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24화 (24/91)

〈 24화 〉 chapter 2: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11)

* * *

아침이 밝았다.

세상을 감싸던 어둠이 이내 저 끝으로 물러가고, 밝은 여명이 빌딩들을 감싸 안았다.

“...후..”

창문을 열어, 반짝이는 태양 빛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다시금 담배를 물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가는 듯 보였으나, 정작 지금은 참 느리게도 흘러가고 있었다.

상대성 이론인지 뭔지는, 현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요한 아침이 시작되고, 많은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라.

적어도 어젯밤에 허탕을 치지 않아서, 다행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으음....일어나셨....어요?”

“...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는지, 아니면 담배 연기가 매워서인지는 몰라도, 어젯밤, 내 몸을 탐하던 청년이 침대에서 눈을 뜨고는,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획 돌렸다.

생각해보니 내 상태가 알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는 나와 하룻밤을 보냈음에도 아직도 여성의 알몸을 그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미 나에게 수치감이라는 감정은 무디고 무뎌진 지 오래라서 별 상관하지 않아 하는 내가 이상한 것이겠지.

“....언제 가시나요?”

“이제 곧 나갈 것 같네요.”

한참 고개를 돌렸던 그는,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다시금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 나를 직시했다.

지금 시각은 6시 40분 쯤.

슬슬 옷을 갈아입고 나갈 시간이었다.

“저...혹시..말인데요....”

“네.”

“실...실례가 안 된다면....저...그....”

“....빨리 말해 보세요.”

그는 나를 바라보며 우물쭈물하더니, 계속해서 말끝을 흐렸다.

점점 듣고만 있기 답답해진 나는 그를 향해 어서 대답하라고 말해 주었다.

“....연락처를...좀...받을 수 있을..까요..?”

“....연락처는 왜요?”

그러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당히 예상에서 벗어난 말이었다.

나는 그냥 시간이 끝나가기 전에 한 번 더 하자고 말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누나가 마음에 들어서...지금 용기를 짜내고 있어요.”

“.....”

누나, 라.

“저를 좋아해요?”

“네?”

“묻잖아요, 아니 묻잖아. 내가 좋냐고.”

“아니..그...그러니까....네..”

“그게 뭔데?”

“....네?”

무언가. 마음속에서 울컥거리는 감정은, 이내 폭포처럼 내 마음을 뚫고,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고 말았다.

“왜? 너한테 한번 대주니까, 내가 너한테 호감이라도 있을 것 같아? 응?”

역겨워.

“아니...저는 그러니까...”

“성욕이랑 애정을 착각하지 마, 너는 그냥 나를 돈으로 샀고, 나도 그에 응했을 뿐이야.”

역겨워.

“.........”

“애정이니 사랑이니 역겨우니까, 그만둬.”

역겨워.

아직 불이 붙어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구기고는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하늘하늘 공중에 머무르던 꽁초는, 이내 바닥에 떨어지고는,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그래. 모든 게 처음이었겠지, 그러니까 이런 일은 그냥,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 찾아.”

헐벗은 몸에 속옷과 겉옷을 걸치고, 클러치 백에 담긴 현금의 액수를 다시금 확인한 나는, 이내 현관으로 나섰다.

“저...저기..!”

무언가 말하려고 하던 그의 목소리는, 이내 철컹하고 닫치는 현관문의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후 시발.”

역겹다.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휘몰아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뱉어버릴 수가 없다.

이런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보았다.

대부분은 그저, 손님과 직원처럼, 돈과 돈으로 끝내는 관계였지만. 어쩌다가 한번, 저 애처럼 구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랑한다니, 좋아한다니.

웃음이 나왔다.

나도 아직,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데, 그들은 단순히 나와 하룻밤을 보낸 것만으로도, 자신의 감정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밀어붙였다.

그런 그들 중에서는, 애인이나 아내가 있는 사람도 있었고, 그저 장난으로 그러는 사람도 존재했다.

사랑이라.

나는 아직,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 살기도 바쁜데, 저렇게 나를 살 만한 돈이 있고,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는 것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나에게 달라붙는 걸까.

그런 그들이 나에게 구애를 할 때마다, 나는 더욱더 내 현실의 비참함만이 눈에 들어오고 만다.

과연 그들이, 내가 원래 남자였다는 것을 안다면, 신분도 없고 돈을 위해서라면 아무한테나 가랑이를 벌리는 안다면,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그렇게 모텔을 나와, 박 실장이 있는 검은 벤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텔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있었다.

이건 이렇게나 성실하게 굴면서, 어젯밤 전화는 왜 안 받은 건지 모르겠다.

살짝 짜증 나는 심정이, 다리에도 이어지는 듯 바닥을 짓밟는 듯이 걸음걸이를 이어갔다.

“.....어, 왔냐?”

“예.”

차 문을 열어, 차에 타니, 박 실장이 운전석에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흘러내리는 식은땀과 수척해 보이는 두 뺨, 맨날 쓰던 선글라스는 어쨌는지 맨얼굴이던 그의 눈은 붉은 핏줄이 마치 천둥처럼 흰자위에 드리워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분노했던 마음이 잠시 멈칫거렸다.

“어제 바빠서 전화를 못 받았는데, 무슨 일이야?”

“아 뭐...별 일은 아니었어요.”

“....그럼 됐어, 돈이나 내놔.”

“예.”

그래 금방 일은 잊어버리자.

결론적으로 돈은 벌었고, 다시는 안 볼 사이인데 뭐.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클러치 백에서 돈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소란스러운 술집은 언제나 그렇듯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야, 저 애는 어떠냐? 와꾸 죽이는데?”

그리고 이런 술집의 남자들은, 언제나 그렇듯 옆 테이블을 흘낏거리며 다른 여자들을 바라보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오....개꼴리네....야! 호준! 넌 어떠냐?”

“어? 어어...뭐....괜찮네...”

“.......얘 왜 이러냐? 한식이 군대 보내고 나니까, 허탈하냐?”

“어우...두 분 좋은 사랑 하셨나 봐요...?”

“아 그런 거 아냐! 닥쳐!”

그런 그들 사이에 있던 한호준은 지금 마음이 심란했다.

“.....야, 나 오늘 먼저 돌아간다.”

“뭐? 얌마! 뭔 소리야? 지금 재혁이가 옆 테이블 작업 들어갔는데?”

“됬어, 너희끼리 엉켜.”

바닥을 비운 맥주잔을 큰 소리로 테이블에 내려놓던 호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술값을 탁자에 올려놓더니, 이내 몸을 돌려 술집을 나왔다.

“.....쟤 진짜 왜 저러냐?”

“몰라, 근데 애초에 쟤는 여자애들한테 딱히 관심이 없지 않았냐?”

“뭐, 그건 그렇지, 얼굴도 괜찮고, 몸도 탄탄한데, 이상하게 한 번도 여친이 없었지?”

“너 그거 모르냐? 우리 과 여신 김예린이 밥 한번 먹자고 했는데, 과제 해야 한다고 쌩깠잖아.”

“진짜냐? 돌았네 저 새끼.”

“아 몰라, 걍 우리끼리 놀지 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안녕히 가세요~”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 알바가 자신에게 인사하는 소리를 들으며 호준은 거리로 다시금 나왔다.

“...하아...”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그가 성인이 되고도 아직 단 한 번도 펴 본 적 없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대학로의 거리는,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그만큼 담배를 피우는 곳도 있었다.

지나갈 때마다 얼핏 보고 관심이 전혀 없었던 호준은, 담뱃갑을 쑤셔 넣고 자신이 기억하는 흡연실로 걸어갔다.

“미쳤지, 내가. 어우...”

‘왜? 너한테 한번 대주니까, 내가 너한테 호감이라도 있을 것 같아? 응?’

‘애정이니 사랑이니 역겨우니까, 그만둬.’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그래. 모든 게 처음이었겠지, 그러니까 이런 일은 그냥,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 찾아.’

안다.

그 누나가 말했던 것은, 모두 사실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처음으로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고, 그 경험이라는 것이 엄청나다는 것도.

그냥 성욕과 애정을 착각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는 것도.

그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모두 잊어버리라는 것도.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생각이 나는 걸까?

이내 흡연실에 도착한 호준은 금방 편의점에서 샀던, 그녀가 피던 담배와 똑같은 담배를 꺼내, 하나 물었다.

마찬가지로 편의점에서 샀던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한번 폐 속으로 들이마셨다.

“콜록! 콜록!! 아 씁...! 하아...”

이내 호준은, 몸속에 담긴 장기를 모조리 토해낼 정도로 몸을 비틀대며 크게 기침했다.

눈물이 찔끔 나오고, 목이 너무나도 아팠다.

처음으로 피운 담배는 너무나도 매웠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