨! 아니에요. 들어갈게요.”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매우 당황했지만 그러지 않은 척, 최대한 얼굴을 숙여 가리고는 슥 하고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

..? 어째서 내가 차현수에게 얼굴을 가린거지?

순간 얼굴이 헷갈려서 그래.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별거 아니네.

그의 얼굴은 전혀 달라졌지만, 그의 집은 여전히 그때와 똑같이 뒤죽박죽 섞인 예술품들이 한데 정리되어 있어서 다시금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오늘도 역시 모델인가요?”

“네, 좀 부탁드릴게요, 여기...선금..”

“보자.....네, 맞네요.”

그는 여전히 깔끔한 흰 봉투에 빳빳한 새 현금을 가득 채워 나에게 건네주었다.

가격을 확인한 나는, 그때처럼 5만 원권이 11장이나 들어있었지만, 괜히 지적하지는 않았다.

더 챙겨준다는데, 그냥 감사히 받지 뭐.

“아, 커피 한 잔 드실래요? 마침 새로 원두를 로스팅하려고 했거든요.”

“...로스팅?”

잠시 이어지던 침묵을 깨고, 그가 나에게 물었다.

“네, 혹시...궁금하시면 구경해보실래요?”

“....좋아요.”

로스팅이 뭔지도 모르는 나였지만, 궁금해졌기에 그의 제안을 수락하자, 그는 다시금 목발을 움직여 주방으로 향했다.

“이게 원두에요.”

“...어라? 원래 이 색이에요? 또...아니 갈색 아니던가?”

그가 갈색 봉투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한 줌 가득 쥐어 꺼냈다.

그것은 보통 원두라고 불리던, 갈색의 알맹이가 아닌, 초록빛이 맴도는 하얀 알갱이들이었다.

“이걸 이제 볶아주면, 미영씨가 아는 그 원두가 되는 거예요.”

“아아...”

“그리고.....이게 그 원두를 볶아주는, 로스팅 기계에요.”

그리고 그는 손에 쥔 원두를 무언가에 쏟아부었다.

오목한 형태에 길쭉한 막대가 달린 로스팅 기계가 웅웅 소리를 내더니, 고정되어 있던 막대가 회전하면서 원두를 이리저리 섞어내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면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아...네...”

그 모습이 워낙 신기하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나를 바라보던 현수의 말에, 흠칫 놀라며 손을 다시금 제자리로 되돌렸다.

그의 말처럼, 로스팅 기계에서는 어느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희미하지만 은은한, 커피의 향이 조금씩 코끝을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

“.....”

사악, 사악.

로스팅 기구가 마치 모래를 쓸 듯이, 볶아지는 소리만이 마치 서로의 침묵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처럼 주방에서 울려 퍼졌다.

‘....무슨 말이라도...해야하나...?’

그저 로스팅 기계를 바라보는 것도 충분히 흥미는 돋았지만, 그저 이 남자를 앞에 두고 말없이 멍하니 있자니, 무언의 어색함이 나를 자꾸만 건들이기 시작했다.

“....성가시지 않아요?”

“..네?”

“아..아니! 그러니까...! 커...커피를 마시려면 그냥 카페에 가서 마시거나, 아니면 완성된 커피 가루를 산다던가...네...”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온 말은, 상당히 비꼬는 듯 ­몸도 불편한데, 그냥 사서 마시지 뭣 하러 귀찮게 이런 짓을 하나?­ 이 나온 말이라, 나 스스로도 말을 내뱉은 것을 후회하고 말았다.

‘병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런 자신의 말에 당황하면서 이어진 변명이라고 한 것도 이상했기에, 나는 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침묵이었지만, 금방보다도 훨씬 무거운 분위기가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성가시다, 라.”

그 침묵을 깬 것은, 내가 아닌 현수였다.

“솔직히 말하면, 사 먹는 쪽이 더 편하기는 하죠, 애초에, 제 다리도 이 모양이고, 하하.”

“아..그...죄송...”

“그런데.”

현수가 자신의 다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저는, 상당히 욕심쟁이라서, 원하는 건 어떻게든 구하고 말거든요.”

그가 말한 대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뭐든 상관없이 구매해버린다는 것쯤은, 그의 집을 조금만 둘러봐도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어째서 사서 마시지 않느냐고 물으셨죠?”

“ㄴ..네..”

“일단, 계속 만들어 볼까요?”

“네?”

“마침, 원두들이 색을 내기 시작한 모양이에요.”

그에게 건넸던 질문이 돌아오나 싶었지만, 그는 어느새 고개를 돌려, 로스팅 기계를 바라보며 대답을 피했다.

순간적으로 벙찐 나였지만,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볶아지던 원두를 바라보았다.

하얗던 원두들이 연갈색으로 변하자, 그는 뚜껑을 덮었다.

그러자 이내, 마치 팝콘을 튀기는 것처럼, 원두들이 톡! 토톡! 소리를 내며 튀기 시작했다.

“원두의 내용물이 팽창해서, 껍질을 깨는 거예요.”

“아...그렇구나..”

무언의 질문도 건네지 않았는데, 그는 알아서 내 궁금증을 해결해 줄 답변을 말해주었다.

팍팍 튀기 시작하는 원두와 뜨거운 김 덕분에 김이 서린 뚜껑 덕분에 내부의 풍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점차 향긋하게 퍼져나가는 원두의 냄새가, 이제 곧 완성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다 됐네요.”

“...와...”

어느새 완성되었는지, 현수가 뚜껑을 열자, 내가 알던 그 원두의 진한 갈색이 옹기종기한데 모여,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었다.

“이제 이걸, 바람을 불어서 껍질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한 번 식혀줘요.”

목발을 바삐 절뚝거리며, 그는 금속제 체에 원두를 붓더니, 자그마한 선풍기를 하나 꺼내와, 전원을 켰다.

그러자, 마치 눈처럼, 갈색의 고운 가루들이 훨훨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한참을 바람을 쐬며, 껍질을 날려 보내던 그는, 원두를 만지며 온도가 식었는지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숟가락을 꺼내, 원두 그라인더에 원두를 넣어, 갈아내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륵.

원두가 부서지고, 갈리며, 커피 가루가 만들어진다.

거름망에 다 갈린 커피 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똑, 똑, 하고 방울방울 커피들이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며, 이내 한가득 커피가 생겼다.

“이번에도, 그대로 드시겠어요?”

“네? 아 네...그대로 마실게요.”

“후훗, 좋아요.”

내 대답에 살짝 미소 짓는 그가 머그잔에 만든 커피를 담아내자, 나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직접 머그잔을 들어, 소파 앞의 탁자로 옮겨두었다.

“식기 전에, 드세요.”

“네...그럼..”

그의 말대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한 모금, 맛보았다.

따뜻하고 씁쓸한, 하지만 그럼에도 맛있는, 저번에 마셨던 커피보다 약간 더 맛있는 커피였다.

막 만들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는 계속해서 커피를 들이켰다.

“맛있나요?”

“네, 맛있어요.”

나에게 커피의 맛을 물어보던 그의 말에, 머그잔을 잠시 내려놓은 내가 말했다.

“그쵸? 그래서 직접 만들어요. 이 맛을 좋아하거든요.”

싱긋.

그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

어째서인지 그 모습을 그대로 응시하지 못한 나는, 말없이 계속 머그잔으로 얼굴을 가렸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커피 냄새가, 자꾸만 내 마음을 간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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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로스팅 되는 기계.

이 사진은 카페같은 대용량으로 만들 때 사용되는 기계이고, 가정용은 더 작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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