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chapter 2: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9)
* * *
익숙한 풍경이다.
이 모텔은 분명 처음으로 오는 모텔이기는 했지만,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을 달던, 새빨간 레드카펫을 깔던.
나에게는 그저, 하룻밤을 보내주고, 돈을 받는 일자리일 뿐.
그것은 분명 오늘 밤, 나를 산 남자도 마찬가지일 테지.
엘리베이터에서 느껴지던 압박감도, 이제는 훨훨 털어버리기 쉬웠다.
“709호...709호....여기인가?”
7층에서 내린 나는, 저벅저벅 걸으며, 오늘 밤을 보낼 모텔의 호수를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발견한 709호.
똑똑.
쓸데없는 말 대신, 노크만으로 내가 왔다는 것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
똑똑.
“......뭐지?”
분명 709호 맞는데, 아무리 노크를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심지어 모텔 문 앞에 달린, 손님이 방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센서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하 씨....낚시인가...개 좆같은 새끼가...”
나는 꿈쩍도 안하는 철문 앞에서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가끔, 아주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다.
그저 장난삼아, 어플로 여자를 지정하고, 위치까지 다잡아놓고는 나오지 않는, 말 그대로 사람 빡치게 만드는 일들.
이런 경우에는 장난을 친 작자의 계정을 차단하고는 하지만, 헛걸음했다는 사실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일단 박 실장에게 연락을 해야...”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지금 세대와 한 십몇 년은 지나 보이는 폴더폰을 꺼내었다.
인터넷 서핑이나 메신저, 알람이나 노래를 듣는 용으로 구매한 공기계와는 다른, 박 실장 명의로 만든 오직 연락만을 위한 휴대폰이었다.
헛친 것은 헛친 것이고, 일단 돌아가야 하니, 박 실장에게 연락해 사정 설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나는 단축키 1번을 꾹 눌러 [돈 귀신 새끼]로 통화를 시도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루.....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소리샘으로.....
“아....이 새끼는 왜 또 전화를 안받아....!”
이상했다.
차에서 내린 지 약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박 실장이 연락을 받지 않았다.
보통 항상 칼같이 연락받는 박 실장이었는데.
뚜루루루.....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이후...
뚜루루루....연결이 되지 않...
뚜루루루....연결...
그 뒤로도 한 6~7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는 똑같은 소리만 내뱉을 뿐, 전혀 통화가 되지를 않았다.
“하....돌겠네...”
어쨌든, 손님도 없으니 이곳에서 더 이상 있을 이유도 없어졌기에 돌아가기는 해야 하는데.
나는 손님을 만날 때 돈을 들고 가지를 않는다.
애초에 카드도 없으니 전부 현금인데, 만약의 만약을 대비하여, 비상금으로 만원 정도만 챙기고, 나머지 돈들은 집이나 지하철 보관함에 전부 넣어놓았다.
집에서부터 상당히 밟아서 왔으니, 택시를 타려고 해도 만 원가지고는 턱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동네 피시방을 가자니, 이 동네는 처음인지라 민증검사를 하면 얄쨜없이 나가야만 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이렇게 되면 근처 벤치라도 찾아서 밤을 지새우는 수밖에 없나.....
그렇게 한숨을 푹 쉬며 미련이 덕지덕지 묻은 손으로 철문을 마지막으로 두들기던 그때.
“무슨 일이신지...?”
709호 바로 맞은편인 708호 문이 철컥하며 열리더니, 누군가가 얼굴을 빼꼼 들이밀고는 나에게 물었다.
밝은 갈색으로 물들이고, 귀에는 온갖 피어싱과 슬쩍 튀어나온 팔에는 타투가 가득한 젊은 남성이었다.
“아,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그저 무슨 일인지 해서...”
괜히 복도에서 소란스럽게 했나 싶어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그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아...뭐....원래 여기에서 만나자고 한 사람이 오지 않은 모양이라....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바로 갈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남성에게 ‘조건 하러 왔는데 손님새끼가 구라를 쳤는지 만나기로 한 방에 아무도 없네요, 하하!’ 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뜨려던 찰나.
“....그....괜찮으신가요...? 늦은 밤인데, 오늘 밤을 지낼 곳은 있으신지...?”
그는 한층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갈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가지고 있는 것이야 자그마한 클러치 백만 가지고 있는 여자가 웬 모텔 문을 두들기고 있으니, 아마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예 뭐, 갈 곳이 없기야 하지만 별 수 있나요.”
나는 그의 대답에 잠시 멈칫하고는, 최대한 싸늘하게 어투를 조절해서 대답해 주었다.
첫인상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고는 하지만, 이렇게 몸뚱아리가 변한 이후로는 더욱 신경을 써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누가 봐도 화려하게 꾸민 그는 상당히 불량해 보였다.
“그...그렇다면 혹시 괜찮으시다면....잠시 제 방에서 쉬고 가실래요?”
“......네?”
그는 갑자기 나에게 자신이 있는 방에서 시간을 보내자며 제안을 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젊은 남녀가 모텔방에 같이 있자고 하는 의견이라면 그것밖에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 나는, 얼굴을 구기며 다시금 되물었다.
“아...아니!! 막 그 이상한 의미는 아니고....오늘 친구가 입대하느라, 같이 따라와서 보낸 다음, 시간이 늦어져서 내일 돌아가려고 했거든요....그래서 뭐.....곤란해 하시는 것 같아서...”
“...........”
그는 내 표정을 보더니 황급하게 자신의 상황을 밝히며 내가 걱정하는 것을 하려고 부른 것은 아니라며 필사적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제...제가 너무 오지랖을 부렸나요? 하하....죄...죄송합니다...그냥 못 들은 셈 치고...”
“그럴까요?”
“예....?”
“계속 이렇게 복도에서 떠드는 것도 민폐 같고, 잠시 실례 좀 할게요.”
“아...네네! 들어오세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이 생각 없이 말을 뱉었다며 사과하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가 묵고 있는 모텔방으로 들어섰다.
솔직히 지금 밖으로 나가봐야 갈 곳이라고는 편의점밖에 없는데, 밤새도록 편의점에서 죽치고 있는 것도 편의점 알바의 눈치를 봐야 하니 얼마 있지도 못할 테고, 그렇다고 늦은 야밤에 여자 혼자 길가를 돌아다니자니, 이 남자와 있는 것보다 훨씬 위험해 보였다.
그의 외관과는 다르게, 그의 말투나 행동거지는 상당히 친절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계산이 끝난 나는 그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로 마음먹고, 그의 방에 들어간 것이었다.
“아...침대! 침대 쓰셔도 되요! 저는 쇼파에 앉으면 되니까요.”
“아뇨, 이렇게까지 해주셨는데 너무 실례가 되는 것 같아서...”
“괜찮아요! 저는 쇼파가 더 편해요!”
“....그렇다면야...”
신세를 지는 상황이라 쇼파에 앉아 있으려고 했지만, 남자의 끈질긴 권유 덕분에 나는 푹신한 침대에 앉을 수 있었다.
“...................”
“...................”
조용하다.
침대에 앉은 나는, 그저 말없이 조용히 무릎을 모아 앉아 있고, 남성은 쇼파에 몸을 기댄 체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무언가의 대화는 일절 없이, 그저 삭막한 침묵만이 우리를 감쌌다.
“저....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모텔을 찾으신 건지 여쭈어봐도 괜찮을까요?”
마치 영원과도 같던 침묵을 먼저 깨뜨린 쪽은, 남자 쪽이었다.
“그건 왜...?”
“아...그냥 무슨 일이 있으셨나 해서....말하시기 싫으시다면 괜찮습니다!”
금방까지 내가 모텔 문을 두들기고 있었던 이유를 묻는 남자.
“.......오늘 조건만남을 하려고 했는데 손님이 거짓말을 했는지 원래 만나기로 했던 방에 아무도 없더군요.”
“...아....그렇...군요...? 하하...그....죄송합니다...”
잠깐의 침묵을 지나, 나는 그냥 순순히 오늘 있었던 일을 덤덤하게 그에게 말해주었다.
자꾸 캐묻는 게 귀찮기도 했고, 그냥 어쩌라는 식으로 밀고 나가기로 정했다.
“.......담배 한 대 피워도 괜찮을까요?”
“아...! 예예! 여기 재떨이요.”
그런 대답은 예상치 못했는지, 급속도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던 남자를 바라보던 나는, 담배를 하나 꼬나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매캐한 담배 연기가, 모텔의 방을 채워갔다.
“괜찮으신...가요?”
“글쎄요, 원래라면 가랑이나 벌려서 대충 쑤시게 내버려 둔 다음, 돈을 벌어야 하는데 말이죠, 여기까지 왔는데 돈을 못 벌었으니 짜증이 나기는 하네요.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을 흘낏흘낏 쳐다보던 남자가 괜찮냐고 물어보자, 나는 한층 비아냥 섞인 말투로 대답해 주었다.
남자에게 몸을 파는 거? 당연히 싫다.
그런데 돈은 벌어야 하지 않는가?
역겨운 미소를 지으며, 강압적으로 압박하는 남정네들의 더러운 돈.
그런 돈이 나는 너무나도 간절했다.
하루라도 더 돈을 벌어서, 이 생활을 탈출하고 싶은 나이기에, 한순간 한순간이 아쉬웠다.
얼마 있으면 돈을 다 모을 수 있다는 희망만이,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신분을 살 5천만 원을 모은다고 해도, 당장에 지낼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 조금 더 일을 뛰어야 할지는 모르지만, 신분이 생긴다는 것이 중요했다.
신분이 있어야, 나는 사람처럼 살 수 있었다.
“아...그러시구나...”
“.....왜요, 관심 있어요?”
“에? 아...저...!아니...그게....!”
내 대답을 들은 그가 손가락을 가만두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고 있기에, 나는 대충 떠보는 식으로 물어보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자꾸만 말을 더듬었다.
“......21만 원.”
“...네?”
“저를 하룻밤 동안 살 수 있는 돈이요.”
“아니..저....”
“괜찮으시면, 성욕 풀이라도 하시죠.”
그래.
돈이 필요해.
이 일은 정말이지 역겹고, 혐오스럽지만.
나는 돈이 필요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돈을 벌고 나면, 이 일은 모두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니까.
그냥 평범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니까.
* * *